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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IAL/문화 & 예술 :: Culture & Art

당신이 애니팡을 멈출 수 없는 이유

※ 이 글은 Berkeley Opinion의 코어 스탭 박준석 군의 글입니다.


대한민국이 애니팡에 푹 빠졌다. 일일 이용자 1,000만 명에 동시 접속자가 200만 명, 9월 신규 설치자 수가 무려 764만 명에 달한다고 하니 말 그대로 센세이션이라 할만 하다. 지하철, 카페, 식당, 학교 등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든지 애니팡을 즐기는 것을 볼 수 있다. 애니팡의 인기는 스마트폰 게임이 젊은 세대들을 대상으로 만들어진다는 편견을 뛰어넘어 전 연령층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이런 놀라운 객관적 사회 현상에도 불구하고 “무슨 소리야! 나는 한 번도 해본 적도 없는데...”라고 말하는 독자는 이 글에서 과감히 배제한다. 하트가 채워지는 시간을 이용하여 글을 쓰고 있는 필자와 공감할 수 있는 독자를 위해서 이 글을 쓴다. 아울러, 이 글에 부정확한 내용이 있다면 언제든지 필자에게 알려주기 바란다. 주어진 40분 동안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써 내려간 것이기에 다소 정확하지 않은 내용이 있을 수 있다. 기억하자, 하트가 모두 채워지는 시간은 40분이다.


(애니팡의 게임 장면)


주주클럽과 애니팡


사실 애니팡의 게임 형태는 우리에게 친숙하다. 혹시 주주 클럽을 기억하는가? 스마트폰이 세상에 나오기 전, 한 휴대폰 제조사에서 기본 게임으로 설치해 놓은 게임이다. 가로와 세로에 각각 7줄씩 총 49마리의 동물 모양 블럭을 세 마리씩 맞춰 없애면 단계가 올라가는 게임이다. ‘비쥬얼드’나 ‘주키퍼’ 역시 마찬가지로, 애니팡의 기본적인 포맷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기술적으로 다른 점이라고는 아이템이 있다는 것, 그리고 피쳐폰에서의 이동 버튼이 스마트폰에서는 드래그로 바뀌었다는 것밖에는 없다. 그렇다면 6~7년 전에도 이미 존재했던 이 단순한 포맷의 게임이 지금 이렇게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이 질문을 던지는 이유는 필자가 만약 주주클럽의 제작자였다면 애니팡의 성공이 너무나도 배 아플 것 같기 때문이다! 업계에서 꼽는 애니팡의 가장 큰 성공 요인은 한국인이 대부분 사용하는 소셜 메신저인 카카오톡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이다. 하지만 너무 뻔한 분석이다. 이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내용은 애니팡에 숨겨진 심리적 성공 요인이다.



애니팡의 성공 요인


1. 소통에 대한 욕구


(애니팡의 하트 시스템)

애니팡을 이용하려면 “하트”라는 일종의 참가비가 필요하다. 하트는 8분에 한 개씩 생기는데, 최대로 가질 수 있는 하트의 수가 5개로(추가적으로 3개를 더 저장할 수 있기는 하다)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게임을 무한으로 즐길 수는 없다. 다만, 하트를 생성하는 방법이 있는데, 현금 결제를 하거나 지인들과 하트를 주고받는 것이다. 특히, 요즘 사회적으로도 이슈가 되고 있는 하트 제도는 관계를 중시하고 소통에 목말라 하는 한국인들의 심리를 잘 이용한 제도이다. 지인들과 하트를 주고 받음으로써 사용자들은 현대 사회의 소통 부재로 인한 갈증을 해소하는 것이다. 애니팡의 제작자는 이 “하트”를 두고 “게임을 뛰어넘은 무형의 선물”이라고 정의한다. 이 작은 선물을 주고 받으면서 이용자들은 함께 게임을 한다는 느낌을 받음과 동시에 작은 형태의 소통의 장을 형성한다. 필자의 경우, 하트가 필요할 때 랭킹을 보면서 일괄적으로 하트를 보낸다. 피상적이라면 아주 피상적이다. 일부 지인들과는 막상 대화는 하지 않으면서 하트만 주고받는 경우가 생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연락이 끊겼던 선후배나 지인들에게 하트를 빌미로 연락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되기도 했다. 필자에게 애니팡을 소개해준 친구가 처음 애니팡에 대해서 말한 것이 “헤어져서 연락도 하지 않던 전 여자친구와 다시 친한 친구가 되게 해준 신기한 게임”이라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최근에는 하상욱 시인의 <애니팡>이라는 시가 많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애니팡>


