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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IALS/대만 알아보기 - 完 -

대만 알아보기 :: (7) 대만은 어째서 일본을 좋아하는가

대만은 어째서 일본을 좋아하는가 (사진 출처: http://sodyssey.egloos.com/2257616)

위의 사진은 아직 세계 2차대전까지 일본이 제국주의에 미쳐 나라 꼴이 말이 아니던 시절 동북·동남아시아를 포함해 심지어 오스트레일리아 일부 지역까지 점령했던 일본의 "리즈 시절"입니다.  제국주의와 식민지배의 업보는 이제 일본으로서는 평생 지고 가야할 문제였지만, 위 그림은 역설적으로 동아시아의 한 나라가 가장 먼저 서구식 문물을 흡수하고 근대화를 추진하여 다른 주변국들 (예를들면 한국과 중국)을 앞설 수 있었다는 반증을 하기도 합니다.

현재는 점차 나아지는 반응을 보이고 있지만, 한국과 일본의 관계의 기반은 그다지 좋지 않습니다.  "로마인 이야기" 의 저자인 시오노 나나미 씨는 아시아 3국 문제에 대해서 "옆나라 하고는 잘 되는 일이 거의 없다.  오히려 잘 되는 것이 이상하다.  옆 나라와 잘 되리라 기대할 수 없다면 전쟁만 안 나면 잘된다고 봐야 한다" 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출처: 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ctg=15&total_id=2539696)  한국은 과거 삼국시대부터 고려 전후반의 왜구, 조선시대에 있었던 두 번의 왜란들같은 역사적인 사건들이 많이 있었지만, 가장 큰 원인은 사실 조선 후반의 근대시대에 일본과 벌어진 강화도조약, 을사늑약, 을미사변 등을 거쳐 결국 한일강제합병으로 시작된 식민지 지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애초에 수 많은 분쟁들을 포함해 전쟁까지 벌어졌고 식민지 경험까지 있는 이상 두 나라가 근본적으로 가까워질 수 없는 것은 - 적어도 현재의 시점에서는 - 불가능할 지도 모릅니다.  그 외에도 현재까지 벌어지고 있는 한일어업협정이나 독도 문제등으로 두 나라는 공식적으로는 분쟁지역을 공유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하지만 위와 달리 민간 차원에서는 상당수의 한국인들과 일본인들은 잘 지내는 편인데, 대외적으로 나오는 일본에 대한 이미지와 사람 개개인은 다르다는 것을 서로 인식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 해외 여행이 자유로워지고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에서 일본 문화 개방을 시작하자 두 나라는 현재 문화적으로는 많이 가까워진 편입니다.  이를 달리 말하면 공식적으로 일본 문화 개방을 열기 전에는, 일본에 관심이 있는 한국인이 아닌 이상 여러가지 일본에 대해 안 좋은 선입견을 가질 수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비슷한 시기에 일본의 식민지였던 대만에 대해 알아봅시다.  대만의 경우는 조선보다 조금더 빨리 1895년 부터 일본의 식민지배를 시작했습니다.  유럽의 다른 식민지배 열강들과는 달리 일본은 자국의 식민지에 유례없는 동화정책을 실행한 적도 있으며, 때로는 이 두나라를 식민지가 아닌 '대일본제국'의 영토로 편입하기 위해 갖은 수단을 썼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일본 본토 외에 세워진 제국 대학들이 있습니다.  현재도 일본의 명문 대학교를 자처하고있는 일본내 7개 제국 대학 (도쿄, 교토, 토호쿠, 큐슈, 홋카이도 (예외 있음), 오사카, 나고야) 들 외에도 현 국립타이완대학의 모체인 타이페이 제국대학과 서울대학교의 전신의 일부가 되는 경성제국대학을 세우기도 했었습니다.  이 외에도 창씨 개명등 여러 가지의 예가 있으나 이 정도로 넘어갑니다.

