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UCBerkeley 대신 전해드립니다(벜대전)”라는 페이스북 페이지에 편입생을 겨냥한 글이 올라왔다. 안타깝게도 원본이 삭제되어 첨부할 수는 없으니 아쉬운 대로 해당 글의 반박글을 첨부한다.
이 글을 토대로 논쟁의 포인트를 몇 가지로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편의상 UC Berkeley는 “버클리”라고 지칭한다.
1. 버클리가 공립학교이기 때문에 매년 일정 수의 편입생을 뽑아야 하고, 이 때문에 수준 미달인 학생들이 편입하고 있다.
2. 세계 랭킹 1위 안에 드는 명문 대학교에 기본적인 영어 회화도 되지 않는 학생들이 있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3. 이러한 현상 때문에 한국에서도 버클리의 가치가 떨어져 면접관들 사이에서 웃음거리가 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을 담은 글은 버클리에서 언제나 끊이지 않고 존재했던 신입생과 편입생 간의 갈등을 또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게 만들었고, 그 뒤에는 이에 공감한다는 내용을 담은 신입생의 글들, 이를 반박하는 편입생의 글들, 이를 중재하려는 노력들이 뒤를 이었다. 열띤 비방과 토론에도 불구하고, 이 논쟁은 늘 그렇듯 결론을 내지 못한 채 관리자가 글을 삭제함으로써 막을 내렸다. 재미있는 것은 3년 6개월 전인 2012년 5월에도 신입생으로 입학한 한 학생이 버클리 한인들이 이용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편입생을 비방하는 글을 올리며 분란을 조장한 바 있었고, 이에 대한 글이 이미 버클리오피니언에 게재되어 있다. ('신입생이 되고 싶었던 편입생' 시리즈 바로가기) 이 이슈에 대한 편입생 입장과 비방글 작성자를 추적하는 흥미진진한 과정이 궁금하다면 링크에 들어가 시리즈를 읽어보는 것을 권한다.
버클리 학생들을 신입생과 편입생이라는 이분법적인 방식으로 나누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편의상 편입생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가진 신입생 출신의 학생을 신입생으로, 그리고 그 부정적인 인식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을 편입생으로 지칭하겠다.
신입생과 편입생 간의 갈등은 항상 신입생들이 편입생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내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편입생이 먼저 신입생을 공격하면서 시작되는 경우는 보지 못 했다.)
벜대전에 올라왔던 편입생 비판글을 들여다보면 그 적개심 저변에는 다음과 같은 요소들이 깔려있음을 알 수 있다.
#1. 자신이 힘들게 고등학교 생활을 하면서 들어온 학교에 편입생들은 쉽게 들어왔다는 억울함.
#2. 편입생들의 학업능력, 혹은 어학능력이 신입생들에 비해 떨어진다는 우월감.
#3. 나이가 많다고, 혹은 돈이 많다고 유세를 부리는 편입생들에 대한 적개심.
#4. 각종 과제 및 시험에서 묻어가기나 부정행위를 하는 편입생에 대한 거부감.
#5. 버클리의 이름값이 편입생들로 인해 저평가되고 있다는 위기감.
필자가 생각할 수 있는 이유는 이 다섯 가지이다. 이외의 이유로 편입생을 비판하는 독자가 있다면 댓글로 자유롭게 이를 알려주길 바란다.
필자 역시 신입생 시절이 있었고 위와 같은 생각을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고 거짓말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이번 논쟁을 지켜보니 저 생각들이 얼마나 비생산적인 생각들이며 저런 이유로 갈등을 조장하는 것은 불필요하고 비논리적인 감정 소모라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1. 자신이 힘들게 고등학교 생활을 하면서 들어온 학교에 편입생들은 쉽게 들어왔다는 억울함.
억울할 수 있다. 합격률 수치로 보나, 경쟁자들의 학업 성취도로 보나 신입생으로 버클리에 들어오는 것이 편입생으로 들어오는 것보다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것에 대해 억울함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왜 당신들은 쉽게 들어올 수 있는 길을 택하지 않고 어려운 길을 택했는가? 신입생과 편입생이 같은 혜택을 받으면서 편입생이 더욱 쉽고 싸게 같은 교육을 받을 수 있다면 당연히 편입을 택하는 게 합리적인 선택이 아닌가?
