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끊임없이 사랑을 한다. 비록 그 사랑이 끝난 후 이별의 고통을 겪을지라도 사람들은 또다시 사랑한다. 세상에는 이성을 사귀는 데에 다양한 방법이 있다. 길거리를 지나가다가 마음에 드는 이성의 번호를 물어본다든지, 같은 동아리 활동을 하다가 눈이 맞는 경우도 있다. 그중에서도 소개팅을 통해서 만나는 것은 가장 쉽게 이성과 만나는 방법의 하나일 것이다. 소개팅은 두 남녀가 이성 교제를 하고 싶다는 것을 전제로 처음 만나기 때문에 이미 서로의 마음을 오픈한 상태이다. 하지만 이런 경우를 제외하곤 우리는 항상 누군가를 좋아할 때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과연 저 사람이 나한테 관심이 있는 것일까?’, ‘괜히 대시 했다가 까이는 거 아니야?’
[1]
사람은 일생을 살아가면서 여러 번의 사랑을 한다. 하지만 그 많은 경험 중에서도 첫사랑에 관한 기억은 모두에게 더욱 뜻깊게 다가올 것이다. 1998년, 거의 20년 전 얘기이지만 아직도 나는 그때가 생생히 기억난다. 초등학교 2학년 첫 등교 날, 나는 새로 산 노트와 필기구를 챙겨 설레는 마음으로 새로 배정받은 교실로 향했다. 나는 1학년 때 친한 친구들과 다른 반에 배정받았기 때문에 홀로 구석 자리에 앉았다. 할 것 없이 노트에 낙서하는 중 피부가 하얀 한 여자아이가 내 옆에 앉았다.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자기소개를 하곤 내 이름을 물었다. “안녕? 내 이름은 000이야, 너 이름은 뭐야?” 긴 생머리에 하얀 피부, 비록 아무것도 모르는 초등학생이었지만 그녀는 나에게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와도 같았다.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장면이 나에게도 일어난 것이다. 그저 여자아이들을 놀리고 장난치는 걸 좋아하기만 하던 나에게 그녀와의 만남은 나에게 사랑이란 감정이 무엇인지 느끼게 해주었다. 그리고 그 날은 내가 그녀를 10년 동안 짝사랑하기 시작한 날이기도 하다.
그때 그 시절 나는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나는 내가 그녀를 좋아하는 걸 누군가에게 들키게 된다면 다른 친구들에게 놀림감이 될까 봐 두려웠다. 그래서일까, 나는 그 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지만 그 아이와 있을 때마다 그 아이를 가깝게 대하기보다 차갑게 대할 뿐이었다. 그 아이가 나에게 살갑게 굴어도 난 냉소적으로 대했다. 내가 그 여자아이에게 내 마음을 표현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저 그 아이에게 짓궂은 장난을 치는 친구들에게 똑같이 복수를 해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 사실을 알면 안 됐다. 내 마음을 들켜선 안 됐으니까.
난 그 이후로 그녀와 같은 반이 되지는 않았지만,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가끔 복도에서 마주칠 때면 힐끔 그녀를 쳐다보며 지나가며, 내가 그 아이를 좋아한다는 감정을 숨기기 급급했다. 이렇게 끝날 줄 알았던 내 첫사랑과의 인연은 다시 중학교 2학년 때 같은 반이 되면서 계속 이어갈 수 있었다. 중학교 2학년 첫날 교실에 들어섰을 때 그녀가 앉아있는 모습을 보고 난 정말 미친 듯이 좋아했다. 속으로는 미친 듯이 좋아했지만, 물론 겉으로는 애써 태연한 척 그녀의 앞자리에 앉았다. 이번에도 역시 초등학교 때와 마찬가지로 그녀가 나에게 먼저 인사를 건넸다. 그렇게 난 그녀를 가까이서 계속 볼 수 있었다.
[2]
사실 내 첫사랑의 스토리가 해피 엔딩이었으면 좋았겠지만 안타깝게도 나의 소극적 태도로 인해 그녀와 나 사이에 친구 이상의 관계 발전은 없었고, 그렇게 세월이 흘러 내 첫사랑도 잊히게 되었다. 중간중간 그녀는 나에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했지만 나는 그때마다 진심 아닌 거짓으로 대답했을 뿐이다. 그런 나에게 친구들은 늘 답답한 놈이라고 욕을 하곤 했다. 나도 이런 나 자신이 싫었다. 왜 나는 항상 좋아하는 여자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지. 왜 그녀에게 “나는 널 좋아해” 이 말 한마디를 못해서 10년 동안을 혼자 사랑앓이를 했는지 나조차도 내 자신이 이해가 가질 않는다.
이런 나에게 제일 신기한 사람은 바로 하루가 멀다고 애인이 바뀌는 사람이다. 난 이런 사람들을 볼 때마다 과연 그 사람이 정말 사랑해서 사람을 사귀는 것일지 아니면 단순히 그저 외로워서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줄 사람을 사귀는 것일지 이해하지 못하며, 항상 그 사람의 진정성에 대해 의구심을 품곤 했다. 얼마 전 나는 연애 고수인 친한 동생과 점심을 함께 먹으며 그 동생에게 물었다.
