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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IAL/국제 :: Worldpost

두테르테, 그의 아슬아슬한 외줄타기


       최근 한 나라의 대통령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개자식"이라고 부르며 전 세계 언론의 뜨거운 관심사로 떠올랐다. 세계 초강대국 미국을 상대로 이토록 무모하고 용감했던 남자는 바로 필리핀의 로드리고 두테르테(Rodrigo Duterte)이다. 이 발언으로 인해 필-미 정상회담이 취소되는 등 여러 가지 막말과 해프닝으로 두테르테 대통령은 구설에 오르고 있다. 하지만 그를 국제 사회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게 한 것은 바로 대통령으로서의 정책 집행 방식에 있다. 무엇이 두테르테의 캐릭터 상품이 불티나게 팔릴 정도로 뜨거운 논란을 불러일으킨 것일까?

[1]       그는 당선 공약으로 마약, 강력범죄, 부정부패 척결을 국민들에게 약속했고, 마약 용의자에 대한 즉결처형을 대통령 권한으로 합법화함에 따라 필리핀 내에서 대대적인 마약 범죄에 대한 소탕이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2016년 7월 취임 이후 7주간 마약 용의자 1,916명이 사살되었으며, 이는 하루 평균 36명이 처형되었음을 의미한다. 적법한 재판 없는 즉결처형에 대해 국제 인권 단체와 여러 국가들은 강력하게 비판하고 있지만, 두테르테는 이에 굴하지 않고 마약 연루 공무원들의 실명 명단을 공개하는 등 강경한 태도를 이어가고 있다. 이러한 국제 사회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필리핀 국내에서 두테르테의 인기는 엄청나다. 필리핀 내 여론조사에 따르면 필리핀 국민의 91%가 두테르테의 정책을 지지하고 있으며, 사회 치안 안정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주고 있다. 이번 칼럼에서는 반인권적 정책으로 국제 사회의 따가운 시선을 받는 두테르테를 압도적으로 지지해주는 국민들, 그 밑바탕에는 어떠한 이유와 배경이 담겨있는지, 또한 이를 바라보

는 필자의 시각에 대해 논해보고자 한다.

