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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IAL/국제 :: Worldpost

모녀의 이탈리아 여행기




필자는 이번 겨울, 마음 상태에 따라 같은 공간이 아주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있다는 사실을 몸소 체험했다. 학교가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갈 때는 그렇게 정신 사나울 없었던 공항이, 이틀 만에 엄마와의 여행이 시작하는 설레는 공간으로 탈바꿈했기 때문이다.

 

워낙 여행하기를 좋아하는 필자의 가족은 방학 때마다 아시아에서 유럽에 이르기까지 방방곡곡으로 여행을 다니곤 했다. 하지만 필자가 미국으로 대학을 무렵, 아빠의 일도 바빠지게 되었고, 자연스레 셋이 떠나는 여행은 줄어들었다. 이번 겨울방학에도 역시 아빠의 바쁜 일정은 변하지 않았고, 4주밖에 되지 않는 짧은 기간을 탓하며 어쩔 수 없이 여행을 포기하려 했다. 하지만, 늦기 전에 가족과의 여행을 많이 해둬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엄마와 둘이서라도 여행을 가기로 했다. 장소는 엄마가 평소에 가장 가고 싶어 하셨던 이탈리아로 정했고, 이번엔 패키지여행 대신 자유 여행이라는 새로운 도전을 해보기로 했다.



 



시험 기간이 겹친 덕에 관광 일정은 짜지도 못한 , 간신히 숙박과 기차만 예약한 상태로 중간 기착지인 파리 공항에 도착했다. 자유 여행을 앞둔 필자는 고민이 많았다. 혹시라도 딸을 믿고 타지에 단둘이 여행 엄마가 조금이라도 고생할까, 중요한 걸 빼먹진 않았을까 하고 말이다. 하지만 엄마는 이런 나를 지켜보며 군데 돌아보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과 함께, 딸과 같이 여행을 것만으로도 너무 좋다고 필자를 안심시켜주며 부담을 덜어주셨다.


우리가 여행 코스는 프랑스 파리에서 시작해 이탈리아 로마에서 끝나는, 10박 11일간의 여행이었다. 여행하는 내내 우리는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함께 팔짱을 끼고 걸으며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는 , 비싸지 않은 레스토랑에서 피자 한 판을 나눠 먹으며 맥주 한잔을 걸치는 , 그리고 숙소에 돌아와 그날 찍었던 사진을 함께 구경하는 . 그런 사소한 하나하나가 너무나도 즐겁고 소중한 여행이었다.


 



이탈리아에서의 도시였던 베네치아는 힐링 자체였다. 무라노 섬의 아름다운 유리 공예, 부라노 섬의 알록달록 아름다운 집들, 그리고 섬의 따스한 햇볕과 차분한 분위기는 힐링이라는 단어가 무엇인지를 몸소 느끼게 해주었다. 이야기는 중에서도 무라노 섬의 유리 공예 집에서 있었던 일이다. 곳은 각종 아름다운 유리 공예들로 차 있었는데, 중에서도 엄마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반짝반짝 빛나던 샹들리에였다. 전시되어있는 많은 공예들을 한참 동안 구경하던 엄마는 결국 빈손으로 상점을 나왔다. 내가 원하는 물건을 살 때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던 엄마가 정작 자신의 선물은 선뜻 사지 못한 상점을 나서는 모습을 보며, 그동안 엄마가 얼마나 자신보다 나를 우선시했는지를 깨닫게 됐다. 앞으로는 엄마를 챙기는 내가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동시에, 이런 작은 상점에 유리공예 하나를 보고도 행복해하시는 엄마의 표정을 보니, 이번 여행을 오기 잘했다고 생각했다.

 

이번 여행의 또 다른 테마는 자유 여행이었다. 자유 여행은 우리가 원하는 볼거리를 골라서 볼 수 있다는 점, 관심 없는 패키지 상점에서 원치 않는 쇼핑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 등 좋은 점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하지만 우리는 하루가 멀다고 과거에 우리가 패키지여행을 선택했던 이유를 마주해야만 했다. 우리 모녀의 많은 공통점 중에는 유독 심각한 존재감을 나타내는 길치 DNA 있는데, 이는 자유 여행이라는 테마 안에서 더욱 극대화됐다. 여행 다섯째 날, 우리는 이탈리아 두칼레 궁전을 방문하였다. 우리는 아름다운 외관의 궁전 안을 여기저기 관광하면서도 관람 방향을 알려주는 화살표 덕에 다행히도 길을 잃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지하의 감옥으로 계단을 따라 내려간 순간, 하나같이 똑같이 생긴 감옥 방들을 발견하곤 패닉이 시작됐다. 일단은 즐겁게 사진도 찍으며 감옥 구경을 마쳤으나, 다시 1층으로 올라가려는데 출구는 물론 입구도 찾을 없었다. 그렇게 방향 감각 없는 우리 모녀는 감옥을 3바퀴나 ,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한 끝에 힘들게 그곳을 탈출하며, 길치도 유전이라는 것을 처음 깨달았다. 이번 자유 여행 두 가지 이벤트를 통해, 우리 모녀는 다르고, 닮았다는 다시 한번 알게 되었다.


 



여행을 좋아하는 탓에 시간이 때마다 친구들과 여기저기 많은 곳을 다녀왔지만, 엄마와 둘이 떠난 여행은 나에게 색다른 의미를 남겼다. 이탈리아의 아름다운 건축물을 구경하며 감탄하고 더욱 깊이 알게 것도 물론 좋았지만, 하루하루가 흐를 때마다 아쉬워하며 동시에 고마워하던 엄마의 모습이 가장 이유였다. “엄마는 아빠랑 다니면 되니까라는 생각을 하며 나는 매번 아름다운 풍경을 사진으로만 보내드리곤 했다. 그것을 쓸쓸히 감상해왔을 엄마의 모습을 상상해보고, 유럽 여행 내내 너무나 즐거워하던 엄마의 모습을 떠올리니 내가 부족한 딸인 것만 같아 마음이 아팠다. 후회가 남지 않게, 앞으로도 종종 엄마, 그리고 아빠와 둘만의 여행을 다녀보고 싶다.

 

물론 친구들과 수십 개의 네이버 블로그를 철저히 검색해가며 준비했던 여행도 재미있었지만, 부족했던 정보와 준비로도 엄마와 둘이 떠난 이번 여행은 더욱 뜻깊고 평생 기억에 남을 추억이 되었다. 그러니 글을 읽는 독자들도 늦게 전에 엄마와 가족과 또는 사랑하는 사람과 둘이 함께 여행을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