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자들의 섹스 – 중국 황제들의 성생활

Posted by 스프링데일
2012. 7. 25. 16:22 EDITORIAL/문화 & 예술 :: Culture & Art

사진 출처: http://blog.naver.com/codesss/50004293203

마음대로 자신이 원하는 여성과 섹스를 할 수 있다?


왕비와 수 천명의 후궁들, 그리고 궁녀들을 상대로 언제나 원하는 날에 섹스를 할 수 있다?


인류의 역사가 시작되고 대부분의 문명에는 사람들 사이의 여러 가지 계층 구조가 존재했고, 그런 계층의 최상위 정점에 서 있는 사람들을 우리는 지배자라고 한다.  왕, 지배자, 마립간, 집정관, 황제 등 세상에는 다른 사람들을 다스리는 사람들이 있으며 이런 권리는 또한 많은 능력과 책임의 필요를 동반해야 하기에 인류의 역사에서 지배자는 항상 피지배자들보다 적은 숫자로 존재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마르크스의 말처럼 지배자들은 상위 계층에 있는 자들로서 때때로 하위 계층의 피지배자들을 핍박할 수 있는 힘을 가지기도 했다.


보통 우리가 조선의 국왕이나 일본의 막부, 프랑스의 왕, 인도의 황제, 로마의 집정관, 페르시아의 샤 등의 권력자들을 생각한다면 언제나 막중한 권력을 짊어진 채 국민들을 이끄는 자들로 생각할 수 있다.  또한 그들이 속한 정치 시스템을 막론하고 대부분의 정치적 환경에서 최정점에 서있는 자들이었기에 정치적, 전략적 혼인은 다반사였고 언제나 국무에 쫓겨살아야 하는 입장이었다.  역사가 말해주지만 우리는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책임을 다하지 않았을 때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알고 있다.  가까운 명나라의 만력제는 48년의 제위기간 중 30년을 놀았고, 조선 최고의 막장왕 연산군은 어느 정도 멀쩡히 돌아가던 조선 전기의 정치판에 갑자기 툭 튀어나와 깽판을 쳐버렸으며, 이런 연산군을 초월한 최강의 막장군주인 고려의 충혜왕도 있다.  


또한 근친상간을 순수하게 즐긴 로마의 칼리굴라 같은 현대의 윤리관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녀석이 있는가 하면, 달기의 꾐에 빠져 은나라를 말아먹은 것으로 알려진 주왕도 있다.  대부분의 이유는 이들이 결국 자신이 속한 위치에서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않고 권리만을 누린 것인데, 따라서 일반적으로 “정상적인” 왕도를 걷는 지배자들은 그들이 누릴 수 있는 권력 자체도 그들이 다스리는 국가의 경영을 위한 것들이었다.  오늘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그들 중 중국 황제들의 섹스.  즉, 성생활이다.


어려운 얘기는 이쯤 해두고 이제 그들의 섹스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황제가 되면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여러분들처럼 애인이 없어서 외로워 하지는 않는다.  황궁에 들어오는 여자는 황후부터 최 말단의 궁녀에 이르기 까지 모두 황제들의 소유이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에서도 대부분 그랬지만, 중국 정도로 커다란 제국을 유지할 수 있는 나라들의 황궁은 말 그대로 더 많은 인구, 즉 더 많은 여성들이 근무하고 있었는데, 중국의 경우에는 보통 최소 3천 명에서 최대 2만명까지 궁녀들을 관리했다고 한다.  


그런데 3천명이라고 따지고 황제가 이들을 “남자”로서 책임을 져야 하는 관계라면 단순 계산만으로도 어림잡아 8년 동안 매일같이 그들과 번갈아 가면서 섹스를 해야 할당량을 맞출 수 있다.  그리고 황제 소유의 각 여인들은 다시 한번 황제와 잠자리를 가지기 위해서는 다른 남자를 품을 수도 없는 채, 다시 8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즉 여자들이 워낙 많으니깐 황제도 어떻게 누구부터 함께 동침해야 하는지 당황했을 것이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춘추 전국 시대 이전의 주나라 때부터 황제가 어떻게 잠자리를 드는지 규칙을 정했다고 한다.


