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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IAL/사회 :: Current Issues

빠른 생일, 그 애매함에 갇혀버린 사람들

어느 나라에서든 처음 본 사람과 만났을 때, 혹은 친구의 지인을 소개받았을 때 가장 기본적으로 하는 첫 행동은 악수와 함께 나누는 통성명이다. 주로 이름을 말하는 것으로 소개가 끝나는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그 후에 나이를 묻는 경우가 전반적으로 많다. 공동체 의식이 발달되어 있음에 따라 자연적으로 세워지는 강한 위계질서 때문에 상대방의 나이에 따라 쓸 수 있는 표현, , 행동, 그리고 호칭 등이 극히 제한되기 때문이다. 동방예의지국, 장유유서와 같은 옛말에서도 알 수 있듯 웃어른 공경을 중요시 여겨온 우리나라는 어른과 아이 사이의 질서뿐만 아니라 선배와 후배 간의 질서 역시도 중요하게 여긴다. 이러한 선후배 문화는 생일이 채 1년이 차이가 나지 않는 경우에도 태어난 연도가 다른 사람들을 선배로 인식하는 문화로서, 대개 나이나 학년이 어린 사람은 본인보다 한 살이라도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 존댓말을 사용하도록 확립되어 있다. 존댓말 사용 여부에 앞서 대화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인 호칭 역시도 문제가 된다. 대개 큰 나이 차이가 아니고서는 이름을 부르는 미국, 일본 등 다른 많은 나라와 달리 대한민국에서는 이름보다는 형, 언니, 혹은 누나와 같은 손윗사람을 지칭하는 호칭을 주로 쓰기 때문에 대화에 앞서 나이에 따른 서열정리는 꼭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적은 나이 차에도 지켜야 할 규율이 확실하게 나누어져 있는 대한민국 사회문화의 특성상 다른 사람들과의 교류를 기반으로 하는 사회생활 도중 실수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미리 상대방의 나이를 파악해두는 것은 어느덧 한국인들의 관습이 되어버렸다.

                                    


<출처: Google Image 검색>


실례지만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라는 질문에 의도치 않게 양쪽이 곤란해지는 경우가 있다. 상대방이 흔히 말하는 ‘빠른 생일’일 경우인데, ‘빠른 생일’이란 1월 혹은 2월에 태어난 사람들을 일컫는 말로 대부분 자신들보다 한 해 빠른 연도에 태어난 사람들과 학교를 함께 다닌 사람들을 지칭한다. 나이제와 학번제가 공존하는 사회의 가장 첫 단계인 대학에 진학하기 전까지는 많은 사람들이 “같은 학년이면 같은 나이”란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 예로 실제로 중, 고등학교에서 같은 학년의 학생들이 동급생에게 존댓말을 쓰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90년생들과 함께 학교를 다닌 빠른 91년생들은 당연하게 90년생들과 말을 놓는 친구사이가 되며 학년이 나뉘는 보통 91년생들에게 선배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나이에 대해 큰 문제 없이 학창시절을 보낸 학생들이 사회초년생이 되어 “학년”이라는 자신들을 분리했던 장벽 없는 사회에 나가게 되면서부터 질서가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사회에는 소위 말하는 그룹이라는 것이 있다. 이는 고등학교까지 학년이라 불렸던 그 장벽과도 비슷한 것인데 대학에서는 과, 회사에서는 직급 등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이 둘의 차이는 연속성에 있다. 집과 학교에서의 생활이 전부이던 고등학생까지의 삶과 다르게 성인이 되면서부터는 더욱 많은 사람들과 교류를 해야만 하는 직업 외의 시간이 급격하게 늘어나는데,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미래를 뒤바꿀 수도 있는 이 시간은 주로 자신들의 역할과 직책이 확고하지 않은 사회에서 보내게 된다. 따라서 자신들을 분류했던 그룹이 하루에 몇 번씩 바뀔 수 있게 되고 그에 따라 그룹의 구성원이 바뀌게 되면서 선배의 기준이 바뀔 수 있기 때문에 혼란이 생기는 것이다.

