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가 말했죠, “너 자신을 알라” . 그래서 하는 말인데 당신,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이야”
“내 인생의 주인공은 바로 나, 내 인생의 구경꾼들로 인해 내 인생이 흔들릴 필요없어.”
[1]
누구나 한 번쯤 이러한 위로 글귀를 읽어 보았을 것이다. 이렇게도 단순하고 당연한 한마디가 많은 인기를 끌게 된 이유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비슷한 처지에서 이러한 위로를 듣고 싶어 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자기감정에 솔직해지기조차 어려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저런 글귀는 얼어붙은 마음을 녹여주는 존재가 된다. 어쩌면 연인에게, 친구에게, 또는 가족에게 터놓고 말하지 못하는 말들을 담고 담아 망가진 그 마음을 치유해주는 유일한 치료법이 되기도 한다.
최근 들어 모두들 한 번쯤 페이스북에 동영상 클립으로 돌아다니는 TV 프로그램 <말하는 대로>를 본적이 있을것이다. “말”로 하는 버스킹이라는 신박한 구성의 프로그램으로써 각자의 분야에서 자신만의 철학을 가진 사람들이 자기 생각을 공유하고, 자신과 비슷한 경험을 하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또는 자신감이 되는 말을 전하기도 한다. 이 클립들은 온라인상에서 몇만 개의 공유 수를 자랑할 정도로 그 인기가 대단하다.
이러한 프로그램이 어떻게 인기를 끌게 되었을까? 화려한 노래나 춤 등의 퍼포먼스가 아닌, 오직 말로만 하는 버스킹은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어쩌면 사람들에게 지금 필요한 건 화려하고 재밌는 공연이 아닌, 진심이 담긴 응원의 한마디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은 그 부분을 잘 공략한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당신 역시 학생으로서, 직장인으로서, 혹은 누군가의 부모로서 고민이 하나도 없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렇게 모두가 힘들어하는 이 시기에, 서로에게 고민을 털어놓기 조차 바쁘고 빽빽한 일상 속에서 이 프로그램이 우리에게 희망과 위로가 되어주는 것 아닐까. 제각각의 사람들이 출연해 각자의 철학으로 자신의 인생 이야기, 또는 정말 단순하고 당연한 이야기들을 털어놓는다. 그러면 그런 따듯한 진심이 모여, 시청자들에게 진솔함으로, 감동이 되어 전해진다.
필자가 가장 감명 깊게 봤던 회는 김제동이 출연한 23회이다. 다른 출연자들과는 달리, 김제동은 버스킹 전, 무슨 말을 할 것인지 준비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어쩌면 그가 전했던 이야기에 평소보다 진한 진심이 담기고, 큰 공감이 가능하게 해주었던 것 같다.
[2]
김제동은 프랑스에 초청받아 가게 되었던 때의 이야기를 청자들에게 전한다. 프랑스 길거리를 걸어가던 중 지나친 공사 현장에 붙어 있던 인부들의 사진 아래에 “이 건물이 이 사람들의 수고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깊은 존경을 표합니다.”라는 글이 있었다고 한다. 그 글을 본 순간 김제동은 그곳에서 그런 대우를 받으며 일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렇게 김제동은 인간의 가치, 그리고 그것에 대한 평가를 다루는 이야기로 넘어간다. 사람들은 언제나 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만 맞다 생각하고, 그 틀에 자신을 맞추려고만 한다. 당연히 그들이 성공한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성공한 자의 정답이 당신의 정답이라고는 장담할 수 없다.