그 규칙은 궁궐에 기거하는 여자들을 신분에 따라 다섯 단계로 나누고, 한달에 걸쳐서 어떤 계급의 여자들과 잠자리를 가질지 정해놓은 것이다.  규칙에 의한 황제의 잠자리 배정표를 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01일-09일(9일동안) : 81명의 어처(御妻)들이 매일 밤 9명씩 1개조가 되어 동침(同寢)

10일-12일(3일동안) : 27명의 세부(世婦)들이 매일 9명씩 1개조가 되어 동침(同寢).

13일(1일동안)      : 구빈(九賓)들이 돌아가며 동침(同寢).

14일(1일동안)      : 삼부인(三夫人)들이 돌아가며 동침(同寢).

15일(1일동안)      : 황후(皇后) 혼자서 동침(同寢).

16일(1일동안)      : 황후(皇后) 혼자서 동침(同寢).

17일(1일동안)      : 삼부인(三夫人)들이 돌아가며 동침(同寢).

18일(1일동안)      : 구빈(九賓)들이 돌아가며 동침(同寢).

19일-21일(3일동안) : 27명의 세부(世婦)들이 매일 9명씩 1개조가 되어 동침(同寢).

22일-30일(9일동안) : 81명의 어처(御妻)들이 매일 밤 9명씩 1개조가 동침(同寢).


출처: 중국황실 사람들의 성생활


중국에서 커다란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후궁견환전의 청나라 시대 후궁 구조도 (사진 출처: http://imageshack.us/photo/my-images/42/6251438c02e44c31ad2bb7e.png/)

그럼 구체적으로 어떻게 황제가 그의 부인들과 섹스를 했는지 알아보도록 하자.


사진 출처: http://jahun.co.kr/10/10-16.htm

1일 ~ 9일차: 다섯 번째 서열의 후궁 81명


이날은 5단계 서열에 해당하는 후궁들과 잠자리를 갖는 날이다.  하지만 9일 동안 한 명씩 상대하기에는 후궁이 너무나 많았기에 황제는 가급적 많은 여자와 동침해야했다.  이렇게 해서 나온 개념이 하루에 9명과 함께 섹스를 한다는 것.  즉, 이 기간의 해당되는 9일 동안 하루에 9명 씩, 즉 81명과 하는 것이다.  이 81명에 뽑히는 것도 힘들지만, 뽑는 날에 생리를 하거나 개인적인 사정이 있으면 후보에서 탈락된다.  


여기서 뽑힌 5단계 서열의 후궁들은 한 번 황제와 잠자리를 가지게 되면 45일 동안은 다음 후보에 오를 수 없다.


후보를 선발하는 권한은 여사 (女史) 라는 관직을 가진 상궁이 주로 담당했다.  여사는 황제의 취향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황제가 좋아할 만한 여자를 고르는 일을 맡는다.  그렇게 선발된 여자가 동침하러 오면 황제는 그 날안에 아홉 명의 여자들을 해결해야 한다.  그리고 다음 날에도 정무가 끝나면 다른 아홉명을 상대해야 한다는 것.  이렇게 9일을 보내 81명을 채우면 네 번째 서열에 해당되는 여자들과 섹스를 해야한다.


10일 ~ 12일차: 네 번째 서열의 후궁 27명


황제는 이 3일 동안 5단계와 마찬가지로 매일 9명씩 4번 째 서열의 후궁들과 동침해야 한다.  그리고 기간이 지나면 세 번째 서열의 후궁들로 넘어간다.