답은 간단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신입생으로 들어와서 학교에서 할 수 있는 경험과 편입생으로서의 경험에는 큰 차이가 있다. 첫째로, 신입생들은 1,2학년 때 많은 사람을 만나고, 클럽에 가입하며, 졸업 후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탐구도 해보고, 가끔은 힘든 고등학교 생활에 대한 보상으로 즐길 수도 있는 2년이라는 시간이 있다. 반면 편입생들은 3학년에서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클럽에 가입하는 등 학업 외 활동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제한되어 있다. 물론 이러한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편입생도 있고 그렇지 않은 신입생도 있지만 이는 개인적인 차이일 뿐, 절대적인 시간은 신입생들에게 더 많지 않은가? 단순히 참여뿐만 아니라 클럽이나 리서치 그룹 등에서 영향력 있는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는 시간 투자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고려했을 때, 학업 외 측면에서 신입생이 편입생에 비해 훨씬 많은 기회가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신입생들이 주변 사람들의 축하와 인정을 받으며 대학에 입학하고 고등학교 때보다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대학을 다니는 동안, 편입을 준비하는 학생들은 불안해하며 2년을 보내야 한다. CC에서의 대학 생활이 버클리보다 쉬운지 어려운지의 문제를 떠나서, 인생에서 상당히 큰 비중을 차지하는 대학 입시에서 어딘가에 안착하지 못한 채 결과를 기다려야 하는 스트레스를 생각해보라. 이런 부분들을 생각해보면 신입생들이 편입생들에 대해서 억울함을 가질 이유는 없다. 대학을 단순히 간판 정도로 생각한다면 같은 간판을 적은 노력으로 얻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 억울할 수야 있겠지만, 대학 교육을 자기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버클리에서 4년을 보내는 것이 2년을 보내는 것보다 훨씬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많으니 말이다.
#2. 편입생들의 학업능력, 혹은 어학능력이 신입생들에 비해 떨어진다는 우월감.
우월감을 갖든 말든 본인의 선택이다. 이를 표출하는 것 또한 개인의 선택이다. 그러니 이를 문제 삼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러한 우월감이 편입생을 향한 적개심의 이유가 될 수는 없다. 당신의 학업능력과 어학능력이 편입생들보다 뛰어나다면 그렇게 해서 좋은 성적을 받으면 된다. 벜대전에 올라온 글을 본 독자들은 알겠지만, 처음으로 그 글을 올린 사람은 “음식 주문도 제대로 못하고, 수업에서 발표를 시키면 뻐끔뻐끔”댄다는 이유로 편입생을 비판한다. 편입생들이 모두 그렇지 않다는 문제는 둘째치고, 본인이 음식 주문도 못하고 발표시키면 뻐끔대는 건 본인이 음식을 못 먹고 수업에 난관을 겪는 문제이지, 당신의 문제가 아니지 않은가? 정말 편입생들의 학업 능력이 신입생들에게 못 미친다면 오히려 당신이 상대적 우위를 점하니 더 이로운 일이 아닌가? 필자는 편입생들이 신입생에 비해 학업능력이 떨어진다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도 않거니와 이를 신경 쓰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것이 전혀 당신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알려주고 싶다. 이 말에 대해서는 버클리 이름값에 피해를 준다고 생각하는 독자들이 있을 텐데, 이에 대해선 #5에서 논하겠다.
#3. 나이가 많다고, 혹은 돈이 많다고 유세를 부리는 편입생들에 대한 적개심 & #4. 각종 과제 및 시험에서 묻어가기나 부정행위를 하는 편입생에 대한 거부감.
충분히 욕할 만 하다. 특히 #4와 같은 경우에는 질타를 받아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질타는 해당되는 개개인에게 향해야지, 편입생이라는 집단에게 향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속칭 ‘꼰대짓’이나 부정행위는 그 사람들이 편입생이기 때문에 하는 행동이 아니라, 그저 그 사람의 인격이나 양심의 문제이다. 이미 신입생과 편입생 간의 갈등에서 클리셰가 되어버린 반론이지만, #3과 #4에 해당되지 않는 편입생도 많고, 신입생으로 들어왔다고 해서 전혀 #3, #4에 해당되는 행동을 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몇몇 편입생들이 위와 같은 행동을 한다고 해서 ‘편입생’이라는 집단을 싸잡아서 저런 사람들의 무리로 보는 시선과 얼마 전 학교에 시계를 만들어 선생님에게 보여주려고 가져온 무슬림 소년을 테러리스트로 몰아 경찰에 신고한 사례에 무슨 차이가 있는가? 물론 극단적인 예이긴 하지만 같은 종류의 성급한 일반화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벜대전에 올라왔던 것처럼 ‘편입생’을 지칭하며 비판하는 것보다 차라리 해당되는 사람을 지칭하면서 비판하는 것이 훨씬 합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비판임을 알았으면 한다.
