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의 이면

Posted by 희씨
2019.10.20 14:08 EDITORIAL/문예 :: Literature



사람들에겐 여러 감정이 있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세상은 오직 기쁜 감정을 좋은 감정이라고 흔히 생각한다. 최근, 젊은 인기 아이돌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해 우리에게 큰 슬픔과 충격을 주었다. 그들은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하는 모습과 자신의 진짜 내면 모습의 차이에 괴리감을 느꼈고, 또 기대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수많은 악성 댓글에 오랫동안 시달려야 했다. 어떤 이들은 텔레비전을 보면서 연예인들이 예능 방송 중 웃지 않는 모습을 보이면, 방송에 대한 예의가 없다며 비판을 하기도 한다. 어쩌면 우리는 연예인의 진짜 내면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이 보고 싶어 하는 외면을 사랑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처럼 우리는 어느 새부턴가 자신의 슬픔을 숨기고 기쁜 모습을 보이는 것이 매력적이고 행복한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이 슬픈 감정을 경험하고 싶지 않은 부정적인 감정이라고 느끼는 부분에 대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


약 4년 전, '인사이드 아웃'이라는 영화를 보게 되었다. 어느 한 시골 마을에서 대도시로 전학을 가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주인공인 여자아이의 감정들에 대해 다룬 영화이다. 이 영화 속엔 기쁨, 슬픔, 분노, 소심, 까칠 이렇게 총 다섯 종류의 감정들이 의인화되어 등장한다. 주인공의 주된 감정은 '기쁨'이었다. 화목한 가정, 좋은 친구들과 하키팀, 주인공에게는 슬픔보다 기쁨이 가득했다. 항상 기쁘고 밝게 지내는 주인공에게 가끔 '슬픔'이라는 감정이 나타나 훼방을 놓는 것을 빼면 말이다. 처음 이 영화를 접했을 때, 나는 '슬픔'이라는 감정을 매우 답답해하고 싫어했다. 왜 존재해서 자꾸 주인공의 행복을 방해하는 것인지 도움이 되지 않는 존재였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기쁨'이라는 감정을 응원했고, 그때의 나의 모습은 기쁨만을 요구하는 오늘날 사회의 모습과 다를 것이 없었다. 그렇게 4년의 세월이 지나고 몇 달 전 우연히 이 영화가 생각나서 다시 보게 되었다. 그때보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다시 보니 오히려 '기쁨'이라는 감정이 이기적이고, '슬픔'이라는 감정을 배려하지 못한다고 느꼈다. 사실 '슬픔'이 존재해야 '기쁨'이라는 감정도 존재할 수 있었다. 


동양 철학에서 말하는 음양론처럼, '기쁨'이라는 양과 '슬픔'이라는 음의 관계는 필연적이다. 음양론이란 우리가 사는 세상 속에는 하늘과 땅, 해와 달, 우측과 좌측, 남자와 여자 등과 같이 상반되는 것들이 함께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사람의 감정에도 ‘양가감정’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이는 한 대상에 대해 반대되는 감정이 공존해 있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누군가를 항상 좋아하기만 하거나 싫어하기만 할 수 없듯이, 항상 기뻐하기만 할 수 없는 것이다. 즉, '슬픔'이라는 감정을 접어둔다면, '기쁨'이라는 감정도 제대로 표현될 수 없다. 영화 속 초반에서는, 계속 '슬픔'이라는 감정을 숨기려 하고 무시했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기쁨' 또한 잃어버리게 되었다. 결국, '기쁨'과 '슬픔', 두 감정을 모두 느낄 수 없게 된 주인공은 무기력한 상태에 빠졌고, 가출을 하는 등 삐뚤어지게 된다. 이는 '슬픔'이라는 감정을 잘 받아들이고 케어를 하지 못해서 일어난 일이다.