이날 김제동은 평범한 이야기로, 평범한 사람의 가치에 대한 중요성을 전했다. 그리고 그런 평범한 사람들의 가치를 중요시 한다는 건 개인의 생각, 개인의 의견 등을 존중해주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러니 원하는 답을 듣기 위한 “나쁜 질문”보다는 진정한 위로가 담긴 “착한 질문”을 해야 한다. 예를 들면 “키가 몇이니? 170이요. 에이~” 이런 식의 질문으로 상대에게 상처를 주기보단, “너 오늘 마음이 어떻니? 괜찮니?” 등의 착한 질문으로 상대에게 위로를 건네주는 것이다. 그렇게 김제동은 마지막으로 위로하는 방법에 대한 자기 생각을 전달한다.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 각자의 상처를 공유할 때 비로소 진짜 위로가 시작된다”라고 말이다.
버스킹 내내 김제동은 관객들의 질문, 그리고 돌발적으로 일어나는 상황들을 위트 있게 대처하며, 특유의 재치로 시민들에게 웃음과 감동을 동시에 전했다. 필자는 그 20분 남짓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정말 많은 것을 느끼게 되었다. 괜스레 건물을 볼 때엔 그 건물이 세워지는 데에 큰 공헌을 한 건축가들을 한 번 더 생각하게 되고, 친구의 사소한 고민을 들을 때에도 항상 귀 기울이려 노력했다. 어쩌면 그들이 바라는 것은 크고 어마어마한 보상이 아닐 수도 있다. 그저 고맙다는 한마디 또는 그들의 마음을 알아준다는 말 한마디만을 바라는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김제동의 말을 들으며 나는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항상 나의 얘기만 하는 것은 아닌지, 혹은 얘기를 들어줄 때 상대가 원하는 대답만 던져주는 것은 아닌지.
이런 짧은 영상들의 많은 공유 수나 시청 수는 이런 위로를 바라는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게 아닐까 싶다. 사람들이 서로와의 대화를 통해 위로를 받고 또 위로를 건네줄 수 있다면 더이상 굳이 <말하는 대로>와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먼 곳에서 위로를 받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필자는 먼곳에서 위로를 찾기보단 가까운곳에서 가까운 사람과의 대화로 푸는 것을 더욱 좋은 솔루션으로 추천한다. 이런 동영상의 많은 공유수나 시청수가 많은 사람들이 위로를 나눌 준비가 되어있고, 또 들어줄 준비가 되어있다는걸 말해주기 때문이다.
[3]
그러니 김제동이 말했던 것처럼 진정한 위로를 바란다면 먼저 자신의 상처를 마주할 용기를 가지고, 또 누군가의 용기를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자신의 상처를 누군가에게 공유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라는 생각은 뒤로한 채, 조금 더 당당한 마음으로 도움의 손길을 요청해 보자. 그리고 또 반대로 친구, 가족, 또는 주위 사람으로서 상대방의 얘기를 한 번 더 귀 기울여 들은 후, 듣고 싶어 하는 대답이 아닌, 내 대답을 해주는 건 어떨까? 형식적인 답변이 아닌, 진심이 담긴 공감을 해주는 건 어떨까? 조금은 귀찮더라도, 딱히 공감은 가지 않아도, 그 작은 변화가 어쩌면 상대방에게는 큰 감동이 될 것이다.
생명은 그래요
어디 기대지 않으면 살아갈 수 있나요
공기에 대고 서 있는 저 나무를 보세요
우리는 기대는 데가 많은데
기대는 게 맑기도 하고 흐리기도 하니
우리 또한 맑기도 흐리기도 하지요
비스듬히 다른 비스듬히를 받치고 있는 이여.
비스듬히, 정현종
출처:
[1] http://blog.naver.com/sojin0439/220589784068
[2] http://blog.naver.com/olleh_com/220963617533
[3] http://blog.naver.com/hyun930213/10190090647
'EDITORIAL > 문예 :: Literature' 카테고리의 다른 글
관계의 선과 진심 (0) | 2017.04.12 |
---|---|
If I die tomorrow (0) | 2017.04.11 |
아날로그의 향수: 스마트폰의 발전으로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 (1) | 2017.04.04 |
Procrastination Productivity (0) | 2017.03.24 |
혼자이거나, 함께이거나 (0) | 2017.03.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