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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IAL/사회 :: Current Issues

自我省察에서부터


자아성찰에서부터

By. WK CHO

 

내로남불’, 요즘 한국 사회에서 자주 언급되는 단어이다. 언뜻 들어서는 함축된 명언을 담은 사자성어로 보이나 실제로는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조소가 나오게 만드는 문구의 약어이다. 그러나 해당 용어에 적용되는 사안들은 현실적인 사회, 정치현안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지금 내로남불이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지 고민하게 된다. 배우자에게 상처를 주는 행위를 진실한 인연을 찾는 로맨스로 판단할 것인지, 파렴치하고 비도덕적인 불륜으로 판단하는 것은 기준을 세우기 힘든 감정적인 요소가 있다. 주관적인 판단으로 나오는 결론을 쉽사리 하나의 정답으로 단정지을 없기에 내로남불이라는 단어가 사용되는 같다. 상동한 이유로 현재 우리사회의 현안들에 대해서 우리는 프레임을 쉽게 적용하고는 한다. 내가 하면 투자가 남이 하면 투기가 되기도 하고, 나에게는 관례적 허용이 남에게는 적폐가 있으며, 나의 소비가 남의 사치로 등가교환 되는 식으로 말이다.


내로남불이라는 단어를 언급하며 주장하는 맥락은, 일반적으로 동일한 잣대를 들이대지 않으면서 사안에 대한 판단과 비판을 이행할 나오곤 한다. 여기서 해당 프레임의 위험성이 존재한다. 현실의 다양성 속에서 동일한 사안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기에, 동치가 되지 않는 것을 모호하게 비교하며 동일한 분류로서 사안을 통합해버릴 있는 점이다. 예를 들어, 역사적으로 과거에 여성이 억압을 받았었기 때문에 현재 여성성이 표현하는 패션과 미용은 모두 남성들의 강압으로 만들어졌다는 주장, 사회적 공인들이 다주택을 보유하고 있음으로 인해 개개인의 다주택보유가 주는 사회적인 영향이 부정적이지 않다는 주장 등이 있다. 우리는 동일한 기준의 공평성을 바랄 ; 상관관계의 오류, 성급한 일반화, 관례적 합리화와 같은 다른 오류를 범하고는 한다.


허나, 본인들의 행위가 과거에 비판하였던 상황과 명확히 일치하지 않기에 당위성을 가진다고 하는 착각도 국민적 감성에는 맞지 않다고 본다. 내치, 외치 무엇이 영향을 끼쳤는지는 논란이 있으나 산업화시절과 같은 급격한 경제성장이 없이 장기간 계속된 경제적 박탈감에 정치적 스캔들이 겹치며 현재 우리 모두는 피로도가 축적되 있는 상태이다. 과거의 경제적 발전 속에서 우리 모두가 윤리적인 의식에는 소홀했기에 현재 5 적폐라고 불리우는 의혹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불가피할 수도 있으나, 미래의 기준에는  이상을 높이는 것을 바라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에 따라, 새로운 인사와 정책을 결정함에 있어서 경험과 경력에서는 미흡하지만 적어도 윤리와 국민적 기준에 부합할 있는 사람으로 추천과 채택이 되기를 염원하고 있다. 이런 국민들의 바램 속에서 과거의 선택에 비해서, 현재의 인력 풀의 한계라는 소명은 공감을 얻어내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제는 과거의 잔재가 아닌 새로운 기준을 통해서 판단하는 사회에 대한 갈망이 크기 때문이다.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존재하는 괴리감 속에서 누군가의 견해가 틀린 것이 아니라, 서로의 의견이 다른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들을 판단하고 결정하는 논의는 첨예하지만 배려하며 이루어져야 한다. 물론, 자녀는 특목고를 보낸 이가 특목고 철폐를 주장하거나, 본인과 자녀들은 군면제가 이가 국방력 강화를 외치는 모습은 듣기 싫은 상황이다. 그러나, 그들 개인의 상황에 대한 비평과 그들의 주장에 대한 당위성은 분류해서 판단하는 내공을 우리는 키워야 할 것 같다. 또한, 토론과 논평을 함에 있어서 자신의 문제에 대해서 상대의 치부를 들먹이며 상대의 의견을 격하시키거나 본인의 합리성을 얻으려는 논객들을 우리는 경계해야 한다.


국가적인 도덕성을 추구하는 것은 우리의 이상이고 점진적으로 가야하는 방향이지만, 현실적인 정책 논쟁에서는 해당 사안을 점진적으로 해결하는 방향과 우선순위에 대해서 의견을 교환할 있어야 한다. 반론적 입장을 제시함에 있어서 논점을 벗어나서 서로에 대한 가혹하고 부당할 있는 정치적 프레임으로 접근해서는 안된다. 정책 논쟁에서 부동산 다주택자, 자녀를 특목고-외고-자사고를 보냈던 자, 기업체 자문을 하는 성장우선의 경제학자들의 공적인 주장과 사적인 삶이 일치하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로 인해 그들의 주장을 묵살하는 것은 인신공격의 오류라는 것을 주의해야한다. 현재 시민들이 바라는 도덕성의 검증이 대한민국의 미래에 적합한 대안을 찾아가는 것이 아닌 서로의 도덕적인 흠결을 지적하며 권력을 유지하거나 가져오려고 하는 것만 목표로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내로남불의 잣대를 장강명 작가의 말을 인용하자면 블랙홀이라고 생각한다. 프레임에 빠져들게 되면 사회의 모든 이슈들과 미래를 위한 모든 기회들이 이상적인 도덕성이라는 명목 하에 사라지곤 한다.


나는 KBS에서 상영했던 12 초기 시즌을 매우 즐겨봤다. 출연자들의 재치와 위트를 즐겼으며, 우리나라 지방 곳곳에 모르던 명소들을 알게 되어 고마웠다. 해당 프로에서 가장 많이 쓰였던 캐치 프레이즈인 나만 아니면  최근에 많이 떠오르게 되곤 한다. 금식, 비박을 통해 예능적인 요소를 만드는 프로였기에 복불복이라는 게임, 경쟁을 통해 누군가를 탈락시켜야 했던 출연자들은 서로를 견제하며 생존을 했어야 했다. 규칙과 규정이 명확치 않은 예능이기 때문에 전략적인 경쟁 속에서 억울한 출연진이 나오기도 하였다. 전체의 틀에서는 모든 역할에 대한 보상이 들어가 있으나, 공정함에 대한 무의식 속에 살아남은 자들이 외치는 나만 아니면  현재의 나의 자화상처럼 느껴져서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다.


현재의 우리의 사회도 자의적 해석과 다양한 관습이 존재하다 보니 정당함에 대한 기준이 점점 흐려진다. 이런 때일수록 타인의 기준과 상대적인 비교를 통해서가 아닌 개인의 양심과 덕성을 통해 스스로를 성찰하려고 노력한다. 개인의 선택이 나만 아니면  아니라 나는 그렇게 할거야, 개인의 가치관이 부와 명예가 아닌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키워질 있도록, 이제는 과거가 아닌 미래를 논의하는 구성원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