서로가

소홀했는데


덕분에

소식듣게돼


                                                                         - 하상욱 단편시집 ‘애니팡’ 中에서


이 짧은 시가 많은 이들의 공감을 이끌어내고 있는 것 역시 애니팡에서 “소통”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2. 경쟁심리


애니팡의 메인 페이지는 랭킹이다. 원하는 점수를 얻었을 때 따로 랭킹 등록을 해야 하는 다른 게임과는 달리, 점수를 획득함과 동시에 랭킹이 매겨진다. 그것도 얼굴도 모르는 전세계의 수많은 사용자들과의 랭킹 비교가 아니라 카카오톡에 등록된 본인의 친구들 사이에서의 랭킹이다. 카카오톡 친구로 등록된 사람이라면 누구나 1등부터 꼴등까지 순위가 매겨지기 때문에, 애니팡은 이용자들의 경쟁 심리를 자극한다. 이 애니팡의 랭킹 제도는 특정 친구를 이기고 싶고 나의 랭킹을 과시하고 싶은 인간의 본성을 슬그머니 건드렸다. 이 경쟁 심리가 바로 사람들이 애니팡에 집착하게 하는 이유 중 하나인 것이다. 실제로 고득점을 기록하면 “자랑하기” 탭이 나타나는데, 다른 친구들에게 자신의 점수를 보여주면서 “OO님이 몇 점을 기록하여 당신을 이겼습니다!”라는 도발적인 문구가 나타나기도 한다. 이런 멘트를 받고 애니팡을 실행시키지 않는 이용자가 얼마나 될 것인가! 싫어하는 친구가 랭킹 1위라서 아예 카카오톡 친구에서 삭제했다는 말이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경쟁심리 뒤에 숨은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을 소개하겠다. 하트를 받고 이에 대한 답례로 하트를 돌려준 적이 있는가? 그 때 그 친구의 점수를 한 번 확인해보자. 그 친구의 점수가 내 점수보다 낮은 경우가 많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묘한 웃음을 짓게 될 것이다!



3. “1분”의 비밀


(필자가 애니팡에 빠진 결정적 이유이다!)

애니팡의 게임 시간은 1분이다. 기존의 퍼즐게임들은 콤보를 해나가거나 미션을 완료하면 시간이 연장되는 방식을 택했기 때문에, 고득점을 위해서는 오랜 시간 게임을 해야만 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부담이 되는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애니팡은 시간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든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애니팡의 1회 평균 이용시간이 6분 20초라고 한다. 하트 5개를 이용하여 다섯 게임을 하는 시간과 거의 일치한다. 잠깐의 시간이 생기면 습관적으로 애니팡을 이용한다는 것이다. 또한, 이용시간의 제한은 애니팡의 속도감을 높임으로써 더 큰 재미를 유발한다. 빠른 눈과 양손을 이용하여 1분동안 최고의 점수를 내야 한다. 1분이라는 비교적 짧은 시간의 압박이 있기 때문에 게임을 이용하는 동안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게 되고, 제한시간 1분이 순식간에 끝나버리는 것이다.



애니팡의 인기가 언제까지 유지될지는 모르겠지만 유사한 포맷과 이름을 가진 캔디팡 등의 게임이 생겨나고 있는 것을 보면 당분간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기반으로 한 모바일 게임이 상당히 인기를 끌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애니팡의 성공을 단순히 카카오톡 기반의 포맷 때문이라고 치부하기에는 그 뒤에 숨은 심리적 요인이 상당히 크다. 애니팡의 성공은 인간이 가진 본성의 가려운 부분을 살짝 긁어주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에게 큰 호응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혹시 지금 문득 애니팡의 “팡! 팡!”하는 사운드가 떠오르는 독자가 있다면, 이 글 역시 그들에게는 심리적 촉매제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