13일 차: 세 번째 서열의 후궁 9명


세 번째 서열까지 올라오면 그 서열에 해당되는 후궁의 숫자가 점차 줄어들기 때문에 황제가 9명만을 상대해도 다섯 번째나 네 번째 계급보다는 황제와 동침할 기회가 많아지기 때문에 이 서열에 할당된 날들이 줄어들게 된다.


14일 차: 두 번째 서열의 후궁 4명


황제는 하루 동안 두 번째 서열의 후궁 4명과 동침하게 된다.  날마다 9명을 상대하다가 4명을 상대하니 황제가 아쉬워할 지도 모르지만, 색욕마인이 아닌 이상 오히려 일거리(?) 가 줄어들었다고 좋아할 지도 모른다.  두 번째 서열의 여자들은 세 번째 서열보다도 숫자가 적기 때문에 여사의 관리를 거치지 않더라도 황제가 직접 고를 수 있다고 한다.  아마 황제도 네명이면 충분했을 것이다.


15일, 16일 차: 황후


드디어 궁중의 가장 높으신 여성인 황후의 차례가 왔다.  황후는 그 자체로도 고귀한 신분인데다가 정실 부인, 그리고 후궁의 최고 관리자의 직책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좋은 대우를 받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틀 동안 황제는 황후하고만 섹스를 할 수 있다.  하루에 아홉명, 네명 씩 상대하던 황제가 이 시점에서는 많이 아쉬워했을 지도 모른다.


여기서부터는 다시 반대로 흘러간다.  즉 두 번째 서열부터 다섯 번째 서열까지 역순으로 진행하는 것이다.


17일 차: 두 번째 서열의 후궁 4명


황후의 차례가 끝나면 이제 다시 황제가 상대하는 궁녀들의 서열이 내려간다.  물론 같은 두 번째 서열이지만 14일에 동침했던 여인들과는 다른 사람들이다.  한번 동침하면 45일 동안을 기다려야 후보에 오를 수 있을까 말까 하기에 형평성에 어긋나기 때문인 것 같다.


18일 차: 세 번째 서열의 후궁 9명


13일 차와는 다른 세 번째 서열의 9명의 후궁들과 동침한다.


19 ~ 21일 차: 네 번째 서열의 후궁 27명


이제 네 번째 서열의 후궁들과 만나는 기간이다.  하루에 9명 씩 3일 동안 27명.  물론 10일 ~ 12일 차와는 다른 사람들이다.


22 ~ 30일 차: 다섯 번째 서열의 후궁 81명


한 달의 마지막은 다섯 번째 서열의 후궁들로 그 험난한 섹스 스케줄을 마무리하게 된다.  새로운 여자들을 하루에 9명 씩 총 81명을 상대하면 한 달에 걸친 황제의 성생활이 끝나게 된다.


이렇게 황제는 총 243명과의 섹스를 하고 보람찬 한달을 마무리한다하려고 하면 다음 달부터 새로운 243명을 상대해야 한다.  이런 황제들의 뚜쟁이 역할을 담당하는 자들은 여사, 또는 경사태감 (이 경우에는 내시가 담당) 등으로 불렸는데, 한달 간 황제와 동침하는 후보들을 뽑는 과정에서 여인들에게 뒷돈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출처: http://c.ask.nate.com/imgs/qrsi.php/6154441/8233945/0/1/A/4.jpg

하지만 아무리 섹스를 좋아하는 황제라도 이런 스케줄에는 신물이 날 수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우선 황제의 업무는 섹스 이외에도 엄청나게 많기 때문에 여인들과 섹스를 가질 수 있는 시간도 정해져 있다.  예를 들면 저녁 9시 부터 11시 까지로 섹스 시간이 할당되어 있다면 황제는 마치 일을 하는 식으로 그 두 시간 안에 아홉 명의 여자들과 관계를 가지고 다시 본업으로 돌아가 정무를 살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그 외에도 이런 뚜쟁이들은 효율적으로 여인들을 관리 하기 위해서 반지로 이들을 관리하기도 한다.  계지 (戒指) 라고 불리는 이 반지는 보통 은으로 만들어져 있어 황궁의 여자들은 이 반지를 모두 왼손에 끼고 있어야 하는데, 황제와 섹스를 하고 나면 이 은반지를 오른손에 끼고, 임신을 하게 되면 금반지로 바꾼다.  또한 면적 (面赤: 연지곤지) 을 이용해서 생리 여부를 표시하기도 했다.


