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이라는 감수성

Posted by 희씨
2019.04.22 15:42 EDITORIAL/사회 :: Current Issues


 


이슬아 작가 (슬): <세상 끝의 사랑>이라는 방송을 만드신다고 들었어요. 어떤 이야기인가요?


정혜윤 PD (윤): 만들었고 현재는 종료되었어요. 하지만 팟캐스트에서 다시 들을 수 있어요. 모든 출연자가 재난참사 유족이고 진행자도 유족인 방송이었어요. 세월호 가족인 유경근 선생님이 진행자였고요. 이 방송에 대해서는 할 말이 산더미지만 가장 중요한 건 연대에 대해 진짜로 배웠다는 거예요. 연대는, 온갖가지 이해할 수도 알 수도 없는 이유로 어떤 고통을 겪어냈던 없었던 사람이, 자신이 겪은 고통을 다른 사람은 덜 겪도록 모든 것을 최대한 알려주는 것이더라고요. ‘너는 나보다 덜 힘들었으면 해. 그러니 내가 겪은 모든 걸 알려줄게.’ 이게 연대예요.


특히 세월호 예은 아빠인 유경근 선생님하고, 화성 씨랜드 화재로 쌍둥이를 잃은 아빠인 고석 선생님이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을 잊을 수가 없어요. 99년에 화성에 씨랜드 청소년 수련원 건물이 있었어요. 온갖 비리로 뒤엉킨 가건물이었어요. 소망유치원에서 애들을 데리고 거기로 갔어요. 근데 불이 나서 유치원 아이들과 강사 23명이 죽었어요. 불에 타서 시신 확인이 불가능할 만큼.


방송에서 두 아버지가 이야기를 해요. 그 화재로 쌍둥이를 모두 잃은 고석 대표 앞에서, 세월호 유경근 선생님이 고개를 숙이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해요. “우리 예은이는 일주일 뒤에 와서, 피부가 만지면... 그 모습이 꿈에도 나오고 괴로운데, 그래도 제가 차마, 불에 타서 죽은 그 고통에 대해서는 상상도 못하겠습니다.”


그런데 고석 대표는 이렇게 말해요. “유독 가스를 마시면 순간적으로 의식을 잃어서 자기 몸이 불에 타도 타는 줄 모른대요. 그게 저의 유일한 위안이에요. 그런데 세월호 아이들은 의식이 있는 채로 그 고통을 다 겪어야 했잖아요. 우리 세월호 아이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이렇게 서로 얘기해요. 어떻게든 상대방을 위로하려고 말하기도 힘든 자기 고통을 말해요. 상대방이 나보다 더 힘들었을 거라고 말해요. 둘이 하려는 일은 ‘너 얼마나 힘드니.“예요.


그때 녹음실 스튜디오 밖에는 저를 포함한 스태프들이 있었을 거 아니에요. 우리가 다 고개를 숙이고 있어요. 숨소리도 못 내고요. 그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르겠어요. 가슴에서 꺼내기 너무 힘든 이야기를 남한테 힘을 주고 싶어서 있는 힘을 다해 하고 계시니까요. 그런 걸 어떻게 잊겠어요. 제가 거기에 있었는데, 제가 잊으면 누가 기억을 합니까.


제가 이 이야기를 방송으로도 책으로도 잘 만들어서 유족들이 그만 좀 비난 받았으면 좋겠어요. 보상 더 받으려고 그러냐고, 시신 장사 하냐고, 그런 말 들을 때마다 정말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어요. 우리 이러지 말자, 정말 이러지 말자, 계속 생각해요. 유족들이 이런 취급 덜 당하도록 애쓸 거예요. 온갖 방법을 쓸 거예요. 지금 슬아 씨랑 하는 이 인터뷰도 그 일환이에요.




