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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IAL/문예 :: Literature

첫사랑에 대하여

누구에게나 첫사랑의 기억은 있다. 그것이 이루어졌건 짝사랑으로 쓰라리게 끝이 났건, 첫사랑을 떠올린다면 누구나 옛 시절에 대한 향수로 젖어들게 된다. 요즘과 같이 쌀쌀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는 가을 무렵, 홀로 방 안에 앉아 들려오는 귀뚜라미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으면, 그 때의 그 아련한 추억이 다시금 나를 찾아오곤 한다. 


필자의 첫사랑은 중학교 무렵 친구를 통해 알게 된 다른 학교의 여학생이었다. 그녀는 새하얀 피부와 그에 상반되는 새까만 생머리를 가진 여린 소녀였는데, 화창한 여름날 태양 아래에서 그녀를 보고 있자면 빛이 나는 듯해 내 눈을 의심하곤 했다. 우리는 함께 이곳 저곳을 겁없이 쏘다니며 풋풋한 첫사랑을 만끽하곤 했다. 함께 김밥천국에 앉아 라면을 먹으며, 매워서 쩔쩔매는 그녀를 위해 달려가 초코우유를 사오던 기억은 아직도 내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한다. 그렇게 약 반 년 간을 함께 한 우리는 여느 첫사랑이 그렇듯이 안타깝게 헤어졌고, 그녀는 내 추억 속의 한 자락으로 간직되었다.


그렇게 평생 볼 일 없을 것 같던 우리가 다시 만나게 된 계기는 페이스북이었다. 그녀는 먼저 나를 그녀의 친구로 추가했고, 나 역시 약간의 설렘을 갖고 친구 요청을 수락했다. 그녀는 많이 변해 있었고, 나 역시도 많이 변해 있었다. 예전의 풋풋함은 성숙함으로 바뀌어 있었고, 우리는 각자 자신의 짝을 찾아 새로운 사랑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의 안부와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지만 서로에게 말을 걸지는 않았다. 과거의 아름다운 추억을 꺼내고 들추어낸다면 그 아름다움이 퇴색될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수 년 전의 흐릿한 기억과 그 때 그 감정을 그리움이라는 이름으로 감싸며 가슴 한 구석에 다시금 감춰두었다.


얼마 전, 첫사랑의 기억을 주제로 한 영화 ‘건축학개론’이 2012년 상반기 누적 관객수 410만을 돌파하며 커다란 호응을 얻었다. 또, 드라마 ‘응답하라 1997’ 역시 첫사랑을 향수와 접목시켜 인기몰이를 했다. 거액의 제작 비용을 들이지도, 자극적인 장면을 삽입하지도 않은 이 잔잔한 작품들이 관객의 사랑을 받은 이유는 ‘첫사랑’이라는 주제 자체가 그들의 마음 속에 조용하면서도 묵직한 파동을 일으켰기 때문일 것이다.

('건축학개론'과 '응답하라 1997'은 모두 첫사랑을 소재로 한 스토리로 흥행에 성공했다. (자료출처: 네이버))



그렇다면 첫사랑은 왜 그토록 아련하고 아름다운 의미를 갖는 것일까?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순수하고 철 없던 옛 시절에 대한 향수, 그리고 갖지 못한 것에 대한 동경. 우선, 전자에 대해 생각해보자. 향수는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이나 시름’이라고 국어사전에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근래에는 고향 뿐만 아니라 옛 것을 그리워하는 마음 역시 향수라는 감정으로 표현되곤 한다. 옛 것에 대한 그리움은 사랑이나 분노와 같은 감정과 같은 강렬함은 없지만 과거의 기억을 미화시키는 은근한 힘을 갖고 있다. 술집에서 곧잘 찾아볼 수 있는 ‘추억의 도시락’ 메뉴나 최근 모 걸그룹이 선보여 큰 인기를 끌었던 복고풍 패션과 음악, 그리고 다양한 유통업체들이 활용하고 있는 향수 마케팅까지. 지난 날의 음식, 패션, 문화만으로도 사람들은 그리움을 느끼는데 하물며 본인의 가슴을 꽉 채웠던 가슴 떨리는 옛 사랑은 얼마나 아름답게 느껴지겠는가? 어린 시절, 순수한 마음으로 이성을 사랑했던 그 마음과 함께 했던 잊을 수 없는 추억들이 향수라는 감정과 어우러져 수 년이 지난 날까지도 그 설렘을 전해주고 있는 것이다.


또한, 갖지 못한 것에 대한 동경 역시 첫사랑에 대한 그리움을 더욱 진하게 만든다.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아마 첫사랑이 보통 이루어지기에는 너무 이른 나이에 생기기 때문이거나, 처음하는 사랑에는 이후의 연애와는 달리 기술(?)이 없어서기 때문이리라. 이유가 무엇이건 첫사랑은 대부분 헤어지기 마련이고, 당사자는 가슴 저린 이별을 맛보게 된다. 처음 사랑을 하는 사람은 사랑이라는 첫 맛보는 감정에 취해 정신없이 달려가기만 할 뿐, 자신이 달리고 있는 그 길의 아름다운 풍경을 음미할 여유조차 없기 때문에, 첫사랑의 진가는 그 길의 끝에서 자신이 달려온 길을 되돌아 볼 때에 찾을 수 있다. 난생 처음으로 느껴본 사랑이라는 강렬한 감정과 이별 후에 느낀 뼈저린 아픔은 한 사람의 추억 속에 명확하게 각인된다. 더불어 행복했던 기억을 놓친 그 아쉬움이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가슴 속에 깊이 간직될 것이고, 그 아픔이 아물 때 즈음 그토록 좋아했던 상대를 동경하는 마음이 피어나는 것이다.


물론, 첫사랑보다는 끝사랑이 중요한 것이고, 과거에 얽매이기보다는 현재에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한 자세이다. 그러나 안타까운 사실은, 바쁜 대학생활과 정신없이 일어나는 현실적인 문제들 속에서 사람들이 점점 순수했던 첫사랑의 로맨티시즘을 잃어간다는 것이다. 물론 허망한 회상일 수도 있고, 의미없는 시간 낭비일 수도 있지만, 바쁜 일상 속에 잠시 휴식을 갖고 첫사랑의 기억으로 빠져들어 자신의 순수함을 되새겨 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