때때로 황제들은 밤을 새워가며 섹스를 하기도 했으므로 늦잠을 자기도 했기 때문에 그 다음날의 아침 조회 시간에 맞출 수 없었다고 한다.  이들이 정무를 맡을 수 없다면 이는 곧 나라의 혼란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위험한 것이다.  그들에게 섹스는 개인적 쾌락보다는 정치적인 이유 또한 작용한다.  


주나라 선왕(宣王)은 왕위에 있을 때, 새벽잠이 너무 많아서 일찍 일어나지 않는 버릇이 있었다. 이에 강왕후는 자신의 머리와 몸에 걸쳤던 모든 장신구들을 벗어버리고 왕에게 이렇게 말했다 한다.


"왕께서 잠을 탐하여 일어나지 않으려 하시는 것은 모두 저 때문에 생긴 일이오니, 저는 왕을 대신하여 직무에 태만하였던 것에 대한 징벌을 받고자 합니다."


출처: 중국황실 사람들의 성생활


고려시대의 태조 왕건을 생각해보자. 한반도를 지배했던 군주들 중 가장 많은 부인들을 거느린 그는 (무려 29명이다) 후삼국 시대를 통일한 후 각 지방의 호족들의 반발을 잠재우기 위한 정치적 목적으로 그들의 일족의 여성들과 혼인하곤 했는데, 여기서 정해진 왕후, 후궁들은 그 서열이 있을지언정 모두 왕의 부인으로 대접받았고, 따라서 아무리 지배자인 왕건이라도 단지 섹스가 하고 싶어 자신의 여인들을 찾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을 그 서열에 따른 격식에 맞춰 그들을 대접해야 했다.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경우, 그 후궁이 속한 외척 쪽에서 항의가 들어와 정치적 혼란이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니깐.  이쯤 되면 섹스가 쾌락이나 종족 번식적 본능이 아닌 그냥  일이다.


다시 말하지만 어떤 색욕마인이더라도 이런 섹스 스케줄이라면 질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섹스를 하는 것도 당사자들 간의 교감이 있어야 하는데, 할당된 여자와 제한된 시간 내로 섹스를 하고 돌려보내야 하고, 그 날짜들이 일일히 다 기록되고 관리되는 섹스라면 이 글을 읽는 대다수의 여러분이 생각하는 오늘날의 섹스라는 개념과는 사뭇 다르지 않을까?  지배자들의 섹스는 또한 -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의 기준으로 본다면 - 유불선 사상 속에 녹아 내린 남존여비 사상이 자리잡고 있어 단수의 우월한 남성이 복수의 열등한 여성들을 마치 재물 취하듯 섹스 생활을 영위했다는 모습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  이 글을 읽으며 기분이 나빴을 여성 독자들이 꽤 많았을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그렇다면 여성 권력자들은 과연 정조를 지키며 문란한 성생활을 하지 않았을까?


당나라 측천무후: 중국 역사상 유일한 여제로 여겨지는 당나라의 측천무후는 3000명의 남첩을 두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가공할 만한 성욕 때문에 그녀의 수발을 들던 건장한 시종들이 밤마다 여러 명씩 실려나갔을 정도이다.  이 당시 삼국통일을 도모하던 신라의 김춘추는 당의 병력지원을 위해 권력자인 측천무후의 시중을 일주일 동안이나 들었다고 하니, 이 쯤에서 우리는 조상들의 대단함에 대해 알 수 있다.