백지의 워드 시작 화면을 열어둔 채로 붕 뜬 단어들만 끄적거리다 내 문장의 클리셰에 질색하며 저장하지도 않고 워드를 종료하기를 몇 번 반복했다. 마지막 기고이니 신중해야지, 처음과 같이 마지막은 한 번 밖에 오지 않는 타이밍이니까. 그러다가 구독중인 <일간 이슬아>의 정혜윤PD 인터뷰 편을 읽었다. 나는 주중의 오전 11시쯤이면 메일함을 계속 새로고침하며 기다릴 정도로 매일 전송되어오는 이슬아 작가의 글을 좋아한다. 하지만 특별히 이 인터뷰를 읽으며 나는 눈물을 흘리고, 고개를 끄덕끄덕하면서 공감하고, 글을 복사해서 친구에게 보내주고, 그러고도 몇 번을 더 반복해서 읽었다. 글이 너무 좋아서 그냥 인터뷰 전문을 대자보로 여기저기 붙여 두고 싶었다. 이 글을 읽고 흔들리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세상이 더 나은 곳이 될 것 같은 확신이 들었다. 내가 생각없이 적어내려가던 붕 뜬 단어들보다, 연대해야 마땅한 사건들에 대해서 연대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이 진정 내가 바라는 것이라고, 나에게 단 한번이라는 감수성의 타이밍이 주어진다면 나를 드러내기보다 나와 뜻이 같은 사람들을 많이 많이 찾고 그들과 연대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바로 이슬아 작가에게 인터뷰문의 부분 인용 및 발행에 대해서 허락을 구하는 이메일을 보냈다.

부재할 수도 있었던 나로 살아가는 것의 의미를 찾는 것은 평생 고민해야 할 숙제라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겐 경제적 부를 이루는 것일테고, 누군가에겐 학업적 성취일테고, 누군가에겐 의미의 부재 자체가 의미일테고. 정답은 모른다. 얼마전에 세월호 참사가 5주기를 맞았다. 많은 사람들이 각기 다른 방법으로 묵념을 했겠지만, 아직도 안타까운 말들이 이따금 들려온다. 5년이란 시간이 지난 후여서 더 많이 들려오는 것일 수도, 인간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시적 공감이 바닥을 드러내는 것일 수도 있다. 모순적이게도 혹은 다행이게도 나는 타인의 슬픔에 공감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이들을 보면서 마음을 다잡고 의미를 찾는다. 매 순간이 마지막인, 한 번 뿐인 인생에서 ‘조금 더 오래가게 살려두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의 깊이는 우리가 타인의 슬픔에 대해 고민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연대할수록 깊어져 간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평생동안 해야 할 일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슬픔에 대한 공부일 것이다. 타인의 슬픔에 대해 ‘이제는 지겹다’라고 말하는 것은 정말로, 정말로 참혹한 짓일 테니까.



슬: 어마어마한 슬픔을 뚫고 나온 사람들의 사례를 피디님의 라디오에서 들었어요. 그들은 계속 역지사지를 해요. 피디님은 세월호 유족 분들과도 라디오를 만드셨는데요, 언젠가 그런 말씀을 하신 것을 기억해요. 유족 분들이 역지사지라는 말을 너무 고통스러워하신다는 이야기요.


: 유족들이 입 밖에 절대로 내지 않는 말이 있어요. 아무리 입안에 맴돌아도 그 말은 안 해요. “너도 한 번 당해봐” 라는 말이에요. 시신 장사 하냐는 말을 들으면 ‘당신도 한 번 겪어보세요’라는 말이 여기까지 올라오는데도 있는 힘을 다해서 참아요. 자신의 윤리로는 할 수 없는 말이라서요. 그 이유는 자기가 겪고 있는 게 너무 고통스럽기 때문이에요. 어지간히 고통스러워야 너도 한 번 겪어보라고 할 텐데, 인간으로서 그 말만은 차마 못 하겠는 거예요. 그 분들은 ‘당신도 당해봐라’가 아니라 ‘당신은 그런 일을 당하지 마세요’라고 말해요. 저는 이것보다 숭고한 인간의 마음은 없다고 생각해요. 유족들의 이야기 중 ‘재난이 반복되지 않으면 좋겠다’는 말을 허투루 듣지 않을 수 있다면 저는 세상은 변할 거라고 생각해요. 그 말 뒤에 있는 세계, 그 고통을 생각하면 사회뿐 아니라 우리의 차가와진 인간성도 변해요.


슬: 이를테면요? 꼭 필요한 일이 피디님께는 무엇인가요?


: 늘 저한테 그 질문을 해요. 라디오 피디로서 꼭 필요한 일을 하고 있는지를. 세월호 1년 지나고 나서 유족들과 팟캐스트를 처음 했어요. ‘4.16의 목소리’라는 방송이었죠. 첫 방송 날 유족들이 왔어요. 왔는데 일제히 아무 말도 못해요. 제작진, 진행자, 엔지니어 모두 다.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를 건넬 수 없고 만나서 반갑다고 할 수도 없고. 모든 말이 송구스러운 거죠. 그러면 유족들이 먼저 말을 하세요. 자신들을 어떻게 대할지 모르는 사람들 마음을 아니까요. 그 첫 방송이 너무 어려웠어요. 유족들 모셔놓고 내가 뭘 하려는 건지, 그 모심 자체가 너무나도 벅차서. 이 분들한테 말을 시켜도 되나 하고 총체적 혼란이 왔어요.


