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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IAL/사회 :: Current Issues

과대 포장된 우상 - 백범 김구

대한민국의 국부는 누구일까? 국부라는 칭호는 일반적으로 전 국민적인 존경을 받으며 국가의 형성에 노력했거나 그에 상응하는 업적을 이룬 인물을 칭한다. 미국의 예로는 조지 워싱턴, 토마스 제퍼슨, 벤자민 프랭클린, 제임스 매디슨, 알렉산더 해밀턴 등등을 위시한 ‘건국의 아버지들’이 국부라는 칭호를 얻고 있다. 중국의 경우에는 중화민국을 세운 사람은 장개석이며,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운 사람은 모택동이지만, 국민당과 공산당 할 것 없이 존경받는 손문이 국부로 여겨진다. 터키의 경우에는 터키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이자 근대화와 세속화를 실시한 케말 아타튀르크가 국부로써 존경을 받는다. 남아프리카의 경우에는 통합, 화해, 평등, 개혁 등등을 상징하는 최초의 흑인 대통령 넬슨 만델라가 국부로써 널리 존경받고 있다.위의 예들을 살펴 보았을 때 대한민국에서 ‘국부’ 칭호로 불리우는 사람을 꼽자면 많은 사람들은 김구를 꼽을 것이다. 일부 보수층은 이승만을 국부로 뽑기도 하겠지만, 일반적으로 보수와 진보를 떠나서 존경을 받으며, 널리 알려진 행적과 사상 등으로 인해 가장 많은 사람들의 머리 속에 국부로 인식되어 있는 것은 명실상부히 백범 김구이다. 얼마 전, 최고액권인 10만원권의 도안에 넣을 초상화의 주인공으로 선택받기도 했다는 사실이 그것을 드러내준다.

백범 김구

하지만 그가 과연 국부로써 존경을 받을 만한 인물인가에 대해서도 논쟁이 없는 것만은 아니다. 최근에는 뉴라이트를 위시한 극우파 세력에게 ‘빨갱이’ 소리도 듣고 있으며 테러리스트였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하지만 김구에 대한 이러한 비판에 관해 대다수의 국민들은 불쾌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으며 ‘김구는 좌/우를 가리지 않는 진정한 민족 지도자였으며 그가 테러리스트라는 주장은 일본 제국주의의 시선에서 바라본 결과’ 라는 여론이 굳게 형성되어 있다. 하지만 필자는 이러한 견해에 상당한 거부감을 느낀다. 비록 뉴라이트 세력의 주장은 진지하게 들을 가치가 없는 궤변이라고 생각하지만 김구라는 인물의 과도한 신격화는 엄연히 경계해야 할 일이며, 그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보는 견해도 허용이 되는 본질적인 논쟁이 더 필요하다고 믿는다.

왜 국민들은 유난히 김구를 비판하는 것에 대하여 깊숙히 내재된 거부반응을 보일까? ‘나의 소원’ 에 나타난 좌우를 가리지 않는 민족주의에 감흥을 받은 것일까? 그의 사진에 나타난 자상하고 유순한 미소와 두꺼운 안경을 보며 ‘이렇게 자상해 보이는 사람이 테러리스트라니!’ 라는 생각을 하는 것일까? 확실히 그의 사진을 보면 친절한 학자풍의 인물로 보이기는 한다. 하지만 그가 폭력행위들을 주도한 폭력무장단체의 수괴였다는 것은 부인할 수가 없는 사실이다. 그는 일제에 무력으로 맞서 싸웠으며, 해방 후의 혼란된 정국에서도 무장 단체를 이끌었다. 그는 테러리스트인가? 테러리즘의 사전적 정의는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폭력을 사용하는 행위’ 이다. 그는 ‘대한 독립’ 이라는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장으로써 무장독립단체를 이끌었고 해방후에는 ‘임시정부 법통성’이라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 백의사를 조직하여 활동하였으므로 사전적인 의미의 테러리스트가 맞다. ‘김구가 테러리스트였는가’ 라는 주제로 국민들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는 논쟁은 사실 그가 테러리스트였나 하는 토론이라기보다는 그의 테러리즘의 당위성을 따지는 토론이라고 봐야 한다.

