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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IAL/사회 :: Current Issues

부산에 걸맞지 않는 김해국제공항




대한민국은 자유시장 경제질서를 기본으로 하는 국가이기 때문에, 수요가 올라간다면 공급도 그만큼 자연스럽게 올라가는 경제체제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적어도 한국의 항공시장에서는 이러한 경제질서가 잘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부산을 포함한 동남권 수요를 담당하는 김해국제공항이다. 필자는 서울에 살고 있기 때문에 해외에 나갈 때 항상 편리하게 인천국제공항 또는 김포국제공항을 이용하지만, 지방에 살고 있는 주위 사람들로부터 해외여행을 할 때 생기는 고충에 대해서 많이 들어본 적이 있다. 김해국제공항에는 최근에 생긴 싱가포르 노선을 포함해 방콕, 다낭, 호찌민 등 5-6시간 걸리는 중거리 국제선들은 존재하지만, 미주, 유럽 또는 대양주로 가고 싶은 사람들은 반드시 어느 한곳을 경유하거나 인천국제공항까지 버스나 기차를 타고 가야 한다. 작년 부산일보의 기사에 따르면, 이러한 교통 불편 때문에 소비되는 교통비가 무려 연간 3500억 원 수준이라고 한다. 다행히도 2020년 3월부터 핀란드 항공사인 핀에어에서 부산 - 헬싱키 직항을 주 3회 운영할 예정이기 때문에 내년부터는 경상도 지역 사람들이 유럽 가는 것이 수월해지겠지만, 여전히 미주나 대양주 방향 직항은 당분간 생길 예정이 없다. 그렇다면, 김해국제공항에는 정말로 장거리 국제선이 생겨도 될 정도로 수요가 충분히 존재하는데, 정부의 개입 때문에 자유시장 경제질서가 지켜지지 않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다."


우선 수요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우선 부산광역시, 울산광역시, 그리고 경상남도 지역을 포함하는 이른바 “부울경” 도시권의 경제 규모부터 알아봐야 한다. 경제 규모는 곧 그 지역 시장의 규모를 의미하기 때문에 수요를 따질 때 중요한 요소들 중에 하나이다. 사실 수도권 경제 규모가 부울경에 비해 월등히 커서 그렇지, 부울경의 경제 규모는 결코 세계 각지의 도시들과 비교해서 작은 편이 아니다.





2014년 미국 브루킹스 연구소에서 수집한 데이터에 따르면, 부울경 도시권의 GDP(PPP)는 2965억 달러이며 전 세계 도시권들 중 36위에 해당되는 도시권에 해당된다. 옆 나라 일본과 비교하자면 3637억 달러의 GDP(PPP)를 가진 나고야 도시권보다 조금 낮은 수준이며 1933억 달러의 GDP(PPP)를 가진 후쿠오카 도시권보다 훨씬 큰 수준이다. 그렇다면, 나고야 도시권의 관문인 주부 국제공항과 후쿠오카 도시권의 후쿠오카 공항에는 현재  미주, 대양주, 유럽 직항이 존재하는지 궁금해서 아래의 표로 정리해봤다.


주부 국제공항                                                              


항공사

목적지 및 취항 횟수

델타항공

호놀룰루 주 5회

델타항공

디트로이트 주 6회

루프트한자

프랑크푸르트 주 5회

일본항공

호놀룰루 매일 1편

핀에어

헬싱키 매일 1편


후쿠오카 공항 

(델타 항공에서 호놀룰루행 비행기를 매일 1편 운항하고 있었으나 5월에 단항했기 때문에 제외)

항공사

목적지 및 취항 횟수

핀에어

헬싱키 주 2회

하와이안 항공 (11월부터 취항)

호놀룰루 주 4회


부산 김해국제공항 : 현재 장거리 국제선 전무


보다시피 김해국제공항의 장거리 국제선은 내년 3월에 생기는 부산-헬싱키 노선을 포함해도 나고야, 후쿠오카에 비해 굉장히 초라하다. 후쿠오카 도시권은 부울경보다 규모가 훨씬 작은데도 불구하고 이미 헬싱키 노선이 존재하고, 호놀룰루 노선이 몇 개월 있으면 곧 생길 예정이다. 부울경보다 규모가 살짝 큰 나고야 도시권은 호놀룰루행 비행기가 거의 매일 2편씩 뜨고 있고, 디트로이트, 프랑크푸르트, 헬싱키 등 다른 장거리 노선도 존재하고 있어 꽤 다채롭다. 물론 나고야 근처에 토요타 본사가 존재하기 때문에 상용수요가 꽤 존재한다는 점도 감안해야 되지만, 부산 바로 옆에 있는 울산에도 현대자동차, SK이노베이션, 삼성SDI 등등 다양한 공장들이 존재하고 있어서 상용수요가 제로에 가깝지는 않다. 부울경의 경제 규모로만 봐서는 충분히 장거리 노선 신설이 가능하다는 얘기이다.


그러면 이른바 나성 특별시라고 불리는 로스앤젤레스와 부산을 오고 가는 실제 수요는 얼마나 될까? 보통 항공 노선의 수요를 알아볼 때는 흔히 PDEW(passengers Daily Each Way)를 사용한다. 예를 들어서, 서울-보스턴의 PDEW가 48명이라고 한다면 하루에 편도 48명이 왕래한다는 뜻이 된다. PDEW 같은 데이터는 꽤 고급 데이터라서 찾기가 쉽지는 않지만, 아시아 태평양 경제협력체 (APEC)에서 발표한 자료에서 부산-로스앤젤레스 (PUS-LAX) 노선의 2015년 PDEW를 찾을 수 있었다.