개인적으로 변한 게 있다면 ‘나 힘들어’ 라는 말을 한 적이 없어요. 제가 어떻게 그런 말을 해요. 내가 진짜 힘든 건 이해를 못한다는 거예요. 정말 그를 이해하고 싶어도, 내가 그 사람은 아니잖아요. 수많은 사람들은 나 때문에도 외로울 수 있어요. 유족들과 공감하고 헤어져봤자 우리의 저녁은 다를 거예요. 그게 그 사람에겐 슬픔이 돼요.


얼마전 나는 홀로 계획없이 뉴욕을 방문했다. 하루는 9.11 메모리얼의 건축물을 관찰하기 위해 가던 도중 시간이 남아 별다른 기대 없이 9.11 헌정 박물관에 들리게 되었고, 그곳에서 ‘고든’이라는 아저씨를 만났다. 고든은 중년의 중국계 미국인 의사이다. 2001년 테러 당시 월드 트레이드 센터 바로 옆 건물에서 메디컬 인턴으로 근무하던 그는 옆 사람이 파편에 맞아 즉사하는 혼돈 속에서도 후송되어오는 환자들의 상처를 살균 장갑과 수술도구 키트만 가지고 알코올을 부어가며 꿰매던 현장 관계자였고, 하나뿐인 여동생 ‘수잔'을 월드 트레이드 센터 꼭대기 층에서 잃은 유족이자, 여러 친구들을 잃은 정신적 트라우마의 직접적 피해자였다. 우리는 약속되지 않은 시각에 기대하지 않은 장소에서 어떤 힘에 이끌려 한 시간 가량 대화했고, 한 시간 동안 나는 울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눈물의 이유는 절대 연민이 아니었다. 이타심도 아니었다. 나는 그저 “너에게 이 이야기를 함으로써 나는 내 슬픔을 조금씩, 아주 천천히 이겨내고 있는 거야. 네가 내 이야기를 들으며 공감해주고 일종의 결심을 마음속으로 한다는 사실이 나에겐 큰 도움이 돼.”라고 웃으며 말하는 고든에 대한 아주 순수한 존경심 때문에 의지와 상관없이 눈물이 흘렀다. 비교 불가하게 미미한 아픔과 불편을 탓하며 징징대는 것이 일상인 나에게 본인이 겪은 아픔에 공감해줘서 진심으로 감사하다며 존경을 표하는 고든의 모습은 거의 숭고해 보이기까지 했다. 내가 그렇게 작고 초라해 보일 수가 없었다. 나보다 더 슬픈 사람들이 있다는 걸 기억하는 것보다, 누군가 나보다 더 슬픈데, 그가 엄청난 용기를 내어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 그 용기와 멀리 가는 그 마음이 내가 가야 할 방향이라고 고든은 내게 보여주었다. 누군가의 슬픔이 어떤 변화의 계기가 되어 우리 모두가 어느 쪽이 더 나은 변화의 편인지 고민할 수 있다면 그것만큼 더 좋은 일도 없을 것이다.

인터뷰어인 이슬아 작가가 변화의 편이 대체로 더 고단한 쪽이 아니냐고 묻자 인터뷰이인 정혜윤 피디는 덤덤하게 말한다, 더 고단한 쪽이 내적으로는 평화라고. 내적 자부심과 뿌듯함. 그러곤 이타심이 별로 없는 본인이 희생자들을 향한 존경과 감탄으로 움직이고 행동하며 굳이 고생을 자처하는 이유는 이것이 본인에게 역시 좋은 일임을 알기 때문이라고, 어디에 샘이 있는지 아는 동물처럼 말이다.



슬: 그래서 힘들다는 말 안 하신다고요.


: 네, 안 하려고 해요. 이건 저하고 한 약속이예요. 까뮈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눈물 흘리지 않겠다고, 오로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만 울겠다고 결심했더라고요. 괜찮아보여서 따라하고 싶었어요.


