계절을 재촉하는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씨였고, 시간이 정지한 듯한 그 날의 오후는 적요했으리라. 가을비와 고요 사이로 흐르는 진한 커피 향기가 어울렸을 그 날, 많은 사람들이 하루의 일과를 마감하고 달콤한 휴식을 취하거나 가족과 즐거운 담소를 나누며 저녁 시간을 보냈을 9월 12일 오후 7시 44분. 예기치 못했던 지진이 한반도를 강타했다. 규모는 5.1이었다. 규모가 상당히 컸기에 이 지진이 본진이 되려나 싶었지만 40여 분 후 오후 8시 32분경 2차 지진이 연달아 발생했다. 규모는 한반도 관측 이래 최대인 5.8이다. 전국의 국민이 진동을 확실히 느낄 정도로 규모가 큰 지진이었다. 그리고 그 지진의 진양 지는 신라 천 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경주였다.
우리가 발을 내디디고 있는 지표면은 언제나 그랬듯 굳건히 움직이지 않을 거라 믿고 있지만, 그 믿음은 공허한 바램일 뿐, 현실에선 수많은 지각관들의 충돌이 지표면 아래 맨틀에서 일어나고 있다. 더욱이 최근 들어 불의 고리 (Ring of Fire)가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뉴질랜드에서 시작해 인도네시아와 필리핀, 대만, 일본을 거쳐 캐나다와 미국 서부 해안가를 따라 코스타리카, 과테말라, 멕시코로 이어지는 4만 km의 환태평양조산대 주변 나라가 불의 고리에 해당되는 지역으로, 요동치는 지진의 피해를 겪고 있다.
올해 들어 일본 구마모토 현을 강타한 규모 6.5의 강진으로 사망자 9명을 포함, 최소 1,100여 명의 부상자와 수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으며, 불과 하루 사이에 필리핀에서도 지진이 발생했다. 곧이어 7.8의 강진을 기록한 에콰도르 지진대에서 잇따라 강진이 발생하면서, 버클리 대학 바로 옆에 있는 샌프란시스코 시를 포함하는 캘리포니아 주에서도 초대형 지진 발생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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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나라에 어떤 규모의 지진이 언제 닥칠지 인간의 과학으로 예측할 수 없다는 공포는 선진 문명의 오만에 사로잡힌 인간을 자연재해 앞에 선 보잘것없는 존재로 만들었다. 대재앙의 공포 아래 인간은 실로 무기력하다. 그리고 비교적 지진 안전 지역이라 불렸던 한국이 9월 19일 오후 8시 33분경에 또다시 일어난 규모 4.5의 지진과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는 400회 이상의 여진을 겪었다. 이번 지진은 우리에게 어느 나라도 지진에 안전할 수 없다는 교훈과 지진에 대한 공포의 트라우마를 남겼다. 강진을 체험한 한국인들은 지진 후 지속적인 두통과 구토를 호소하며, 지진 공포로 인한 불면증을 호소하고, 조금만 진동을 느껴도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집을 뛰쳐나와 안전한 공터로 향하고 있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지진 후 사람들은 공포로 떨고 있지만 여러 인터넷 커뮤니티들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몇몇 종교 집단에서는 지진이 신의 심판이며 인간에 대한 징벌이라 주장하고, 지진운과 가스 냄새, 혹은 죽은 개미떼를 본 목격담들이 지진의 전조현상이었을 거라며 서리서리 피어나오는 의혹들, 종말의 날을 예언하듯 특정일을 들며 대지진을 경고하는 온갖 루머들이 마그마처럼 실로 핫하게 온라인을 달구고 있다.
문명의 발달로 오만에 사로잡힌 인간들에게 예견할 수 없는 대재앙의 공포는 어떤 의견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판단할 수 없는 혼란 상태를 가져다주었다. 마치 지구의 액체 맨틀 위에 떠 있는 섬인 지표면처럼, 사람들의 판단력은 중심을 잃고 부유하듯 떠다니고 있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도 우리 모두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바로 피할 수 없는 자연재해 앞에서 인간이 스스로 창조한 인재의 이중 폐해이다. 지진으로 사람들이 공포에 떨고 있는 현재 더 큰 두려움을 주는 것은, 원전 폭발에 대한 위험이다.
