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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IALS/대만 알아보기 - 完 -

대만 알아보기 :: (2) 단교는 무조건 한국의 잘못인가

단교는 무조건 한국의 잘못인가

대만이 국민 수준을 의심케 할 만큼의 어이없는 추태를 보이면서까지 한국을 비방하는 이유가 순전히 단교 때문이라고 말하는 분들이 인터넷 상엔 많이 계십니다만, 그 것은 절대 정확한 사유가 되지는 못합니다.  최근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대만 선수 실격의 편파 판정 시비로 인해 대만에서 또다시 반한 여론이 조성되고 있다고 합니다만, 이를 한국의 단교 선언과 연결 시키는 것은 말도 안되는 것이죠.  비슷한 케이스로 과거사 문제가 걸려있는 일본과의 관계에서 아사다 마오 선수가 김연아 선수보다 높은 점수를 받았다면 심판진을 욕할지언정 일본을 욕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합니다.

대만과의 단교 전, 한국과 대만은 현재의 한미관계 이상으로 우방, 아니 혈맹으로까지 불리는 관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는 한국의 자발적인 표현이 아닌, 중국이 6.25 전쟁때 북한을 지원하자 당시 중국과 대립각을 세우던 대만이 한국과의 정치적 동일 노선을 가며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대만 정부와 언론의 외교적 표현이기는 합니다만, 그런 발언으로 볼때, 이 당시에도 한국과 대만의 관계가 돈독했음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실질적으로 대만은 6.25 남한측 참전 16개국과 의료 지원국 5개국, 물자지원국 20개국에도 명단이 올라와있지 않습니다.  당연한 결과로 한국은 전쟁 직후 이들 중 외교관계가 없는 나라들을 최우선 수교대상국으로 지정하기는 했지만, 대만과는 그 전부터 대사급 관계가 잡혀있었으며 혈맹이라고 부른 적이 없습니다.  따라서 한국의 입장에서 미국이나 터키같은 나라들을 혈맹이라고 부를 수는 있지만, 정치적 외교 노선에 맞춰 그저 약간의 군대를 명분상으로 파견한 것 때문에 대만을 혈맹이라고 불러야 했었는지도 의문입니다.

이 외에도 대만의 반한감정은 아주 특이합니다.  단교 전인 1988년 서울 올림픽 개최가 1981년 서독 바덴바덴의 IOC 총회에서 일본의 나고야를 누르고 결정되었을 때, 자신들이 혈맹관계라고 부르던 한국을 축하해 주기는 커녕, 오히려 서울시를 난지도와 비교하며 올림픽이 열려서는 안될 국가라는 논조의 비난이 쇄도하기도 했습니다.  45대 27로 서울이 나고야를 이겼던 것으로 기억합니다만, 여기서는 아마도 대만의 친일, 정확히는 일본 외사랑이 크게 작용한 것이라고 봅니다.

또한 단교 당시 대만의 외교 정책에 대해서도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일단 과거에 처절한 식민지배를 당한 전력도 있는 일본에 대해서는 수상이 일방적으로 그저 미국의 노선을 따라 단교를 선언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국민들이 길거리로 나와 눈물을 흘리고 수상이 고개를 숙여 사죄했다는 날조기사까지 써대며 일본과의 관계 악화를 막습니다.  (일본은 아직 장개석이 살아있었던 1972년에 단교를 선언했습니다.)  반대로 한국은 1992년까지 외교 관계를 유지했으며, 대만 외교관들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그들의 대사관 철거를 기다려주었지만, 오히려 대만 측에서는 이 것을 한국이 단교 과정에서 국제 관례를 따르지 않은 외교적 실례라며 비난을 합니다.

솔직히 대만의 일본 관련 날조 기사들을 날조라고 할 수 없는 이유는,  현실적으로 일본은 미국이 아니라면 외교 관계에 대해 그리 쉽게 물러서지 않기 때문입니다.  일본은 유럽에서는 EU나 영국과 맞설 수 있으며 현재와서 엄청난 외교력을 발휘하고 있는 중국과도 어느정도 맞설 수 있습니다.  굳이 일본이 의도적으로 외교적 분쟁을 피하는 나라라면, 영토 문제가 엮여있는 러시아 정도밖에 없습니다.  이런 일본이 국제무대에서 별볼일 없어진 대만을 중요 취급할 하등의 이유가 없습니다.

그리고 1979년 미국의 카터 대통령이 대만의 뒷통수를 때리며 대만이 세계에서 고립되는데 가장 치명적인 원인을 제공한 미국을 대하는 대만의 태도는 어떻습니까?  수년 전부터 대만은 미국과 FTA를 체결하려고 미국에 온갖 로비를 펼치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프랑스는 대만과의 단교 시절 기동타격대를 풀어서 강제적으로 대만 대사관 직원들을 쫓아낸 전적까지 있습니다.  이는 다른 국가들도 거의 마찬가지이며, 오히려 한국의 처사가 온건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기동타격대 풀어서 개패듯 대만 외교관들을 쫓아내버린 프랑스 같은 나라들에게는 아무런 분노 발산을 하지 못하면서, 축구의 축자도 모르는 나라가 한국이 심판매수 전적이 있따는 말도 안되는 이유를 들먹이며 애꿎은 한국 유학생들을 욕하고 시비걸고 태국기나 불태우는 행위들은 그저 외교적인 문제가 아니더라도, 국민들이 이런 반한 의식을 가지게 만든 대만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 당시의 일화를 하나 가져오자면 대만의 어떤 국제학교가 있었는데, 어떤 정신나간 대만인들이 거기있는 치사한 한국인들을 모두 죽이자고 인터넷으로 선동하는 바람에 대만 경찰들이 출동한 적이 있습니다.  ('중화민국유학생회'카페를 방문해 보시면 생생한 증언을 들으실 수 있을겁니다.)

얼마전에는 무언가 잘못 먹었는지 자기들이 번안한 수백여곡의 한국곡들을 오히려 자신들의 원곡이라며 한국에게 표절 시비를 건 적도 있었습니다.  일부러 그러는지 몰라서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대만 유학 경험이 있는 분들은 이제 거의 이런 대만인들의 유치한 반한감정은 무시하고 산다고 합니다.  필자의 경우에는 2002년 월드컵 직전에 미국으로 이민하는 바람에 이런 사태들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당시엔 중국인들도 비슷했지만요.  (재미있는 점은 대만 국회에서 국회의원들이 단체로 원더걸스의 노바디를 추기도 한답니다.  아주 반한 까지는 아닌듯 합니다만 국민 의식의 기저에 깔려있는 듯한 부분이 무섭네요.)

따라서, 단교 시절 한국의 잘못은 어느정도 이정합니다만, 다른 나라들에게는 잘못하더라도 날조에 왜곡까지 해가며 단교 후 관계 악화를 최선을 다해 막는 듯한 대만이 당시의 한국같은 만만한 나라에게는 온갖 욕을 다하며 비하해대는데, 과연 우리가 비열하다느니, 의리가 없다느니 하는 소리를 듣고 앉아 있어야 하는지가 필자는 아직도 의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