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대만과의 단교 때 잘못이 없는가
물론 한국이 단교국가로서는 유일하게 외교특사를 파견하려고 한 것 등은 제 대만 친구들도 '한국이 그런적도 있었구나..'라며 인정할 정도로 좋은점(?) 이었지만 말입니다.. (물론 대만 언론과 정부가 만만한 한국에 단교에 대한 책임을 다 떠넘기면서 당시 한국이 잘한점, 또는 그나마 상대국에 배려를 한 점들은 전혀 부각이 되지 못했었지만요...)
대만의 한국내 토지 소유권 문제는 분명히 커다란 이슈거리였습니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대만이 중국의 영토라는걸 인정해 버리면서 자연스레 대만이 가지고 있던 한국 토지의 소유권 같은 국가적 차원의 이권이 대만이 저항할 겨를도 없이 그냥 중국으로 넘어가버렸습니다.
해방 후 한국은 여러가지 국제적, 정치적, 또는 경제적 이유로 인해 수 많은 외국 자본을 유치하게 됩니다. 물론, 약간의 폐쇄적인 점이 있긴 했지만, 미국, 일본, 대만등의 자본들은 비교적 쉽게 한국에 진출 했죠. 이 중에서, 일본은 약간의 부동산을 투자했지만, 주로 한국의 경제 발전에 도움을 주는 쪽으로 기술 지원, 또는 투자를 한 편이고, 미국도 주한미군을 포함하여서 광범위한 여러 가지를 한국에 투자해온 편입니다. 대만 또한, 화상 (華商) 들이 한국에 여러가지 부동산 등을 포함하여 알게 모르게 투자를 해 온 편입니다. 현재까지 알려져 있는 것들 중, 이 세나라가 한국에 기여한 업적, 또는 흔적들을 들자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밑에 기술하는 정보들은 객관적인 사실들일 뿐, 이 세 나라들이 물론 한국에서 이익을 보고자 한국에 투자한 것이라는 것들을 주지해 주세요)
미국 - 주한미군과 토지, 미국 대사관, 베트남전 특수 19억 달러등, 여러가지 경제적 영향
일본 - 포항제철을 비롯한 산업화 당시의 설비 기반들, 현재의 한국의 경제가 발전하게 해준 5억 달러의 차관 (이 것은 한일수교협정때 일본에서 내온 것이죠..), 현재는 김대중 정부의 일본문화 개방 정책 이후 적지 않은 일본 문화가 한국에 들어온 상태입니다.
자, 그럼 대만은 뭐가 있을까요?
대만 - 차이나타운 -_-;;
지금 남은 것이 차이나타운 밖에 없습니다. 분명히 수 많은 화교 자본들이 한 때 한국에 유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남은 대만의 흔적은 인천과 부산을 포함한 전국의 차이나타운들과 화교 음식점들 밖에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물론 대만이 한국과의 친목을 위해 독자적으로 만든 순수한 마을이라기보단 국제적으로 돌아다니는 중국인들 중 한국에 정착한 사람들이 만든 것이긴 하지만, 단교 이전에 한국은 대만을 중국을 대표하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에, 그 때만 해도 대만이 많았죠. 지금도 태평로나 명동, 동대문 쪽에가면 차이나타운이 아닌데도, 한국에서 상업을 하고 계시는 대만 분들이 많습니다.
2005년에는 한국에서 행담도 사건이 터졌습니다. 서해안 고속도로가 생기면서 충청남도 서쪽에 아산, 청주, 대전 등 여러도시까지 모두 커다란 경제권으로 만드려는 일환으로 만들어진 행담도 개발계획이 있었습니다만, 여기서 대만과 관련된 약간의 문제가 터지기도 합니다. (이 것은 제 개인적인 생각이므로 틀릴 수도 있습니다. ^^;) 요약을 하자면, 개발과정에서 한국의 친대만파 인사들이 인맥을 통해 대만계 자본을 유치하려고 했으며 이 행동이 친중국파 인사들의 의견과 충돌하게 되고, 한국의 교수(아마 맞을 겁니다) 였던 친대만파 인사 한명이 살해당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한 때 인터넷 진보 여론을 대표했던 정치포탈 서프라이즈에 가셔서 한번 찾아보셔도 될 듯 합니다. 2005년 당시의 글들을 찾아보면 행담도에 관련된 내용과 참여정부·국민의 정부시절의 對 중국 외교에 대한 내용들이 토론되어져 있는 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행담도와는 달리 대만의 한국내 토지 소유권에 대한 문제는 어떨까요.
이 점은 한국이 백 번 잘못한 문제입니다. 일단, 한국은 대만에게 단교를 당했습니다만, 한국에서 대만 쪽에 좀 더 신경을 썼다면, 두 나라가 단교 후에도 외교적으로 심한 대립을 할 필요는 없었겠지요. 에를 들면, 저런 경제적으로 엮여 있는 부분들을, 한국에서 대만쪽에 모두 돌려주거나 보상을 한다는 등의 "뒤끝 없는" 정책을 내세웠다면 되었을 겁니다.
그리고 대만에 대한 외교특사 파견이 대만 정부에 의해 거부당한 후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좀더 대만에 사과의 표시를 했다면, 설사 대만이 또다시 마구 날뛰며 사과를 거부했더라도 나중에 한국의 對 대만 외교가 조금이나마 한국에 더 유리한 쪽으로 흘러가진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듭니다. (이 것도 제 개인적인 생각일 뿐입니다)
대만은 한국이 극비로 했던 중국과의 수교사실을 끝끝내 알아내고, 한중수교 이틀 전인 1992년 8월 22일에 먼저 한국에게 단교를 통고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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