“야 너는 어떻게 그렇게 여자를 잘 사귀냐? 비법 좀 알려 줘라.”
“형! 남자는 자신감이에요. 어차피 경쟁 사회인데 자신감 있게 먼저 들이대야 다른 남자가 먼저 낚아채 가기 전에 그 사람을 형의 여자로 만들 수 있죠!”
“아니 근데, 들이댔다가 차이면 쪽팔리잖아?”
“형 그건 잠깐일 뿐이에요. 자신감 있게 여자에게 다가가면 웬만하면 다 성공하게 되어있어요! 형 마음에 드는 여자가 있으면 딱 세 번만 밥 먹자고 말해보세요. 만약 그 세 번 모두 거절하면 깔끔하게 포기하시고, 만약에 한 번이라도 단둘이 밥을 먹게 되면 반은 성공 한 거에요.”
이 동생의 짧은 조언은 나에게 많은 생각을 들게 하였다. 그렇다. 나는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두려웠던 것이다. 나뿐만 아니라 내 주변 모태 솔로인 친구들을 보면 대개 시도해보기도 전에 ‘나는 안 될 거야’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내가 밥 먹자고 그러면 싫어하겠지?', 걔가 뭣 하러 나랑 밥을 먹어’ , ‘내가 영화 보러 가자고 하면 싫어하겠지?’, 혹시나 용기 내 물어봐도 거절 할까 봐 안절부절못한다. 어쩌면 나는 이미 나 자신이 이성을 만나지 못할 거라고 단정 짓는 것일 수도 있다.
일본의 유명 작가 기시미 아들러의 책 <미움받을 용기>는 교육론과 사랑론이 중심을 이룬다. 그는 “상대가 내 사랑을 받아주지 않을까 봐 미리 포기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그 사람한테 사랑을 못 받아도 나는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라면 내 사랑을 받아줄지도 모른다. 그래서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인정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상대방이 나를 인정하지 않아도 큰 문제가 아닌 것이다. 포기하지 말고 조금 더 용기를 가져야 한다” 라고 썼다. 나도 잘 알고 있다. 이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하지만 이것을 극복해야만 우리가 그토록 원하는 이성과 데이트 한 번쯤 해볼 수 있지 않을까?
[3]
“때론 미친 척하고 딱 20초만 용기를 내 볼 필요도 있어.
진짜 딱 20초만 창피해도 용기를 내는 거야. 그럼, 장담하는데 멋진 일이 생길 거야.”
- 영화 <우리는 동물원을 샀다> 中 -
어느덧 뜨거웠던 여름은 지나가고 차가운 바람이 우리를 맞이하고 있다. 파랗던 잎사귀들도 붉게 물들며 낙엽이 되기 전 마지막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가을이란 계절은 우리를 더욱 외롭고 고달프게 만드는 계절이다. 글을 쓰며 내 학창시절 첫사랑과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추억에 잠기기도 하지만, 동시에 아쉬움이 많이 남기도 한다. 그때 내가 좀 더 적극적으로 행동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그런 아쉬움 말이다. 하지만 이미 아쉬워하는 순간 그녀는 떠나가 있다.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너무나 많은 생각과 고민을 하게 된다. 영화 <우리는 동물원을 샀다>의 한 장면에서 주인공 맷 데이먼 (벤자민 역)은 좋아하는 여자아이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주변만 맴도는 자기 아들에게 이렇게 조언한다. "‘20초의 용기’를 가져라. 그럼 멋진 일이 생길 것이다." 본 필자를 포함한 좋아하는 이성 앞에만 서면 석고상이 되는 사람들에게는 그 20초란 짧은 시간이 마치 20분, 아니 그 이상으로 길게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그 20초의 투자가 몇 배의 기쁨으로 돌아올 것이다. 난 그동안의 나 자신의 태도에 후회가 많이 된다. 나의 소극적인 태도로 인해 내가 좋아하는 여자를 놓친 것이 지금도 아쉽고 후회된다. 그 잠깐의 용기만 있었다면 난 지금 이런 후회를 하고 있지 않을 것이다. 좋아하는 이성에게 다가갈 때마다 두려워하는 그대들이여, 용기를 가져라. ‘20초의 용기’, 이것을 우리 마음속에 새기자. 그리고 자신감 있게 좋아하는 이성에게 한번 물어보자. “시간 괜찮으면 저녁 함께하지 않을래?”
이미지 출처:
[1] http://img.etnews.com/news_ebuzz/column/afieldfile/2013/11/03/18.jpg
[2] http://snacker.hankyung.com/wp-content/uploads/2015/11/43.jpg
[3] https://t1.daumcdn.net/cfile/tistory/25727F4A559E52BE1E
내용 출처: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516488&code=13150000&sid1=s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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