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의 세상 분위기는 갈수록 활자를 멀리하고 있다. 지난 몇 년간 ‘독서율이 얼마만큼 떨어졌다’던가, ‘서점의 매출이 얼마만큼 떨어졌다’던가 하는 이야기들이 끊임없이 들려왔다. 한때는(어렸을 때) 책 좀(정말 조금) 읽었었던 본인은 어느샌가 의식하지 않으면 책을 집어 들지도 않게 되었다. 그리고 요즘은 ‘성인 평균 한 달 독서량이 몇 권’이니 하는 소식들을 접할 때마다 뜨끔하는 죄책감도 무뎌진지 꽤 오래전이다. 예전에는 책을 좀 읽어보자는 취지의 TV 프로그램이 있었을 정도로 독서를 권장하는 분위기가 성행했었고, 지식의 상징은 곧 책이었다. 하지만 시대가 빠르게 변하는 지금 현재는 그렇지가 않다. 손만 몇 번 까딱거리면 알고 싶었던 정보의 대부분을 찾아볼 수 있고, 심지어는 옛날 옛적 읽어본 재미난 책의 이야기도 영상 등을 통해 실감 나게 볼 수 있는 세상이니까. 어찌 보면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 이 현상은 당연한 변화라고 볼 수도 있겠다. 손안에 쥔 네모난 만능 기기를 두고 무엇이 아쉬워서 굳이 종이 한 장 한 장을 펄럭펄럭 넘겨가며 책을 읽어야 하는가. 실제로 요즘 사람들이 책을 안 읽는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가장 최근에 읽었던 책 제목이 무엇이었는지도 기억을 못 하는 이들이 많다. 본인도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며 책을 덮어본 지는 몇 달도 더 지난 것 같다. 부끄럽게도 말이다.
이것이 당연한 현상이라고는 말했지만, 정말 책 읽는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현저하게 그리고 빠르게 사라져버릴 줄은 미처 몰랐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앞서도 말했지만 젊은 사람들을 기준으로 요즘 스마트폰 없는 사람을 찾아보기란 사막에서 바늘 찾기 수준이다. 늘 스마트폰만 있다면 언제 어디서든 지루할 틈이 없다. 누군가는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재미난 이야기로 심심함을 달래기 위해 웹툰 어플을 킬 것이고, 또 누군가는 주말 저녁 가슴 절절한 연애 스토리를 통해 감성 충만한 밤으로 하루를 마무리하고자 넷플릭스를 볼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모르는 단어도 스마트폰에 있는 사전 앱을 활용하면 된다. 아니 굳이 사전 앱까지도 필요 없다. 포털 사이트에 검색만 해보아도 쉽게 알아낼 수 있으니까. 이렇게 현대 사람들은 정보를 다양하게 습득하고, 콘텐츠를 빠르게 소비하며, 영상이나 이미지를 통해 보다 구체적이고 자극적인 내용을 받아들이는데 익숙해졌다. 그러니 흰색 종이에 검은색 글씨가 쓰여 있는 것을 보고 있자니 당연히 밋밋할 수밖에.
적절한 예 인지는 모르겠지만 음식으로 빗대어보겠다. 삼시 세끼를 치킨이나 피자, 맵고 짠 찌개만 먹다가 어느 날 갑자기 닝닝한 죽을 먹는다면.. 앗, 이게 그리 적절한 예는 아닌 거 같다고? 사실 본인부터 책을 읽을 필요가 있는 거 같다.
실제로 책만 펼쳐들면 잠이 솔솔 쏟아진다는 이들도 많다. 본인도 그중 하나이다. 책을 읽을 때 눈앞에 생생한 이미지가 그려지지 않는다랄까. 재미도 없고 지루하다는 푸념을 늘어놓으며 온갖 변명을 만들어 놓는다. 나와 같은 이런 분들을 보며 책을 사랑하는 분들이 이해할 수 있기를.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런 나 또한 걱정이 된다. 우리가 언젠가 상상하는 힘을 잃게 될까 봐. 책, 특히 소설 등 문학 작품은 원래 장면을 상상하며 읽는 거라고 많이들 알고 있지만, 그 상상이 구체적이지 않으니까 우리는 자꾸만 시각적인 정보에 기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고 보니 동화책 읽으며 공상을 좋아했던 어렸을 적 나의 모습은 어디로 숨어버렸는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한들 ‘오늘은 집에 가서 책 한 권을 꼭 읽어볼 거야’ 라고 다짐하는 것이 그리 좋은 마음가짐일지 모르겠다. 그건 마치 ‘오늘은 집에 가서 설거지를 꼭 해 놓겠어’처럼 밀린 숙제를 억지로 하는거 같아 보이니까.
