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달리기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는 나는, 실제로도 달리고 있다. 물론 달리고 있는 내 모습을 들여다봤을 땐 그것은 절대 온전한 내 스스로의 의지가 아니다. 반 강제 반 자의다.
오전 05시 50분이 되면 핸드폰 알람 소리에 깨어나 겨우 눈을 비비고 몸을 일으킨다. 너무나도 고통스럽다. 그리고 다시 드러눕는다. 다음, 06시 00분 알람이 울린다. 미치겠다. 눈은 감겨있고 몸은 자고 있지만 머리는 생각한다. 갈까 말까. 더 잘까 말까. 다음 생각이 일기 전 결국 벌떡 일어난다. 화장실로 들어가 거울에 비친 헝클어진 머리를 보며 샤워부스에 따뜻한 물을 틀어놓고 데운다. 김이 모락모락 나면 손으로 물을 만져보고 적정 온도가 됐다 싶으면 허리를 숙이고 머리를 무작정 들이밀고 감는다. 그리고 말린다. 06시 15분경 허겁지겁 집을 나선다. 학교를 향해 걸음을 열심히 재촉해본다. 학교 테니스코트에 06시 25분 쯤에 도착하면 모두가 모여있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모두는 ROTC 후보생을 의미한다.
나는 현재 P/E 수업을 듣고 있다. 그것도 일반적인 체육수업이 아니라 간부 후보생들이 듣는 기초적인 Physical Fitness Training을 위한 수업이다. 이 수업에 참여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학점 때문이었다. 4 Unit 짜리 세 과목을 신청하고 나니 1 Unit이 모자랐다. 열심히 찾아보던 중 Army Physical Fitness라는 수강명이 내 눈을 사로잡았고 수업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읽어보니 간부 후보생들이 간부가 되기 위해 필수적으로 갖춰야 할 체력을 함양하기 위한 수업이었다. 호기심이 자극되었다. 실제 미군들이 체력을 기르기 위해 하는 훈련은 무엇일지 궁금하기도 했고 본인은 군 제대한지도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따라가는 데에 무리가 없으리라 판단하여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수강 등록을 하였다. 그리고 후회했다. 매일 아침 후회했다. 지난 2년 동안 군에서 이 고통스러운 행위를 아침마다 지겹도록 해왔었는데 또다시 내가 내 손으로 무덤을 팠구나, 라는 생각이 들며 이런 선택을 한 나 자신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이 수업이 나에게 고통이 될 걸 알면서도 굳이 택한 이유는 내가 본래 아침형 인간이거나, 뱃살을 빼려고 했던 것도, 건강하게 오래 살려는 욕심 때문도 아니었다. 그저 남들보다 더 일찍 하루를 시작하고 전쟁터 같은 이곳에서 악착같이 버티기 위해선 달려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비록 수업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몸을 억지로 끌고 간다지만, 그 강제성이 날 성장시킨다고 믿었다. 내 손으로 나 자신을 아침이라는 지옥 속으로 내쳐버리기로 결정했지만, 결국 그 속에서 견뎌낸 나는 반드시 환골탈태 할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이제는 일찍 일어나는 것에 어느정도 적응이 되니 그것에 대한 불평불만들은 일시적인 현상에 그친다는 것을 안다. 매일 아침 구슬땀을 흘리고 돌아와 샤워를 마치고 나면 나는 또 다른 나로 태어나 있었다. 항상 의욕으로 가득 차 있었고 학교 가기 전 아메리카노를 굳이 마시지 않아도 정신이 맑았다. 지난날의 올빼미 생활과 매일 아침 좀비로 변해있던 예전 모습을 비교해 볼 때 많이 달라져 있음을 느낀다.
달리기를 하면 좋은 것이 있다. 생각을 멈출 수 있다. 생각을 멈춘다는 것은 우리 머릿속 뇌가 쉴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즉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있는 육체적 휴식에서는 절대로 얻을 수 없는 일상 속 유일무이한 정신적 휴식 시간이다. 달리기를 통해 누군가는 사색의 시간을 갖는다고 말하지만 나는 달리기가 생각이라는 복잡한 과정을 차단해준다고 말하고 싶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때 우리는 과연 무슨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나는 달리는 매 초마다 쉴까 말까 하는 고민밖에 하질 않는다. 그리고 그 순간마다 내 자신과 치고받고 싸우고 있다. 결국 쉬지 않고 당당하게 결승선까지 도달한다. 그때의 성취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달콤하다.
달리는 순간에도 달리기 싫을 때가 정말 많다. 그럴 때마다 내가 달려야 하는 이유를 찾는다. 그 중에는 멍한 정신을 깨우고 집중력을 향상시킨다거나,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다는 그럴듯한 이유들도 존재하지만, 사실은 그보다 더 중요한 내 나름의 은밀한 목적이 있다. 정신무장이다. 내 주관에서 봤을 때 많은 사람들이 달리는 목적에 대해서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 대개는 달리기를 하는 이유로 체중감량 및 건강 등을 꼽지만, 달리기의 주된 효과는 정신력을 단련시켜준다는 것에 있다. 게으름, 피곤함, 나태, 권태, 불안, 우울 등 우리 삶에 해로운 감정들과 기분들은 다 체력이 버티지 못해서, 즉 정신이 몸의 지배를 받아 나타나는 증상이라 생각한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남자 타이틀을 달고 있는 데이비드 고긴스라는 미군 특전사 출신은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데 내가 뛰는 이유는 정신력에 굳은살을 만들기 위해서야..”
몸의 부위 중 굳은살이 배여본 사람은 안다. 그 굳은살이 외부 자극으로부터 나를 덜 아프게 해준다는 것을.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인생에서 혹시 모를 정신적 충격 혹은 재앙이 될 만한 사건이 나에게도 찾아오지 않으리란 확신은 어느 누구에게도 없다. 그에 대비하여 잘 견딜 수 있는 더 강한 나를 만들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수양해야 한다. 그 방법이 달리기이고 그래서 나는 달리기에 대해 더욱 확신이 들었다.
달리기는 혼자 감당해야 하는 외로운 스포츠다. 언제나 똑같은 풍경을 맞이하고 그래서 지루하고 따분한 운동이다. 흔히들 사람들은 무언가에 도전할 때 혹은 인생을 묘사할 때 달리기에 비유한다. 그래서 나는 달리기를 그냥 달리기라고 생각하기보다는, 달리기라 쓰고 나 자신과의 싸움 이라고 읽고 싶다. 인생에서 가장 큰 적은 나 자신이라고 누군가가 말한 것처럼 달리기를 통해 나와의 싸움에서 승리를 쟁취한다면 이 세상 어느 무엇이 두려울쏘냐 싶다. 끝으로 미생에서 나온 대사인데 정말 가슴에 와닿는 말이라 공유한다.
"네가 이루고 싶은 게 있다면 체력을 먼저 길러라. 네가 종종 후반에 무너지는 이유, 데미지를 입은 후에 회복이 더딘 이유, 실수한 후에 복구가 더딘 이유, 다 체력의 한계 때문이야. 체력이 약하면 빨리 편안함을 찾게 되고 그러면 인내심이 떨어지고. 그리고 그 피로감을 견디지 못하게 되면 승부 따윈 상관없는 지경에 이르지. 이기고 싶다면 니 고민을 충분히 견뎌줄 몸을 먼저 만들어. 정신력은 체력의 보호 없이는 구호밖에 안 돼."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마지막으로 있는 힘껏 달려본 적이 언제인지. 쾌쾌한 땀 냄새가 향기로 다가온 적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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