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편에서는 유럽여행의 들썩거림에 대해 다뤄봤는데, 이번 편은 교환학생의 하이라이트인 교환학생으로서의 "홈그라운드" 에서의 생활을 묘사해보고자 한다. 저번 편보다 다소 진지한 주제이기도 하지만 이미 버클리에서의 생활이 타지생활인 유학생들에게는 익숙할 수도 있는 내용들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왜 교환학생들이 크나큰 수고와 비용을 들여가면서 모국에서 벗어나려고 아우성을 치는지 생각해보았는가? 경험 상으로 넘겨짚자면 “자기성찰”에 대한 욕망이 가장 컸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먼저 자기성찰이라는 피상적인 말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서울대학교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 라는 책에서 우리는 그 힌트를 찾을 수 있다.
“성찰이란 ‘생각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냥 곰곰이 생각하면 된다고 여기는 것 같다. 하지만 단지 생각하거나 고민하는 것만으로는 성찰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더 중요한 것은 경험이다. 그러니 직접 체험하고, 많은 책을 읽고, 대화를 나누고, 여행을 떠나라.”
음...? 자기성찰은 자기에 대해서 단지 “생각”만 하면 되는 게 아니란다. 평소 생활에서 한 발자국 벗어나, 오랫동안 나도 모르게 품어오고 있었던 가치관에 대해 의문과 답을 제기해보는 것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교환학생이라는 경험은 “직접 체험하고, 많은 책을 읽고, 대화를 나누고, 여행을 떠나라” 의 모든 항목을 충족시킬 수 있다. 이른바 자기성찰의 “좋은 예”로 일컬어진 몇 가지 일들을 교환학생이라는 무대에서는 비교적 쉽게 해볼 수 있기 때문에 그 수고와 비용이 가치 있는 것이 않을까 생각해본다.
필자에게 있어서 교환학생을 떠나는 데 가장 컸던 동기는 “혼돈의 시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였다. 필자는 당시 대학교 3학년, 졸업을 1년 앞둔 상황이었고 왜 공부를 하고 있나에 대한 동기부여 결여 및 20년 세월 동안 그 어느 곳에서도 배운 적 없는 “인간관계의 정석” 등 현재 유학생들이 할만한 고민들과 흡사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고민하는 와중, 나는 출구를 찾고 싶었고 집에 앉아서 생각만 하면 답이 나오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무엇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시작을 하게 되었다. 시기적으로 운이 좋았던 것은 지난 7년 동안 영주권 문제 때문에 미국땅에 발이 묶여있었던 신세였는데 운이 좋게 해결되었던 것도 이 막연한 결정에 박차를 가할 수 있도록 디딤돌이 되어줬던 것 같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교환학생을 다녀온다고 해서 이런 고민들이 일거에 해결되진 않는다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하다. 이렇게 명쾌한 대답을 원했다면 무릎팍 도사님을 찾아가는걸 권장한다).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필자의 교환학생 전후는 혼란의 시기였고 자아성찰을 함으로써 해결하고자 했던 문제들이 해결되진 않았다. 하지만 버클리라는 “세계적인 명문대학”이란 우물에 4년동안 갇혀서 “학문을 갈고 닦는 일”에만 열중했다면 알지 못할 뻔 했던 말로 이루 표현하기 힘든 “경험”이라는 산물은 2년여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필자의 하루하루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필자로서는 떠나기 전엔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경험을 외국이라는 낯선 무대에서 경험하게 되었고 당시엔 정말 힘들었던 것들이 지금은 내 것이 된 산 경험으로 남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교환학생을 다녀온다고 해서 이런 고민들이 일거에 해결되진 않는다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하다. 이렇게 명쾌한 대답을 원했다면 무릎팍 도사님을 찾아가는걸 권장한다).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필자의 교환학생 전후는 혼란의 시기였고 자아성찰을 함으로써 해결하고자 했던 문제들이 해결되진 않았다. 하지만 버클리라는 “세계적인 명문대학”이란 우물에 4년동안 갇혀서 “학문을 갈고 닦는 일”에만 열중했다면 알지 못할 뻔 했던 말로 이루 표현하기 힘든 “경험”이라는 산물은 2년여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필자의 하루하루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필자로서는 떠나기 전엔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경험을 외국이라는 낯선 무대에서 경험하게 되었고 당시엔 정말 힘들었던 것들이 지금은 내 것이 된 산 경험으로 남았다.
필자에게 현재 남은 가장 소중한 산물은 타지생활 동안 쌓아 왔던 인맥인 것 같다. 미국에서 7년간 생활했었고 한인이 많이 살지 않는 동네에서 자라왔으나, 지금까지도 연락하는 이렇다 할 절친한 외국친구를 많이 만나지 못하였다. 아마도 우리가 흔히 말하는 외국인/영어 울렁증 또는 Culture Shock 때문이라고 적당히 핑계를 대겠다. 그때 기억으로 남은 친구들은 무얼 하던 자신감 (혹은 자만심) 이 넘치는 친구들이었고 이민자 1.5세였던 필자는 그런가 보다 하고 수긍 하며 따라 하는 것이 마음 편했던 것 같다. 그랬기에 언제나 리더라기보다는 팔로워였고, 이런 낯선 환경에 내가 정말 적응해야 하는지 싶을 정도로 슬럼프에 빠져있었던 적도 있다.
