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의 비극적 소식이 연이어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안타까운 마음으로 이 소식을 다함께 지켜보는 네티즌들 가운데 두드러지는 행동 패턴이 있다. 바로 슬랙티비즘 Slacktivism . 게으른 사람 Slacker과 행동주의 activism의 합성어로, 온라인 공간에서는 치열한 토론을 벌이면서도 막상 실질적인 사회운동에는 참여하지 않는 이들을 비꼬는 말로 쓰이기도 하는 영어 신조어이다. 한마디로, ‘좋아요’는 아이들을 살릴 수도 없으며 조류를 약화시킬수도 없다. 내내 생각만 하다가 직접적으로 이 글을 쓰게 된 것은 어느 실종자 어머니의 인터뷰를 접한 이후이다. 노컷뉴스에 실린 그녀의 구구절절 비통함이 전해져오는 인터뷰는 대략적으로 다음과 같다.1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김모(50·여) 씨는 백일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미국에서 의사 공부를 하는 큰딸, 판사가 꿈이라며 전교 1등을 놓친 적 없는 작은딸을 위한 기도였다.
"1주일 전만 해도 내 자식들에게 유능한 부모라고 생각했어요. 발버둥 쳐서 이렇게 왔는데, 정말 남 부럽지 않게 내 딸 인재로 만들어놨는데…".
지금 김 씨는 진도항에 있다. 단원고 2학년인 작은딸이 저 바다 깊이 가라앉은 세월호에 있기 때문이다. 세월호 침몰 후 사흘 동안 김 씨는 먹지도 자지도 못한 채 울부짖었다.
…중략…
"박근혜 대통령이 와서 잠수부 500명을 투입했네 해도 거짓말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어요. 내 자식을 놓을 수가 없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기다리면 또 거짓말이에요. 그렇게 날이 지나서 애들 다 죽었어요".
꼼짝도 않는 정부에 던진 달걀이 바위를 더럽히지도 못하는 심정. 김 씨는 대한민국을 버리겠다고 말했다.
"다 정리하고 떠날 거에요. 나 대한민국 국민 아닙니다. 이 나라가 내 자식을 버렸기 때문에 나도 내 나라를 버립니다".
못 믿기는 언론도 마찬가지였다. 남들 눈에는 뻔한 거짓말이라도 확인받고 싶은 부모 마음을 미개하다는 듯 말하는 사람들이 답답했다.
…중략…
눈물을 흘리며 자신을 탓하던 김 씨는 '이 나라에서는 언제든지 당신도 나처럼 자식을 잃을 수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제가 30대 때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어요. 사연 들으면서 많이 울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 뒤로 제가 한 일이 없는 거에요. 10년마다 사고가 나는 나라에서 제도를 바꾸려고 아무 노력도 하지 않아서 제가 똑같은 일을 겪었어요. 지금 SNS하면서 울고만 있는 젊은 사람들, 10년 뒤에 부모 되면 저처럼 돼요. 봉사하든 데모하든 뭐든 해야 돼요".
안타깝고 참담한 마음으로 읽어내려가다가, 마지막 문단에서 한참을 스크롤을 내릴 수가 없었다. 삼풍 백화점이 무너지는 소식을 듣고 마치 자신의 일인양 아파했을 그녀의 30대 어느 날이 오늘 나와 같은 모습을 하고있으리라 생각하니 갑자기 무섭기까지 했다. “10년마다 사고가 나는 나라에서 제도를 바꾸려고 아무 노력도 하지 않아 똑같은 일을 겪었다” 는 구절에서는 언젠가는 일상으로 노력없이 돌아가 간간히 세월호를 기억 아닌 ‘추억’할 내 모습이 보여 너무 창피했고, “지금 SNS 하면서 울고만 있는 젊은 사람들, 저처럼 돼요. 뭐든 해야 돼요” 하는 그녀의 마지막 맺음말에서는 정말 그래야겠다 싶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스크롤을 내려 읽게 된 댓글에는 그녀의 마지막 부탁에 대한 언급은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고, 두 번째 문단에서 인용된 “다 정리하고 떠날거에요… 나도 내 나라를 버립니다” 하는 말만 많은 지지와 공감을 얻고 있었다. 도대체 왜? 실종자 가족의 심정을 이해 못하는 바 전혀 아니고, 그녀의 아픔에 응원 보내지 않는 바 전혀 아니다. 하지만 왜 이 기사를 접한 한국의 많은 사람들은 제도를 고치려 노력하라는 그녀의 현실적인 조언보다 이 나라를 뜨겠다는 원망섞인 다짐에 더 귀를 기울이는가? 