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던 수년 전 서울시내의 한 작은 커피숍 안,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발밑 빗물 젖은 우산을 해진 운동화 끄트머리로 툭툭 치며 바닥에 작은 물웅덩이를 만들고 있었다. 내 맞은편에 앉아있던 과거의 친구 녀석은 노래가 좋으니 들어보라며 자신의 귀에 꽂고 있던 하얀색 이어폰 한 짝을 내게 건넸다. 고요한 분위기의, 구절엔가 아른함이 녹아있던 빌 에반스의 한 재즈곡이었다. 시끌벅적하던 주위에 괜히 머쓱해진 나는 무엇 하러 이런 지루한 음악을 듣느냐 짓궂게 물었다. 그때 상대방이 말해주었다. 일본의 가장 오래된 재즈 카페에서는 지난 오십 년간 매일 아침, 항상 첫 번째로 이 곡을 틀었었다고. 그 작은 사실도, 노랫소리도 참 멋스럽지 않느냐고.
친구는 반세기 동안이나 매일 같은 곡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전통이라는 것에서 멋스러움을 느꼈던 것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훗날 같은 이야기를 곱씹던 나에게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오십 년이란 세월이 멋이 아닌 익숙함의 표상으로 다가왔다. 언제부터인가 그 카페에서 커피잔을 닦던, 이른 아침 빈자리를 찾던 이름 모를 이들에게 이 오전 첫 곡은 그저 항상 같은 시간에 들린다는 이유로 마치 제 얼굴처럼 익숙하고, 앞으로도 당연히 지켜져야 할 것으로 여겨지진 않았을까. 그리고 내 스물둘 삶도 결국 그것과 유사한 것 아닐까.
언제부터일까, 창틀 사이로 내려오는 햇살에 두 눈을 뜨면 보이는 저 하얀 천장을 내 집이라 여긴 것이. 새로 산 하늘색 와이셔츠가 마치 제 안방인양 내 옷장에 구겨져 널브러져 있는 것이. 새로 만난 인연을 오래된 친구라 부르기 시작한 것, 그리고 나 자신에게 익숙해져있던 것이.
어릴 적 무엇이 되고 싶으냐는 어른들의 질문에 곧잘 ‘모험가’라 대답하던 나는 어느새 고여있는 물처럼 어제와 내일이 같은 삶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리고 어느 여름날, 그 고인 물에서 옅은 악취를 맡은 나는 그저 새로운 것이 보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홀로 하네다행 비행기 표를 끊었다. 꼭 일본이어야 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내가 여태 알던 모든 것들과 사뭇 대조된 이국의 골목을 혼자 터벅터벅 걷다 보면 무언가 얻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감에 차 있었던 것 같다. 왜 길동무 하나 없이 떠나냐던 그나마 많지 않은 친구들에게 이런 모호한 여행의 이유를 변호할 자신이 당시에는 없었다. 그래서 난 그들에게 ‘편하니까'라고 대충 얼버무렸던 것 같다.
두어 시간 비행 후 나는 처음으로 일본 땅을 밟았다. 해가 질 때쯤 기어코 숙소까지 도착했는데, 방 안에 놓여있던 의자에 저린 몸을 앉히며 텔레비전을 켜니 현지 뉴스에선 우연히도 청와대를 비추고 있었고, 그들의 또 다른 관점으로 어지러운 대한민국 정세를 설명하고 있었다. 이해하지 못하는 언어로 통역되던 박근혜의 연설을 마치 어린아이처럼 신기해하며 그제야 내가 먼 타국에 도착했음을 실감했다.
어둑해진 숙소 앞 낡은 자판기에서 맥주 한 캔을 꺼내 마신 뒤 나는 바라던 대로 도쿄 시내의 밤거리를 홀로 누볐다. 시내에는 재즈 바가 있었고, 거리엔 휘황찬란한 네온사인과 길고양이들이 있었다. 우동집에서 모락모락 피어나던 김을 휘감은 식당가는 퇴근길 회사원들로 붐볐고, 가로등 아래에선 영국 록 밴드의 티셔츠, 찢어진 청바지를 입은 내 또래의 대학생 무리가 줄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누구와 말 한마디 통하지 않았지만 그 나름의 멋스러움이 있었다. 우표와 엽서를 사러 들렀던 문구점에서 나에게 씽긋 웃어주던 앞니 빠진 여자아이에게 도로 웃어주기도 했다.