한국의 고문헌에 따르면 경주 일대는 예로부터 강진이 많이 발생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런데도 그 활성 단층인 울진, 부산, 그리고 경주에는 각 6개씩의 원자력 발전소가 건설되어 있다. 게다가 고리지역엔 신고리 3, 4호기가 건설 중이며, 지난 6월 23일,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신고리 5, 6호기에 대해 추가 건설 승인 결정을 내렸다. 계획된 원자로들이 모두 지어진다면, 고리원전에는 6㎢ 이내에 무려 1만 1,537MW 규모로 원자로 10기가 들어선다. 원자로 수에서나 시설용량에서나 세계 원자력발전 역사에 새로운 획을 긋는 미증유의 사건이다. 거기다 한국의 원자력 발전소 30km 이내 주변 인구는 342만 명으로, 세계적으로 가장 많기도 하다. 현재 이런 지역이 바로 지진 위험 지역이라는 것이다.
한국의 이번 지진으로 흔들리는 땅 위에 원전과 방폐장, 그리고 주민들이 계속 공존하고 있다. 이 때문에 주민들은 피폭, 방사능, 쓰나미 등의 무시무시한 단어를 쏟아내며 두려움과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원전 인근 마을에는 강진의 공포에 그 후에 이중적으로 생길 수 있는 피해에 대한 공포가 더해진 셈이다. 원전 밀집도와 인근 주민 수로 세계 1위인 한국의 위험도는 일본과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위험하다. 비록 후쿠시마 원전은 규모 9.0의 강진으로 인해 무너졌지만, 한국은 일본보다 낮은 내진 설계로 인해 이보다 낮은 규모의 지진에도 괴멸적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한국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참혹한 원폭 피해를 경험한 일본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쳐다보거나 혀를 쯧쯧 차며 안쓰러운 이웃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현재 한반도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보자면, 제 눈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한 채 남의 눈에 있는 티끌만 바라본 셈이었다.
한국은 한국 전쟁을 경험하며, 늘 지독한 전쟁 트라우마에 시달려왔다. 그래서 더 이상 불운한 일은 겪지 않을 거라고 믿으며 현실을 계속 부정하는 방식을 취해왔다. 이로 인해 안전 불감증의 후유증을 남겼음에도 한국은 지진 공포 트라우마 앞에서 또다시 비슷한 방식으로 불안을 처리하려고 한다. 그러나 원전에 대한 시급한 대안은 이제 외면할 수도, 피할 수도 없는 우리가 당면한 과제이다. 대학생들 역시 모두 관심을 두고 이에 대한 대책을 비판적으로 고민해 보아야 한다. 현재로써는 가동 중인 원전을 대체할 신에너지 개발과 현재 건설 중인 원전과 앞으로 건설 예정인 원전을 전면 중단할 수 있도록 한국 정부에 촉구해야 한다. 면적이 크지 않은 조국의 땅이 아무도 살지 못하는 불모지의 땅이 되지 않게 하려면 말이다.
일본의 유명한 사회과학자가 한국의 지진 발생 후 한국인에게 이런 메시지를 남겼다.
"당신들은 아직 피폭당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행운'이 유일하게 일본보다 나은 점인 것 같습니다. 부디 그 행운이 남겨둔 기회를 놓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출처:
[1] Associated Press. "No Damages Reported after Biggest Earthquake in South Korea's History." The Christian Science Monitor. N.p., 12 Sept. 2016. Web. 14 Oct. 2016. <http://www.csmonitor.com/
내용 참고:
Kim, Jongyeop. "북핵, 지진 그리고 원전." 한겨레. N.p., 21 Sept. 2016. Web. 2 Oct. 2016.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62104.html>.
Kim, Minsoo. "경북 지역 규모 5.8 지진 또 발생...수도권에서도 진동 감지(2보)." Chosunbiz. N.p., 12 Sept. 2016. Web. 2 Oct. 2016.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9/12/2016091202699.html>.
Lim, Hyejin. "역대 규모 5.8 강진...부산서 지진신고 폭주 · 대피소동." Newdaily. N.p., 13 Sept. 2016. Web. 2 Oct. 2016. <https://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322030&imp=whot>.
Nam, Jiwon. "환태평양 ‘불의 고리’ 심상찮다." 경향신문. N.p., 5 May 2015. Web. 2 Oct. 2016.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05052219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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