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 생활을 하다보면 가장 자주 듣는 말이 무엇일까?
보통 "What is your name?" 다음으로 많이 듣는 말이 "Where are you from?" 일 것이다. 어디에서 왔어? 라고 직역할 수 도 있지만 대게 어느나라 사람이야? 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과거 70~80년대만 하더라도 대한민국이 어디에 붙어 있는 나라인지도 모르는 외국인들이 많아서 한국사람들은 종종 중국사람 내지는 일본사람으로 오해 받는 시절이 있었다. 물론 요즘도 대다수의 유학생이 중국인인 경우가 많고 일본이라는 나라 자체가 동북아시아 국가를 거의 대표하다시피 하기 때문에 한국 유학생이라면 한번쯤은 중국인이나 일본인으로 오해받는 일이 종종 있었을 것이다.
여기서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 우리가 중국인이나 일본인으로 오해받을 때 후자일 경우에 기분이 좋은 반면 전자로 여겨지면 확실히 대부분의 한인 유학생들이 불쾌해 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전반적으로 우리들 인식이 일본인들은 옷도 잘 입고 세련된 반면, 중국인들은 좀 촌스럽다고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일본이나 중국인들과 변별되는 한국인만의 차림새가 있을까? 있다면 그것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이 글은 이러한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필자가 생각하는 한국 유학생의 모습. 촌스러움과 세련됨의 이분화에 이쪽도 저쪽도 아닌 그 어중간한 위치에 서있는 우리 한국 유학생의 슬픔을 대변하고, 한.국.인. 그대로의 전형을 찾고 싶은 마음에서 글을 쓰게 되었다. 이는 한국 고유의 문화, 전통, 역사에 대한 깊이 있는 고찰에 의한 글도 아니며, 더욱이 민족성이나 우리 특유의 내적 기질을 찾으려 하는 시도가 아님을 먼저 밝힌다. 그냥 단순히 보이는 모습 그대로에 초점을 맞춘 지극히 주관적이고 경험적인, 한 마디로 가볍게 읽고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의 글이다. 지금부터 한국인의, 아니 미국에 있는 한국인의 복색의 특이점을 한번 살펴보자.
1. 엠엘비모자, 혹은 장발.
유학생 대부분이 공감하는 내용중에 하나가 미국 미용실은 정.말. 비싸다는 거다. 물론 의식주 거의 모든 물가가 미국이 한국보다 비싼 건 사실이다. 하지만 특히나 한달에 적어도 한번은 머리를 다듬어야 하는 남성에게 있어서 미국에서 미용실가기란 여간 부담스러운게 아닐 수 없다. 필자의 경험을 비추어 보면 커트 한번에 35불 가량의 돈을 지불해야 하는데, 미용실의 그네들이 한국인의 직모에 익숙하지 않은 것인지 어쩐 것인지 한국에서 만오천원이면 완성되었던 스타일의 반도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필자는 지출을 줄일 목적으로 한국에서 소위 '바리깡' (미용실 관계자에게 물어본 바로 정식 명칭은 헤어 클리퍼)이라 불리는 전동 이발기를 공수해왔다. 단점은 삭발외에는 다른 스타일을 내기가 어렵다는 거다. 그렇기 때문에 대다수의 한인 유학생들은 그냥 머리카락을 기르던지 아니면 모자를 주로 쓰는 편이다.
장발이 물론 재정적 부담감 때문 일 수도 있겠지만, 필자의 개인적 소견으로는 마치 과거 70년대 '고래사냥' 세대 군사정권에 대한 반발감에 기인한 자유 표출의 한 부분으로 장발이 젊은이들의 대표적 스타일로 여겨졌던 것 처럼, 중, 고등학교 시절 혹은 군대에서 강압적으로 규제하는 두발 규제에 대한 반항심의 한부분으로 아니면 그동안 누려보지 못했던 스타일에 대한 갈망 때문에 머리카락을 기르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필자 역시 지금은 비록 짧은 머리 스타일을 유지하지만 과거 조금이라도 머리카락을 기르려고 학생주임 선생님과 피나는 눈치 싸움을 벌였던 기억이 난다.
2. 노스페이스 가방.
