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버클리 붙었어? 축하해! 무슨 악기 연주해?”
버클리 합격 소식을 전하자 대부분의 지인들은 싸이 후배가 된 걸 축하한다거나, 너 악기 하는 줄 몰랐다며 미안해 하는 등, 상당히 불쾌한 피드백을 선사해줬었다. 아니, 학교 부심 부리는 거 별로 안 좋아하지만, 유씨 버클리를 버클리 음대랑 헷갈리는 것은 너무한 것 아닌가? 내가 붙은 학교를 몰라주는 주위 사람들에 대한 섭섭함에 그들의 무지를 탓하기도 했었더랬다. 그런데 사실, 한 학기를 어찌저찌 마무리 지어가는 지금 돌이키면, 정작 나는 얼마나 안다고 그랬었는지 픽 웃음이 나오는 게 사실이다.
대학. 유일하게 기대에 그대로 부응해주었던 점이라면, 이름마저 아름다운 자유겠다. 고등학교를 졸업했으나 대학 입학은 하지 않은 그 애매한 신분의 내가 그토록 바랬던 자유. 지난 6월, 미국 대학 개학에 맞춰 일찍 출국하는 친구가 있어 반 친구들과 함께 다같이 자리를 갖기로 했었다. 여럿의 과외와 통금을 고려해 겨우 잡은 것이 뻔하디 뻔한 “8시 강남역 11번 출구” 약속이었다. 8시반 쯤에 모여 (다들 30분 지각의 “코리안 타임”은 생략하지 않더라) 저녁을 먹고 2차로 노래방을 들리니 벌써 한밤중. 11시부터 찍혀가는 어머니의 부재중 통화에 막차 걱정까지, 결국 친구와 술이 주는 행복보다 어머니가 선사하실 불행이 더 큼을 인지한 나는 지하철에 몸을 실어야 했다. 이런 이야기가 버클리서는 새벽 4시 술자리의 안주거리가 될 만큼, 대학의 자유는 너그러웠다. 하지만 아쉽게도 내 예상의 정확도는 거기까지였다.
그래 유씨 버클리, 캘리포니아에 있는 것은 알았지. 근데 여름 내내 상상해왔던 지중해 기후에 대한 환상은 지금도 부는 칼 같은 겨울바람에 찢겨진 지 오래요, 캘리포니아가 우리나라 보다 커다란 동네였다는 사실만을 다시금 환시시켜 줄 뿐이다. 사실 대부분의 것들이 그랬다. 버클리에 대해, 아니 대학 생활에 대해 별로 아는 것은 없었으나, 그저 고등학생 딱지를 떼는 것에 흥분하여 미국 대학 생활에 대한 로망만을 무럭무럭 키워왔던 것 같다. 한국에서 “마지막,” 혹은 “처음”이라는 딱지가 붙어 자리했던 수많은 대학생 및 유학생 술자리들에서는 특히나 더욱.
그렇게 세상물정 모르고 (사실 지금도 딱히 성장한진 모르겠다만) 키워놨던 많은 환상들은 날씨에 대한 무지했던 나의 로망처럼 너무나도 쉽게 무너져 갔다. 슬프지만, 특히나 학업적인 측면에 있어서 제일 타격이 컸으리라. 누구나 그렇듯 거울 앞에서 오글거리게시리 주먹을 불끈 쥐며 했던 만점 학점에 대한 다짐은 첫 번째 중간고사 이후 말끔하게 내려놓기로 했었다. 고백하자면, 사실 지금도 기말고사 범위에 허덕이는 나다. 대학생들은 노는 줄로만 알았는데, 대학공부가 이리 어려우리라고 어찌 생각했으리. 쉴새 없이 나가는 진도에, 맞춰 나오는 과제, 이해할 수 없는 야박한 채점까지 하루가 다르게 괴롭혀대는 교수님들. 또 시험날짜는 왜 항상 같게 잡는지 범위 난이도와 하등 상관없는 것들로 인해 얻은 주름이 몇 갠지 모르겠다.
또 주위의 추천으로 고른 소위 “꿀과목”들. 학점 꿀을 퍼다 주던 조교 벌들이 단체로 파업 중이신지, 약속된 꿀은 도통 나오지를 않아 그저 속만 타게 하는 중이다. 전공과목에 교양까지 어느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다 해도 부정하지 못할 만큼, 딱히 성공적인 학기는 아니랄까.
그래도 신기한 게, 이렇게 찡찡대는 와중에도 나의 “음대 입학”을 축하해주었던 웬수 같은 지인들에겐 그렇게도 신나게 대학 스토리를 전하고 있더라. 상당히 격양된 목소리로 이런 저런 경험을 내가 했노라고. 이렇게 많은 사람을 이렇게 우르르 만나게 될 줄은 정녕 몰랐다고. 망가져가는 학점보단 새로 만난 룸메가, 친구가, 선배가 더 중요한 화제였고, 그들과의 우정이, 로맨스가, 혹은 둘 사이의 야릇했던 그 애매모호함이, 후하게 채점된 시험지보다 더 흐뭇하고 짜릿했다. F를 6개 받아 별명이 F-6라던 한국 친구 놈의 그 대학사회 무용담이 어느덧 내 얘기가 되어 있었고 (다만 필자는 F 받을 수준으로 무념무상하진 않음을 밝힌다) 이 간질간질한 변화를 문득 실감할 때, 기쁘다.
새로 대학생이 되는 새내기들에게 건네는 조언? 나는 그런 말을 건넬 생각도 없고, 어쩌면 자격마저 없을지 모르겠다. 스스로도 혼란스럽고, 스스로도 발버둥치는 중이라 딱히 이리하면 편할 것이니라 인자한 손을 뻗어 줄 여력이 되지 않는 까닭이다. 이 뻔한 글의 취지는 그런 이타적이고 거국적인 행동을 취하고자 함이 아니라, 지극히 개인적인 욕심에 기인한다.
새내기 생활을 돌아보는 수필이, 기사가, 만화가, 영화가 얼마나 널리고 널렸는가. 그걸 알면서도 꾸역꾸역 글을 쓰는 이유는 이 오묘했던 시간의 설렘을 되돌아보고 기억하기 위해. 이미 그 두근거림을 잊은 사람들도 다시금 그 순수를 회상해보라 하기 위해서. 교복 입은 고딩들에게 내가 한때 키우던 그 멍청했던 상상의 나래를 고스란히 물려주기 위해서, 쯤이리라. 오글거려 타이핑이 힘들 지경이지만 할 말은 해야겠다. 내 5 개월 간의 기억에 사는 모든 사람들, 고맙습니다. 재미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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