#5. 버클리의 이름값이 편입생들로 인해 저평가되고 있다는 위기감.
특히 한국에서는 학교의 이름값이 굉장히 중요하니 이 부분에 대해 위기감과 걱정을 느낄 수 있다고는 생각한다. 하지만, 필자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버클리’라는 학교는 그 이름값만으로 졸업생을 최고의 직장에 앉혀줄 수 있는 학교도 아닌 동시에, 학교 이름값이 부족해서 좋은 실력에도 불구하고 원하는 직장에 갈 수 없는 정도의 학교도 아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본인 하기 나름이라는 뜻이다. 버클리가 저평가된다고 해서 면접에서 월등한 능력을 보여주고 학교 성적 및 활동도 뛰어난 지원자를 기업이 채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매년 수많은 버클리 졸업생들이 각 분야에서 최고의 기업에 채용되고 있다. 이들이 단순히 버클리라는 타이틀을 통해서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었을까? 필자도 아직 학생이고 채용자가 아니니 직원 채용의 기준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지만, 분명한 사실은 같은 학교라 할지라도 누군가는 원하는 최고의 기업에 채용되고 누군가는 고배를 마신다는 사실이다. 이런 결과는 전적으로 개인의 성취도나 능력, 그리고 운의 문제이지 학교의 이름값 문제가 아니다. 버클리의 이름값만을 보고 이 학교에 온 것이라면 이 학교에 다니는 것을 진지하게 다시 고민해보는 편이 좋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에 대해 심각한 위기의식을 갖고 있고 개선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신입생이라면 학교 측에 편입생 선발 기준을 높이라고 탄원서라도 보내는 것을 추천한다. 단순히 적개심이 아니라 문제를 개선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말이다. 필자는 편입생의 수준 미달을 지탄하는 글을 볼 때마다 딱 한 가지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그래서 어쩌라고?' 수준미달인 편입생들은 학교의 명예를 위해 알아서 제 발로 학교에서 나가달라는 건가? 아니면 신입생이 편입생보다 우월하니 편입생들은 알아서 신입생 출신들을 잘 모시라는 말인가? 저런 말을 백날 온라인에서 익명으로 해댄들 뭐가 달라지냐는 말이다. 진정 학교의 미래를 우려하는 뜻깊은 동문이라면 학교 측에 본인의 뜻을 밝히고 버클리 이름값 회복에 앞장서서 힘을 써야지, 저런 인신공격 및 비방성 글이 정작 본인들이 걱정하는 버클리 이름값에 무슨 보탬이 되겠는가. 버클리의 미래를 걱정하는 애교가들은 음지에서 싸우지 말고 양지로 당당하게 나올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다.
#결론.
문제의 핵심은 버클리 학생을 개개인으로 인식하지 않고 ‘신입생’ 혹은 ‘편입생’이라는 집단으로서 인식한다는 데에 있다. 마치 운동경기에서 편을 나누듯 말이다. 외부인의 입장에서 보면 얼마나 웃긴 일이겠는가. 같은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신분이 다른 마냥 신·편입생을 가르고 서로 누가 잘났네, 누가 못났네 하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필자는 편입생을 변호하고자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그저 수 년 간 계속적으로 반복되는 신입생과 편입생 간의 진흙탕 싸움에 많은 한인 학생들이 염증을 느끼고 있고, 그 논쟁의 초점이 현 상황을 개선하고자 하는 의도보다는 무조건적인 비난과 혐오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더 많은 학생들이 인지했으면 한다. 또한, 신입생과 편입생을 불문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 속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에 합당한 존중을 가질 줄 아는 성숙한 문화가 자리 잡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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