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맘때 즈음, 제주도에 살고 있는 유명 연예인 부부가 본인들의 집을 민박집으로 개방하고 투숙객을 들이며 그들과 함께하는 소소한 일상을 담아낸 프로그램을 시청한 기억이 있다. 별다른 내용이 없었음에도 보는 내내 시간 가는 줄 몰랐었는데, 아무래도 아름다운 제주도의 풍경과 잔잔한 민박집만의 그 특별한 분위기가 시청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큰 사랑을 받았지 싶다. 그중에서도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고 넓은 마당 혹은 집 안에서 자유분방하게 어슬렁거리는 개와 고양이들의 장면은 보는 이로 하여금 미소를 자아내게 하는 재미를 더했다. 이처럼 반려동물과 함께 침대에서 뒹구는 친근한 모습들이 이제는 낯설지 않을 정도로, 그들은 우리 삶 속 깊이 들어왔다.
주변만 보더라도 개나 고양이를 키우고 있는 이들이 어림잡아 열 명 중 서너 명은 되는 거 같다. 심지어 꼭 지금 당장 기르고 있지 않더라도 나중에 형편과 여건만 충족된다면 하나쯤은 반드시 들이겠다는 사람도 수두룩하다. 글을 쓰고 있는 본인도 그 '나중에' 쪽에 속하고 말이다. 또한, 집 근처 공원에만 나가보아도 반려동물과 산책 나온 이들을 심심찮게 마주할 수 있다. 과거 소형견이 대부분이었던 시절과는 달리, 집에서 키울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드는 대형견도 자주 눈에 띈다. 언젠가 인터넷에서 보았던 '국내 반려동물을 기르는 인구가 1000만 명을 넘었다'라는 뉴스 기사가 피부에 와 닿는 순간이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반려동물 인구가 늘면서 그와 관련된 산업도 급격히 성장세를 키워나가고 있고, 지난해 반려동물 산업 규모는 약 2조억 원으로 추산된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가파른 성장 속도에 비해 반려동물 관련 법 체계나 그에 관한 시민의식은 고개가 갸우뚱해질 정도로 변변치 못한 것이 안타깝지만 현 대한민국의 실정이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에서 반려동물 문화는 얼마나 미성숙한 것일까?
아마도 본인처럼 반려동물을 언젠가 기르고 싶어 한다면, 길을 걷다 애견숍 앞에서 발걸음을 멈춰본 적이 있을 것이다. 투명한 창 너머에 손바닥만 한 강아지가 꼬물거리며 낑낑대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데려다 키우고 싶다는 욕구가 샘솟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미 알려진 바대로, 애견숍에서 판매되는 강아지의 대부분은 ‘강아지 공장’에서 온 아이들이다. 작고 앙증맞은 쇼윈도 속 강아지들과는 반대로 그들의 어미 견은 강아지의 번식 시설인 공장에서 평생을 좁은 철창 안에 갇혀 임신과 출산만 반복하다 삶을 마감한다. 비윤리적 사육 시설에서 대규모로 강아지를 생산하고 유통하는 시스템이 이미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것도 꽤 오래전 일이다. 그러나 강아지 공장은 바뀔 듯 바뀌지 않고 있다. 그저 다수의 시민단체와 전문가들은 수요가 있기에 공급이 이뤄지는 것이라는 지적만 내놓은 채. 이 끝없이 반복되는 문제에 사람들 사이에선 ‘사지 말고 입양해주세요’라는 구호가 물결치고 있다. 펫숍에서의 구매보다 버려진 아이들을 입양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입양에 대한 인식이 좋아지고 있다 하여도 실제 유기견 입양 건수가 낮은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입양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버림받은 상처가 있는 동물에게 새 가족이 되어주는 것은 또 다른 고난과 어려움이다.
