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차가운 자화상, 기러기아버지
며칠 전 한달 여 만에 걸려온 아버지의 전화를 받았다.
"아들, 보고 싶어서 전화했어. 별일 없고? 밥은 잘 챙겨먹고? 타국에서 공부하느라 힘들지.."
"네 아빠, 저 잘지내요. 에이~ 힘든게 뭐가있어요 아빠가 힘들지.. 저 곧 시험이라 바빠요"
"사랑한다."
"........저도요."
"먼저 끊을게~ 아들 화이팅"
뚝 뚝 뚝 뚝...
통화 종료를 알리는 기계음이 필자의 일렁이는 번민을 대변 하는 것 같아 한동안 수화기를 내려놓지 못했다. 입 안이 텁텁해서 침을 삼켰는데 침을 삼킨 건지 눈물을 삼킨 건지 분간이 안 가 한동안 멍하니 벙어리가 된 채 생각에 잠겼다. 필자는 왜 무뚝뚝하게 대답을 했으며 왜 사랑한다는 말을 못했을까. 핑계를 대기에 앞서 필자는 절대 부모 공경이 결여된 패륜아가 아니다. 아마 대부분 유학생들은 이해를 할 것이다. 아버지에게 사랑한다는 말이, 가장 쉬우면서도 가장 어려운 말이라는 것을. 그것은 아마 오래 떨어져있어 애틋함도 큰 만큼 말 못할 고생을 하고 있는 아버지들에 대한 미안함도 느끼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필자의 아버지는 사회가 흔히 일컫는 "기러기 아빠" 다.
--- 기러기아빠 : 1990년대 말 조기유학 열풍에서 생겨난 말로, 부인을 딸려 어린 자녀를 해외로 유학 보낸 후 국내에서 혼자 생활하는 아버지를 이르는 말---
그렇다. 과도한 교육열과 서구문화의 예찬이 거칠게 부는 센세이션에 힘입어 기러기 아빠는 어느덧 당연시 되고 흔히 볼 수 있는 한국문화의 한 단면으로 깊게 뿌리 잡았다.
기러기 아빠는 무슨 낙으로 살까?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공통 분모는 하나일 것이다.
내 자식 만큼은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살게 하고 싶다는 야망 아닌 야망.
기계적인 하루 일과에 피와 땀을 더하며, 비루한 월급에 참혹한 하루를 소멸시켜가며, 자식들의 안녕에 목숨을 거는 이들은 자식들만 바라보고 사는 바보임에 틀림없다.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정다운 소리, 잘 지낸다는 자식들의 말에 환하게 웃음짓고 이 아빠도 건강 잘 챙기고 맛있는거 먹으면서 지낸다며 안심시키지만, 실상은 인스턴트 식품에 매일 소주에 외로움을 의지한 채 인생 별거 없다고, 부모의 도리만 다하고 가면 된다고 버릇처럼 읊조리며 그렇게 사회에서 도태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나날이 놀라운 속도로 증가하고 있는 기러기 아빠들과 이들의 위태로운 건강 문제, 정신 문제 등 새로운 패러다임이 제기된 대한민국의 자화상은 차갑다 못해 참혹하다. 모 대학의 인자하기로 소문난 교수의 자살 사건, 알고 보니 10년 넘게 홀로 처자식 뒷바라지하는 기러기아빠, 외로운 철새, 숨쉬고 있는 산송장. 이러한 비참하다 못해 입술을 깨물게 만드는 기사는 수도 없이 나오고 우리들의 마음을 후벼 파고 있다. 사람이 사는 이유는 사람 때문이다. 그 사람들 중에서도 "내 사람" 을 가리자면 단연 "내 가족" 일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가족이 없이 사는 삶은 그 어떠한 명예와 권력이 있다 한들, 빛 좋은 개살구요, 밑 독 새는 도자기에 불과할 것이다.
행복을 갉아먹는 비극들이 판을 치는 세상에 치여 간 내주고 쓸개 내주고. 경제가 어렵다니, 성범죄가 판을 친다니, 누가 자살했다니 뭐니... 끊임없이 상처의 골을 깊게 들쑤시는 애증과 회한, 탄식과 불안 등이 판을 쳐도, 내 자식들에 대한 사랑은 한 푼도 내어 준 적이 없다고, 유일한 소신이라면 소신이라고.
그렇다면 이러한 위기에 빠진 기러기 아빠들을 웃게 할 수 있는 건 무엇이 있을까?