슬: 누가 '그렇게 힘들어?' 라고 물어보면 갑자기 염치라는 게 생길 것 같아요. 내가 필요 이상으로 징징댔구나, 이럴 때가 아니구나, 하고요.

: 세상에서 유일하게 중요한 게 나뿐이라면, 세상이 좀 불쌍한 것 같아요. 왜냐하면 내 속은 내가 알잖아요. 내가 뻔히 아는 내가 있는데, 나의 별로인 모습을 내가 다 아는데 온 세계가 나 하나로 축소되면 곤란할 것 같습니다.


정말 슬픈 건 영혼 없이 서로를 대하는 거예요. 내가 유족한테 배운 것이 ‘너는 그런 일을 당하지 말아’ 잖아요. 내가 좀 더 슬퍼해서 이 분들께 좋은 일이 생긴다면 굳이 피해야할까요? 내가 슬프지 않은 게 다른 무엇보다 중요하지는 않아요. 물론 가슴이 진짜 아프죠. 혼자서 울죠. 그래도 알아요. 내가 통과하면 다른 누군가에게는 더 나은 일이 생길 수 있다는 걸요.


내가 가장 애정하는 작품 중 하나인 <개인적인 체험>의 저자 오에 겐자부로는 “지옥엔 내가 간다”라는 문장을 마음속으로 입버릇처럼 되뇐다고 한다. <허클베리 핀>에서 헉이 짐을 배신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면서 하는 말이다. 오에는 오랫동안 기다렸던 아들이 뇌에 커다란 혹을 갖고 태어나는 아픔을 겪는다. 아들의 소식을 듣고 원폭 투하지였던 히로시마로 떠난 오에는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거대한 아픔을 겪었던 히로시마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소설가로서, 아버지로서 자신의 길을 걸을 확신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오에가 히로시마 주민들을 보며 느낀 감정이 연민이었다면, 나는 그가 병원에서도 포기하라고 에둘러 권유하는 아들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용기내지 못했으리라 예상한다. 누군가의 슬픔을 불쌍하다 여기는 것은 ‘나는 절대로 저 상황에 놓이기 싫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니까. 그가 삶의 역경을 이겨낼 용기를 얻었던 것은 아마 정혜윤 피디가 말했던 “깨끗한 존경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들을 불쌍하게 여기기 이전에, 혹은 연민을 초월해서, 그들도 저리 열심히 사는데 내가 이 정도 수고도 감내 못할까 하는 마음에서만 “지옥에는 기꺼이 내가 갈게”라는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다.

나의 가장 큰 두려움은 타인의 슬픔에 무뎌지는 것이다. 동시에 나의 목표는 “지옥은 내가 갈게,” 라고 기꺼이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어른이 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둘은 같은 이야기인 것 같기도 하다. 어쩌면 타인에 대한 관찰과 슬픔에 대한 공부와 인생의 목표에 대한 고찰의 종착점은 결국 연대로 귀결되는 것이 아닌가—고든 앞에서 눈물이 나던 것도, 정혜윤 피디의 글을 마구 스크랩하는 것도, 팟캐스트를 듣고 피해자들의 내러티브를 끊임없이 찾고 또 이 글을 발행하는 것조차도 모두 연대에서 비롯된 것 아닌가 싶다. 이 글이 누군가에겐 붕 뜬 단어들과 문장들의 집합처럼 보일 수도, 누군가에겐 연대의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각기 다른 종류의 슬픔과 겨루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조금이라도 흔들렸다면, ‘단 한 번’이라는 감수성으로 꽉 채워진 시간들을 나와 함께 지옥에 가는데 쓰자고 말해주고 싶다.



<416의 목소리>

팟캐스트 링크: http://www.podbbang.com/ch/10950

페이스북 주소: https://www.facebook.com/416voice/

<세상끝의 사랑>

팟캐스트 링크: http://www.podbbang.com/ch/15668

페이스북 주소: https://www.facebook.com/endoftheworld0416/







인용

신형철 <눈먼 자들의 국가>

이슬아 <일간 이슬아> 인터뷰 2019.04.09. 火 : 한 번이라는 감수성 – 정혜윤 PD (上)

이슬아 <일간 이슬아> 인터뷰2019.04.10. 水 : 당신 말을 알아듣는 나를 믿어요 – 정혜윤 PD (下)

(인터뷰 부분 인용은 이슬아 작가의 허락을 받았습니다.)

커버포토: 작가 성립 https://www.instagram.com/seongli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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