이 외에도 반려동물 문화에서 가장 대표적인 문제를 꼽아보자면 유기견을 떠올릴 수 있다. 유기견 문제는 오랜 세월 사람들로부터 인지되어 왔지만 여전히 정체되어 있는 심각한 사회 문제 중 하나다. 각종 방송매체에서 몇 년 전부터 지속해서 다루어 왔다는 것은 유기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지고 있음을 뜻하는데, 불행 중 다행인 점은 양적 증가를 넘어 관심의 질이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과거 유기견을 척결의 대상으로 바라보았다면, 현 사회는 유기견을 도움이 필요한 대상으로 여기고 있다. 심지어 교양 또는 예능 방송이나 다큐멘터리 속에서 여실히 드러나는 유기견들의 안타까운 모습에 사람들은 입을 모아 해결책을 강구한다. 최근에는 ‘언더독’이라는 유기견을 소재로 한 영화 애니메이션이 개봉하였다. 이것은 또 다른 미디어 매체가 유기견 문제에 관여함으로써 여론 변화의 실마리를 제공하고 유기견에 대한 양극적 대립을 좀 더 완화해주는데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반려동물로 인한 문제점이 속출하면서 동물 관련 법이나 제도에 대한 비판도 쏟아지고 있다. 현재의 허술한 법체계로는 강아지 공장도 유기견도 막을 수 없다는 지적이다. 이를테면, 강아지 공장과 관련한 규제는 재작년 3월부터 강화됐다. 강아지 공장을 신고제에서 허가제로 전환하고 번식장의 인력 및 시설 요건을 강화해 별도의 허가를 받아야만 영업할 수 있도록 개정한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효력이 없다는 지적이 대부분이다. 기준이 엄격하지 않아 오히려 규제할 수 있는 기준이 완화돼 정책이 합법적 번식장의 발판을 제공했다는 비판이다. 동물을 보호해야 하는 법이어야 하는 데에도 결국 동물 입장에서는 하나도 나아진 게 없다는 쓴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길거리에 내몰린 유기 동물의 가장 큰 원인으로는 책임의식 없는 주인과 더불어, 허술한 동물보호 제도가 한몫한다. 동물보호법 제8조 4항에서는 동물을 유기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되어 있다. 만약 이를 어길 시에는 300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동물을 유기한 사람을 적발해 과태료를 무는 주체는 각 시 군 구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현실적으로 전담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탓에 실효성 있는 단속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아우성만 들릴 뿐이다. 실제로 지난해 서울에서 약 9,000마리에 달하는 동물이 버려졌지만, 이 가운데 과태료가 부과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다고 한다. 단속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어디서 와서 누가 버린 것인지 추적하기가 어려운 탓이다. 반려동물 등록제도 마찬가지다. 이미 5년 전 반려동물 등록이 의무화됐음에도 불구하고 등록률은 20% 정도에 그친다.
날이 갈수록 반려동물을 기르고 있는 인구는 많아지는데 그에 따른 문제점은 해결되지 않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생황이 이렇다 보니 반려동물 소유자에 대한 어느 정도 수준의 교육이 의무화되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국가가 시행하는 의무교육을 이수해 증명서를 발급받은 이들만이 동물을 입양할 수 있도록 하자는 주장이다. 이를 통해 반려인은 올바른 사육 방식을 익힐 수 있음은 물론이고 책임감도 높일 수 있다는 것. 이외에도 반려동물 소유자들의 책임감을 높이는 방안에 대한 논의와 더불어, 관리와 책임의 의무를 저버린 이들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자는 목소리는 지금도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결국 반려동물로 인한 문제점 및 부작용을 해결할 수 있는 열쇠는 다른 어떤 누구보다도 동물의 소유주, ‘반려인’이 갖고 있다는 의미다.
과거에는 집에서 키우는 동물을 가리켜 ‘애완동물’이라는 명칭을 썼다. 이는 사람에게 귀여움을 받고 즐거움을 준다는 의미에서다. 그러나 동물은 장난감 같은 존재가 아니라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생명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이제는 ‘반려동물’이라고 주로 불리고 있다. 반려(伴侶)의 사전적 의미는 짝이 되는 동무라고 한다. 지금 옆에서 새근새근 잠을 자는 그 고양이, 눈만 마주쳐도 꼬리를 마구 흔들어대는 그 강아지는 여러분의 ‘반려’동물이 맞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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