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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IAL/문화 & 예술 :: Culture & Art

"당신도 주성치를 좋아하시나요?"




난 여전히 인간의 본성을 믿어요. 인간은 선하고 아름다운 존재라고.



나에겐 우울을 극복하는 방법이 몇 가지 있다. 그 중 단연 베스트는 주성치의 영화를 감상하는 것인데, 내 평소 영화 취향을 아는 주변 사람들은 내가 주성치의 팬이라는 사실에 가끔 의아해한다. 나는 평소 정적이고 어두운 영화를 좋아하고, 통상적으로 “흥행”을 보증해 쉽게 남용되는 영화 장치와 신파를 그다지 반기지 않는데(사실 정말 싫어한다), 주성치의 영화는 정적이지도 어둡지도 않을뿐더러 누군가에겐 유치뽕짝 코미디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홍콩영화를 좋아하는 아빠의 영향으로 <쿵푸허슬>을 처음 접하게 되었고, 말도 안되게 과장된 액션과 단조로운 플롯 속 옅지만 확실하고 강렬하게 나던 인생의 짠내를 맡으며 나는 거의 본능적으로 주성치에게 빠져버렸다.


물론 그의 영화를 한번이라도 접해본 사람이라면 주성치 식 코미디에 폭소를 터뜨린 경험이 있을 것이다. 예상을 뛰어넘는 슬랩스틱과 난무하는 오마주, 주성치 특유의 병맛으로 범벅된 와중에 약자가 항상 승리하는 권선징악을 실천하는 그의 영화는 나를 항상 기분 좋게 만든다. 하지만 유치하고 우스꽝스러운 개그로 가득 찬 그의 영화엔 분명 ‘미학’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너무 일관적이어서 때론 단조롭고 뻔해 보이기까지 하는 스토리는 사실 인생의 고난을 현실적으로 날카롭게 묘사하는 비관적 시선과 고난에 대한 낙관적인 (가끔 너무 낙관적이어서 애잔하기도, 판타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희망으로 가득 차있고, 익살 뒤에 꽁꽁 숨겨둔 그의 낭만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등장해 관객을 들었다 놨다 한다. B급 라벨로 섣부르게 분류해버리기에 그의 영화는 너무 깊고, 그저 유치한 사람이라고만 치부하기에 그는 너무 멋있는 어른이다.




영화는 대놓고 슬프지도 마냥 웃기지도 않고 그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 하듯 왔다 갔다 한다. 그래서 그의 화법이 익숙지 않은 관객들 중엔 가끔 영화를 보고 이게 우스워야 하는 건가 슬퍼야 하는 건가 헷갈려 하는 사람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나마 가장 대중적인 작품인 <소림축구>에서만 해도 잘나가던 축구선수였다가 라이벌의 계략에 속아 패배자가 되고 불구가 되는, 그럼에도 중년의 나이에 자신의 다리를 박살낸 라이벌에 빌붙어 굽신대며 청소부로 삶을 연명하는 오맹달의 모습은 전혀 코믹하지 않다. <무장원 소걸아>에서 마을 최고 부자(富者)로 떵떵거리며 살다가 한 순간에 거리로 내몰린 부자(父子)가 개밥을 먹는 수치를 당하면서도 개밥이 생각보다 맛있다며 능청을 부리며 수치를 외면하는 장면이나, <희극지왕>에서 호스테스 역으로 나오는 장백지가 접대를 거부해 손님에게 피가 철철 나도록 맞는 장면은 오히려 너무 현실적인 비참함이어서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 <희극지왕>에서 묘사된 단역 배우의 상대적 박탈감과 단역에게 냉정한 제작진의 모습은 사실 주성치가 7년동안의 엑스트라 시절을 거치며 직접 겪은 것임을 생각하면 그가 영화에서 희화화시켜 그리는 인생의 고난은 사실 경험에서 비롯된, 오늘도 지구 어딘가에 존재하는 지극히 현실적인 비극인 것이다. 하지만 주성치는 이 비참한 상황적 설정을 아주 초연하고 덤덤하게 유치한 코미디로 덮어 씌운다, 인생은 원래 그런거라 말하기라도 하려는 듯.