바로 함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닐까? 요즘 캬캬5톡 이나 훼이스북, 네잇흐온 등등 SNS의 발전은 놀라운 속도로 우리의 일상에 자리잡고 또 반영한다. 신세대의 문화를 알려줌으로써 세대 간의 벽을 허물고 하루하루를 공유 하는 건 어떨까? 하지만 이런 말을 하는 필자는 정작 부모님한테 그딴거 안 키운다고.. 바빠서 할 시간도 없다고 단칼에 대화를 끊었었다. (엄마 미안해.. 하지만 스릉흔드....!! 소리없는 메아리...!! )
다 커버린 어린이에게 안부전화로 시시한 질문이나 하는 아버지의 대답에 바쁘다고 무뚝뚝하게 대답해 버리고는 깊은 사색에 잠기는 필자의 모습을 보며 필자 스스로도 가족에 대한 사랑은 나이를 불문하고 늘 한결같고 그 어떠한 알고리즘도 깨버린 다는 것을 새삼스레 깨닫는다.
그러한 지루하다 못해 평범하고 똑같은 대화가, 누구에게는 지극히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그것이 얼마나 큰 행복의 특권인지 잠시 평온한 삶에 배가 불러서 미쳐서 망각했던 것 뿐이라고, 반성한다. 필자는 모르고, 아니 알지만 모른 '척'하고 살았다. 아프니까. 닿기만 해도 터져버릴 깊게 골아버린 고름처럼 미안하면서도 어색한, 하지만 사랑한다고 말하기엔 머리보다 마음이 앞서 가슴이 탁 막혀버리는 그런 때였으니까. 누구나 살다 보면 그런 날들이 있다. 사소한 것에 감사함을 느끼고, 미안함을 느끼고 까맣게 있고 있었던 추억들에 미소 짓고 눈물을 흘리는, 그것이 왠 햇살 좋은 대낮에 유난을 떨 정도로 대단한 일이냐고 놀림을 받을 지 언정.
기러기 아버지는 대한민국의 슬픈 자화상임과 동시에 우리가 안고 가 야할 숙제이기도 하다.
조기교육과 유학은 성공의 깃발에 가까이 닿을 수 있는 지름길이라는 생각이 낳은 현실적이고 치명적인 열풍, 그리고 그 이면에 가려진 아버지의 그늘. 이해한다. 자기 자식을 통해 자기가 이루지 못한 꿈과 야망을 성취하려는 대리만족. 그것이 그릇된 믿음이라 할 지언정 필자는 충분히 공감하고 이해한다. 아마 당신들도 이해 할 것이다. 하지만 이해만 할 뿐 느끼진 못 할 것이다. 인스턴트 식품과 소주에 찌든 허름한 삶과 달리 당신들의 삶은 이상하리만치 순탄하고 잘만 지나가니까. 그러면서 밥 삼시 세끼 꼬박 챙겨먹으면서 학교생활 힘들다고, 공부니 뭐니 징징대는 짓은 하지 말았으면 한다. 당신들에게 주어진 기회가, 그 누군가 에겐 피나는 노력으로도 이룰 수 없는 한낮 "꿈" 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 주길 바란다. 우선 필자부터 징징대지 말아야겠다.
다음 시는 IMF 시절 필자의 어렸을 적 추억이 너무 선명하게 남아 꽤 공들여가며 쓴 시이다.
지금도, 눈물에 젖은 소주잔에 자식생각에 잠 못 이루는 작지만 위대한 대한민국 아버지들에게 이 시를 바치며 끝맺음을 하겠다.
1997년 겨울, 따뜻했던 어느 날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며
이런 걱정은 긁어 부스럼이라며
순탄치 않는 일상을 회유한다.
부스럼없이 지켜온 신념
이제는 몽롱하지만 신념은 신념이라고.
옷을 싸들고 겸허히 집을 나선다.
옆이 허전하다.
앞이 흐릿하다.
다시 일상의 적막을 알리는 알람소리에
일자리를 나선다.
일자리를 맞선다.
추운 여름 저녁, 하릴없이 돌아오는 길,
두 아들의 눈망울을 상기시킨 것은
다름아닌 길거리 전기통닭구이 네온사인.
한손엔 쓰라린 책임감
다른 한손엔 한줄기 웃음꽃
배시시 웃으며 안기는 아이들 생각에
콧노래를 부르며 오늘 하루 꽤 괜찮았다며
초인종을 누르며 아들이름을 부르는 당신
그래서 9살 어린 눈망울에도
당신 어깨에 수북히 쌓인 눈이 선명하게 보였을까,
당신 눈가에 뭉개진 안개가 보였을까.
그래서 9살의 어린 눈망울에도
당신이 그토록 멋있었을까
그래서 당신이 그토록 애틋했을까ㅡ
1997년 겨울, 따뜻했던 어느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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