우선 책을 읽는 동기가 의무감이 되어선 안 될 것이다. 특히나 그 책이 문학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조금 외람된 말이지만 부모님이 나의 학창시절에 종종 하신 이야기들이 생각난다. ‘요즘 애들은 책을 안 읽느냐’며, 전자오락만 한다며 속상해하는 모습. 나에게 책 선물도 해봤지만 도통 들여다보는 꼴을 못 봤다는 얘기로 주변 만남에서 하소연을 하시곤 하셨겠지. 정말 당연한 말이지만 부모는 자녀의 거울이다. 변명 같지만(핑계 맞다) 저녁을 먹고 부모님이 티비 대신에 책을 보고 계셨더라면 나는 지금과 달리 책과 조금은 가까워졌을까라는 궁상맞은 상상을 하곤 했었다. 사실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들면 그때 책장을 펼쳐들면 된다. 그러다 영영 책 한 권도 못 읽을거 같다고? 만약 그런 분들이 계신다면, 의무감으로 책을 읽으려 하기보다는 필자가 써 보았지만 증명되지 않은 몇 가지 방법을 시도해보는 것은 어떠한가? 뇌피셜 주의.
책을 읽으려고 시도는 하지만 좀처럼 사거나 받아서 모으기만 하고 읽지 않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다. 자신이 보고 싶은 책을 사는 것이 아닌, 누군가가 추천해주거나 인기 많은 서점의 베스트셀러를 고른다는 것. 하지만 책 아니 글자 자체가 익숙지 않다면 ‘이 책 재밌어요’라는 권장이 무의미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학창시절 교과서를 뗀 후 뭔가를 열중해 읽어본 적이 없는 이들이라면 더욱더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책 알러지가 있는 사람들에겐 어떤 책이 읽기 좋을까? 가장 첫 번째 우선순위는 각자의 ‘취향’이 되겠다. 흔히들 ‘개취’라고들 하나. 시작이 반이라고, 관심 있는 분야 혹은 좋아하는 장르의 책부터 읽어야 남들이 좋다고 하는 책에도 손이 갈 테니 말이다. 만약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과는 도저히 안 맞는 것 같다면, 우선은 어린이용 동화책부터 시작하는 것은 어떨지 조심스럽게 추천해본다. 딱딱한 표지에 대문짝만 하게 그림이 그려진, 한 페이지에 열 문장도 안되는 그런 동화책 말고, 초중학생들을 위한 청소년 동화책 말이다. 창피할 것 없다. 나도 시도해봤으니까. 만약 동화책을 읽고 감동을 받는다면, 그만큼 순수하고 동심이 남아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보자. 합리화가 가끔은 정신건강에 좋다. 그리고 실제로 동화책은 생각보다 재밌다.
동화책이 조금은 쑥스럽다면 다른 방법도 있다. 영화화된 원작 소설은 어떠한가. 원래 대부분의 사람들은 소설 원작을 먼저 읽고, 그다음에 영화화된 작품을 보는 것을 추천한다. 그런데 이것을 역행해 보자는 것이다. 지나치게 영상매체에 익숙해졌다면, 텍스트를 읽고 그 장면을 머릿속에서 구현해내기가 쉽지 않다. 상상하는 방법을 잊어버렸을 수도 있으니, 이를 역행하는 식으로 상상하는 훈련을 해보자는 것이다. 영화와 똑같은 내용의 소설을 읽으면서, 영화에서는 어떻게 표현됐었는지를 되짚어보는 것. 다만 장기적으로 봤을 땐 상상하는 훈련만 될 뿐, 근본적으로 상상력을 길러주지는 못할 수도 있으니 유념할 필요도 있겠다. 반대로 소설의 원작과는 조금 달라진 내용의 영화를 볼 때는 생각지 못했던 장면으로 상상력을 더 키울 수도 있겠다. 이 밖에도 한 번 읽어보았던 책을 되새김질하듯 다시 읽어보는 것도 글자와 친해지는 방법이 될 수 있겠다. 새롭고 낯선 문장보다 언젠가 읽어본 문장을 읽는 것이 더 쉽게 읽힐 테니.
책을 읽는다고 해서 우리가 하고 있는 고민들, 이를테면 취업이라던가 연애 등이 전부 해결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때문에 내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책 좀 읽어봐’ 가 아니다. 특히나 최근에는 어떤 문제에 대한 해답을 책 외의 여러 곳에서도 충분히 찾아볼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분명 이 글을 읽는 독자 중에 책을 읽고는 싶으나 그러기엔 책과의 사이가 단단히 틀어져 버린 사람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기에, 그런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해서이다. 나도 분명 책이라는 녀석과 사이가 가깝지 못하다. 그래서 이런 글을 써보며 우리가 왜 책을 읽지 않게 되었는지에 대한 고민, 그리고 그것이 어떤 문제를 가져올지에 대한 심심한 걱정 등을 담아본 것이니 한 귀로 흘려버려도 좋다.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어가며 책을 마주하지 않을 만한 여러 핑계가 생기고 책과는 조금 어색한 사이가 되어버린 지금, 한때 책을 통해 여러 가지 체험을 해보고 어떠한 감성과 공상에 젖어들 수 있었던 그 시절이 그립곤 하다. 그동안 소홀했던 그들에게 한 걸음 다가가 다시금 그들과 친구가 되고 싶은 마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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