영화의 약 80퍼센트가 약자인 주인공이 인생의 쓴 맛을 겪고, 무시당하고, 이제 끝났을까 싶을 때 즈음 다시 한번 강자에 의해 무참하게 짓밟히는데 할애되지만 그 후엔 본격 주성치 문법이 적용된다. 그의 언어가 익숙한 팬들과 관객들은 안다, 영화 끝자락에 아슬아슬하게 다다라 약자였던 주인공이 영화로운 컴백과 함께 정의를 구현시킬 것을. 이 한결 같은 기승전결은 세상을 향한 주성치의 시선—고난으로 우리를 비참하고 비루하게 만드는 인생의 무정함과 잔인함 속에서도 권선징악의 희망이 있다는 것—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고난에 대해 끝도 없이 비관적이면서도 또 동시에 낙관적인 것, 그것이 주성치 식 우스꽝스러운 코미디 뒤에 가려진 우울이고, 낭만이고, 또 희망이다. 그래서 나는 그의 웃음장치를 그저 개그가 아닌 해학과 풍자라 부른다. 그의 영화가 담고 있는 인생의 희로애락은 사실 우리가 현실 속 패배 후의 비루함도, 선하지 않은 강자에게 느끼는 경멸도 경험해 보았기 때문에 더욱 격렬히 공감할 수 있는 것이고, 그런 맥락에서 주성치가 현실의 비참함을 우스운 슬랩스틱으로 전화시켜 과장하는 것은 동정과 해학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그리고 약자의 승리와 더불어 강자를 풍자하고 희화함으로 우리에게 쾌감을 주기 위한 전략적인 요소인 것이다.





흔한 영화소재인 사랑을 이야기할 때는 특히 그의 독창성과 뻔뻔한 순박함이 돋보인다. 많은 주성치 팬들이 최고작으로 꼽기도 하는 <쌍서유기 (월광보합, 선리기연)>의 마지막 장면에서 인간으로 태어났지만 요괴의 운명을 받아들인 손오공이 사랑하는 여인을 두고 돌아서는 장면은 기발하기까지 하다. 사랑의 감정이라곤 알 리 없는 삼장법사와 저팔계 사이에서 이해를 바라지도 않고서, 혼자 묵묵히 이별을 삭히고 견뎌내며 애써 밝은 척 길을 떠나는 손오공의 모습엔 우스꽝스러운 분장으로도 가릴 수 없는 절절함이 있다. <희극지왕>에서 자신에게 성공의 길을 열어줄 여인을 옆에 두고도 “날 먹여 살릴 건가요”라는 장백지의 물음에 환하게 웃으며 망설임 없이 “그럼요!”라고 대답하는 주성치의 모습도, <007 북경특급>에서 당장 본인이 조직에게 배반당해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외로움 보다는 당신의 허전함이 걱정된다며 노래하는 주성치의 모습도 거의 판타지라고 느껴질 만큼 현실에선 드문 순박함이어서, 보편적이지 않은 그 로맨스에 관객은 또 감동한다. 누군가에겐 1차원적이고 저질스러운 B급 개그로 정의되는 주성치지만, 겉으로 코믹해 보이는 장면도 사실 오래 곱씹어보면 응축된 페이소스로 가득 찬 장면들이어서 그의 영화는 음미할수록 더 깊은 맛을 낸다.


나는 아직도 어두운 영화를 좋아한다. 내 취향에 근거해 대중영화를 평가하는 기준은 아직도 쓸데없이 깐깐하다. 하지만 주성치의 영화는 평점이나 보편적인 잣대로 평가되는 대상이 아니라, 단단한 믿음과 팬심으로 점점 더 굳건해지는 하나의 장르가, 주성치 추종자들 사이에서만 공유할 수 있는 하나의 언어가 된 것 같다. 최근 개봉한 <미인어>를 보면서도 느꼈지만 주성치는 영화인으로서 여러 다양한 시도를 하며 성장하고 있고, 그 변화의 방향성이 내가 알던 모든 주성치의 세계를 지양하는 것이라고 해도 나는 그를 응원할 것이다. 그게 주성치의 영화가 나에게 끼친 영향력의 크기이자 내가 주성치를 사랑하는 방식이다. 나는 주성치와 그의 영화에 무한한 믿음이 있다. 그리고 주성치도 그가 인생과 인간과 세상에 대해 품은 뻔뻔하리만큼 순박하고 변함없이 희망적이어서 때로는 대책 없는, 그 무한한 믿음을 영화에 여과 없이 투영한다.



Q.  배우로 경력을 출발해 이젠 명실상부 중국 대표 감독이 되었습니다. 예전에 <소림축구> 인터뷰에서 “나는 영화에서라도 권선징악을 꼭 보고 싶다.”고 말한 적 있습니다. 시간이 흘러 주성치 감독의 세계관에도 변화가 있을지 궁금합니다.
A.  난 여전히 인간의 본성을 믿어요. 인간은 선하고 아름다운 존재라고. **







* 제목 ”당신도 주성치를 좋아하시나요?”는 동명의 단편 독립 영화(강동완 감독 작)에서 가져왔으며 글과는 무관
** 맥스무비 인터뷰 발췌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6630589&memberNo=23732001&searchKeyword=%EC%A3%BC%EC%84%B1%EC%B9%98&searchRank=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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