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너무나도 상쾌하고 순조로운 출발이었다. 두 남녀가 사랑하는 것이 2인3각 달리기라면, 각자의 다리 한쪽에 줄을 동여매는 그 순간조차도 너무나 황홀하고 잊지 못할 기억이 될 것이다. 너와 내가 함께 움직여야 한다는 그 일체감은 내 마음대로 움직일 자유를 뺏긴다는 박탈감조차 잊게 만들었다. 그렇게 기쁜 마음으로 서둘러 두 발목에 굳게 매듭을 지었고, 서로를 바라보며 우리는 할 수 있다는 다짐을 속으로 되뇌며 출발선에 섰다. 세상 모두에게 들릴 것만 같던 그 출발의 총소리가 울리는 순간, 우리는 연인이라는 이름표를 가슴팍에 달고 많은 사람의 함성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묶인 두 발을 함께 내디뎠다.
열심히 달렸다.
그저 서로의 얼굴과 앞만 보며 묶인 발을 씩씩하게 옮겼다. 하지만 그 누구든 달리다 보면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순간이 있게 마련이다. 나와 같은 사람이 세상에 없듯이, 힘들어하는 순간은 다르게 찾아왔다. 그렇다고 한 명 혼자 달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녀가 힘들 때 나도 함께 숨을 골랐고, 내가 힘들 때는 그녀도 옆에서 내 땀을 닦아주었다. 비가 오는 날에는 함께 비를 맞으며, 화창한 날에는 같은 곳을 바라보며 밀려오는 피곤함을 잊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위로하고 응원하며 천천히 그리고 서둘러 한발 한발을 걸어갔다.
숨이 차오른다.
누군가 인생은 단거리 달리기가 아닌 마라톤이라고 말한다. Slow and steady wins 라고. 그러나 사랑에 있어서는 나와 그녀 중 누구도 그 사실을 몰랐다. 아니 어쩌면 모르는 것이 아니라 모르는 척하고 싶었던 것이었을 수도. 마치 결승점이 눈앞에 있는 단거리 주자처럼, 막판 스퍼트를 내어 우리는 묶인 두 발을 이끌었다. 더 사랑해달라, 더 표현해달라는 말로 우리는 서로를 재촉했고, 그렇게 우리는 이를 악물고 나아갔다.
[2]
심장이 터질 것 같다.
한참을 달린 줄 알았다. 100일, 200일, 1년 같은 기념일이 올 때마다 마치 1등이라는 보라색 도장을 손등에 찍은 아이처럼, 여태껏 우리가 함께 걸어온 거리에 감탄하여 폴짝폴짝 뛰었다. 마치 반환점을 돌고 있는 것처럼 결승점이 신기루처럼 눈앞에 보이는 듯했다. 이러라면 지구 끝까지도 갈 수 있을 것 같았고, 그렇게 묶여 있는 상대방의 다리마저 내 것이 된 듯 기뻐하였다.
끝이 보이는 듯했다.
하지만 결승선은 없었다. 남들이 말하는 것처럼 마라톤도, 그렇다고 단거리 경주도 아니었다. 그저 끝없이 이어지는 산책로 혹은 그냥 한 갈래 길이었을 뿐. 그렇게 우리는 결승선이 없다는 박탈감에 서로의 발목에 묶인 줄에 무감각해지기 시작했다. 혼자 걷고 싶고, 다른 방향으로 걷고 싶다는 두 개의 다른 마음이 부딪쳤다. 결국, 우리는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고, 묶인 둘의 무릎에는 상처가 나고 피가 흘렀다.
[3]
쓰라리고 따갑다.
결국, 우리는 끝내 그 상처를 인내하지 못하고 묶인 줄을 풀었다. 피가 흐르는 나의 무릎이 마치 상대방의 잘못인 듯이 인상을 쓰고 답답해했다. 꽉 조인 매듭이 서서히 풀리는 순간, 서로는 갑자기 찾은 자유에 적응하지 못하고 다리를 절었다. 여태 함께해온 길을 뒤 돌아보니 후련함과 아쉬움의 모순된 감정이 가슴을 후벼왔다. 뛰지 않고 걸어왔으면 혹여나 다치지 않았을까, 더 오래 걸을 수 있었을까 하는 마음이 아픔을 더했다. 그렇게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괜히 옆에 있던 돌덩어리를 화풀이하듯 걷어차 보지만, 그저 내 발만 아플 뿐이다.
아직 길 위에 있다.
누군가와 같이 걷던 그 길을 이제는 혼자 걷는다. 절던 다리도 멀쩡해지고, 가만히 서서 수도 없이 뒤돌아보던 그 시간도 어느새 아득하게 멀게만 느껴진다. 그렇게 걸어가다 시간이 흘러 상처가 아물고 딱지가 떨어지면 또 다른 누군가와 2인3각 달리기를 시작하게 되겠지. 다음번엔 조금 더 차분하게, 재촉하지 않고 양보하며 더 오래 걷자고 스스로 주문을 걸며 앞을 향해 나아간다. 문득 걸어가고 있는 이 길 위에 반짝이는 모래알이 예쁘다.
출처:
[1] http://www.iamacamper.com/camper_camping/445332
[2]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dolljung1&logNo=220347195661
[3] http://1080.plus/mobile/?zUST1IrJ5CY.vid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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