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이번 봄 방학 동안 독일의 수도이자 현대적인 멋과 고전적인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도시 베를린에 다녀왔다. 독일 하면 누구나 떠올리는 먹음직스러운 소시지에 시원한 맥주 한 잔을 즐기기도 하고, 클러버들의 성지로 불리는 베를린의 클럽에도 들려 가슴이 터질듯한 음악에 몸을 맡기기도 하였다. 하지만 짧고도 긴 5박 6일의 일정 동안 필자의 마음에 가장 큰 울림을 준 곳은 화려한 건축기법으로 보는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베를린 대성당도, 하늘 높이 우뚝 솟은 현대적인 건물 TV Tower 도 아닌, 바로 유대인 학살 추모 공원 (Holocaust Memorial) 이었다. 안네의 일기, 쉰들러 리스트, 인생은 아름다워 등 영화나 문학 같은 다양한 통로로 우리에게 알려져 인류사에 수치스러운 한켠을 차지하고 있는 유대인 학살, 이를 추모하는 공원을 거닐고 박물관을 돌아보며 느낀 필자의 생각을 이번 글을 통해 나누고자 한다.
출처 : veteranstoday.com
먼저 홀로코스트 (Holocaust) 는 그리스어로 전체를 뜻하는 hólos 와 불에 태운다는 뜻인 kaustós가 합쳐서 생겨난 단어로,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을 지배하던 아돌프 히틀러의 나치 정권이 유럽에 거주하는 약 600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한 일을 지칭한다. 히틀러는 독일에서 총통의 자리에 오르면서 본격적으로 유대인들에 대한 증오를 부추기고 이른바 순수 아리안들을 선동하기 시작하였다. 유대인들이 운영하는 상점들은 공격을 받았으며, 유대인과의 결혼이 제한되는 등 차별과 핍박은 점점 본격화되었다. 히틀러가 독일을 벗어나 전 유럽에 대한 정복욕을 드러내고 영토를 확장하면서, 나치 정권은 군사력과 비밀경찰 등을 동원하여 유대인을 색출하고 이들을 전 유럽에 건설한 악명높은 유대인 수용소로 이송한다. 건강한 유대인들은 가혹한 강제 노역에 시달렸고, 수많은 사람들이 영양실조나 질병으로 사망하였다. 뿐만 아니라 목욕을 핑계로 많게는 수백 명의 사람들을 가스실로 몰아넣고 독가스를 이용해 살해하는 등 그 잔인함이 말로 다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이처럼 한 민족을 상대로 저지른 만행은 세계사에 전례가 없을 만큼 무차별적인 대규모 학살이었으며, 인류 전체가 절대 잊지 말고 끝없이 상기해야 할 비극이다.
출처: https://www.pinterest.com/daniel557211/peter-eisenmans-holocaust-memorial-berlin/
위 사진에서 보여지듯이 필자는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는 무게감과 동시에 당혹감을 느꼈다. 축구장 3개를 합쳐놓은 엄청난 넓이의 광장에 대충 박아놓은 듯한 2천 711개의 시멘트 기둥들. 입구에 서서 바라본 공원의 모습은 그저 무미건조 그 자체였다. 아무런 이름 하나, 글귀 하나 적혀 있지 않은 수많은 잿빛 기둥들이 이루는 군집은 마치 거대한 무명의 공동묘지 같았다. 이름조차 세상에 기록되지 못하고 잊혀간 유대인들을 떠오르게 하는 그 모습에 어느 정도 압도되는 느낌을 받기는 했지만, 그토록 잔혹하고 끔찍했던 역사를 추모하기에 공원의 외관은 너무 단순하고 자칫하면 성의 없어 보이기까지 하였다.
하지만 아득히 많은 사각기둥들 사이로 발걸음을 내딛으면서, 나의 당혹감은 그저 겉으로 보여지는 한 컷의 이미지일 뿐임을 깨달았다. 멀리서 보았을 때 비슷한 높이였던 그 기둥들은 공원 중앙으로 향할수록 움푹 패여있는 지형구조를 따라 서로 각기 높이를 달리하고 있었다. 한가운데 필자의 키를 훌쩍 넘긴 2미터가 넘는 그 기둥들 사이에 섰을 때, 당장이라도 무너질 듯한 거대한 도미노 사이에서 압사당할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다. 미로 속에 갇힌 듯한 알 수 없는 공포와 답답함에 사로잡혀 이리저리 방향을 바꾸어 걷다 미궁에서 빠져나왔을 때, 안도감과 함께 단순히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고통을 겪던 유대인들의 이미지가 머릿속에 함께 그려졌다. 가장자리로 나와 벤치 높이의 기둥에 간신히 걸터앉고 나서야 깊은 한숨을 내쉬었지만, 아직껏 가슴이 아찔하고 먹먹하였다.
