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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IAL/사회 :: Current Issues

시대의 흐름을 탄 안철수, 민주주의에 새 바람을

박희원씨의 안철수와 바람의 정치, 그리고 민주주의에 부쳐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박원순 후보가 당선되었다.  이는 안철수 돌풍이 맺은 첫 번째 실질적 결실이기도 한데, 이에 즈음하여 박희원씨의 지난 칼럼을 읽고 든 생각을 쓰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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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의 당선은 시민 정치가 기존 정당 정치를 이긴 기념비적인 사건이다. 현재까지 박원순의 행보를 볼 때 그의 정치를 시민 정치라고 부르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들의 정치가 정당 정치를 통해 안착되어야만 한다는 주장은 민주주의가 아닌 대의민주주의라는 협소한 정의(定義) 에서만 적용된다. 아무리 성공적인 대의민주주의라 하여도 시민 모두의 의견을 반영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특히 정치를 "사회가치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행위" 라고 넓게 잡아 본다면, 정당 바깥에서 의견을 피력하고, 의정/행정 활동을 감시하는 시민 단체의 활동도 엄연히 정치 행위라고 볼 수 있다. 한 예로 박원순이 사무처장으로 몸담았던 참여연대에서는 "이제는 박원순 시장이 참여연대의 감시 대상이 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링크) 따라서 시민 정치 활동에 오랫동안 몸담은 박원순이 집권한 것을 두고 시민 정치가 정당 정치를 이긴 것이라고 하는 것은 정당 (正堂) 하다고 생각한다.

엄밀히 말해 정당 정치에 편입되어야 하는 까닭은 안정적인 집권을 통해 정치적 비전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다. 현재 기존 정치권에서는 안철수 대통령론이 떠오르고 있다. 안철수 돌풍을 보면 충분히 근거가 있는 추측이다. 우선 여론 조사에서 차기 대통령으로 유력하게 예측되던 박근혜의 지지율을 단숨에 뛰어넘었고, 지지 의사 표명만으로 박원순의 서울시장 당선에 가장 큰 기여를 했다. 지금까지 비-정치계 인사들이 기존 정당의 일회용 카드로 쓰이거나, 중앙 정치의 변두리에서 맴돌던 것과는 아예 규모가 다르다. 이를 두고 안철수의 이미지에 선동되었다고 보는 입장도 있지만, 안철수 돌풍의 핵심은 그가 시대의 흐름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국민들이 가장 원하는 부분을 짚어주고 있다는 점에 있다. 또한 앞으로 그가 취할 정치적 행보 또한 그 핵심을 기반으로 나아가야 한다. 

개인적으로 느낀 바로는 정치에 관심이 많고 관련된 지식이 많아질수록, 국민들은 멍청하고 미디어의 속임수에 쉽게 호도된다고 생각하기 쉬운 것 같다. 특히 기존 정치 체제의 부패함과 부조리함에 대해 분노하지 않는 사람들과, 말도 안되는 감언이설에 속아 스스로의 계급을 배반하는 투표를 하는 유권자들을 볼 때 더욱 그러한 유혹을 느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선택은 옳다. 국민 대다수의 지지를 받는 후보는 국민들이 가장 우선시하는 현안에 대해 국민들이 가장 원하는 해결책을 제시하는 후보이며, 민주주의 정치에서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사진 출처: 연합뉴스

안철수가 이렇게 큰 지지를 받는 가능한 까닭은 노무현 실패-이명박 당선을 만들었던 국민 대다수가 이명박 실패-안철수 지지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정치/이념적으로 첨예하게 대립하는 문제보다, 당장 직면한 육아, 교육, 일자리, 주택 등 경제 관련 문제들을 빨리 해결해주기를 바란다. 사실 경제 문제야 말로 가장 정치/이념적으로 갈등이 많은게 당연하지만, 여당인 한나라당이나 제1야당인 민주당이나 노선에는 별반 차이가 없어 왔다. 노무현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과거 독재정권의 부패한 유산들을 많이 걷어냈지만, 경제적으로는 신자유주의를 그대로 수용하면서 실패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경제를 살리겠다"며 집권했지만, 속 뜻은 "상위 1%의 경제를 살려줄테니 나머지 99%는 낙수효과로 먹고 살든지, 아니면 노력해서 1%에 들어라"였다.