러시아 제국 예카테리나 여제: 한편 러시아에서는 예카테리나 여제라는 또 다른 여성 군주가 있었다.  절대 권력을 휘두르며 남성들을 사냥했던 그녀의 환심을 사기 위해 또한 정략적으로 접근을 시도한 남성 귀족들도 많이 있었다.  이들 중 올로프 백작이라는 자가 남자만큼이나 보석을 좋아하는 여제를 위해 당시 알려진 전세계를 뒤져 희귀 다이아몬드를 찾아서 진상했다.  그러나 여제는 오로지 보석에만 관심을 보일 뿐 올로프 백작에게 관심을 주지 않아 신세를 한탄하던 백작은 그만 미쳐버리고 말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올로프 다이아몬드' 는 현재도 최고급 다이아몬드들 중 하나로 통한다고 한다.


통일신라 진성여왕: 한반도의 첫 통일 국가를 건설한 통일신라는 그 쇠퇴기에 가서도 그 정치적 혼란들이 점점 가중되긴 했지만 이 와중에도 문화의 발달은 계속해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오스만 제국의 튤립 시대를 생각해보면 쉽)  현대의 기준에서 본다면 문란하다고 볼 수 있는 자유로운 섹스문화가 동아시아 전반에 (한국, 일본, 중국) 퍼져있는 상태였는데, 또한 섹스에 관대했던 우리들의 조상들은 역시 그 지배층들 부터 솔선수범하였는데, 제 51대 왕인 진성여왕은 즉위 전부터 삼촌인 각간 김위홍과 수많은 근친상간을 하였고, 그 외에도 잘생긴 화랑 청년들을 섭렵했다고 한다.


보다시피 지위에 따라 여성들도 얼마든지 섹스의 도구로 남성들을 이용해왔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섹스는 섹스이다.  섹스는 성별이나 신분, 문화를 막론하고 인류에게 주어진 성욕은 죄악도 아니고 성별을 차별하는 잣대도 아니다.  섹스가 여성들을 억압하기 위한 남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여자들도 알아야 할 지어다.  


참고 자료: 중국의 황제들, 삼천궁녀와 이렇게 잤다, 아하! 사회 문화, 미디어, 이 세상에 하나뿐인 당신을위하여, 섹스 - 엔하위키 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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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참
    • 2012.07.25 17:06
    솔직히 이 글은 좀 그렇네요. 개인적인 블로그에나 올리시지 아무리 조금이라 하더라도 버클리를 대변한다고 볼 수도 있는 동아리에서 이런 글을 왜 게재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특히나 마지막 부분은 그나마도 별로이던 글을 삼류 찌라시만도 못하게 만드네요. 이 동아리의 취지가 뭔가요? 저도 멤버가 아니라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짐작해 보건데 버클리 내의 여러가지 이슈에 대해 논의해 본다던지 유용한 정보를 공유하는 곳이 아닙니까? '오피니언' 이라는 단어가 붙은 걸로 봐서도 그렇구요. 섹스에 관한 글을 썼다고 이런 댓글을 남기는게 아닙니다. 마지막에 불필요한 몇 문장들만 아니었다면 뭐 그럭저럭 이런 정보도 있구나라고 할 수도 있었겠지만, 개인적인 장소가 아니라 버클리 이름을 붙여놓은 장소에서 이상한 단어들로 글의 요지를 흐리는 것이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뭐 하는 건가 싶네요. 혹시나 외부인이 우연히 들렀다가 도대체 이 사이트는 무엇을 위한 건지, 버클리 학생들은 다 이런 장난같은 글을 쓰고 생각을 하는건지 오해할까봐 상당히 두렵습니다. 나름대로 정보수집도 열심히 하고 오랜 시간 공들여서 글 쓴건 알겠는데 이런 종류의 글은 개인 공간에 얼마든지 올리셔도 될 거 같네요.
    • 오키
      • 숲틱HS
      • 2012.07.25 19:19
      위의 댓글과 공감합니다..