한인 유학생 대다수가 이 특정 브랜드의 가방을 메고 다닌다. 가방도 물론 유행이 있다. 과거 한국에서 백팩계의 '큰형님' 이스트팩(Easptpak)이나 잔스포츠(Jansports) 같은 심플한 형태의 가방이 유행을 했던 시절도 있었고, 노스페이스를 필두로 캠프(Kamp)와 같은 산악 전문 브랜드의 가방등이 인기를 끌었던 적도 있었다. 실제로 필자도 고등학교 시절 10만원 상당, 백팩으로는 고가의 산악가방을 사서 들고 다닌적이 있다. 물론 산악가방의 기능성때문에 선호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지만 학생에게 가방의 주목적이 산행이 아니고서야 노스페이스 백팩이 하나의 유행 아이템으로 한인 유학생들의 마음을 사로 잡았던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하겠다.
3. 검은 뿔테 안경.
지적 이미지 변신의 필수 아이템, 검은 뿔테 안경도 많은 이들이 애용하는 패션 아이템 중에 하나이다. 안경잡이에게 은태나 금태는 김구선생님스러운 구시대의 산물이기에 거의 대다수의 학생들이 검은 뿔테 안경을 선호한다. 심지어 안경을 쓰지 않아도 되는 몽골리언 시력을 가진 친구들까지 스타일을 내기 위해서 렌즈 없이 안경테만 쓰고 다니기도 한다.
마치 커피프린스의 공유 이미지처럼 검은 뿔테 안경은 우리에게 지적이면서도 머랄까 여성에게 한없이 부드럽고 자상할 것 같은 그런 이미지로 각인된다. 실제로 이와같은 효과를 누리기 위해서 많이 한인 남학생들이 뿔테 안경을 선호하는 것 같다.
4. 트루릴리젼(True Religion) 청바지와 아베크롬비핏츠(Abecrombie&Fitch) 상의.
흔히, 한인타운 형님패션으로 불리우는 이 상하의 맞춤 패션 스타일은 비록 UC Berkeley 유학생들에게서 쉽게 볼 수 있는 패션은 아니지만, 남가주쪽에만 가도 쉽게 볼 수 있는 한인 패션이다.
이는 그 유래를 쉽게 찾아 볼 수 없었는데, 필자의 지극히 주관적인 소견으로는 연애인들 사이에서나 압구정 패셔니스타들에게 주로 선호되는 스타일인 것 같다. 이는 몇년 전만 해도 한국에 런칭이 안된 브랜드이기도 하고 고가로 판매되는 아이템들이어서 남들과 구별된 스타일을 원하는 이들에게나 혹은 자신이 유학파라는 사실, 혹은 속히 '외국물 한번 먹어봤다'는 것을 드러낼 수 있는 패션 아이템으로 각광받던 시절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이 스타일을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트루릴리젼의 밑으로 내려갈 수록 넓어지는 나팔형태의 핏은 필자와 같은 속히 180이하의 '루저'들에게 치명적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베크롬니핏츠 역시 타이트한 형태로 신체본래의 핏을 살리는데 집중하기 때문에 몸매에 자신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부담스러운 스타일일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가주 한인타운에서는 거의 교복과 같은 느낌으로 (실제로 필자가 한인타운의 한 마트에서 같은 컬러와 디자인의 아베크롬비핏츠 상하의 트레이닝 복을 입은 사람 여러명이 함께 쇼핑하는 장면을 목격하기도 했다) 통용되는 걸 보면 한국사람들에게 유행은 패션의 한 흐름을 넘어선 '소속감', 혹은 조금 더 과장해서 말하면, '정체성'에도 그 역할을 한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조금은 억지스럽기도 하고 과장되기도 한, 일반화의 오류가 다분히 드러나 있는 글이기는 하지만, 필자는 우리 한인 유학생, 특히 남학우들이 직면하고 있는 고민. "내 스타일은 중국인스러운지, 일본인스러운지?"에 대한 정체성의 혼란 가운데서 한 줄기 빛이되고자 하는 심정으로 글을 쓰게 되었다.
물론, 너와 내가 하나되는 세계화 시대에 이방원의 "중국인스러운들, 일본인스러운들 어떠하리"식의 설득이 달콤한 건 사실이지만, 정몽주의 선죽교 죽음이 기다린다 한들, 자랑스러운 한국 사람으로서 "이몸이 고쳐 죽어 일백번 고쳐 죽는다"하더라도, 내면 뿐만 아니라 외형적으로도 동북아시아 여타 국가들과는 다른 한인 유학생 특유의 스타일이 있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고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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