'슬픔'이란 감정을 잘 소화해낼 줄 알아야, '기쁨'이라는 감정 또한 진정으로 느낄 수 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항상 좋은 일만 겪을 수 없다. 안 좋은 상황들을 잘 받아들이고 이겨내야 하듯이, '슬픔'이라는 감정을 어떻게 잘 다루냐에 따라 '기쁨'이라는 감정을 진정으로 알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세상에 이 두 감정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 즉 ‘기쁨’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목표라면, 가장 상반된 '슬픔'을 가장 잘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들도 어둠이 없다면 이처럼 아름답게 빛날 수 없었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가끔 너무 슬플 때는 억지로 긍정적인 척하며 힘을 내기보다는 그냥 그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목놓아 실컷 울고 나면 오히려 후련해질 때가 많다. 어쩌면, 우리는 슬플 때 그것을 없앨 좋은 것을 찾기보단, 그 자체를 이해받기를 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스스로 이 슬픈 감정을 잘 알아차리고 달래주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현재 자신의 마음이 힘든지, 괜찮은지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이는 나 자신보다 남의 시선에 더 비중을 뒀기 때문이다. 나의 마음속 아픔을 나 자신이 알아차리지 못하면, 아무도 알 수 없다. 따라서, '슬픔'을 남이 반기지 않는다고 숨길 것이 아니라, 이를 솔직하게 대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자기 자신부터 잘 챙기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슬픔에는 합당한 이유가 있다. 즉, 우리는 슬플 때 슬퍼할 자격이 있다. 이를 모르는 척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자신의 '슬픔'마저 인정하고 그것을 포용해줄 줄 아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것이다. 또 자신을 사랑해야, 남들을 더 잘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의 편견과 다르게 '슬픔'은 사실 '기쁨'에 더 가까워지는 열쇠가 될 수 있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주인공인 여자아이 부모님의 내면 감정들 또한 잠깐 나온다. 이 부분에서 특이했던 점은 주인공인 소녀의 주된 감정은 '기쁨'이었는데, 소녀의 엄마는 '슬픔', 아빠는 '분노'이었다. 이러한 것들을 보며 씁쓸했던 것은 우리가 점점 성장해가면서 '기쁨'과 멀어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우리가 어릴 때 더 행복하고 '기쁨'을 많이 느낄 수 있었던 이유도, 어릴 때는 사회적인 시선과 강압에서 벗어나, 자신의 감정에 더 솔직하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싶다. 울고 싶을 땐 울고, 화날 땐 화내고, 그 감정들을 받아들이니까 오히려 '기쁨'이라는 감정이 커질 수 있지 않았을까. 예를 들면 우리가 무언가를 억누르면 억누를수록 그에 대한 갈망은 커지기 마련이니까. 그것을 내가 풀어주지 않으면 쌓이고 쌓여서 봇물 터지듯 언젠간 폭발하는 것과 같이 엄마는 계속 슬픔을 참고, 아빠는 화를 참다 보니, 그 감정들이 점점 커지고, 결국 주된 감정이 되게 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따라서 정말 기쁘기 위해서는 오히려 '기쁨'이 아닌 부정적이라고 생각하는 감정들과 친해져야 한다.


우리가 감정을 느낄 때 한 가지 감정만 느낄 순 없다. 항상 여러 가지 감정들이 복합적으로 같이 들기 마련인데, '항상 기뻐하고 행복하라'라는 말 자체가 모순이다. 따라서, 슬플 때도 당당하게 슬퍼했으면 좋겠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은 원인과 결과라는 연관 관계를 형성한다. 목적 없이 창조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의 감정 또한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화나거나 두려운 감정, 슬픈 감정 등 모두 자연스러운 것이고 우리에게 꼭 필요한 존재이다. 이는 모두 한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기 위해 각각의 역할에 충실한 것이다. 억지로 기쁜 감정만을 잡으려 할수록 나에게서 더 멀어질 뿐이다. 자신의 감정에 대해 솔직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 앤드류 매튜스 작가는 ‘완벽한 사람이 아닌 솔직한 사람이 되어라.’라고 말한다. 우리는 무엇을 목표로 살고 있을까. 더는 사회가 하는 거짓말에 속아 헛된 기쁨을 좇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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