결과적으로 이런 식민지 동화 정책은 일본이 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하며 철수하게 되며 두 나라가 독립하게 되지만, 이후로 두 나라가 유지한 대일관계는 커다란 차이가 있습니다.  우선 같은 나라에게 비슷한 방식으로 식민지배를 받은 두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한일관계를 볼 때 대만과 일본의 그것은 그렇게 심각하지 않은 듯합니다.  철수과정에서 일본은 각 나라에 자신들이 남겨놓은 사업체들이나 행정 시스템등 여러가지 인프라들을 남겨두고 갑니다.  (이는 식민지근대화론과는 상관 없다는 것을 미리 밝혀둡니다.)  그리고 이런 일본의 "남겨진 유산" 들을 잘 활용하여 자국 경제발전의 모태로 삼은 나라들은 아마 일본의 수 많은 식민지들 중 한국과 대만 정도입니다.

하지만 독립 후의 과도기에서 두 나라가 걷는 성향은 다릅니다.  한국은 '친일' 에서 신탁통치 등을 위시한 '친미' 성향의 정부가 들어섭니다.  물론 일본도 미국의 통제 하에 놓이게 되었기 때문에 한국은 일본과의 관계를 아주 끊을 수는 없었지만, 일제강점기에 비해서는 한반도에 대한 일본의 영향력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지요.  대만도 일단 시작은 비슷한 입장이었습니다.  중국 본토의 공산당과 국민당은 두 차례의 국공합작을 하면서 일본을 밀어냅니다만, 장개석이 이끄는 국민당은 그 이후 공산당에게 패배해 대만섬으로 쫓겨오게됩니다.  그러면서 국가의 기반을 일본인들이 남기고 간 사업체들과 사회적 자원들에 힘입어 발전하기 시작합니다.  또한, 중국 본토의 공산당 정부를 견제하기 위한 미국의 정책상 미국의 원조가 흘러들어오게 됩니다.  그리고 한국의 경우도 북조선 (아직 북한에 확실한 정부가 생기기 전) 지역에 들어온 소련 군정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의 지원을 받게 됩니다.

여기까지는 두 나라가 걸어온 길이 비슷합니다.  하지만, 1950년 한국 전쟁이 벌어짐으로서 한국은 그 때까지 그나마 남아있던 일본의 물적 자원들을 모두 상실하게 되고 이후 독자적인 길을 걷기 시작하게 되지만, 반면에 대만은 어느 정도 왜색이 남게 됩니다.  일단, 이 시점에서 초대 국민당 총재 겸 대만 초대 총통인 장개석이 일본에 귀화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는 후에 대만과 일본의 관계를 어느 정도 묶어두는 변수가 되었기 때문에, 초기부터 일본과 대만의 관계는 한일관계처럼 나쁜 형태로는 발전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는 일본이 2차 세계대전 후 패전국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을 때부터 성립된 관계이기 때문에 적어도 대만의 일본 외사랑에 대한 이유중 일본이 강대국이기 때문에 그렇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저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대만에 대한 식민지배는 조선에 대한 그것보다 상대적으로 길었고, 따라서 어느 정도는 일제가 시행했던 식민지 동화정책이 조선에 비해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1940년에서 60년대 사이에 태어나신 양국의 어른들의 일본관이 서로 다르다는 점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 세대는 일본의 식민지배를 겪은 피식민지민들의 자녀 분들입니다.  따라서 식민지배를 직접적으로 겪은 분들의 가정에서 자라온 케이스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는 반일감정을 가지고 계시는 것이 - 한국인의 입장으로 보았을 때는 - 당연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따라서 현재까지 한국인들 사이에서는 일본에 관련된 발언을 하는 것이 민감한 사항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이에 비해 대만은 일본에 필요 이상이라고 할 만치 애정을 보내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중국이 급성장 하면서 분위기가 조금은 달라지고 있습니다만) 2차 세계대전 후 몰락한 일본이 다시 한번 경제력을 바탕으로 국제 무대에 힘을 쓸 수 있게 되면서 대만인들의 일본관이 눈에 띄게 달라집니다.  믿을 수 있는 나라에서 갑자기 일본을 형님국 이상으로 떠받들기 시작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의 글을 인용합니다.

