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피에타>의 국내시장용 포스터. 피에타는 이탈리아어로 슬픔, 비탄을 뜻한다. (자료출처:네이버)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나는 유쾌하오. 이런 때…”
일제 시절, 정오의 사이렌 소리와 함께 박제가 된 날개를 달고 추락한 어느 천재가 있었다. 자신이 천재임을 직감했지만 타고난 시대적 불운에 육체적 허약함까지 겹쳐 대중의 따뜻한 격려 한번 받지 못한 채 일본 어느 병원에서 쓸쓸히 죽어간 이상이 그다. 여느 천재 이야기의 주인공이 그렇듯이, 그는 외로움을 늘 곁에 두었고, 타인의 인정과는 거리를 두었으며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데엔 거침이 없었지만 스스로의 어두운 과거는 극복할 용기조차 내지 못하던 겁쟁이였다.
이렇게도 문득 이상의 소설 한 구절을 떠올리게 된 까닭은, 어느날 갑자기 인터넷 포털 사이트를 도배한 걸인 차림의 잊혀졌던 한 사나이 때문이다. 9월 초, <나쁜 남자>,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사마리아>, <영화는 영화다> 등으로 유명한 영화감독 김기덕이 제 69회 베니스 영화제에서 한국 영화 사상 최초로 황금사자상의 영예를 안았다. 그리고 언론은 상고머리를 올리고 허름해 보이는 –실제 가격은 150만원대의—의상을 두른 채 한손에는 날개 달린 황금 사자를 들고 ‘아리랑’을 부르는 그의 모습을 앞다투어 보도했다. 그나마 대중과 친숙한 괴짜인 이외수를 연상케 하는 김기덕의 사진들은, 충분히 “이 사람 정말 범인은 아니군” 하는 생각을 불러일으킴과 동시에 그가 진정한 천재일 거라는, 그래서 천재를 알아보는 예술제에서 인정을 받았을 거라는 기대감을 증폭시켰다.
69회 베니스 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김기덕 감독. 그는 수상소감 도중 민요 '아리랑'을 불러 주목을 받았다. (자료출처:네이버)
아이러니하게도 국내에서 김기덕 감독은 독특한 작품세계로는 인정받고 있지만, 충무로에서는 그다지 환영받지 못하는 인물이었다. 작품 하나하나에 무겁게 내재된 폭력성과 왜곡된 여성상 따위의 논지는 제껴두고라도, 인맥 중심의 영화계에서 초졸 학력에 청계천 출신 이단아라는 꼬리표는 그를 스스로조차 아웃사이더로 분류하게 했다.
실제 그의 삶을 들여다보아도 평범이라는 수식이 확연히 어울리지 않는 굴곡이 여러 차례 요동친다. 이미 그는 여러 차례 인터뷰에서 농사꾼 아버지에게 무자비한 학대를 받은 어린 시절에 대해 밝혀왔고, 교육도 제대로 마치지 못한 채 막노동판을 전전하다 예술을 하겠다며 프랑스까지 훌쩍 떠난 이후에는 거리의 노숙자들과 교우하며 삯그림이나 그리는게 고작이었다. 한국으로 돌아와 인격 모독이 일상다반사일 정도로 ‘더러웠던’ 영화 조연출 시기를 견뎌내고 감독 타이틀을 거머쥐었지만 아무도 그를 인정해 주지 않았고, 한국인 최초로 베를린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바 있지만 신통치 않은 흥행 성적에 그를 향한 국내의 차가운 대접은 그 냉기만을 더해갔다. 촬영 중 톱스타 이나영을 실제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가 촬영분 전부를 삭제해야했던 충격적인 사건을 비롯, 믿고 배려했던 두 제자들에게 영화 제작권과 수익까지 빼앗기고 그 아픔을 영화 <아리랑>으로 승화시키는 등 그의 인생사는 비범인의 혹은 비운의 천재의 그것으로서 충분히 고전적인데다 파격적이다.