위에서 정의된 테러리즘의 의미 자체에는 전혀 아무런 가치판단의 여지가 없다. 물론 최근에는 ‘테러리즘’ 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터번을 두르고 턱수염을 길게 기른 남자들이 AK-47소총을 들고 민간인을 납치하여 처형하거나 민간시설에 자살폭격을 가하는 장면을 흔히 생각하기에 반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와는 별개로 인류 보편의 가치를 위해 제대로 쓴 폭력의 경우에는 많은 경우 정당화되기도 하며 ‘옳은 테러’로써 지지받아 마땅한 일이다.

일제에 대한 무장 저항 운동은 위에서 말한 지지받아 마땅한 ‘좋은’ 테러리즘의 예이다. 일제의 불법 합병, 수탈, 억압, 인권침해 등등에 대해 저항한 것은 인류 보편의 가치인 ‘자유’를 위해 싸운 훌륭한 행위이다. 물론 무고한 일본 민간인들을 경우에 따라 잔인하게 죽인 행위는 비판을 피할 여지가 없지만 ‘일제’라는 세력의 압제에 적극적으로 무장투쟁을 한 것은 존경받아야 마땅할 일이다. 하지만 해방 후 김구의 행각에는 문제점이 많다. 백범일지 뒷편의 ‘나의 소원’ 혹은 ‘내가 원하는 우리 나라’를 읽은 사람들은 흔히 해방후의 김구는 마치 간디와 같이 평화롭게 민족통일국가를 형성하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라고 착각한다. 하지만 그들의 착각은 그저 환상일 뿐이다. 김구는 사실은 맹목적인 극우 반공 이념에 깊이 매몰되어 있는 사람이었으며, 좌파들, 좌파들과 협력하는 우파들, 자신의 노선과 맞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서슬퍼런 폭력을 가했다. 이 행위들은 나쁜 테러리즘의 예이다.

몽양 여운형

김구의 행각을 이해하려면 해방 당시 남한 내의 정치 이념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가장 흔히 벌어지는 좌우논쟁 외에도 신탁통치에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 통일정부를 수립하느냐 단독정부를 수립하느냐를 놓고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던 때였다. 이승만을 위시한 대한독립촉성국민회와 김성수의 한국민주당은 우파, 반탁론자로써 남한만의 단독 정부를 꾸리기를 원했다. 김구가 이끌던 대한민국임시정부 계열의 한국독립당은 우파 반탁론자로써 남북통일정부를 꾸리기 원했다. 박헌영을 비롯한 조선공산당과 남조선로동당 세력은 좌파 찬탁론자였으며 역시 남북통일정부를 꾸리기 원했다. 이들 외에 여운형, 안재홍, 김규식 등등의 중도파세력이 있었으며 이들은 통일정부를 지향하되 신탁통치에 대해서는 통일정부 수립 후에 중지한다는 신중론을 폈다. 존 하지 사령관의 미군정은 초창기에는 한민당 세력을 적극 지지하고 한독당 계열을 어느 정도 지원해주다가 이들이 한계를 나타낸 후에는 우파 세력에게 거리감을 두기 시작하고 여운형에게 총리직을 제안하고 김규식, 안재홍 등등에게도 요직을 제안하는 등 중도파를 지원하였다고 한다.