하지만 안철수는 어떤가? 껄끄러운 대북,대미,구 독재세력 등에 대해서는 거의 이야기하지 않거나 보수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신 경제 문제에 대해서는 새롭고 명쾌한 정치적 포지셔닝을 하고 있다. 그는 스스로가 성공한 1%이면서도 나머지 99%에게 "나처럼 성공해봐"가 아닌 "너희 힘든거 알어" 라고 말하며 현재의 왜곡된 시스템 대신 "공정한 경쟁이 가능한 경제 시스템" 을 만들어야 한다고 끊임없이 주장해 왔다. 오랜 세월 대기업과 과도하게 긴밀한 관계를 취해왔으며, 1명의 "뛰어난" 甲을 위해 100만명의 乙이 경쟁해야 한다고 여/야 없이 말하던 기성 정치세력과 비교하면, 직접적으로 대기업을 비롯한 대한민국의 甲에게 문제가 있다고 말하는것은 새롭고 파격적인 정치적 발언이라고 볼 수 있다.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은 거대 자본의 횡포를 어떻게 규제할 것인지, 경제적 평등과 복지를 어떻게 실현시킬 것인지의 문제이며, 이는 오랜 세월 이전에 정치체계의 민주화를 이룩한 서구 선진국들에서 오늘날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문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국의 기존 정당들은 군소 진보 정당들을 제외하고는 이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진보 정권이라 일컬어지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때는 한국 경제를 세계 경제에 편입시키기 위해 신자유주의 정책을 폈고, 현재 이명박 정부는 기존의 신자유주의 기조에서 한발 더 나아가 70년대식 경기부양책을 통해 대기업들에게 이윤을 몰아주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서 볼 때 국민들은 안철수가 제시한 '공정한 세상'의 비전에 움직인 것이다.

물론 안철수가 비전을 실현시키기 위해 가야 할 길은 멀다. 지금까지 비정치인이 인기를 끄는 경우는 늘 있어왔지만, 대부분은 기존 정당에 포섭되거나 군소 정당을 만드는데 그쳤다. 가까운 예로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은 재임시 학계에서 명성을 쌓았지만 한나라당의 세종시 돌려막기 카드로 소비되었고, 문국현 유한킴벌리 전 사장은 2007년 대선때의 지지율을 바탕으로 창조한국당을 창당했으나, 공천 자금 불법수수로 의원직까지 상실한 상태다. 그러나 안철수 또한 그러한 전철을 밟을거라는 추측은 언제까지나 기존 정당 정치 구도에 한 할때라고 생각한다. 무소속-SNS를 기반으로 당선된 박원순 서울시장의 예는 기존 거대 정당과 거대 언론에 기대지 않고도 않고도 집권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한다. 또한 기존 정당에서 수차례 러브콜을 받았지만 거절했던 그의 행보와, 놀라울 정도로 높은 국민들의 지지는 안철수가 자기만의 길을 갈 수 있을 거라는 예측을 충분히 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사진 출처: 오마이뉴스

안철수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에 기여하기 위해서 그가 대통령에 당선되느냐의 여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미 그는 기존 정당 정치 체제에 큰 균열을 냈고, 국민들은 그의 비전에 공감하고 있다. 이제 중요한 것은 박희원씨가 강조했던 대로 정당화(政黨化)를 통해 새로운 정치 세력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능력있는 정책 보좌관들을 통해 비전을 정책으로 구체화 시키고, 비슷한 생각을 가진 정치인들을 영입하여 정당의 규모를 키워나가야 한다. 이렇게 새롭게 만들어질 정당은 과거 독재정치의 잔재인 정경유착과 지역감정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하며, 오직 이념과 정책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과거 어느 때보다도 시민과 가까운 정당을 수립하여 시민을 지지 기반으로 삼고, 거대 수구 언론들 대신 SNS 및 양방향 미디어를 통해 소통해야 한다. 앞으로 안철수가 나아가야 할 길은 험하겠지만, 그가 가져올 변화의 돌풍은 멈추지 않을 것으로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