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좋아진 기술력 덕분에 우린 언제 어디서든 인터넷에 접속이 가능해졌고 SNS를 통한 자기 의견 표출이 예전보다 훨씬 용이해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기술 발전이 우리에게 가져다 준 편의에는 상당히 불편한 부작용이 있다. 악성 댓글, 무차별적인 업로딩, 그리고 인터넷의 익명성 문제이다. 물론 SNS의 경우 실명제가 기본이긴 하지만 익명성이 제한되어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SNS 아이디 만들기는 다른 인터넷 페이지들 보다 간편하고, 많은 인적 사항을 요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인적 사항이라 하는 것마저 지어내기만 하면 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우리가 많이 쓰는 페이스북이 그렇다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SNS에서 종종 보이는 익명아이디는 어째서 생겨난 것일까? 그런 익명의 아이디가 가지고 있는 특이점과 SNS에서 개인의 발언권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페이스북에는 하루 동안 참으로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자기의견 표출, 감정표현, 메시지 전달, 그리고 기념일 챙기기. 어쩌면 이제 페이스북은 인터넷상의 자기 얼굴이라고 봐도 무관할 정도로 거의 모든 네트워킹이 가능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트러블이 생기기 마련. 페이스북도 깨끗한 네트워크의 장이라곤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욕설, 비방글, 지극히 개인적인 글들이 끊이질 않는다. 특히 정치 혹은 사회 이슈에 대한 자기 발언은 공격적이기 마련이고, 욕을 먹기도, 아니면 지지를 받기도 한다. 그래서 최근에는 익명의 아이디, 혹은 페이스북 페이지들을 통한 의견 표출, 정보공유 등이 큰 인기를 얻고 있다. SNS에서 블로그의 성격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가벼운 예로 유명한 혜민스님을 패러디한 ‘헤믿스님’ 과 그 혜믿스님을 다시 이미테이트 한 ‘혜밑스님’ 의 경우, 그 출현과 동시에 엄청난 인기를 얻은 적이 있고, 아직도 활발한 활동을 계속 하고 있다. 그의 주 활동은 말 그대로 “개소리” 남발, 말도 안 되는 “섹드립” 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런 비 생산적인 허의 인물이 SNS상에서 큰 인기를 얻은 비결은 무엇일까? 자신의 페이지에 라이크를 찍은 사람들을 무시하고 마치 아랫사람 보듯이 조롱하는 그의 말투 때문일까? 아니면 간혹 드러내는 그의 정치 성향, 혹은 실명을 내걸고 감히 하지 못하는 말들을 대신 해주는 특이점 때문일까? 하지만 확실한 사실은 ‘혜밑스님’ 이라고 불리는 이 사람이 실명을 내걸고 그런 글들을 썼다면 십중팔구 "관심종자"란 말을 들었으리라는 것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숨긴 것인지, 아니면 반대로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드러낸 것인지는 본인 밖에 모를 일이지만, 제일 잘 하는 건 키보드 싸움이라고 자기 스스로 자부하는 그가 페이스북이 낳은 스타일지 아니면 인터넷 실명제를 거스르는 암 덩어리 같은 존재일지는 판가름 하기가 쉽지만은 않다.
SNS의 자유로운 의견 표출이라는 장점이 최근에는 오히려 자유롭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버린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자기와 다른 생각을 가진 개인, 혹은 집단에 대한 무차별적인 공격은 SNS에서 개인의 입지를 위축시켜버렸다. 그러다 보니 허구인물의 등장, 혹은 의견을 대표하는 단체 페이지가 등장한 것이 아닌가? 악성 댓글과 무차별적인 언어폭력을 방지하고자 강요된 인터넷 실명제이지만 개개인이 느끼기에는 오히려 발언권이 줄었다고 생각 할 수도 있겠다.
인간은 참으로 이중적인 면모가 강한 것 같다. 연예인 인신공격 등의 댓글을 보며 실명제를 주장하기도 하지만 익명의 누군가를 지지하기도, 공감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이 가장 우리의 발언권을 지키면서도 자유롭게 SNS를 즐길 수 있는 것일까? 익명의 아이디 사용이 답인 걸까? 하지만 ‘누구 하나 상처받지 않는다’ 라는 생각은 너무나 유토피아적인 이상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든지 나와 같은 생각을 할 수는 없는 것이고, 틀린 말이던 옳은 말이던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생각에는 답이 존재 할 수 없다. 누군가에게 칭찬 혹은 동정심을 받기 위해 작성한 글에는 분명 자신이 원했던 반응을 얻을 수도 있겠지만 다른 어떤 이에게는 참으로 사사로운 일 일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잔인한 말 일수도 있겠지만 자기가 쓴 글에 대해, 혹은 자신의 감정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배신당했다고 상처받는 것을 난 이기적이고 초등학생 같은 발상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발언권은 주장하면서 왜 다른 이의 발언권은 부정하려고 하는가?
사실상 문제의 본질은 SNS상에서의 실명, 익명 제도에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애초의 개인의 발언권을 제재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의 생각, 혹은 감정이 누군가에게 동정 혹은 공감을 받지 못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스스로의 발언권을 없애버렸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다른 생각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을 인정하고 겸허히 받아 들인다면 남이 뭐라고 하던 자신의 주장을 펼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이랑 의견이 다르다고 틀렸다고 욕할 이유도 없고, 무식하다고 비하할 이유도 없다. 서로 대면하지 않은 상황에서 동등한 위치에서 의견을 주고 받아야 한다고 본다. 인터넷 상에는 인터넷 상에서의 규율이 있듯이 그 선만 넘지 않는다면 내가 무슨 말을 하던 남들이야 무슨 상관인가? 자신이 할 말, 혹은 글에 대한 상대방의 부정적인 생각을 두려워한다면 자기 스스로 자기의 발언권을 죽여버린 것이다. ‘혜밑스님’ 이 애초에 무슨 생각으로 그런 허구의 인물을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겠지만 적어도 그는 SNS에서 남의 눈 의식하지 않을 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저 심심해서 사람들이랑 대화하고 싶은 방구석 폐인일지라도 말이다.
남을 욕할 것이라면 자기도 욕을 먹을 준비를 하라. 자신의 생각을 말할 것이라면 다른 이의 생각도 받아들일 준비를 하라. 일방적으로 자신의 의견만 발설할 것이라면 그것을 네트워킹이라고 간주할 수는 없다. SNS가 실제 사회도 아니니 목숨을 걸 필요도 없다. 그저 자유롭게 헛소리만 늘어놔도 충분히 SNS는 분주하다. SNS를 통해 자기를 고양시킬 필요도 없고 자신을 낮출 필요도 없다. 실명이던 익명이던 누구든 자유로이 자기 생각을 주고 받고, 또 그걸 인정하는 누리꾼들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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