2015년 부산-로스앤젤레스 노선의 PDEW는 40명으로, 하루에 편도 40명이 왕래하는 노선이다. 일주일에는 평균적으로 280명 정도가 로스앤젤레스에 간다는 얘기이다. 하지만 4년이 지난 지금은 수요가 더 늘었을 가능성이 굉장히 높고, 이 통계는 버스, 기차 등 육로를 통해서 인천국제공항을 이용한 사람들은 전혀 집계가 되지 않기 때문에 실제 수요는 통계보다 훨씬 높을 것이다. 그리고 직항 노선 개설 자체가 새로운 수요를 만들고 부산-로스앤젤레스-샌프란시스코 (PUS-LAX-SFO)나 부산-로스앤젤레스-뉴욕 (PUS-LAX-JFK) 같이 환승을 통해서 다른 미주 도시의 수요들도 잡을 수 있기 때문에 수요만 봐서는 주 3-4회 취항은 충분히 가능하다.


이처럼 부산에는 장거리 국제선 수요가 많지는 않지만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여태까지 장거리 노선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을까? 우선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부산발 국제선 신설에 그다지 큰 관심이 없다. 아무래도 서울발 국제선에 비해서 수익성이 불확실하고, 회사 입장으로서도 대부분의 항공기를 인천국제공항에 몰아넣는 것이 이득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미국 항공사나 유럽 항공사들은 부산 노선 신설에 관심이 있을까? 아직까지 미국 항공사들이 관심을 표한 적은 없었지만, 유럽 항공사들이 관심을 표한 적은 여러 차례 있었다. 대표적으로 핀에어의 사례가 존재한다. 내년 3월부터 핀에어가 부산-헬싱키 노선을 신설하지만, 이 노선을 신설하기 위해 핀에어의 많은 노력이 있었다. 핀에어는 옛날부터 동남권 시장이 매력이 있다고 판단해서 해당 노선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고, 대한민국 국토교통부와 회담을 계속해서 해왔다. 하지만 국토교통부는 부산발 장거리 노선 신설이 대한항공에 손실을 끼칠 수 있다는 이유로 계속해서 외항사들이 장거리 노선 신설을 못하도록 방해공작을 해왔고, 신설 조건으로 ‘300억’을 대한항공에 보상할 것을 요구했다. 이런 터무니없는 요구를 핀에어 측에서 흔쾌히 받을 이유가 없었고, 그렇게 합의를 보지 못한 채 계속 미루어지다 최근에 합의를 보게 된 것이다. 핀에어의 사례로 미루어보아 김해국제공항에 장거리 국제선이 존재하지 않았던 진짜 이유는 대한항공이라는 자국 회사의 보호를 위해서였던 것이다.



필자는 이러한 국토교통부의 결정을 이해할 수 없다. 여태까지 대한항공이라는 한 한국 회사의 이익을 위해서 김해국제공항에는 장거리 국제선이 없었고, 이 때문에 동남권에 거주하는 수백만 명의 주민들이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현재 부울경 도시권의 장거리 수요가 전부 대한항공으로 가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오히려 외국 항공사들이 이러한 김해국제공항의 상황을 잘 알기 때문에, 도쿄나 홍콩을 경유해서 미국 유럽으로 가는 항공권을 싼값으로 팔면서 부산 주민들을 유혹한다.





다음은 일본항공에서 판매하는 부산 출발 도쿄(나리타) 경유 뉴욕 도착 스케줄이다. 왕편 복편 모두 2-3시간 정도의 경유 시간이고 시간대도 괜찮기 때문에 부산 주민들을 유혹하기 쉬운 항공편이다. 실제로 일본항공은 부산의 장거리 수요를 잡으려고 노력하는 항공사인데, 뉴욕뿐만 아니라 로스앤젤레스, 프랑크푸르트, 시애틀, 보스턴 등등 다른 미국 유럽 도시로 가는 항공편을 좋은 스케줄로 대한항공, 아시아나보다 싸게 판매하는 경우가 많다. 자국 회사의 이익을 위해서 장거리 노선 신설을 막고 있었던 국토교통부인데 일본 회사도 반사이익을 얻고 있는 참으로 아이러니한 실정이다.


다른 나라들의 지방 공항들에서는 전혀 반대로 오히려 외항사들이 노선을 신설할 수 있게 장려를 한다. 예를 들어서 일본의 많은 지방 공항들은 에어서울, 이스타항공과 같은 LCC들에게 펀딩을 해가면서까지 일본 지방- 서울 노선을 유지하려고 노력을 하는데,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는 외국인 관광객들의 유입을 통한 지역 경제 활성화이고, 둘째는 지역 주민들의 편의성을 위해서이다. 현재 여러 외항사들이 부산 취항을 위해서 펀딩 없이도 올려고 하는 상황인데, 굳이 대한항공 하나 때문에 그들의 취항을 막아야 하는지 굉장히 의문이다. 만일 부산에 유럽과 미주 방향 국제선들이 생기게 된다면, 지역 주민들의 편의성이 더 높아지기 때문에 연 3500억 원의 교통비를 낭비할 필요가 없게 될 것이다. 또한, 현재 이른바 "서울 공화국"이라는 비판이 생길 정도로 서울에 모든 것이 집중되어 있는 구조인데, 서울만 중점적으로 방문하는 외국인 관광객들을 부산에도 오도록 유도하면서 지방경제도 살릴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이다. 이러한 많은 장점들이 있기에 필자는 앞으로 국토교통부가 보수적이지 않은 관점으로 접근해서 동남권 경제 규모에 알맞은 장거리 노선들이 신설됐으면 하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