Sweden 최북단인 Lappland (혹은 Kiruna)에서 신이난 필자와 친구들. 영하 30도의 강추위를 무색케 할정도로 우리는 신이 나있었다. 개썰매와 스노우 모빌을 탈생각에 들떠있는 우리들.
놀라운 사실은 7년동안 필자가 미국에서 자라오면서 만나왔던 절친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친구들의 숫자보다, 6개월동안 외국에서 지내면서 만나왔던 친구들의 숫자가 압도적으로 더 많다는 것이다. 현재까지 연락이 닿는 것은 물론이고, 그들과 사람 대 사람으로써 교감을 할 수 있었느냐에 대해서도 자신있게 그랬다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질 좋은 만남을 유지해 왔다. 돌이켜 생각해보건대 이유는 두 가지 정도로 간추릴 수 있겠다. 교환학생들에게는 서로 간의 네트워킹을 할 수 있는 충분한 기회가 주어지며, 더 중요한 것은 “외국인도 외국인 나름”이라서 유럽인들을 상대하는 것은 미국인을 상대하는 것과는 현저한 차이가 있었다 (물론 개개인 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World War II 신드롬 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일반적인 뜻을 설명하자면 세계 2차대전의 승전국 중 하나인 미국과 승/패전국들이 여럿 섞여있는 유럽 사람들의 “마인드”는 다르다는 것이다: 미국은 승전국으로서의 패기, 자만심과 때론 집요하다 싶을 정도로 자신의 옳음에 대해 주장하는 경향이 있다. 이에 비해 승자이기도 하고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등) 패자이기도 한 (독일, 이탈리아 등) 유럽인들은 놀라울 정도로 겸손하며 남을 존중하는 자세가 몸에 베어있다. 이러한 유럽인들의 마인드는 필자의 타지생활에 있어서 중요한 작용을 했다. 미국인들과 대화할때 흔히 듣던 "왜 이렇지 않냐?" "이렇게 해야되는거야! 이거잖아!"와 같은 명령조/단정적인 말투와 상반되게 유럽인들은 "아 이렇게 해도 되지 않을까?" "이럴 수도 있지 않을까?" 등 상대방을 존중하고 자신의 의견에 대해서는 겸손한 화법을 구사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처럼 유럽인들의 존중과 겸손함 속에서 외국인을 대하는데 있어 결여되어 있던 존재감을 회복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 외국인들 사이에서도 충분히 나의 주장을 펼치고 그들을 설득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게 되었다.
World War II 신드롬 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일반적인 뜻을 설명하자면 세계 2차대전의 승전국 중 하나인 미국과 승/패전국들이 여럿 섞여있는 유럽 사람들의 “마인드”는 다르다는 것이다: 미국은 승전국으로서의 패기, 자만심과 때론 집요하다 싶을 정도로 자신의 옳음에 대해 주장하는 경향이 있다. 이에 비해 승자이기도 하고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등) 패자이기도 한 (독일, 이탈리아 등) 유럽인들은 놀라울 정도로 겸손하며 남을 존중하는 자세가 몸에 베어있다. 이러한 유럽인들의 마인드는 필자의 타지생활에 있어서 중요한 작용을 했다. 미국인들과 대화할때 흔히 듣던 "왜 이렇지 않냐?" "이렇게 해야되는거야! 이거잖아!"와 같은 명령조/단정적인 말투와 상반되게 유럽인들은 "아 이렇게 해도 되지 않을까?" "이럴 수도 있지 않을까?" 등 상대방을 존중하고 자신의 의견에 대해서는 겸손한 화법을 구사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처럼 유럽인들의 존중과 겸손함 속에서 외국인을 대하는데 있어 결여되어 있던 존재감을 회복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 외국인들 사이에서도 충분히 나의 주장을 펼치고 그들을 설득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게 되었다.
교환학생 관련 meme. 학구열이 무시무시한 버클리에서 교환학생의 자격으로 새둥지를 틀러간 학생이라면 흔하게 경험할 수 있는 일을 유머러스 하게 표현하였다
이처럼 교환학생으로써 경험했던 6개월은 필자에게 여러 측면에서 도움이 되었던 기간 이었다. 필자는 이 기간 동안 만났던 친구들과는 현재까지도 연락을 하며 지낸다. 샌프란시스코에 오면 꼭 연락 하라던 내 말을 깊이 새겨 듣고 필자에게 오는 연락을 받을 때마다 너무 뿌듯하다. 내가 사는 곳도 소개 해주면서 서로의 배경에 대해 좀더 깊은 교감을 느낄 수도 있고, 그들이 그 동안 살아왔던 이야기에 대해 대화할 때면 여느 친구처럼 편하고 좋다. 언어/문화의 장벽도 없이 여느 한국 친구들 마냥 그냥 좋다. 이처럼 유럽에서의 교환학생 생활이라는 경험은 필자에게 외국인을 대하는데 있어서 엄청난 물꼬를 트는 중요한 역할을 해주었지만 당신에겐 어떤 물꼬를 트이게 해줄지 궁금하지 않는가?
생각하지만 말고 행동하라, 인생은 짧고 당신은 그 짧은 드라마의 주인공이다. 하지만 항상 “내일은 내가 주인공이 되어야지” 라는 마음가짐만 가지고 살다 보면 그렇게 기다리던 내일은 결국 오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는가. 삶에 자극이 필요하고 반복적인 일상에 생기를 불어넣고 싶다면 지금 행동으로 옯겨도 늦지 않다고, 또 생각만큼 복잡하지도 않은 절차라는걸 필자는 재차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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