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글은 버클리 오피니언 부회장 김재민 군의 글임을 밝힙니다.
삶에 대해 생각해 본다. 인생이란 두 글자, 어떻게 보면 정말 간단하다. 사람 인(人)자에 날 생 (生). 그렇지만 인생이란 건 말 처럼 쉽지 않다. 끊임 없는 싸움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태어난 게 행복한 걸까? 살아남기 위해 싸우는 게 아닐까? 태어나지만 않았다면 이런 고통도 없었겠지. 하지만 싸워서 얻어낸 행복 또한 없었을 것이다. 뭐가 더 나은 것일까? 무(無)인 상태로도 존재하는 게 가능한 것일까,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될까? 인생에 대한 정답이 없는 만큼 궁금한 게 많은 것이 사실이다.
쉽게 행복을 정의해 보았다. 불만족에서 만족을 얻어낼 때 보통 사람들은 행복하다고 표현한다. 가령 추운 곳에 있다가 따뜻한 이불속에 들어가 귤을 까먹을 때, 정말 행복하다고 느낀다. 정말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을 옆에 두고 연애를 할 때 행복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만족을 할 수 있기에 행복할 수가 있다. 그러나 그 만족감은 대체로 오래 유지되지 못한다. 따뜻한 이불 속에 몇십 분 있다 보면 덥다 느끼고 이불을 걷어찬다. 좋아하는 사람과 연애하는 나는 시간이 지나면서 불타올랐던 사랑이 서서히 식어감을 느낀다. 결국 우리 사람들은 끊임없이 만족을 찾아가기 위해 달려간다. 그 영원한 굴레 속에서 행복할 수 있겠지, 하며 희망 고문의 톱니바퀴에 평생 빠져 살아가고 있다. 행복은 영원하지 않고 간헐적이다. 비관적인 입장이라는 것을 충분히 이해한다.
비슷한 입장으로 만남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회자정리의 뜻은 많이들 알듯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다는 것이다. 끝까지 가는 만남은 존재하지 않는다. 친했던 친구들도 나이가 들어 서서히 잊혀져가고 영원할 줄 알았던 결혼의 서약도 배우자가 생을 마감하면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
사실 옆에 없다는 것, 잊혀진다는 것만이 이별을 정의하기에 충분하지 않다. 왜냐하면 우리는 매일 이별 하고 있다고 필자는 생각하기 때문이다. 김광석의 서른즈음에라는 곡 중 가사에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매일 이별 하면 살고 있구나..” 라는 대목이 있다. 하루가 감으로써 그 하루의 기억은 과거가 되고 머물러 있을 것만 같던 사랑과 청춘은 추억이 되어버린다. 그 날의 사랑과 그 날의 청춘은 떠나보낸 것도 떠나온 것도 아니지만 우리는 이별을 고해야 한다. 다시 돌아오지 않는 오늘이고 오늘의 친구들이자 오늘의 사랑이자 오늘의 나이다. 가수 김광석이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우리들은 하루하루 이별을 하고 있다고 그 역시 생각했으리라.
어제의 나는 오늘의 내가 아니다. 사람들은 배움을, 그리고 경험을 얻는 동물이고 그로 인해 달라진다. 어제 어떤 실수를 했다면 그 다음 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같은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당시 어머니께 어리광을 부리며 부모님께서 챙겨주시는 밥을 먹던 나는 더 이상 그 내가 아니다. 많은 아픔을 겪었고 더 사회에 적응하게 되어 버린 새로운 나이다. 이로써 어른이 되어간다고, 철이 든다고 표현들을 한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어머니들도 그 때 당시의 어머니가 아니시다. 어머니들은 아실 것이다. 평생 옆에만 있을 줄 알았던 아이들이 어느 덧 커서 자립하여 대학교를 다니건 일을 시작하건 그들의 품에 벗어나 새로운 인격체가 되어버리는 것을… 어느덧 주름살이 짙게 그어지신 어머니와 아버지의 얼굴을 보자. 어렸을 때 부모님이 아니시다. 여느 때와 다름 없이 누구보다 더 사랑하는 부모님이시지만 다르시다. 그 다름에 슬퍼하며 그 과거에 머무르자는 얘기를 하려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 이 시점의 모든 인연에 최선을 다해야 된다고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매시간 매초 이별을 하기에 더 아픈 이별을 하기 전에 좋고 행복한 오늘의 이별을 먼저 맞는 게 낫지 않을까 싶다.
지금은 헤어져 남이 되었지만 정말 사랑했던 사람이 있었다. 그녀는 가끔 이렇게 말을 하였다. “오빠도 다른 사람이구나..” 그리고 그 말을 들은 난 몇 주 지나지 않아 쓰디쓴 이별을 맞았다. 그녀가 매일을 함께 보내며 항상 보는 사람은 나였고 내가 항상 보는 사람은 그녀였다. 거울 속에 비친 자기 자신보다 더 많이 보기 때문에 자기와 다른 사람임을 인지하지 못했던 것이다. 행복했다. 그 정도로 큰 사랑을 할 수 있었음에 감사하고 헤어짐에 원망을 가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별은 정말 가슴 아팠다. 그 때 그녀의 남자친구였던 나는 더 이상 존재 하지 않는다. 그녀를 잃음으로써 그녀와 함께 했던 나 자신에게도 선을 그어야 했다. 당시의 나는 이제 추억 속에만 존재할 뿐.
아직도 필자는 어렸을 때 어머니가 끓여주시던 된장국과 맛있게 담가주시던 깍두기가 그립다. 그러나 이제 그 된장국은 어찌 된 일인지 평생 맛 볼 수가 없게 되었다. 예전 어머니의 된장국은 배움과 경험이 담겨 있지는 않았다. 다만 단지 사랑이란 힘으로 어깨 너머로 배워 끓여주셨던 그 어설펐던 된장국이 그립다. 하지만 오늘이라도 집에 가면 어머니께서 맛있게 차려주실 새로운 된장국은 오늘의 새로운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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