실제 예를 들자면 빠른 생일이어서 초등학교에 일찍 입학했지만 재수를 한 A와 빠른 생일이지만 학교를 일찍 들어가지 않고 현역으로 대학에 입학한 B가 있다. 이 둘은 같은 빠른 생일과 같은 학번으로 친구이다. B의 고등학교 친구로 같은 학교 다른 과에 진학한 C는 빠른 생일이 아니지만, B와 고등학교 3년을 함께 보낸 친구로서 B가 빠른 생일임에도 불구하고 말을 놓고 이름을 부르는 친구사이이다. 하지만 나이제인 동아리에서 만난 CA에게 언니라는 호칭과 존댓말을 사용한다. 우연히 이 셋이 함께 만나게 되었을 때 관계는 복잡해진다. 서로를 친구로 여기고 말을 놓는 두 사람이 같이 있는데 C는 한 명에게는 존댓말을, 다른 한 명에게는 반말을 하는 어색한 상황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B가 없을 때 만나 이미 존댓말을 하는 것이 익숙해져 버린 CA에게 갑자기 말을 놓는 것도 납득이 가지 않는다. 실제로 이런 경우는 일상생활에서 빈번하게 일어나 호칭정리에 있어 곤란함을 가져온다.

실제 대한민국 청소년보호법이 담배 및 주류의 구입을 만 19세가 되는 해 1 1일 이후로 지정해놓은 만큼 1년 일찍 초등학교에 입학해 태어난 연도가 한 해 빠른 학생들과 학교를 다닌 빠른 생일의 학생들은 자신들과 태어난 연도가 같은 학생들과 같은 나이로 간주하는 것이 마땅하게 보여진다. 하지만 위와 같이 아는 사람을 통해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되는 현실에서 하나의 예외가 생겨버리면 그에 따라 무수히 많은 예가 생기듯이 우리나라에만 유일하게 존재하는 빠른 생일이란 개념은 생각보다 많은 혼란과 스트레스를 가지고 온다.

이러한 혼란이 생기게 된 이유는 매해 3 1일부터 새 학년이 시작되는 초등학교의 취학 기준일이 3 1일로 정해지고 나서부터이다. 해가 바뀐 1월과 2월에 태어난 학생들이 그 전해에 태어난 학생들과 같은 학년이 되면서 학번제와 나이제가 공존하는 우리나라에 확립된 위계질서가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혼란을 감지한 정부는 2008년 초등학교 취학 기준일을 1 1일로 정정하였으나 이미 사람들의 의식 속에 깊이 자리 잡은 빠른 생일의 개념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대하는 데에 있어서 쉽게 바뀌지 않고 있다


<출처: Google Image 검색>

 

작년 유명한 텔레비전 프로그램 개그콘서트의 한 코너로서 인기몰이를 했던 애매한 것을 정해주는 남자 (이하 애정남”)은 새로 만나는 사람부터는 빠른 생일을 따지지 않고 태어난 해가 같은 사람끼리는 친구라는 정의를 내려주었다. 다른 모든 애매한 것들은 시원하게 해결해주었던 것과는 달리 빠른 생일의 문제만큼은 애정남도 해결 하지 못한 듯 아직 사람들 사이에서 빠른 생일 문제는 큰 골칫거리로 남아있다. 빠른 생일인 사람들 중에서도 자신들은 선배취급을 받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있고, 또래들과 좀 더 잘 어울리기 위해 손윗사람 호칭을 거부하는 사람들도 있으며, 아무래도 좋다는 식으로 전혀 개의치 않아 하는 사람도 있다. 같은 그룹 안에 이 세 사람이 공존하게 된다면 어찌하겠는가.

나이 차이에 따른 호칭과 행동을 선을 그어 정리하는 것도 좋지만 이렇듯 늘 예상치 못한 변수는 생긴다. 이미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생겨버린 무의식적인 "빠른 생일"이라는 개념을 자신의 입맛대로 차용한다는 것은 불공평한 면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이미 몸에 배어 버린 습관처럼, 바꿔야한다는 의식만으로는 빠른 시일내에 바꾸기 어려운 문화라는 것이다.  따라서, 무조건적으로 숫자에만 연연하며 서로 불편한 상황을 조성하기 보다는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행동하며 행동으로 공경심을 보여주어 질서를 확립하는 것은 어떨까 필자는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