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마음이 너에게 닿았으면 해

Posted by 희씨
2020. 3. 16. 19:35 EDITORIAL/문예 :: Literature



범죄와의 전쟁이라는 영화를 생각하면 어떤 유행어가 떠오르는가? 필자는 “그런데 실례지만 어데… 최 씨입니까?”와 “너희 서장 남창동 살제? 내가 어제께도 네 서장하고 마 밥도 먹고! 사우나도 가고 마! 했어”가 떠오르는데 아마 이 두 문장이 나 자신을 아주 잘 설명해줘서가 아닐까 싶다. 아 물론 어디 아무개 서장과 친분이 있어서 밥도 먹고 사우나를 가봤다는 건 아니고, 그냥 새로운 사람을 만나도 접점을 찾기가 쉬운 편이라고나 할까? 어디 한 군데에 진득하고 얌전하게 붙어있을 팔자가 아니었는지 나는 정착이라는 것을 해본 적이 거의 없었고 그럼과 동시에 새로운 사람들을 꾸준히 만나왔다. 그래서 그런지 어딜 가더라도, 그리고 누굴 만나더라도 “아 나도 거기 가봤는데!”나 “아 나도 거기에 누구 아는데!”라는 말은 구렁이 담 넘어가듯 자연스레 할 수 있게 되었고 덕분에 나는 ‘이 세상 누굴 만나도 15분 동안 대화하기’라는 목표를 매일매일 무리 없이 달성하고 있다. 이럴 때마다 나는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나도/너도/우리도” 등등과 같이 “~도”로 끝나는 단어의 힘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여담으로 이런 걸 보면 야나두라는 회사는 이름 한번 참 잘 지은 거 같은데 정말 대성할 이름이다. 너두? 야나두!


하지만 세상만사 시련과 고난이 찾아오는데 생각보다 대화가 쉽게 시작돼서 싱글벙글하고 있는 나에게 “집이 어디세요?”라는 질문은 늘 피할 수가 없다. 이 질문은 마치 5살짜리 어린아이가 해맑게 웃으면서 유치원 선생님에게 “선생님! 아기는 어떻게 생겨요?”라고 물어 선생님이 어쩔 줄 몰라 하게 만드는 것과 비슷한 맥락인데 물론 질문을 받은 선생님도, 그리고 나도 질문에 대한 답은 알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매우 난감하다.


그 이야기에 대한 얘기를 잠깐 하자면 역시나 날 때부터 파이터 기질이 있었는지 가만히 날 잘 보살펴주고 있던 엄마의 아무 잘못도 없는 양수를 터트려 출생부터 남달랐던 나는 경북 안동의 유일한 종합병원에서 태어났고, 태어난 직후 약 100일 동안은 아무도 갓을 쓰고 다니지도 않는데 선비의 마을이라고 빡빡 우기는 경상북도 영주에서 자랐다. 경상도 물이 들어 “경상도 사나이 아입니까!!”라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기도 전에 나는 인도네시아에 있는 자카르타라는 도시로 이민을 가게 되었고 중간중간 한국과 인도네시아를 왔다 갔다 했다는 것을 빼고는 아쉽게도 그때부터 7살 때까지 나는 나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 어차피 아무도 나의 이 시절에 대해 아는 사람이 없으니 이 시절의 나는 한글을 혼자 뗐을 뿐만 아니라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을 읽으며 그의 경제학적 이론에 대해 깊이 공부하고 수학에도 재능이 있어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아주 손쉽게 증명해냈었지만 어린 마음에 바나나가 먹고 싶었던 나는 바나나를 따러 올라갔던 나무에서 떨어져 우둔해져 버렸다는 아주 말도 안 되는 슬픈 거짓말로 이 시기를 얼렁뚱땅 넘어간다. 8살 때부터 인도네시아에 있는 작은 한국 국제학교를 2년 동안 다니며 내가 인도네시아인인지 한국인인지 정체성 혼란을 겪을 때쯤 한국으로 반납되어 분당에 있는 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또다시 자카르타로 넘어가 이번에는 두 군데의 미국 국제 학교를 각각 3년, 4년씩 총 7년을 다녔다. 어차피 이제는 어디가 내 고향인지도 모르겠는 인생, 까짓거 새로운 곳 한 번 더 가보자고 해서 온 버클리에서 1년을 지내고 국가의 부름으로 간 군대에서조차 남들은 한곳에 전역할 때까지 있는 다던데 난 하필 교통 의경으로 배치가 돼 매주 다른 지역으로 파견을 나갔고 또한 전입, 전출을 반복하여 총 세 군데에서 네 개의 다른 직무를 수행했다. 그렇게 돌아온 버클리에서 멍청하게 세상 변한 거 인지하지 못하고 “라떼는 말이야, 라떼는 말이야” 거리다가 후배들의 기피 대상 1호가 되어버렸고 그게 지금까지의 나의 인생이다.