출처: https://www.pinterest.com/explore/holocaust-memorial/
수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유대인 학살에 대한 역사적 정보를 알려주고 실제 유대인들의 여러 기록물을 전시해놓은 박물관을 돌아 나오면서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커져만 갔고, 다시 한 사각 기둥에 걸터앉을 수 밖에 없었다. 글로 써놓았을 때 “600만”이라는 단순한 숫자가 머릿속에서 나와 같은 인간으로서의 한 유대인의 삶, 또다른 유대인의 삶을 상상하며 하나의 실체가 되어가는 것만 같았다. 유대인 남자, 여자, 노인, 아이의 삶까지, 그렇게 열 명, 아니 많게나마 60명 정도의 인생을 떠올렸을 때 “600만”의 실체가 주는 그 참담함에 아득해져 더이상 생각이 되지 않았다. 600만이라는 숫자는 그 시간 동안 내가 떠올린 60명의 생각, 그 10만 배의 무거움으로 나를 짓눌렀고,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그 무게에 그저 나의 무력함을 인정해야만 했다. 지금 자판을 두드리며 글을 쓰고 있는 필자와, 또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과도 같이 한 인간일 뿐이었던 히틀러의 잘못된 생각의 결과가 600만이라는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의 참혹한 죽음이라는 사실이 실제로 벌어진 역사적 “사실”임에 비참함을 느꼈다. 인간이 어디까지 악해지고 잔인해질 수 있는 것인지, 현장에서 직접 이를 목격한 것처럼 식은땀이 흘렀고 쉽사리 그 혼돈은 가시지 않았다.
그렇게 폭풍 같은 혼란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있을 때, 문득 고등학교 때 자주 방문하곤 했던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쉼터인 “나눔의 집”에서의 일이 떠올랐다. 할머니들이 내 손을 꼭 잡고 하셨던, 당신들은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너희가 우리나라를 강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그 말씀을 듣고 느낀 감정 역시 너무나도 비슷한 무력함과 비참함이었다. 아직 자신들이 당한 일에 대해 가해국의 공식적 사과와 반성조차 아직 받지 못한 할머니들의 모습이 안타까웠던 기억이 난다. 그와 동시에 공원에서 내 주변을 지나친 많은 사람들이 떠올랐다. 내 옆에서 열심히 설명을 읽고 있던 독일인 할아버지부터, 오디오 가이드를 귀에 대고 갖가지 다른 언어로 집중해 듣고 있던 관광객들, 또 유대인들의 사진을 빤히 바라보고만 있던 귀여운 영국 소년까지 다른 모습으로 같은 마음을 공유했을 것이다. 베를린 한가운데 건설된 이 추모 공원을 수많은 세계 각국의 관광객들이 찾아 유대인들을, 또 이 비극을 추모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나눔의 집 할머니들의 얼굴이 떠올라 다시 한번 서글퍼졌다.
출처: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지나간 일들을 잊지 않는다는 것. 수십 년이 지난 2017년 한국에서 날아온 관광객인 내가 베를린의 유대인 추모 공원을 거닐며 느낀 이 복잡한 감정들이 바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일들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가장 중요한 이유일지도 모른다. 비단 이 홀로코스트에서 뿐만이 아니라 지구 곳곳에서 수도 없이 벌어진 참혹함과 잔인함을 우리는 잊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그 무시무시한 생각을 해냈던 히틀러도, 아우슈비츠 수용소 가스실에서 아무것도 모른 채 죽어가던 한 유대인 소녀도, 그리고 우리도 인간이라는 한 테두리 안에서 함께 살아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 또 그것을 알리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임을 알기에 이를 잊지 않기 위해 베를린 한복판에 세워진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이 더욱 아름다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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