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인종차별의 역사는 인류사에 비하면 사소할 만큼 짧지만, 그 영향력은 어떠한 형태로든 현재에도 남아있다. 최근 미국에서는 국수주의적인 색채가 깊은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인종차별 문제가 더욱 심각해 지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 전에도 백인 경찰의 흑인 과잉진압 등과 같은 문제로 흑인들의 불만은 높아질 대로 높아진 상태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필자는 현대사회의 인종차별의 문제가 백인들에게만 있다고 보지 않는다. 인종차별이 어떠한 형태로든 지속하는 데에는 흑인사회 자체의 문제도 있다고 확신한다. 쉽게 말하면 흑인들의 어떠한 행동이나 인식 자체가 인종차별을 유도하거나 인종차별로 느끼게끔 한다는 것이다. 필자의 이런 견해는 흑인들이 가지고 있는 피해의식에 기초하는데 필자가 말하는 피해의식이 어떤 것인지 소개해 보고자 한다.
우선 필자의 가장 최근의 경험을 통해 주제에 접근해 보자. 얼마 전 필자는 오클랜드에서 술에 취한 흑인과 마주한 적이 있다. 불과 몇 미터 앞에서 필자를 향해 걸어오는 흑인을 보며 적지 않게 당황스러움과 불안감을 느꼈는데, 과연 백인이나 동양인이 술에 취한 채 다가왔다면 필자는 똑같은 감정을 느꼈을까? 솔직히 말해서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필자는 술에 취한 흑인을 보며 불안함을 느꼈을까? 답은 간단하다. ‘술에 취한 흑인은 위험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 누가 ‘술에 취한 흑인이 위험하다’고 필자의 머릿속에 주입했을까? 그건 백인도 동양인도 아닌 흑인 자체라는 것이 우선 처음으로 필자가 짚고 넘어가고자 하는 주제이다. 학교와 학교 주변에서 일어나는 강력범죄 대부분이 흑인들에 의해서 일어났다는 사실이 은연중에 필자의 머릿속에 그런 선입견을 가지게 했던 것이다. 흑인들은 이런 범죄를 변호할 때 사회를 탓한다. 사회 불만족이 범죄로 표현이 되니 사회가 흑인들에게 좋은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종차별이 어느 정도 남아있다고는 하지만 흑인들에게 과연 정말로 평등한 기회가 주어지지 않고 있을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흑인뿐만 아닌 저소득층의 대학 진학률을 올리는 것이 미국의 중요사안 중의 하나임에는 분명하다. 미국 ‘National Center for Education Statistics’에 의하면 1976년부터 2014년까지 흑인 대학생 비율은 10%에서 14%로 상승하였다. [1] 흑인도 얼마든지 교육을 받을 수 있고 돈을 벌 수 있는 사회가 지금이다. 조금 매정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흑인사회 자체가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것에는 흑인들 자체의 문제가 가장 크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캘리포니아에서 흑인인구 비율이 2등인 오클랜드의 Crime Index가 1 (100이 가장 안전) 이라는 사실과 아래의 도표는 필자로 하여금 흑인사회가 어떻게든 범죄율의 상승과 관계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게끔 한다.[2]
[1]
이런 피해의식은 술에 취한 흑인과 필자가 나눈 대화에서 더욱더 분명해진다. 술에 취한 그 친구는 필자에게 지속해서 자신이 무지막지하게 취했다고 언급하였는데, 필자는 선의의 의도로 집에 혼자 갈 수 있겠느냐, 같이 술을 마신 ‘friends’는 어디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하지만 바로 다음 순간 필자는 처음으로 미국에서 흑인과 트러블이 발생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을 하였다. 필자가 사용한 ‘friends’라는 단어가 잘 못 되었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그 순간 술에 취한 흑인이 ‘niggas’를 말하는 거냐며 대뜸 화를 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필자는 필사적으로 자신을 변호해 보았지만, 도저히 말이 통하지 않았다. 주변에 같이 있던 필자 동행인의 도움으로 상황은 흐지부지되긴 하였지만, 흑인 인종차별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갖게 하는데 충분한 경험이었다. 그때 흑인의 격렬한 반응을 필자는 전형적인 인종차별 피해의식이라고 생각한다. 인종차별의 의도가 없었지만 스스로 인종차별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경찰의 과잉진압에 대해서 안 짚고 넘어갈 수가 없다. 흑인들은 이와 관련하여 경찰들이 흑인들을 체포할 때 필요 이상의 무력을 행사한다고 주장하는데, 필자는 이와 관련하여 독특한 생각을 하고 있다. 이는 보통 백인들 혹은 경찰들의 입장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2]
