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면서 많은 선택을 하고, 많은 결정을 내린다. 그 선택이 어떤 결론을 가져오든, 본인이 내린 결정에 대한 책임은 본인이 져야 하며, 그 모든 선택이 자신의 현재와 미래를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과 선택 중엔 남들에게 보이는 내 모습의 경계에 대한 선택 역시 존재한다. 어디까지 나 자신을 드러내고 보일 것이며, 어디까지 적당히 나를 숨기고 보호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너무 많은 믿음을 주었다가 상처를 받는 경우도 있고, 적당히 거리를 두고 지내다 어느 순간 상대가 보여준 진실한 모습에 벽을 허물고 가까워지는 경우도 있듯이, 사람 사이의 관계란 것이 참 견고하고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관계는 사람의 삶에 많은 영향을 미치기도 하고, 많은 생각이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다른 사람들이 사람 사이의 관계를 만들어 나가고 유지하는 것에 대한 섣부른 판단을 내리는 대신, 필자는 본인의 이야기로 이번 칼럼을 채워볼까 한다. 필자는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만들어 나갈 때 경계심이 많은 편이다. 바로 상대를 믿고 내 진실한 모습과 감정을 드러내 보인다기보다는 익숙하게 준비된 대외적 모습을 먼저 드러낸다. 항상 밝고 믿음직스러운 모습, 가까이하면 긍정적인 에너지를 받을 수 있고 자신감에 차 있는 듯한 모습,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선이 그어져 있어 어느 정도 이상은 가까워질 수 없는 모습. 보통 필자의 첫인상을 물어보면 많이 나오는 인상의 집합이다. “밝은 데 다가가기는 힘들어”. 그리고 필자 역시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상대에게서 비슷한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이 정도까지가 이 사람의 선이겠구나. 여기까지가 이 사람의 대외적 모습이구나”. 이렇듯 정해진 경계까지 만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우리는 소위 ‘선을 긋는다’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그 선 안으로 받아들여져야만 우리는 서로의 솔직한 모습을 드러내고 보게 되며 친구가 되고, 연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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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때로는 친구 사이의 관계에도 선은 존재하며, 진실한 모습을 보이기까지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특히나 대학에서 만난 친구들은, 학교생활이란 공통점 이외에는 다들 너무나 다른 배경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선을 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리는 편이다. 아무리 겉으로는 좋은 친구처럼 보여도 서로 다른 가정환경, 관심사, 고민, 상처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기에는 부담스러울 수도 있고, 자신이 만들어놓은 대외적인 이미지와 반대되는 속 깊은 얘기를 털어놓았다가 올 수 있는 실망감이나 거리감에 대한 걱정도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반복되는 시험의 굴레와 과제의 폭탄 속에 깊은 얘기를 나눌 시간도, 의지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기에 사람들과 관계를 쌓아가는 것은 모험과도 같다. 용기를 내어 내 선 안으로 다른 사람을 받아들일 때도, 상대의 선 안으로 받아들여질 때도, 그 끝이 어떨지 모르고 내가 하게 될 경험을 정확히 알지 못한 채 마음을 열어야 할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어려운 선택 끝에 오는 책임감이 상처와 후회가 될 수 있고, 그러면 그 후에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될 때 먼저 몸을 움츠리게 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내가 상대를 믿는 만큼의 믿음을 받을 수 있을지, 그 정도의 애정을 서로 가지고 있는 건지, 상대를 어느 정도까지 이해할 수 있고 서로 어느 정도의 기대를 걸고 있는 건지, 많은 생각과 걱정을 하게 된다. 세상 어느 누가 상처받는 것을 즐길 것이며,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을 좋아할까. 그래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점점 흠잡기 어려운 모습, 어느 정도 경계심이 보이는 모습으로 본인을 무장하게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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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우리의 진짜 모습을 숨기고 살수록 늘어가는 것은 가식적인 감정 표현이다. 오늘도 행복한 미소를 짓고, 내일도 무난해 보이게 하루를 보내고, 더 이상 상처받지 않기 위해 상처를 숨겨 가며 지내는 삶. 하지만 속에 쌓여만 가는 슬픔이나 걱정은 삭고 삭아 언제나 마음을 무겁게 하고 사람을 갈수록 지치게 하기 마련이다. 물론 이러한 고민을 나눈다고 해서 그 상대가 언제나 이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해주는 것은 아니며, 그 고민의 무게가 덜어지는 것도 아니다. 고민은 그 후에도 고민일 것이고, 그 존재감은 여전히 무겁게 날 짓누르지만, 누군가 함께 걱정해준다는 것에 대한 고마움이 생기고, 그 위에 용기가 쌓인다. 그리고 그 용기로 내일 하루 더 해내 보자는 의지가 생기게 되는 것 아닐까?
특히나 이번 학기에 들어 가식적인 관계에 더욱 회의감을 느낀 필자는 주변에 소중하다고 생각된 친구와 내가 정말로 친해지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먼저 내 진실한 모습을 내비치며 진정한 관계를 쌓아보기로 했다. 반대로 나를 죽여가며 힘들게 유지하던 관계는 정리해보기도 했다. 더 이상 답답하게 나 자신을 얽매기보다는 조금은 자유로워지고 싶은 마음에서 내린 결정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먼저 다가가고 표현함으로써 대외적인 진실과 이미지로 인해 생겨났던 이질적인 거리감이나 무의식중에 받았던 상처, 이 모든 것에서 탈피하고도 싶었다. 하루아침에 사람이 바뀔 수 없기에 애초에 그 속도가 빠르지도 못하고, 그런 선택에서 오는 스트레스나 크고 작은 후회도 만만치 않았지만, 결론적으로 필자가 느끼게 된 감정은 후련함과 감사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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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먼저 진실한 모습을 보이고 경계를 허물었을 때 볼 수 있는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고 자신의 선 안으로 받아들여 주는 사람과, 내 모습에 어떤 식으로든 위축됨을 느껴 자신의 선을 더 진하게 그어버리는 사람. 하지만 조금씩 마음을 열어가는 내 속도에 맞춰 그런 모습까지 다 받아들여 주는 좋은 사람들은 충분히 있고, 그 사람들 덕에 한 학기 동안 더욱 깊은 행복감을 느끼기도 하고 더 많은 추억을 쌓을 수 있었다. 이제서야 확실하게 “이 정도면 뜻깊은 대학 생활이었다”라는 결론을 내리게도 된 것 같다.
앞으로도 나는 한 걸음씩 경계를 허물며 진실하게 살아보고자 할 것이다. 물론 매일 나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이고, 피치 못하게 대외적인 얼굴을 하고 살아야 하는 부분의 인생도 충분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람들 틈에서도 본인이 받은 만큼 돌려주며, 믿음과 응원이 오고 가는 올바른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방법을 배워가는 그 길목에 서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오늘도 내 곁에서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봐주고, 좋아해 주고, 믿어주는 진정한 인연들이 있기에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는다. 나를 소중히 생각해준 많은 사람에게 그들이 있어 난 진심으로 행복할 수 있고, 또 고마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하며 이 글을 마치고 싶다.
이미지 출처:
[1]: http://blog.daum.net/phonofilm/9120812
[2]: http://dimg.donga.com/egc/CDB/WEEKLY/Article/20/09/12/03/200912030500018_1.jpg
[3]: http://firforest.tistory.com/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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