이승만, 김구, 존 하지

김구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법통론을 굳게 믿었으며 그것을 반대하는 세력들은 모두 적으로 간주하였다. 해방 직후에는 좌파 세력들을 주적으로 간주한 결과, 친일 성향의 인사들이 상당수 자리하고 있던 한민당과 연대하게 되어 친일파 청산을 회피하며 미루는 근시안적인 행각도 보였다. (대표적으로 조선일보 사장이었던 친일파 방응모를 본인의 한국독립당 재정부장에 앉힌 일을 들 수 있다.) 한민당 계열과 의견이 갈라지기 시작하자 ‘백의사’라는 정치테러단체를 지휘하여 자신의 노선과 반대하는 인물들을 제거해 나가기 시작했다. 중도좌파 여운형, 한민당 계열의 보수우파들이었던 송진우와 장덕수 등등이 백의사 관련 인사들에 의해 암살당했다.

결국 이승만의 심복 장덕수를 암살하고 난 후에는 이승만과의 사이도 완전히 틀어지고 권력에서 밀려나게 되자 중도파와 좌파와 힘을 합쳐 반탁 통일 운동을 하고 친일파 청산을 외치기 시작한다. 이 모습이 바로 국민들에게 익숙한, ‘삼팔선을 베고 죽겠다’는 말을 남긴 김구의 모습이다.


그렇다면 왜 그의 단점들은 묻혀버린 채 국민들 사이에 철저히 신격화 되어 있는 것일까? 일단 분단 당시 그의 행동이 국민들 사이에 깊이 각인되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삼팔선을 베고 죽겠다는 말을 남기고 마지막 순간까지 김일성과 이승만 사이를 오가며 협상을 하던 장면은 국민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으며 분단에 대한 아쉬움을 김구에 대한 그리움과 경외심으로 표하는 현상이 벌어졌을 것이다. 또한 그의 수려한 필력도 그의 위상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백범일지의 부록으로 작성되어 있는 ‘나의 소원’, ‘정치 이념’, ‘내가 원하는 우리 나라’는 민족주의와 독립운동, 좌우통합이라는 측면에서 흠잡을 면이 없는 문서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준 그의 글들이 결론적으로 그의 평가를 높인 셈이다. 또한 5/16 군사정변으로 권좌에 오른 박정희가 자신을 이승만과 구분짓기 위하여 이승만을 격하하는 과정 중 그의 대안으로써 적극적으로 그의 위상을 드높였다는 이론도 있다.

38선을 넘는 김구의 모습

결론적으로 독립운동을 지휘한 공로는 인정받아야 마땅한 업적이지만 김구는 무분별하고 막연한 극우 반공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있었던 사람이다. 자신의 이데올로기와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근시안적인 판단을 내리기도 했다. 그는 ‘내가 원하는 우리 나라’에서 ‘우리의 적이 우리를 누르고 있을 때에는 미워하고 분해하는 살벌, 투쟁의 정신을 길렀었거니와, 적은 이미 물러갔으니 우리는 증오의 투쟁을 버리고 화합의 건설을 일삼을 때다. 집안이 불화하면 망하고 나라 안이 갈려서 싸우면 망한다. 동포 간의 증오와 투쟁은 망조다.’ 라는 말을 남겼지만 결국 증오와 투쟁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섰으며 단순히 정치적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로 수많은 이들에게 폭력행위를 가하고 암살하였다. 이것은 결코 정당화 될 수 없는 폭력이며 테러리즘이다.

김구 본인이 쓴 ‘정치 이념’ 에서는 ‘나의 정치 이념은 한마디로 표시하면 자유다. 우리가 세우는 나라는 자유의 나라라야 한다’는 말을 남겼다. 자유주의자를 자처하는 필자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훌륭한 말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의견에 타인이 반대할 자유를 인정하지 않고 타인의 생명을 앗아가는 악행들을 저지른 결과, 자신의 이상에 못미치는 사람으로 남고 말았다. 결국 이승만과 사이가 틀어지고 나서야 진정 좌우를 아우르는 민족주의를 주창하기 시작하였지만, 이 때는 너무 늦어서 결국 남북이 단독정부를 수립하기 이르렀다. 조금만 더 일찍 각성하였다면 국가의 운명이 바뀌었을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백범 김구 주변을 감싼 거품이 걷히고 그에 관한 객관적인 평가를 마음 놓고 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