솔직히 희생자와 직접 연관이 없는 그들이 지금 대한민국을 원망하고 떠나겠다 퍼붓는 것 보다는 내가 국민으로서의 위치에서 뭐든 바꾸려 노력해보겠다 격려를 보태는 것이 더 성숙한 대처 아닌가? 이 어머니가 삼풍 백화점 사건때는 우리와 같은 먼 시민의 입장이었다는 점. 그리고 지금은 딸을 세월호에 묻어야만 할 지도 모를 안타까운 희생자의 입장이 되었다는 점에 좀 더 많은 이들이 주목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이 글은, 우리 ‘먼 시민’들이 순간의 슬랙티비즘에 휩쓸리지 않고 이 사건을 오랫동안 현명하게 기억하고 거울 삼아 행동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진짜 변화를 위한 몇 가지 작은 행동수칙을 짚어보고자 한다. 우리 먼 시민들이 미래에 또 다른,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비슷한, 비극적 참사를 겪게 되어 ‘희생자’가 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영화관의 비상 대피 안내 영상. 비쥬얼은 친숙하지만 내용은 아닌 사람들이 많을 듯 하다
원리 원칙을 우습게 보지 않는다.
미국의 페리같은경우 선원들이 최소 2주에 한 번씩 꼭 비상상황을 대비한 훈련을 한다. 인간은 생각보다 훨씬 더 단순하고 이기적인 동물이어서, 눈앞에 죽음이 보이는 상황이 되면 제 몸 챙기기에 급급한 것이 당연하다. 허나 공동체 생활을 하려면 이러한 본성보다 중요해지는 수많은 미덕들이 생겨나기에, 인간은 교육을 통해 이 윤리의식을 몸에 배도록 장전시킬 필요가 있는 것이다. 어떠한 상황이 닥쳐도 그 위급상황이 ‘생전 처음 접하는 일’이 되지 않도록 사전에 다각도의 시나리오와 철저한 시뮬레이션을 모색해 두어야 할 것이며, 이러한 가정을 통해 도출된 예비 훈련을 통하여 진짜 위급한 일이 생겼을 때에도 몸이 자동적으로 나 하나만의 생존본능을 따르기보단 적어도 내 주위 한두명의 생명 또한 챙겨 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세월호가 가장 잘못한 부분은 이 부분이다. 선원들이 비상시 승객 먼저 구해야 한다는 직업윤리를 그들이 아침에 일어나 화장실로 직행하는 자연스런 순서만큼 몸에 배도록 교육시켜 왔느냐 하는 부분. 설령 그들이 직업 윤리를 찰나의 순간에 까먹어 놓쳤더라도, 이를 부끄러워 할 정도로 윤리적 책임에 권한을 실어주고 중요시했느냐 하는 부분. 이 윤리 의식이라는 보이지 않는 책임을 엄청나게 강조하고 떠받드는 미국 교육을 거쳐온 본인이 굉장히 안타깝게 생각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들이여, 너무 화만 내지 말고 차분히 자신을 돌아보길. 모두가 살면서 한번쯤은 소방안전 대피훈련을 가졌으리라 생각하고, 비행기나, 전동차나, 여객선 탑승 시에, 심지어는 영화관 입장 시에도 책임자의 비상상황 안전 대피를 위한 브리핑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매우 기본적인,’ 사고 시 여기서 살아나갈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매우 친절한’ 정보가 읊어지고 교육되는 동안 나의 소중한 목숨 부지를 위하여 집중해서 경청하고 기억하고자 노력하는 사람 당신들 중 몇 명이나 되는가.
개인적인 여담으로는, 한국에서 학교를 다닐 당시 일년에 약 한 번 정도 있던 소방훈련 때 여자애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교실에 숨어있거나 운동장에 나가서도 그냥 앉아서 잡담을 나눈 기억이 많았다. 하지만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닐 때에는, 특히 총기 사고가 비교적 잦은 나라라 그랬는지는 몰라도, 모두가 진지하게 비상 훈련에 임하였고 누구 한명이 장난스레 분위기를 흐트려뜨리려는 행동을 했을 때 미친사람 (심지어는 저놈 미래의 총기난사범 아니야? 하는 표정으로) 쳐다보는듯한 또래 친구들의 시선에 깊은 충격을 받았었다. 한국도 그런식으로 공동체의 안전 의식을 가볍게 보는 이들을 위험 인물로 인식하는 규범 의식(social norm)이 좀더 강해졌으면 하고 바란다. 덧붙여, 미국 뉴욕 주에서는 모든 공립 학교가 fire drill이라 불리는 소방 훈련을 일 년에 최소 열두 번 이상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유니세프의 슬랙티비즘 비판 포스터. "'좋아요'를 눌러주시면 저희는 0명에게 면역 접종을 할 수 있습니다."