일본은 청일전쟁의 대가로 대만을 할양받게 되어 1945년까지 통치하였는데,그 기간이 한국보다 길었고 더불어 해방 이후 들어온 국민당 정권의 반체제적 지식인(이들은 바로 중일전쟁 시기에 육성된 인재들이었다)들에 대한 대규모 숙청 덕에, 상대적으로 일본의 식민지배를 긍정적으로 보게 된 것이다.

또한 조선에 비해서 일본의 대만 통치는 전세계 식민지 역사상 찾아보기 힘들만큼 매우 성공적이었다. 우선 청나라 대만통치 자체도 만주족에 의한 식민지배와도 같았으니 일반인의 입장에선 윗놈들이 바뀐 것에 지나지 않았다. 또한 조선과 다르게,고토 심페이 등 유능한 민간인 총독이 자주와서 대만을 통치했었고, 사탕수수재배를 바탕으로 식민지 역사상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100% 자립도와 대만인들에게 상당한 경제적인 발전을 이루게 해주었다. 일본의 정치나 문화적인 억압은 조선에 비해서 많이 부드러웠고, 그 탄압은 해방 이후에 들어온 국민당 정권의 탄압에 비하면 별것 아니었다고 받아들여져서 상대적으로 친일본정서가 강해졌다. 당시에 일본인들 사이에서는 대만인들은 당근으로 회유하는게 가능하지만 조선인들은 때려야 말을 듣는다(...)고 했다

아, 물론 초기에는 일본 식민 지배에 많이 저항했었다. 대나무숲에서 게릴라전을 벌인다던지 하면서. 그리고 도중에도 저항했다. 이를테면 1930년 여러 소수 부족들이 창칼을 들고 일본인들을 살해하면서 벌어진 저항에 일부 대만인들이 참가하면서 대대적인 내전으로 벌어지는가 싶었으나, 역시 일본의 무자비한 탄압과 학살(이 저항운동의 중심이던 대만 시디그 족은 마구잡이로 학살당해 지금까지 대만에는 겨우 300명 정도만 살아남아있다. 이들은 일본에 대하여 대대로 이를 간다고 할 정도로 싫어한다....) 로 오래가지 못한 적도 있다.

출처: 엔하위키


식민지배 외에 한국과 대만을 역사적 맥락에서 식민지배의 의미를 추적해본다면, 대만을 중국의 일부로 보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일단 대만인들을 하나의 민족으로 놓고 볼 경우 대만은 독립된 국가로서 존재해 본 적이 그다지 없습니다.  맨처음 포르투갈인들에게 섬이 발견된 이후 네덜란드와 스페인의 치하에 놓였으며 이후에 잠시 정성공이 반청복명의 기지로서 세운 정씨왕국이 무너진 후 청나라에 복속, 그리고 그 이후에 일본의 지배를 받았고, 그 다음에서는 중국 본토에서 국민당을 위시한 세력이 건너와 중화민국을 세운 것입니다.  즉, 과장을 조금 보태서 내성인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일본은 수 많은 외세 지배자들 중에 하나에 지나지 않을 지도 모릅니다.  이 반면에 한국은 일제강점기를 제외하면 천 년 이상 외세의 지배를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따라서 일본의 식민지배에 대한 두 나라의 "일반적인" 역사 인식을 살펴 보면,

한국의 경우, 마치 일본이 자신들의 과거를 지나치게 "미화" 하는 것처럼 과거 피식민지국가로서의 피해자임을 강조하며 일본을 비난하지만 여기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과거 일제강점기 때의 대결 구도는 대부분의 독자들이 생각하듯이 일본인과 한국인의 대립이 아니라 '일본, 한국의 지배층, 자본가 대 일본의 피지배층, 농민, 한국의 피지배층' 입니다.  (물론 한국인 지배층과 자본가는 이 시대에는 대다수가 친일파이거나 일제 부역자였습니다)  때문에 당시 일본 본토에도 제국주의, 나아가서는 군국주의로 인해 피해자들이 여럿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강만길 전 상지대학교 총장님의 말씀을 인용합니다.