       먼저 두테르테의 정치적 행보에 관해 알아보자. 2016년 대통령 당선 전까지 그는 22년 동안 다바오 시()의 시장을 지냈다. 실제로 두테르테는 마약 중독과 이로 인한 범죄를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로 여겨 1,200만 페소 (한화 약 2억 7천만 원)을 들여 24시간 마약 문제 재활 및 치료 센터를 설립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범죄 예방을 위하여 최신식 범죄 대응 센터를 설립하고 본인이 직접 오토바이를 타고 순찰에 나서는 등 필리핀 사회에 만연한 마약 범죄를 뿌리 뽑는 데 힘썼다. 다바오 시에서 새벽 1시 이후의 술 판매와 지정된 장소 이외에서의 흡연이 금지되었고, 미성년자들에게는 통행금지 시간이 정해졌다. 실제로 다바오 시는 2015년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도시 9위에 선정되었고, 뉴욕 타임스 역시 다바오 시민들을 인터뷰하면서 마닐라 등 다른 필리핀 대도시들보다 안전한 도시임을 기사로 전달하였다.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역시 그는 범죄 소탕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 자수하지 않는 마약 용의자를 사살하겠다는 강력한 선포 이후, 약 60만 명의 사람들이 자수하는 등 실제 필리핀 내에서 두테르테의 정책은 그 효과를 보여주고 있다. 필리핀 대통령실은 두테르테 대통령 당선 이후 범죄율이 약 13% 가량 감소하였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러한 성과에 비해 두테르테 대통령이 국제적으로 비난을 받는 이유는 바로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은 즉결처형의 허가에 있다. 실제로 두테르테 대통령은 시장 재임 당시 다바오 자경단 (Davao vigilante death squads)를 설립하여 지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경단은 정식 경찰이 아닌 시민들로 이루어진 단체로, 두테르테에게 권한을 위임받아 직접 마약 용의자들에 대한 처형을 집행하였다. 5살 소녀 다니카 메이 (Danica May) 가 자경단 활동 중 억울하게 살해되면서 그의 정책에 대한 세계적 비난은 거세졌다. 다니카 메이는 그녀의 할아버지를 처형하러 온 자경단의 총에 맞아 숨졌는데, 할아버지 역시 오래전 마약에서 손을 뗀 것으로 밝혀져 더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실제로 재판 없는 즉결처형은 필리핀 헌법에 어긋나는 일이며, 처벌받는 범죄자 수가 증가함에 따라 죄 없는 희생자 역시 함께 발생할 전망이다. 또한, 자경단의 한 일원이 두테르테가 정치적 라이벌을 사살하라고 사주했다고 고백하면서, 자경단이 법 위에 군림하는 두테르테의 사적 호위대가 아니냐는 비판 역시 쏟아지고 있다. 이러한 비난에도 불구하고 두테르테가 언론에서 "범죄자 10만 명을 죽여 마닐라 만에 던져버리겠다"는 등의 상식 밖의 언행을 일삼으면서, 필리핀 내 인권 유린에 대한 세계 각국 걱정의 목소리 또한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렇듯 수많은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왜 두테르테가 필리핀 내에서 91%라는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지 살펴보려면, 필리핀 사회에서 마약 및 부정부패가 얼마나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필리핀 마약 통제 기구 (Philippine Drug Enforcement Agency)의 통계에 따르면 필리핀 마을의 20%가 마약 관련 문제를 경험하고 있다. 또한, 2012년 UN에 의하면 필리핀은 동아시아 내에서 메스암페타민 (Methamphetamine) 사용률이 가장 높은 국가로 꼽혔다. 마약뿐만이 아니라, 부정부패 역시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낳고 있다. 2014년 Global Financial Integrity에 따르면 필리핀 내 부정부패 및 불법 경제활동으로 인해 1960년부터 2011년까지 약 19조 원의 사회적 손해가 발생하였다. JTBC에서 성황리에 방영되고 있는 <비정상회담>에서는 두테르테의 범죄 정책에 대해 다루었으며, 실제 필리핀 청년이 대표로 나와 마약 및 부정부패 문제가 너무 심각하여 도저히 공정한 재판 및 형사처분이 이루어질 수 없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각국 청년 대표들이 두테르테 대통령을 비난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필리핀 국민이 자국의 대통령을 꿋꿋이 변호하는 모습은 굉장히 인상적이었고, 그만큼 필리핀 국민들이 피부로 실감하는 마약 문제가 심각함을 반증하였다.

 

       절대다수의 필리핀 국민들이 현재 두테르테를 지지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그가 말뿐인 공약을 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말한 것들을 지키고 시행함에 따라, 자신들의 삶이 더욱 안전해졌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매우 호화스러웠던 대통령 취임식 연회와 달리 화려하고 값비싼 요리가 아닌 필리핀 가정식과 주스로 진행된 연회, 그의 검소한 옷차림과 생활방식 역시 국민들에게 큰 호감을 샀다. 이처럼 국내외에서의 평가가 엇갈리는 두테르테의 정치적 판단을 보고 있자면 무모한 동시에 확고한 그의 의지가 드러난다. 하지만 "약이 듣지 않을 때는 수술을 해야 하나?"라는 언론들의 자극적인 기사 제목은 필자로 하여금 악()을 없애기 위한 또 다른 악은 정당화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게 하였다. 부정부패가 너무 심해 최소한의 사법절차조차 진행할 수 없는 필리핀의 상황과, 이를 해결하기 위해 유혈 사태를 불사하고 있는 두테르테와 자경단, 또 그 와중에 억울하게 살해당한 소녀 다니카 메이까지, 이 중 무엇이 합리적으로 먼저 지켜가야 할 가치인지에 대한 판단이 쉬이 서지 않았다.