이러니 새로운 사람이 나에게 “집이 어디세요?”라고 물을 때마다 “역시나 날 때부터…”부터 시작해 구구절절 설명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참 미칠 지경이다. 그렇다고 나의 글로벌한 배경을 강조하기 위해 “이 지구 전체가 저의 집입니다 하하!”라고 했다간 아주 글로벌한 왕따가 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더 큰 문제가 있는데 그건 바로 내가 여태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어디에 정착해있을 확률이 아주 낮다는 것이다. 그리고 필자는 이것이 많은 유학생의 공통된 고민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경험과 감정을 조금 덧붙여 이 고민에 대해 지금부터 조금 더 진지하게 접근해보려 한다.


앞서 나의 배경이 말해준 것처럼 난 늘 어디론가로 계속 옮겨 다녔고 그럼으로 인해 좋은 사람을 만나도 그 관계를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남들보다 두 배의 노력을 해야 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난 언제나 ‘미국으로 돌아갈 사람’ 또는 ‘한국으로 돌아갈 사람’이었고 나 역시도 정착하는 것에 대해 확신이 없으니 반박하지 못하고 넘어갔다. 떠돌이 생활 덕분에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었지만, 그 관계의 깊이는 물론 아닐 때도 여럿 있었지만 얕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그 사람들과 깊이 교감하고 그 사람들을 진심으로 느껴보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와 아쉬움이 늘 가슴 언저리 그 어딘가에 남아있다. 그 당시에는 친해졌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는 법, 그 사람들의 생활과 기억 속의 나는 날마다 흐릿해져 가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인간관계는 넓어졌지만, 외톨이가 된 아이러니한 상황을 마주하게 되었고 그 누구에게도 의지하기가 참 애매해져 버렸다.


과거형으로 위의 문장들을 썼지만, 현실은 반복의 연속이다. 지금 나에게는 졸업이라는 또 다른 마지막이 기다리고 있고, 이 마지막의 끝에는 또 이별이 나를 기다리는 것을 직감한다. 복학하고 3년 동안 만났던 좋은 사람들과 또다시 작별이고 난 그 이별을 무기력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이제는 사람들을 만날 때 되려 ‘언젠가는 이 사람과도 이별이겠지?’라는 걱정부터 하기 시작했고, 그것이 연인관계가 됐든 인간관계가 됐든 시작을 하기도 전에 끝에 대해 걱정을 하게 되는 아주 고약한 버릇이 생겨버렸다. ‘이제 여길 떠날 날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인간관계를 쌓으려는 노력을 아예 하지 않는 경우도 점차 늘어났다. 물론 ‘만남이 있으면 이별도 있는 거야!’라고 쿨하게 말하는 사람도 여럿 있지만 사람 관계라는 게 그렇게 대쪽 같지 않은 게 문제라면 문제다. 최소한 나라는 사람은 그렇게 쿨하지 못한 것 같다.


이제는 정말 정착하고 싶다! 라는 마음도 굴뚝같다. 물론 이 모든 문제가 한국으로 돌아가 정착하면 어느 정도 해결되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아직 미국에서 이루지 못한 꿈이 그 결정을 막고 있다. 더군다나 미국에서 정착하자니 신분의 벽의 막혀 언제 쫓겨날지 모르고 안절부절못하는 신세가 되어버렸으니 세상 참 쉽지 않다. 매번 이런 고민을 하는 동안에도 많은 인연이 스쳐 지나갔고 사람 한 명 깊이 알아가는 충분한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는 나는 ‘와 이래서 나 결혼은 하려나?’라는 현실적인 걱정까지 하게 되었다. 하지만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처럼, 이렇게 지나갈 또는 지나간 만남과 헤어짐을 아쉬워하는 것보다는 어쨌거나 저쨌거나 같이 있는 동안에 후회 없이 내가 그 당시에 아끼고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한테 잘해주는 게 더 건강한 삶이지 않겠냐는 생각을 요즈음 해본다. 연인관계에서도 더 헌신한 쪽이 후회가 덜 남는다고 하지 않은가? 세상만사 같은 거 같다. 이러나저러나 후회는 남을 테니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후회를 하는 쪽보다는 무엇이라도 하고 후회를 하는 쪽을 택하련다. 그런 의미에서 졸업까지 남은 3개월, 나는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해보려고 한다. 그 사람들에게 나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닿기를...






* 출처 :

[사진 1] - https://unsplas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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