연줄 하나 없는 이 외국의 대도시야말로 결국 아무런 곳에도 속하지 못하던 나에겐 가장 적합한 곳이 아닌가 생각을 했다. 홀로 신주쿠의 한 건물 옥상에 걸터앉아 도심을 내려보고 있자니 아무래도 퍽 외로워져, 생각나던 사람에게,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보기도 했지만, 여의치 않아 고독 속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사색하는 것뿐이었다. 올바르게 살고 있는가, 꿈이란 건 아직 있는가 따위의 그다지 쓸모없는 생각을 하는 나를 발견하고, 피식 웃음을 지으며 괜스레 기분이 좋아진 나는 다시 저 밑 바삐 움직이던 행인들 틈에 끼기 위해 내려가던 승강기를 잡았다. 그리고는 도심 속 작은 커피숍 안, 차가운 아메리카노 한 잔을 앞에 두고 앉아 다른 세상의 이방인들이 열심히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걸 구경하다 어느새 더 확고해진 내 삶에 대한 의지를 발견하기도 했다.
한 정치인이 번화가 도로변에서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둘러싸여 확성기 너머로 이해할 수 없는 고함을 지르고 있었고, 중년의 한 여성이 가득 채운 장바구니를 들고 귀갓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내게 무언가를 묻던 교복을 입은 앳된 얼굴의 한 여학생에게 나는 연신 머리를 긁으며 일어를 할 수 없다 설명했고, 결국 둘 다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서로의 가던 길을 계속했다. 파란 눈의 관광객들은 경이로운 눈빛으로 시부야 사거리 속 바쁜 인파를 바라보고 있었다. 주택가 어디선가 트롬본 소리가 들려왔고, 윌리엄 서머셋이 돈 몇 푼과 견주던 그 달은 여전히 이국의 밤하늘 속 그 유려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한밤중 지하철역 벤치에 걸터앉아 나는 오래전 이어폰을 건네던 그 친구에게 짧은 엽서를 쓴 뒤 뒷골목 우체통에 넣고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수많은 사람들 중 나만이 목적 없이 걷던 것 같아 쓸쓸했지만, 한편으로는 모든 것이 새로웠기에, 아직 세상 물정 익숙하지 않은 어린아이같이 자유를 만끽했다.
숙소로 돌아가던 열차 안 유리창에 비친 나의 얼굴을 주시하다 저 멀리 보이던 화려한 도쿄 시내로 눈의 초점을 다시 맞추며 새삼 세상의 크기를 느꼈다.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나의 것과는 다른 각자의 길을 걷고 있었다. 그리고 나 또한 지금의 나라는 존재에 목맬 필요는 없지 않을까 조용히 자신에게 물었다. 그저 어제와 다른 오늘을 살고 싶었다, 그리고 오늘만큼은 '나의 자아’라는 재즈 바의 첫 선곡이 평안함의 빌 에반스가 아닌 생동감의 풀러, 혹은 역동감의 콜트레인이 아니었을까 하는 우스꽝스러운 생각을 했다. 조용한 아침, 첫 곡으로 다른 선곡을 한다는 행동 자체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다만 나는 몇십 년 세월의 일정함과 규칙을 뿌리치는 그 상징성에 여태껏 선뜻 다른 방향으로 손을 뻗지 못하던 것 아니었을까.
그리고 우리는 너무나 익숙한 우리들의 일상에 걸맞은 가치를 부여하지도, 또는 인지하지도 못하고 살았던 건 아닐까. 마치 오랜만에 듣는 익숙한 곡이 주는 그 감동처럼, 잠시 나를 잃은 뒤 다시 찾는 예전의 삶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풍요롭고 의미 있는 것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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