널리 퍼뜨리려 하지 말고, 가까이 있는 이들과 행동하라.
변화는 눈에 보여야 변화라고 하는것이다. 그렇지 않고 두루뭉술하게 퍼져나가는듯 아닌듯 소리만 요란한 정보들은 희망 내지는 상상만 더 커지게 할 뿐이다. 페이스북 등 SNS를 포함한 한국 2.0 웹사이트들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문구중 하나가 ‘널리 퍼뜨려주세요,’ 더 나아가 ‘(외신이) (잠수부들이) (정부가) (희생자 가족들이) 볼수 있도록 널리 퍼뜨려주세요’ 이다. 이렇게 소리없는 외침들은 굉장히 이 사태를 일차원적으로 바라보는듯한 느낌을 주며, 수동적이기까지 한 행동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이러한 소식의 전파를 통해 희생자 가족들이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심정을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나, 이러한 글에 반응을 보이는 대부분의 이들은 직접 관련은 없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현재 팽목항에 나가 있는 수 많은 관련자들중 상당수가 휴대폰도 압수당한 채 임무를 수행중이어서 SNS를 체크할만한 여유가 없는 것도 사실인데, 이를 감안했을 때 왜 사실여부도 불확실한 소식들을 ‘널리 퍼뜨리고 보자’는 풍조가 커져가고만 있는지 안타깝다.
왜 앉아서 소식이 널리 퍼지길 바라는 요행을 바라는가? 왜 이에 동참하지 않는 이들을 비난하면서, 정작 가까이 있는 사람들과 뭉치고 협업하여 좀더 현실적인 도움을 주려하지 않는가? 전형적인 슬랙티비즘의 예이기도 하다. 정말 한 줄 짜리 트윗이, 1초간의 RT 버튼 클릭이 널리 퍼져 기적을 가져오리라 믿는지 그 심리가 궁금하다. 사람을 구하고싶으면 사람 얼굴을 보고 뭉치길 바란다. 온라인 포털이 아닌 진짜 커뮤니티를 통해 안타까운 마음을 승화시키길 바란다. 큰 규모가 아니어도 좋고, 대단한 능력이 없어도 물론 좋다. 돈이나 구호 비품을 보내는게 도움이 될 것 같다 싶으면 그렇게 하고, 봉사를 가는 것이 가능할 것 같다 싶으면 그렇게 하고, 팩트에 근거한 제보를 언론 내지 외신에 할 수 있다 싶으면 그렇게 하고, 똑같은 사태 반복의 방지를 위해 현재 소속된 곳 (학교든, 직장이든)에 안전수칙 강화와 훈련 증강 제보를 해야겠다 느끼면 그렇게 하고… 그렇게 ‘진짜 행동’을 하면서 세월호의 기적을 염원하는게 훨씬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예를 들어 버클리의 한인 밴드 라온 Ra-On에서는 5월 초에 콘서트를 열어 공연 수익금을 모두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에게 기부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타국에서 공부하는 유학생들이 직접적으로 도움 줄 수 있을만한 일이 얼마나 되겠느냐만은, 이렇게라도 자신들의 위치에서 최선책을 찾아 조의를 표하려는 노력이 뉴스에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에 친구를 태그하는 것보다 훨씬 진정성 있게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일 아닐까.
세월호 사태는 책임자의 직업 윤리 부재 면에서 11년 전 일어난 대구 지하철 참사와 닮아있다
기억한다: 잊지 말고, 잊지 않는다.