쉽게 말해 유색인종이라서 과잉진압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경찰의 요구에 순응하지 않았을 뿐이라는 것이다. 물론 실제로 인종차별주의적인 경찰에 의한 과잉진압 사건도 벌어질 수 있겠지만, 필자는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독자들 혹은 흑인들은 한 가지 의문점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왜 백인 과잉진압은 없느냐고 말이다. 바로 여기가 피해의식이 또다시 발동되는 곳이다. 백인 과잉진압이 왜 없을까. 당연히 있다. 유명 동영상 채널을 조금만 뒤져보아도 경찰에게 심각하게 맞거나 인간적인 대우를 못 받는 백인들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그 예로 백인 경찰이 요구에 응하지 않는 백인 학생을 상대로 테이저건을 필요 이상으로 사용하고 학생을 안면부터 바닥에 떨어지게 하여 심각한 부상을 입힌 사건을 들 수 있다. 그렇다면 왜 흑인들은 과잉진압이 흑인 인종차별만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필자는 이를 일반화의 오류의 또 다른 형태라고 생각한다. 시간을 체크할 때마다 생일과 같더라, 혹은 시간을 볼 때마다 4:44분이었다 라는 것이 가장 쉬운 예인데, 어떤 특이했던 경험만을 기억하고 그것을 일반화 시켜버리는 오류이다. 엄밀히 말하면 시간을 체크했을 때 생일이 아닐 확률, 그리고 4:44분이 아닐 확률이 훨씬 높지만 이런 당연한 결과들을 우리는 심각하게 생각하거나 기억하지 않기 때문이다. 과잉진압 또한 마찬가지이다. 인종의 구분 없이 경찰의 과실로 과잉진압이 이루어졌을 수도 있고, 실제로 경찰에 순응하지 않아 경찰이 폭력적인 절차를 밟았을 수도 있는 것이다. 필자는 이런 경찰의 과잉진압 문제는 전체 사회의 문제이지 흑인 인종차별만의 문제로는 보지 않는다. 흑인 피해자의 몇몇 사례들을 이용하여 흑인 인종차별의 문제로 치부하려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본다.
물론 인종차별이 완벽히 없어지지 않았다는 것에는 동의하는 바이며 인종차별이 흑인들만의 잘못이라는 것도 아니다. 필자가 흑인들이 어느 정도의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 같이, 백인들도 어느 정도 우월주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번 미국 대선에서 드러났는데, 겉으로 표출하지 않는 백인 우월주의적인 생각이 아직도 미국에 남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조건 흑인이 현대사회의 남아있는 인종차별의 피해자라는 인식은 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이 글의 요지임을 분명히 하고 싶다. 완벽하게 흑인 인종차별이 미국에서 없어지기 위해서는 백인과 흑인이 공통적으로 더 나은 삶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흑인 스스로도 긍정적인 흑인사회 이미지를 만드는 데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조건 우리가 피해자이니 보상하라, 혹은 흑인 커뮤니티에 더 경제적 지원을 해야 한다, 라는 등의 역차별적인 생각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과거에 있었던 좋지 않았던 관계를 완전히 없었던 것으로 하기는 어려운 일이지만 앞으로의 백인과 흑인 관계를 위해서라도 어는 한쪽만의 잘못이라는 생각은 버려주었으면 좋겠다.
이미지 출처:
[1] https://nces.ed.gov/fastfacts/display.asp?id=98
[2] https://www.neighborhoodscout.com/ca/oakland/cr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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