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내

Posted by 희씨
2019.03.06 17:49 EDITORIAL/문예 :: Literature






하나.

새벽 초소 근무를 설 때면 밀려오는 피로감을 덜고자 병사들은 사소한 얘기를 나누고는 했었다. 나는, 무언가 잡담 같은 것을 나누는 것에는 익숙한 성격이 아니라 병장 약장을 달고 나서는 열심히던 후임들의 입담에도 별 대꾸를 하지 않았는데, 그러다가 이내 포기한 듯한 표정의 후임이 꾸벅꾸벅 졸 때쯤 이면 공포탄뿐이 들어있지 않은 K1 소총을 초소 난간에 대충 걸쳐놓고 저 부대 밖 세상을 물끄러미 쳐다보고는 했었다. 거뭇거뭇 한 거리 변의 낡은 철물점과 국밥집들은, 마치 감춰 두었던, 내면속에 눌어붙어 있던 그을린 자국들 같았다. 여름날 새벽 밤공기를 가득 채우던 귀뚜라미 소리. 소매를 걷어올린 팔뚝을 귀찮게 하던 작은 날벌레. 수많은 상념들.

 

와중에는 책과 영화 얘기를 곧 잘하던 상병이 하나 있었는데, 어쩌다 근무를 같이 서는 날이면 관심사가 비슷해 그나마 추리소설이라던지 좋아하는 옛날 영화라던지 하는 것에 대한 얘기를 나누고는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멍하니 밤하늘을 바라보던 나에게 후임이 박하사탕이라는 영화를 보았느냐는 얘기를 꺼냈다. , 영화 꼭 한번 봐. 재밌더라. 그 어투가 어쩐지 울림이 있어 간만에 나온 휴가에도 공허하게 비어있던 집, 언젠가 아버지가 냉장고 위편에 넣어놓은 작은 산 미구엘 한 병을 들고 어둑한 거실 소파에 앉아 그 영화를 봤던 기억이 있다.

 

영화가 시작되며 보이는 배우의 모습은 누구도 반기지 않을, 괴팍하고 라면 냄새를 풍기던 망가진 한 중년의 모습이다. 어느 야유회에서 오랜만에 조우한 옛 친구들과 힘없이 인사하다 귀신을 본 사람처럼 갑자기 고성을 지르며 개천으로 뛰어든다, 그리고는 개천을 가로지르던 철로 위에 가만히 서 다가오는 열차를 바라보다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소리치며 자신을 내던진다. 그는 이미 구원받을 수 없는 인간이다. 아무도 그에게 동정을 느끼지 않고, 그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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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버지는 항상 같은 박정희 이야기를 끊임없이 늘어놓기 좋아하는, 아들이 그저 저 강의 남쪽 높은 마천루의 누구나 알 법한 기업에 입사해 우쭐거리며 살고 있는 것을 보는 것이 유일하게 남은 꿈인 희끗해진 머리의 중년이다. 사실 어린 시절 식당에서 큰 소리로 통화를 하다 폭소한다던가, 듣는 상대의 기분을 고려하지 않은, 그가 좋아하는 삭힌 홍어 같은 농담을 던진다던가 하는 모습에 창피해하던 기억이 많았다. 왜 당신은 옆에 있는 나의 입장을 고려해 주지 않을까. 그러다 내가 스물의 중반을 넘기며 뭔가 혼자 일어서려고 하다가 자꾸만 고꾸라지고, 초라해질수록 내 내면에 쌓여가던 그런 악함과 화를 주체하지 못해 세상은 썩어버린 곳인걸, 따위의 비린내 나는 농담들이나 낄낄거리며 던지던 별볼 일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것을 보고는 무언가 느낀 바가 있었지 싶다. 멋진 사람이 된다는 것은 여유를 필요로 하는구나, 같은.

 

그래도 내가 아는 한 나의 아버지는 항상 선한 인물이었다. 그제 술자리에서 풍이 와 반신을 쓰지 못하게 된 친구가 딸이 승진했다며 좋아하더라는 말을 꺼내며 빛나던 눈동자 같은 것에서 나는 그런 확신이 들었었다. 그리고 내게는 어느 날 우연히 들렀던 연희동 당신의 옛집에서 페인트칠을 새로 했나보다 중얼거리던 앳된 목소리를 들었던 쓰라린 기억 또한 있다. 그렇게 당신과의 감정적인 접점이 많았던 탓일까, 퇴직 후 쓸쓸함에 고통스러워하던 당신과 한때는 내로라하던 당신의 친구들을 바라보다 나는 이 모든 모래성의 허무함을 내 또래에 비해 일찍 느껴버렸던 것 같다.

