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 좋은 것은 입에 쓰다는 말을 많이 듣곤 한다. 한약을 먹기 싫다고 투정부리는 아이를 앞에 두고 애 쓰는 부모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며, 여름 더위는 몸보신을 통해 다스려야 한다며 삼계탕의 인삼을 씹는 부장님의 입에서도 들리는 소리고, 시험을 앞두고 공부한다는 핑계로 밤을 새우며 정작 책 대신 페이스북이나 뒤적거리며 아메리카노를 홀짝 거리는 친구의 입에서도 들어봤을 법한 바로 그런 소리이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을 법한 이 말을 쓰디써질만큼 곱씹어본 적이 있는가? 필자가 쓴 맛 참아가며 오래 씹다 뱉어보니 불쑥 튀어 나온 결과물은 쓴 맛의 역설이다. 인류는 모름지기 생존에 도움되는 것을 자연스레 선호하게끔 진화했다. 두 다리 편하고 싶고, 심미적으로 만족스러운 것만 쳐다볼 수 있는 환경을 쫓는 데 열심인 인간이 왜 미간 찌푸려 가며 쓴 것을 씹게 되었단 말인가?
사실, 참으로 역설적일 수밖에 없는 게 바로 일상이다. 조금만 참으면 장밋빛 인생이 펼쳐질 것이라는 ‘달콤한’ 유혹에 눈을 가리고 매일 우리는 쓰디쓴 일상을 살아 나간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쓴 것도 참 많다. 내키는 대로 돈 쓰고 떵떵거리면서 살아보겠다고 회사에서 인상 쓴 얼굴로 보고서 쓰고, 쓴 술잔 들이키며 푸념을 하다가도 행여나 지각 하진 않을까 기상 시간 30분 전 부터 맞춰놓은 알람에 깨서 들이키는 새벽공기는 참 쓰다. 이렇게 아둥바둥 애 쓰며 언젠가 찾아올 달콤한 미래를 곱씹어보지만 그 단맛은 그다지 오래 가지 않는다.
이 역설을 단 한번이라도 인지해 본 적이 있다면 차분히 생각을 해 보자. 그 쓴 맛 참아가며 당신이 찾는 것은 무엇인가? 영화에서 곧잘 등장하곤 하는 인생의 쓴 맛, 돼지 껍데기 구워 놓고 고된 일상을 탓하며 들이키는 소주 한 잔의 쓴 맛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왜 쓴 맛을 그토록 참아가며 고진감래의 순간을 염원하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아무리 인간은 합리적이라는 경제학의 순진한 가정이 틀렸다는 견해가 최근 대세라지만, 학습과 지식의 전달을 통해 문명을 이룩할 정도의 학습 능력을 가진 인간이 그리 오래 가지 않을 미래의 달콤함을 위해 반복적으로 쓴 맛을 감수한다는 것은 다소 의문스럽다.
합리적인 사고를 하며 근시안적인 태도를 지향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거쳐야 할 고통의 양과 인내의 시간의 끝에 얻을 성취를 비교하여 어떠한 결정을 내릴 것이다. 하지만, 이는 그다지 합리적인 설명이 되지 못한다. 첫째로 개개인의 가치관, 인내심의 정도, 특정한 성과를 통해 느끼는 성취감까지 모두 다를 수 밖에 없는데도 단 맛을 위해 쓴 맛을 기꺼이 참는 역설은 어느 사람에게나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두 번째로 인간은 꽤나 불합리적이며 근시안적이다. 시험이 다가오더라도 항상 공부에만 매진하지 않는 수 많은 - 필자를 포함한 - 사람들을 보자. 결론적으로, 인간이 합리적인 사고를 한다는 전제가 흔들림에 따라 단 맛이 주는 쾌감이 쓴 맛이 주는 불쾌감보다 크기 때문에 쓴 맛을 기꺼이 참는다는 설명은 상당히 불완전한 것이 된다.
이번에는 합리성이라는 틀을 벗어나 보는 것은 어떨까. 사실 쓴 맛과 달콤한 맛의 경계는 꽤나 모호할 수 있다. 씹기 전까지 그 단 맛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감초를 쓰다고 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커피에 감미료를 넣어도 쓰다고 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성적 잘 받아오는 친구가 서너 시간 도서관에 앉아 있는 것은 별 어려움이 아닐지 모르지만, 평소 공부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 조용한 도서관에서 집중을 유지하는 것은 꽤나 고통스러울 일일 것이다. 이처럼 맛이라는 것은 주관적이기 때문에, 쓴 맛과 단 맛을 명확하게 구분짓는 것은 무의미하다. 심지어 쓴 맛은 몸에 좋기만 할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달콤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떠한 목적을 위해 그 과정마저 즐긴 적이 있다면 이 말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생각을 조금 바꿔 보도록 하자. 내가 쓰다고 생각 하는 것은 사실 굉장히 단 것일지도 모른다. 자꾸 씹다 보면 어느샌가 씁쓸함 속의 단 맛이 느껴질 수도 있다. 쓴 것이 단 것이 될 때, 단순히 목적만을 위해 참아야만 했던 힘든 과정의 시간은 더 이상 힘든 것이 아니게 된다. 아메리카노의 쓴 맛에 놀라 커피를 마시지 않다가 시도한 커피가 카페모카 일 수도 있고, 어쩌면 두 번째 마시는 아메리카노는 꽤나 마음에 들 지도 모른다. 인생의 쓴 맛을 충분히 느껴 보았을 수도 있고 쓴 맛을 느껴보기도 전에 지레 겁먹고 시도조차 안 해 보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게 쓴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단 것일 수도 있고 내게 쓴 것이 언젠가 단 것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항상 기억하자. 쓴 맛이 주는 건강한 자극을 다시 한 번 떠올려 보고, 그 동안 쓰다고 생각하며 맛 보기도 전에 포기했던 일 들을 시도해 보는 것도 훌륭한 도전일 것이다. 입에 쓴 것은 몸에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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