      물론 약간 아찔하고 위험한 부분도 있었지만, 굉장히 흥미로운 글이였는데.. 마지막에 장난이 좀 심하신게 아니셨나 싶네요.. 그냥 보통 게시판도 아닌, 버클리 언론을 대표하고자 만들어진 버클리 오피니언에서, 전 편집장을 맡으셨던 분께서 이런 경솔하신 마무리와 장난같은 댓글을 추가하신다는게 좀 실망스럽네요.


      다음번엔 조금 더 나은 글 기대할게요..
    • 회장이 지우래서 지웠어 임마ㅠ
      • 뿌잉뿌잉 >_<*
      • 2012.07.25 19:36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누군가했네
    • 타임머신
    • 2012.07.25 18:56
    역사는 돌고 돈다~~~~~유후!
      • 뿌잉뿌잉 >_<*
      • 2012.07.25 19:36
      미트스핀이군요 ㅎ_ㅎ
    • 벌꿀
    • 2012.07.25 23:09
    글을 비난하고자하는건 아니니 오해하지말아주세요. 근데 읽고나니 참으로 불편하고 지저분한 -아무리 옛시대에서는 평범한 일이였다 하지만- 내용에 인상이 찌푸려지네요.
      • 2중대신병
      • 2012.07.25 23:15
      아따 홍어가 제철이랑께
    • 이런
    • 2012.07.26 00:36
    성행위가 더러운것도아니고 걍 한번 읽고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면되지 ㅋㅋ 뭔 지저분하니 불편하니 이런 말들이 나온는 게 이해가 안가네 ㅋㅋ 삼천궁녀 의자왕 이런 말 들을 때 좀 궁금하긴 했다만, 이러한 방식으로 돌아갔었구만..우음... 재밌게 읽다갑니다 ㅋㅋ
  1. 회장 한상윤입니다. 이글은 제가 발행허가를 해서 스프링데일님이 좀더 Flesh out 해서 완성 한 글이에요. 뭐 거시기 한면도 있지만 흥미 있는글이라고 생각합니다. 뭐 더럽다, 요즘 시대에 안맞다, 그나마도 별로인 글이다, 눈살찌푸리는 글이다, 라는 말은 좀 아닌것같네요. 오히려 이런글을 과감하게 쓴 김성현님께 박수를 드리고싶습니다. 물론 지금은 수정했지만 마지막에 장난식의 "쎼..쎽쓰" 드립은 제가봐도 아니라서 지적하고 수정을 했다만, 반문하고싶네요. 요즘 시대에 안맞다? 옛날 사람들이 더 개방적이었다? 이런 의견쯤이야 홍대 강남 압구만 가도 절대 그렇지 않다는걸 증명할수 있으니 길게 말하진 않겠습니다. 저희 버클리 오피니언은 다양한 장르/문학/시사 를 추구 합니다. 한학교를 대표하는 클럽이니까 이런 글을 쓸수있다라고 말하고싶네요. 누구나 감히 말할수 없는 치부를 들추어내는것. 그것의 저희의 모토입니다.


    P.S 여자황제의 이야기 상당히 재밌네요 ㅋㅋㅋㅋ 춘추형 ㅠ..... 지못미...ㅠ 호빠출신이었어 ㅠ
      • 뿌잉뿌잉 >_<*
      • 2012.07.26 19:54
      한사마 오빠 멋이쪄여 >_<
  2. 발기부전치료
    카톡:kbs8949
    http://hg07.kr
    • Oo
    • 2018.05.18 12:04
    거참 선비들 많으시네 그대들은 떡치러 안다니시나.
    불쾌하다고 글쓴인간 중엔 분명 나이트,클럽가서 여자를 물색했거나 떡방가서 떡친인간도 있을텐데 말이야. 본능에 정직해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