       그러던 중 제임스 드모나코 (James Demonaco) 감독의 영화 <The Purge>가 떠올랐다. 이 영화는 1년에 하루 12시간 동안 살인을 포함한 모든 범죄가 허용되며, 이를 통해 국민들에게 쌓여있는 공격성과 야만성을 해소하고 사회악을 숙청한다는 설정으로 진행된다. 숙청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치안, 의료를 비롯한 모든 서비스가 중단되며, 광기에 찬 이들은 서로 죽고 죽이며 문명사회는 순식간에 야생으로 돌아간다. 무차별적인 살인과 각종 범죄가 만연하는 그 12시간 동안 모든 이들은 스스로 알아서 생존해야만 하는, 늑대 떼 속에 던져진 한 마리 양일 뿐이다. 주인공은 자신의 딸이 위험에 빠진 한 노숙자를 집에 피신시켜주면서, 그 노숙자를 내놓지 않으면 집을 공격하겠다는 복면을 쓴 한 무리 사람들의 협박을 받는다. 불의에 대한 처벌, 아니 정의와 불의에 대한 구별조차 없는 무법의 세상에서 주인공의 목적은 오로지 생존이다. 법이 사라지는 순간, 옳고 그름은 사라지며 늑대가 양을 잡아먹는 것이 당연한 자연의 섭리가 인간들 사이에서 적용된다. 두테르테의 법적 절차를 무시한 자경단의 즉결처분 허가와 이에 따른 대대적인 피의 숙청은 필자로 하여금 영화의 설정인 The Purge day가 실제로 필리핀에서 벌어질 수도, 아니 어쩌면 이미 벌어지고 있다는 공포를 느끼게 하였다. 비록 두테르테 본인이 의도한 바가 아니더라도, 어쩌면 그는 영화에서처럼 이들을 마약을 핑계 삼아 서로 숙청하게 내버려 두고 있는지도 모른다. 

 

       전 세계 언론에 의해 이른바 "징벌자 (The Punisher)" 라고 불리는 두테르테 대통령은 현재 자신이 마약 및 범죄와의 1차전에서 승리했으며 곧 2차전을 치르겠다고 선언한 상황이다. 물론 전무후무한 그의 단호한 태도와 검거된 범죄자 수가 보여주듯이, 지금까지 그의 강력한 의지는 필리핀 마약 및 범죄 단절에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다. 말뿐인 정치인들에게 염증을 느끼던 많은 사람들 역시 두테르테의 방법이 옳다고 느끼지 않더라도 공약을 확실히 실천해가는 그의 모습에 박수를 보내기도 한다. 강력한 리더십을 향한 갈증은 필리핀 국내뿐만이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두테르테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게 만들었다. 하지만 내리막길에서 한번 가속도가 붙은 수레를 멈추는 데에는 엄청난 힘이 들듯이, 그의 유혈정책 역시 멈출 기미 없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필리핀 국민들이 그를 지지하는 이유는 위에서 말했듯이 단순히 현재 두테르테 정권의 무력행사가 자신이 아닌 범죄자들을 향하고 있다는 맹목적 믿음 때문이다. 다니카 메이와 같은 희생자가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아직 이를 더 큰 정의를 위핸 희생이라고 생각하고 있을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화 <The Purge>가 보여주듯이, 법 위에 군림하는 자경단이 실제로 범죄 근절이라는 목적에만 충실할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많다. 자경단의 총구가 범죄자가 아닌 자신들을 향할 수 있다고 깨닫는 순간 필리핀 국민들은 등을 돌릴 것이며, 두테르테는 그저 무법 사회를 조장한 폭력적인 독재자로 남을 것이다. 두테르테 대통령 그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마약 및 범죄 근절과 건전한 사회의 확립이라면, 그는 하루빨리 브레이크를 밟아야만 할 것으로 보인다. 폭력 정치와 사회 정의 구현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두테르테 대통령의 향후 행보에 귀추가 주목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