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끝나고 집에 돌아갈 때의 노을을 사랑한다.
오늘도 어찌저찌 하루가 끝났다. 어깨에 짊어진 책가방은 무거우나 집으로 향하는 내 발걸음은 그 날 하루 마음의 무게와는 별개로 언제나 가볍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나는 밤늦게까지 숙제와 딴짓을 번갈아가며 하다가 새벽에 멜라토닌 젤리에 의지해 잠이 들고, 비몽사몽 일어나 부랴부랴 수업을 간 후 넓은 캠퍼스의 건물들을 이리저리 옮겨 다니기를 두어번, 공강 때는 해도해도 줄지 않는 할 일들을 마저 끝내고 보바나 샌드위치 따위의 간단한 요깃거리로 허기를 잠재운다. 이렇듯 다람쥐 쳇바퀴 굴리듯 동일하고 단조로운 일상 속에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은, 집으로 향하는 횡단보도의 저 끝, 건물 지붕 끄트머리에 매달린 해가 뉘엿뉘엿, 매일같이 다른 색으로 하늘을 물들이는 것을 지켜보는 순간이다. 매일같이 마주하는 태양은 내가 어제 본, 그리고 내일 다시 볼 동일한 태양이지만 이는 그날그날 내게 내가 사랑하는 과거의 다른 기억들을 끌어다준다. 그 기억에 의지해 하루를 보내며, 나는 그렇게 이곳에서의 시간을 버텨낸다. 내가 사랑하는 노을을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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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만난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옛날 이야기를 할 때를 사랑한다.
매일 아침 우리는 서로가 학교 갈 준비를 끝낼 때까지 기다렸다가 함께 아침을 먹으러 식당을 갔고, 듣는 수업이 달라도 점심시간이 되면 같이 모여 1인 1메뉴로 제한되던 우리학교 급식의 5가지 메뉴를 전부 맛본 후 부랴부랴 다음 수업으로 뛰어갔다. 토요일 아침이면 육상부였던 내가 시합을 마치고 내 방에 들어왔을 때 주인 없는 방의 침대에 자연스럽게 누워 옹기종기 수다를 떨던 친구들이 나에게 인사를 건넸고, 그날 밤 우리는 편의점에서 사온 불닭볶음면, 빨간 순대, 자몽소다를 먹으며 배를 채웠다.
지금은 홍콩, 영국, 미국에서 각기 다른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가장 즐거웠고 소중했던 그 시간들. 매일을 함께 보내다 이제는 방학 때 밖에 볼 수 없는 친구들과 오뎅탕에 소주를 마시며 그 때 그 추억들을 밤하늘에 띄울 때, 나는 사랑에 흠뻑 젖어드는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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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빈언니와 피자를 시켜먹으며 예능을 보는 토요일 오후 4시를 사랑한다.
토요일 오후 4시, 주말이라는 단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한 주 중에 가장 나른한 시간.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마냥 한가로울 수 없는 버클리에서의 바쁜 일상과 그 일상을 그대로 옮겨다놓은 듯한 어지러운 플래너를 잠시 덮어두고 내 방 침대에 눕듯이 걸터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어릴적엔 많은 친구들에게 둘러 싸이고, 그들과 모든 시간을 함께 보내며 늘 사람들의 중심에 있는 것이 최고인 줄만 알았다. 넓고 얕은, 무게감없는 인간관계와 단발적인 인스턴트식 만남에 회의감을 느낀 것인지는 몰라도 대학에 와서 전형적인 집순이의 삶을 살고 있는 나에게 해빈언니는 대학졸업장과 함께 내게 남겨질 이곳에서의 추억이다. 말이 통하고, 함께 있으면 즐겁고, 나의 슬픔마저 공감해주는 편안한 사람이 하나라도 삶에 있는 것은 축복이자 성공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나는 해빈언니로 하여금 성공한 대학생활을 즐기고 있는 듯 하다.
일단 배가 고프니 하와이안 바베큐 피자와 갈릭 브레드 스틱을 시키기로 한다. 디저트도 눌러봐. 초콜릿칩 쿠키 피자의 비주얼이 장난아니다. 모르겠다, 일단 시키고 남으면 두고두고 먹자. 콜라는? 1.25L는 너무 많나? 에바야 그냥 500mL 시켜. 얼마야? 35불. 아빠존스 뭐야, 찐따같아. 예능 뭐볼래? 나혼자산다 봤어, 아는형님 보자.