 

영화 속 중년의 주인공은 외도한 부인과 이혼하고, IMF로 사업에 실패한 후 쓰러져가는 판잣집에서 연명하는, 모두에게 잊혀진 인물이다. 냄새나고, 욕을 일삼던 그를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한 남자가 혼수상태에 빠진 한 여인의 병상까지 그를 끌고 왔는데, 자신을 그 여자의 남편이라고 소개하며 사진기 하나를 주인공에게 건넨다. 이 사진기를 당신에게 건네는 것이 부인의 마지막 소원이었다고. 그렇게 병원에서 나선 주인공은 시장통에서 4만 원을 받고 사진기를 팔아버린다. 돌려받은 필름을 뜯어보고는 어딘가에 우두커니 앉아 오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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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업에 미국에 있을 때면 자주 들르던 작은 미용실이 하나 있었다. 여느 때와 같이 이발을 부탁하며 검은 미용실 의자에 앉은 내게 다가온, 새로 일을 시작한 것 같던 나이 들고 거친 얼굴을 한 여자는 별다른 표정이 없이 어떻게 자르고 싶느냐 내게 물었고, 머리 스타일 같은 것을 잘 몰라 그런 상황에서 나는 항상 핸드폰으로 사진 같은 것을 찾아 보여주고는 했었다. 그리고 그렇게 건넨 핸드폰에 남아있던 어떤 기록들 때문이었는지 여자는 반색하며 혹시 한국말을 하느냐 내게 물었다. 그렇다, 라고 하자 조금은 상기된 한국어로 본인은 이렇게 반듯한 머리를 자르는 것을 가장 잘한다며 잘 잘라주겠다고 내게 약속했다. 아마 그 전날 손님과 머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식으로 시비가 있었던 듯했고, 갑작스러운 상대방의 미소에 나 또한 웃으며 잘 부탁한다 말했다.

 

어제의 시비에 대해 시작했던 하소연은 이런 유의 대화가 항상 그렇듯 함께 일하는 미용사들의 은근한 무시라던가, 검고 하얀 피부의 손님들이 원하던 스타일을 이해하지 못해 생긴 여러 서러웠던 일들, 생활고, 서울을 떠나온 계기와 남편과 사별했던 이야기 같은 개인사를 거슬러 올라가는 장황한 이야기에 사람이 익숙하지 못한 나는 가능한 큰 수긍을 보여주려 노력하고 있었다. 그러다 마음에 와닿았던 이야기는 어릴 적 뚱뚱하다 놀림당하던 기억에 아직도 사람을 피한다던 여자의 서른된 아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체격이 큰 그 남자는 무엇이 가슴속 응어리로 남았는지 아직 집 밖을 나서지 못한다던 여자의 이야기에, 공황장애로 힘들어하던 나 또한 왠지 사회에서 도태되어 버렸다는 이름 모를 그 남자에게 마음이 쓰였다. 그리고 다시 바라본 그 여자는 사실 아무도 이해해 주지 않는, 그런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일흔의 나이에도 구사리를 먹어가며 외국인의 머리를 자르던 그런 존재였다.

 

사업을 시작하기 전 베테랑 형사였던 영화의 주인공은 범인을 잡기 위해서라면 죄 없는 그 주변사람을 물고문하는 것조차 마다하지 않던 악질의 인간이었다. 하지만 그도 한때는 모르는 이에게 손을 댄다는 것조차 겁내하던 신참내기에 불과했고, 그렇게 조금씩 타락해 가던 자신의 모습을 힘에 겨워하던 초짜배기 형사 시절의 남자에게 여인이 어느 날 선물해준 그 카메라를 남자는 기차를 타고 떠나던 여인의 손에 다시 쥐여주었었다. 여자는 상처받은 얼굴로 그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지만, 그는 한때는 존재했을 자신의 순수함을 이제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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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보다는 비가 많이 내리던 어느 겨울, 서울에 친구를 만나러 가던 길에 잠시 버스를 몇 정거장 타고 집 근처 어느 상가 단지로 발길을 옮겼었다. 주말이었고, 어느새 점심시간이 되어 작은 식당들에는 사복을 입은 학생들이나 연인들이 옹기종기 모여 끼니를 해결하고 있었다. 버스에서 내린 나는 가만히 서서 주위를 둘러보다 근처 편의점에서 소주 한 병을 사 들고 있던 가방에 넣었다. 핸드폰을 파는 가게 앞 검은 스피커에서는 시끄러운 가요가 울려 퍼지고, 언뜻 나와 눈을 마주친 작은 약국 안 한 약사와 그 앞에 앉아있던 손님은 오랫동안 알고 있던 사이 마냥 농담을 주고받는듯했다. 그 약국의 길 맞은편에는 어느 동네에나 있을 법한 마을버스 정류장, 그리고 그 옆 낡은 구둣방이 하나 있었다. 파란불로 바뀐 신호등을 보고는 길을 건너 문이 굳게 잠긴 그 구둣방 앞에 사들고 온 소주를 조심스럽게 놓았다. 소주 옆에는 노란 개나리와 양갱이, 박카스와 렛츠비 커피 같은 것이 정성스럽게 놓여 있었다.