일본의 역사 왜곡에 대한 시정 요구의 강도를 높이면 높일수록 우리 역사교육 문제도 재고되어야 한다. 우리 교과서의 한·일 관계사 부분을 가능한 한 객관성 높게 쓰고 가르치는 일이 중요하다. 특히 근대사 이후 부분에서 일본의 한반도 침략사를 철저히 가르치되 그 객관성을 최대한으로 높여야 한다. 그리고 일본의 한반도 침략에 대한 책임을 묻는 쪽에 더 무게를 두기 보다, 앞으로의 아시아세계를 평화롭게 하기 위해 지난 침략의 역사를 철저히 가르쳐야 한다는 쪽에 더 의미를 두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

일본제국주의의 한반도 침략사를 가르치면서 반드시 친일파의 역사적 행적도 함께 가르쳐야 한다. 그것도 반민족행위의 사실만을 가르칠 것이 아니라, 그들이 어떤 상황에서 무슨 생각으로 어떻게 민족을 배반하게 되었는가를 분석적으로 가르침으로서 역사교육의 효과를 높일 수 있어야 한다. 나아가서 해방 후에도 왜 그 세력이 숙청되지 못했는가, 그 후유증이 역사 위에 어떻게 남았는가 하는 문제까지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

한줄로 요약하자면, 왜곡까지 할 정도로 한국의 피해를 강조하기에 앞서 양쪽의 문제를 입체적으로 볼 수 있는 교과서를 만들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에 반해 대만인들은 역사왜곡을 하면서까지 자국을 일본 식민지에 대한 수혜자로 나타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중국과 미국의 핑퐁외교 이후 많은 나라들이 대만 정부와 단교를 하는 과정에서 일본에 대해 대만 언론들은 "일본의 수상과 덴노가 고개를 조아리며 눈물을 흘렸다" 라는 식으로 정신승리법을 시전한 거짓 왜곡 기사를 쓰는가 하면 아예 이 쪽에서는 리덩후이 전 총통이 2007년 여름에 일본 전범들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경우가 있기도 했습니다.  이 총통이 조금 특별한 케이스이기는 하지만 "고이즈미 총리의 참배를 충분히 이해한다," "전쟁당시 일본 해병대에서 복무하다 숨져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된 친형을 방문하고 싶다" " 형의 죽음이 고이즈미 참배를 지지하는 이유가 아니다" 라는 등 여러가지 민감한 발언들을 했지요.  더군다나 친일파 청산에 있어서 한국의 친일파 청산은 대만의 그것에 비하면 훨씬 나으면 나았지 못하지는 않습니다.  아니 애초에 초대 총통부터 일본에 호의적이었기 때문에 이루어지지 않고 자연스럽게 스며든 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만은 일본, 중국과 함께 조어도 (센카쿠제도) 에서 영유권 분쟁중이며 종종 사망자도 발생하기도 합니다.  즉, 어디까지나 과거에 대한 긍정과 외교, 문화적인 친일 노선을 갈 수는 있어도 자국의 이익에 대한 국가적인 일까지 친일까지 가지는 못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 비해서는 드러나지 않지만 대만 내에서도 일제 식민지배의 부당함을 알리려는 노력도 약간이나마 있습니다.

대만 충렬사, 항일 위인들을 포함하여 대만의 많은 위인들이 모셔져 있다 (사진 출처: http://kr.blog.yahoo.com/startour2/3060)

위 충렬사의 벽들에는 항일 전투들 및 일본군이 자행한 대만 원주민 시디그 족 학살 사진들도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렇듯 한국에 비해서는 친일 감정이 훨씬 커다랄 지언정 반일적인 정서를 가진 대만인들도 공존하다보니 대만 에서도 일본에 대한 과거사 문제에 배상의 요구가 나오기도 합니다.  2차 대전 강제 징용이나 종군위안부, 일본의 대동아공영권에 대한 부정적 인식등은 어느 정도 한국의 그것과 비슷할 수 있기 때문이죠.

따라서 대만이 한국에 비해서는 친일 성향을 보여도, 늘 노골적인 친일이라고 다 밀어붙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