정치적, 구조적 문제 또한 분명 있다. 왜 재난대책본부가 여러 부처로 분산되어 통합된 한 가지 대책조차 신속히 내놓지 못하였는가. 왜 수많은 정치인들은 재난시 마저도 신중하지 못한 행태를 계속 유지하는가. 왜 언론은 첫날 사실확인도 안된 보도를 당당하게 내놓았으며, 왜 다른 언론 또한 직접 가서 사실확인을 재차 하는 것보다 그저 앉아서 남들이 물어온 뉴스를 보고 베끼기를 택하였는가. 그리고 어떻게 정부가 구조작업에 몇날며칠을 개입하고 있는 상황인데 몇백명의 사람들 중 생존자가 단 하나도 없을 수 있는가ㅡ 21세기에 자칭 선진국 내지 예비선진국에서 300이 수장을 당하다니. 이 모든 비상식에 관련된 책임자들에게 잘못을 따지되 우리는 미움을 위한 발본색원이 아니라 재발 방지를 위한 원인 파악에 더 무게를 두어야 한다.
덧붙여, 이미 비극적 참사가 일어났고, 바다에서 멀리 떨어져 오늘도 각자의 삶을 살고있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의 방법은 그저 세월호를 잊지 않는 것이다. 이 ‘잊지 않는다’는 약속이란 세월호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만 하자는 것이 아니라, 세월호가 침몰하였던 이유를 최대한 복잡하게 되짚어보고, 최대한 단순하게 풀어내어 우리 삶에 적용시키자는 것이다. 물론 희생자 가족들과 생존자들을 위한 국민적 차원의 배려는 장려할만한 일일 것이며, 이에 대한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방안은 14년 전 ‘부일외고 수학여행 사고’의 생존자 중 한명이 동아일보에 보낸 편지를 통해 찾아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2 하지만 그에 덧붙여, 다시는 이런 비극을 겪지 않게 하기 위해 개인 하나하나부터가 안전 의식을 강화시켜야 할 것이고,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사회적으로 안전의식이 부족한 이들을 부끄럽게 여기는 풍조가 좀 더 커졌으면 한다. 걸그룹들이 속옷 바람으로 춤추는 것 만큼이나 젊은이들이 비상시 산소마스크 착용방법을 모른다는 것이 ‘개탄할 정도로 무식하고 창피한 일’로 바라보는 시선이 커져야 할 것이다.
삼풍 백화점까지 멀리 갈 것도 없이 천안함 때에도, 씨랜드 참사에서도, 대구 지하철 참사 때도, 직업 윤리 의식은 물론 안전 의식의 부재 문제가 계속 불거져 나왔고 이에대한 질타 여론 또한 거셌으나 금방 수그러든 것이 오늘은 너무나도 안타깝다. 흔히 시민 의식을 이야기할때 정치 의식이나 주인 의식등 여러가지 면을 복합적으로 판단하는데, 이 가장 ‘기본적이고 당연한’ 윤리와 안전 의식들의 부재가 우리나라 시민의 수준을 계속 한정시키고 있는거라 본다. ‘그걸 누가 몰라’ ‘어떻게든 되겠지’ ‘대충 하고 빨리 끝내자’ 하는 마인드보다는, 알더라도 매뉴얼을 한번 더 소리내어 읽고 한번 더 꼼꼼히 훑어보는 ‘설마가 사람 잡지’ 하는 마음가짐이 아쉬울 때다. 마지막으로, 우왕좌왕 하지 말자. 슬랙티비즘의 그림자에 빠져 올라오는 기사 하나하나에 허우적대지 말고, 감정은 나누되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필요한지를 파악하여 이성적으로 행동하여야 할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행동에 또 다른 행동이 보태질 것이고, 그렇게 정신없이 하나 둘 행동하다보면 기적이라는 것이 더이상 희망이 아니라 현실임을 보게 될 지도 모른다. 설령 그게 우리가 애초에 바라던 모습의 기적은 아닐 지라도... 그런 의미에서 노란 리본이 속삭이는 '하나의 작은 움직임이 큰 기적은'이라는 문구 또한 한번 더 되새기고 진정한 속뜻을 헤아릴 줄 이들이 좀 더 많아지길 바란다. 다시한번 희생자 분들에게 조의를 표하며... 그럼 모두, 각개 전투 실시.
1. [여객선 침몰] 학부모의 절규 "장관 아니면 자식 못 살릴 나라"
http://news.nate.com/view/20140423n02355
2. 절대 자신을 탓하게 하지 말아달라: 14년 전 사고 생존자의 편지http://www.huffingtonpost.kr/2014/04/22/story_n_5190831.html?utm_hp_ref=tw)
'EDITORIAL > 사회 :: Current Issues'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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