 

한달 전 이 신도시의 시내 한복판에서 온수관이 터지는 사고가 있었다. 저녁시간 100도가 넘는 물이 용암처럼 땅속에서 솟아 나왔고, 치킨 배달을 가던 알바생 이라던가 거래처와 얘기를 나누던 여사원 이라던가 하는 사람들이 차도에서 종아리까지 차오른 물에 고통스러워하다가 겨우 인도로 빠져나오는 것을 구경밖에 할 수 없던 사람들의 증언이 쏟아져 나왔다. 예순이 넘은, 한쪽 다리가 없었던 그 구둣방의 주인은 결혼을 앞둔 막내딸과 예비사위와의 저녁식사 후 차안에서 홀로 쉬고 있다 느닷없이 변을 당했다. 사고 후 국무총리가 이곳까지 올라와 시장에게 상황을 설명 받았고 근엄한 말투로 국민에게 사과했다. 누군가는 오래된 이 도시에 무리해 올린 저 팔십 층짜리 주상복합들이 균열의 원인이라 주장했다. 난방공사는 국가의 모든 주요 도시의 온수관을 재정비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고인이 된 구둣방 주인은 내내 말이 없었다. 구둣방 주인은 그렇게 평생 남의 더러운 잔재를 닦아주었다. 두 딸에게 너희들만 잘 살 면 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영화 속 그의 이등병 시절, 광주 5.18 진압을 위해 군장을 싸다 코앞에서 윽박지르던 부사관의 목소리에 놀라 여인이 보내주었던 박하사탕을 바닥에 쏟아버렸고, 그렇게 군화에 짓밟힌 박하사탕은 바닥에 으스러져 남겨졌었다. 그날 면회를 왔던 여인을 군용트럭 안에 앉아 우연히 마주쳤을 때 이등병이었던 그는 인사를 건네지 못했다. 그렇게 여인을 지나쳐 가며 그는 군가를 부르고 있었다. 남자는 그날 밤 발에 총을 맞은 채 홀로 앉아 울고 있는다. 남자는 그날 밤 한 여고생을 실수로 쏘고 말았다. 그는 그렇게 개인의 순수라는 것을 부정당하고 있었다.

 


 

다섯.

매끈한 도자기인 것 마냥 미화하지 않아도 울퉁불퉁하고 기름진 그것대로 아름다운 것들이 있다. 어느 날 홀로 앉아있던 도심 속 작은 커피숍 안에서 의도치 않게 들은 한 젊은 부부의 돈 이야기, 그 옆에서 혼자 하늘색의 장난감 차를 테이블 위에 두고 놀며 집중하던 아이와 눈이 마주쳐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이니 아이가 웃으며 좋아하기에 이상한 사람이 되지는 않았구나 싶어 안심했다.

 

열 살쯤 되었을 때 태어난 늦둥이 동생이 작은 침대에 누워 꼼지락거리는 것을 구경하다 정말 이런 조그마한 것이 나중에 말을 하고 걸어 다니는 걸까 하는 생각을 하고는 했는데, 그러다 아기의 손에 검지를 올리면 무슨 생각인지 그것을 놓지 않겠다 꼭 쥐고는 했었다. 그 미세한 힘은, 실은 나 같은 별 볼 일 없는 인간이 끊임없이 투쟁하고, 굽신거리고, 고통받으면서까지 살아가야 할 마땅한 이유를 내포하고 있었다. 왜냐면 세상의 어느 모퉁이에서 풍기는 소주와 담배와 라면 냄새, 메리야스의 땀 자국과 그것이 지탱해준 구겨진 통장이 있기에, 오직 그렇기 때문에 또 다른 누군가의 순수함은 보존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가 시작하던 그 개천. 구로공단 야학을 같이 다니던 친구들끼리 모처럼 나온 야유회. 스물이나 되었을까 싶은 앳된 모습의 남자는 멋쩍은 듯이 여인과 나란히 걷고 있다. 병상에 누워있던 그 여자는 지금은 같은 앳된 얼굴을 하고 남자의 실없는 질문들에 수줍게 대답한다. 여자는 박하사탕을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하며 그 알싸한 사탕 하나를 건넨다. 박하사탕을 먹으며 남자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다며 너스레를 떤다. 주인공은 자신의 얘기를 하다가 멋쩍은 듯 여자에게 말한다, 나는 이름 없는 꽃들을 찍고 다니는 사진가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두 사람은 행복에 젖어있다. 남자는 기분 좋은 얼굴을 하고 하늘을 올려본다. 미소를 띠고 있지만 왜인지 남자의 눈시울은 붉어져 있다. 그날은 유난히도 날씨가 화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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