대화가 있던 없던 어색하지 않은 토요일, 창 밖은 어느새 내가 사랑하는 노을의 시간을 닮아 노랗게 물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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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 있는 남자친구를 쳐다볼 때의 그 순간을 사랑한다.
사랑하는 사이에 좋지 않은 순간이 어디있겠느냐만, 나의 연인이 나와 장난치고 함께 웃는 모습이 아닌 새근새근 잠들어 있을 때의 모습을 바라보는 순간 실로 마법같다. 어슴푸레한 새벽, 혹여 깰라 이불도 조심스레 바스락거리게 되는, 멈춘 것 같은 시간 속에 조그맣게 어디선가 들려오는 초침소리만이 우리가 흐르는 시간에 실재함을 일러준다. 숨결이 느껴질 정도의 거리에 당신의 예쁜 코가 있다. 자연스럽게 헝클어진,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의 끝에는 곤히 잠들어 감겨있는 당신의 예쁜 눈, 그리고 기다란 속눈썹. 시선을 옮기다보면 아직도 보는 것만으로 부끄러운 감정이 드는 당신의 입술에 다다른다. 한참을 쳐다보다 재빠르게 입을 맞추고 자는 척, 눈을 감으면 꾸물거리는 당신이 나를 꼭 안아준다. 사랑해, 말하면 잠결에도 사랑해 정윤아, 대답해주는.
10cm의 Everything이라는 노래가 귓가에 들려오는 것 같은 밤이다. 눈부셔 저 불을 꺼줘, 귓가에 소리를 들려줘, 누구도 들을 수 없게. you're my everything, everything, ever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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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표현이 어설픈 아빠를 사랑한다.
남자친구와 잠시 헤어졌을 때 펑펑 울며 엄마 아빠에게 영상통화를 한 적이 있었다. 엄마와 현경이는 우는 나를 놀리기 바빴지만 아빠는 묵묵히 아무 말 하지 않고 있다가, 그날 밤 봄 방학 때 뉴저지 집으로 가는 비행기 티켓 예매내역과 함께 "사랑한다..우리 윤이 화이팅~♥"이라는 메시지를 함께 보내셨다.
나는 커가면서 아빠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점점 더 깨닫고 있는 듯하다. 엄마보다 무뚝뚝한 듯 하지만 나를 향한 사랑은 엄마와 같거나, 혹은 더 큰 것 같은 아빠. 사실 아빠가 내게 보여준 사랑은 내가 자라오며 존재했던 모든 순간들에 언제나 사소하게 녹아있기에 특정하기가 참 어려운 것 같다. 사랑표현을 할 줄 몰라 가끔가다 보고싶다는 카톡, 밥 잘 챙겨먹고 잘 자라는 카톡으로 당신의 마음을 대신하는 아빠. 오히려 아빠가 나를 "정윤아"라고 부르는게 이상할 정도로 항상 "우리 윤이", "우리 윤이", 하고 나를 부를 때조차 애정이 가득 담긴 아빠, 서투르지만 서투르기에 더 진심이 잘 느껴지는 아빠의 어설픈 사랑표현을 나는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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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보고 웃는 엄마를 사랑한다.
언젠가 엄마가 나에게 해 준 "정윤아, 현경이는 집에서 아무 말을 안해서 별로 재미가 없는데 너랑 전화하니 진짜 즐겁네"라는 말.
나는 사랑을 주고, 사랑을 받는 방법을 엄마에게 배웠다. 내가 7살 유치원생이었을 때, 예전부터 나에게 편지 써주는 것을 좋아했던 엄마가 내 수저통 속에 오늘 하루도 잘 지내다가 집에서 보자는, 사랑한다는 내용의 짧은 쪽지를 넣어준 적이 있었다. 유치원생 애기였던 나는 그 날 점심을 먹지 못했다. 엄마의 쪽지를 읽음과 동시에 감동받아 펑펑 우는 바람에 선생님 책상에 가서 엄마에게 답장 쪽지를 적어야 했기 때문이다.
