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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IALS/맛에 대하여 4

맛에 대하여 - 단 맛 맛에 대하여 – 단 맛 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오래되어 언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초콜릿 향의 치약을 쓰던 때가 있었다. 초콜릿 향기에 심취해 오랫동안 입에 머금고 있다거나 간혹 몰래 삼켜도 보던 동생과는 달리 나는 치약의 그 인공적인 단맛을 썩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까치발 들어 힘들게 써왔던 세면대 앞에서 몸을 굽히게 되었고, 어느 순간부터 내 치약에선 더 이상 초콜릿 향이 나지 않게 되었다. 양치질이 끝나기가 무섭게 물로 깨끗이 단맛의 마지막 흔적까지 헹구어내려 했던 유년시절의 나는 빨리 자라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단맛이 사라진 씁쓸한 박하 향의 치약으로 칫솔질을 한 뒤 오전 수업에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에 대한 짧지만 진지한 고민을 하는 것이 자연스러워 진 .. 2014. 12. 9.
맛에 대하여 - 신 맛 여우는 왜 신 포도를 싫어했을까? 이솝 우화의 여우는 자신이 닿을 수 없는 높이에 있는 포도를 신 포도라고 생각한다. 그 포도가 단 포도일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는 여우의 방어기제를 보며 우리는 섣부른 자기합리화를 경계해야 한다는 교훈을 배우게 된다. 이때 우리는 당연하게도 여우가 신 포도를 싫어할 것이라는 가정하에 이야기를 이해하고, 또 이를 바탕으로 얻은 교훈에 고개를 끄덕인다. 만일, 여우가 신 포도를 좋아함에도 불구하고 포도를 포기하였다면, 자신이 이룰 수 없는 눈 앞의 허상에 유혹당하지 않고 이성적인 판단을 내린 그 현명함에 찬사를 보내야 할지 모르는데도 말이다. 그렇기에 여우가 신 포도를 싫어한다는, 어찌 보면 굉장히 당연한 그 가정은 우화의 핵심이다. 우화가 전해져 오던 그 긴 시.. 2014. 10. 23.
맛에 대하여 – 짠 맛 맛에 대하여 – 짠 맛 “욕심은 좋은 것이다.” 올리버 스톤 감독 작의 영화 ‘월 스트리트: 머니 네버 슬립스 (2010)’ 의 고든 게코는 작 중 자신의 저서에서 이와 같이 주장한다. 전 작에서 과욕을 부려 철창 신세까지 지게 된 인물의 의견이라 관객의 조롱거리가 될 것이 당연하다는 예상을 감독은 담담하며 비 자극적인 시선으로 조롱한다. 주연을 비롯한 모든 작중 인물들은 끊임 없이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행동하고, 심지어는 자신의 목적을 성공적으로 달성하는 경우도 있다. 작품이 “욕심은 좋은 것이다” 라고 주장하고 싶었던 것인지, 촛불에 뛰어드는 날벌레처럼 탐욕에 몸을 불사르는 사람들의 후두부에 쐐기를 박아 넣고 싶었던 것인지, 혹 그것도 아니라면 욕심과 탐욕의 미묘한 경계선을 확실하게 그어 놓고 .. 2014. 10. 8.
맛에 대하여 - 쓴 맛 몸에 좋은 것은 입에 쓰다는 말을 많이 듣곤 한다. 한약을 먹기 싫다고 투정부리는 아이를 앞에 두고 애 쓰는 부모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며, 여름 더위는 몸보신을 통해 다스려야 한다며 삼계탕의 인삼을 씹는 부장님의 입에서도 들리는 소리고, 시험을 앞두고 공부한다는 핑계로 밤을 새우며 정작 책 대신 페이스북이나 뒤적거리며 아메리카노를 홀짝 거리는 친구의 입에서도 들어봤을 법한 바로 그런 소리이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을 법한 이 말을 쓰디써질만큼 곱씹어본 적이 있는가? 필자가 쓴 맛 참아가며 오래 씹다 뱉어보니 불쑥 튀어 나온 결과물은 쓴 맛의 역설이다. 인류는 모름지기 생존에 도움되는 것을 자연스레 선호하게끔 진화했다. 두 다리 편하고 싶고, 심미적으로 만족스러운 것만 쳐다볼 수 있는 환경을 쫓는 .. 2014. 8.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