엄마는 내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6년동안은, 매 주말마다 내 일기장을 가져가 내가 쓴 일기 하나하나에 작은 스티커와 함께 짧은 엄마의 코멘트를 달아주었고, 내 필통에 들어있던 연필 5자루를 하나하나 칼로 깎아주셨다. 뿐만 아니라 아침이면 집과 조금 떨어져있는 초등학교를 다니던 나를 매일같이 자가용으로 8시 전까지 등교시켜주시고, 3시반이면 허기를 채울 간식과 함께 후문 앞에서 기다리고 계셨는데, 이는 나뿐만이아닌 내 동생이 졸업할 때까지 8년간 계속 되었다. 현경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던 날, 엄마가 왜 당신도 함께 졸업하는 기분이라고 하셨는지 이제는 이해가 된다.
그리고 기숙사 생활을 시작한 중학생 때부터 집에서 멀리 떨어진 서부의 대학에 온 지금까지, 나는 2개월 이상 엄마와 함께 우리집에서 지낸 적이 없다. 늘 손님처럼 집에 캐리어를 들고 왔다갔다 하는 내 모습이 안쓰럽고, 끼고 살지 못해 속상하다는 말을 한 적이 있는 우리 엄마. 그래서인지 하루에 엄마와 못해도 한 번은 꼭 전화를 하는 것은 이제 내게 중요한 일과 중의 하나이다. 초등학생 때 집에 오는 차 안에서 쫑알쫑알 그 날 하루가 어땠는지 이야기해주던 내가 참 좋았다고 하신 엄마는, 이제는 훌쩍 큰 대학생이 된 딸이 오늘 하루를 이야기해주기 위해 영상통화를 걸면 "왜 또 전화했어~"라며 귀찮은 내색을 보이지만, 분명 당신의 입은 웃고있다. 별이의 목소리(들어본 적은 없지만)를 흉내내며 "언니! 방학 때 한국 가지말고 집에와서 나랑 있어!"라고 말한 뒤 별이의 발을 잡고 흔들흔들, 하는 모습에서는 별이의 쿠룸쿠룸한 발냄새, 그리고 늘 그리운 엄마냄새가 맡아지는 것 같기도 하다. 어쩌면 엄마는 딸이랑 좀 더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말을 괜히 별이의 입을 빌려 하는 것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워낙 친구같은 모녀사이라 그런지 사랑한다는 낯뜨거운 말은 오가지 않지만, 나는 나와 전화하며 밝게 웃어주는 재미있는 우리 엄마를 보며 오늘도 사랑 받고 있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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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한창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을 시절, “하루에 하나씩 감사하기”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었다. 무조건 하루에 하나씩은 감사해야했기에 그 일기장엔 정말 사소한 것들까지 감사하고 있는 내가 있었다. 마음에 드는 쇼팽악보를 찾았음에 감사하고, 책을 읽다가 무심코 시계를 봤는데 저녁먹을 시간임에 감사하고, 비가 왔는데 축축한 비냄새가 맡기 좋아서 감사하고. 지금 다시보니 목표였던 100일을 훌쩍 넘겨 216일간 매일같이 하루의 감사를 기록해 온 3년전의 내가 그 곳에 있었다.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그 216일간 나는 실제로 굉장히 행복한 사람이 되었다. 하루에 감사할 일을 꼭 찾아야 했기 때문에 내 사고회로는 보다 긍정적으로 변했고, 그 덕에 고맙다는 표현을 훨씬 자주하고 작은 일에도 쉽게 웃어보이는, 남들이 봐도 행복한 사람이 되었던 것 같다. 얼마전 내 친구가 행복한 삶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며 행복의 의미에 대해 고민하는 것을 보았다. 나는 행복이 별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주 사소한 것일지라도 나를 웃게 만드는 감사한 일이 있다면 그게 바로 행복이라고, 그것을 눈치채느냐 못채느냐가 결국 행복한 삶과 아닌 삶을 가르는 것이라고.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떠올려보자. 아주 소소한, 사소로운 것일지라도.
오늘 나는 많이 웃고 많은 웃음을 주는, 감사할 줄 아는, 사랑할 줄 아는 나를 나는 사랑한다. 행복한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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