이상의 <날개>부터 시작해 서머셋 옴의 <달과 6펜스>, 심지어는 스즈에 미우치의 <유리가면>까지(!) 천재물에 열광하는 이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동시대의 가장 한국적이자 유럽스러운 영화천재 김기덕의 인생 실화 스토리가. 멜로 드라마도 있고, 끊이지 않는 갈등의 심화도 있고, 통쾌한 반전의 ‘한방’도 있는데다가 아직까지는 헤피 엔딩으로 끝나있는 이야기다. 한마디로 진짜가 나타난 거다. 헌데 여기서부터가 이상하다. 지금 대중의 <피에타> 수상에 대한 열광은 뜨겁다기보다는 어딘가 모르게 미적지근하다는 게 그렇다. 예전부터 선댄스 베를린 모스크바 등의 국제 영화제에서 받아왔던 김기덕을 향한 스포트라이트가 귀국과 동시에 꺼져 왔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번 베니스 영화제에서의 수상은 엄청난 파급력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의 반응이 신통치 않다. 흥행 성적은 김기덕의 전작들에 비해 월등하나, 그에 대한 열띤 토론의 부재와 더불어 어디서나 회자되는 화제성이 아쉽다. 수상 이후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관객들은 이미 <광해, 왕이 된 남자>의 이병헌을 추켜세우는데 관심을 돌려버렸을 정도이니. 물론 또다른 국제 경쟁분야에서 한국인의 위상을 드높임을 환영하는 이들도 적지 않지만, “김기덕 감독의 영화가 정말 그렇게 작품성이 뛰어나느냐” 묻는 의구심을 동반하는 환영이 대다수인 추세다.
영화와 친숙한 사람들은 알겠지만 베니스 영화제는 칸느, 베를린 영화제와 더불어 “세계 3대 영화제”라 불리는 권위있는 시상식이다. 이들의 지명부터가 말하듯이, 1895년 뤼미에르 형제가 (공식적으로) 첫 영사기를 돌린 이후 영화계는 쭈욱 서양이 주도권을 쥐고있었으며 동양권 영화인들은 그들에게 ‘인정받아야’ 하는 입장이었다. 물론 한국을 제외한 소위 비 영화 강국들의 수상 전례가 없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그러한 감독들이나 배우들 역시 상을 받으러, 혹은 서구권에게 평가받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이 세 도시로 날아가야 하였음을 감안하면 결코 틀린 말은 아니다. 이러한 시상식에서 최고 영화상을 수상하였음은 김연아가 밴쿠버에서 한국 피겨사상 최초로 금메달을 거머쥔 사실이나 싸이의 강남 스타일이 한인가수 최초로 MTV 무대에 올랐던 쾌거와 다르지 않건만, 현재 대중의 반응은 차라리 피에타의 여주인공인 조민수가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면 지금보다는 더 뜨거운 감자가 되었을까 하는 의문을 자아낸다.
도대체 왜 우리는 김기덕이 미심쩍은 걸까.
그의 영화에 흐르고 넘쳐나는 통념상 불쾌한 말초적 자극일수도, 지극히 뚜렷한 개성으로 인한 대중과의 소통 부재일 수도 있다. 아니면 대중성과 예술성의 이분법적 연결 고리를 더듬어 보는 것도 괜찮은 이유를 유추해 낼 수는 있을 것이다. 또 아니면 나름 대중성을 얻은 여타 예술인들과 김기덕의 사례를 비교해 보는 것도 좋을 터다. 언젠가 예술과 창조성의 상관관계에 대한 글을 접한 적이 있는데, 창조성은 내면을 외적으로 표현해 내고 다루는 신의 대표적 속성을 닮아 있기에 인간의 영원한 열망의 존재가 될 수 밖에 없다는 확신에 차 있는 장문의 글로, 현재 흥행하는 많은 속칭 예술인들의 인기를 꽤나 납득이 가게 설명해 두었다. 그렇다면 김기덕 내면의 어떤 부분이 대중의 열망을 훼손하여 심기를 건드린 걸까. 그는 역경과 고난을 노력으로 이겨 냈고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킬 줄 알고 있으며 황금 사자를 계기로 더욱 높이 날 가능성이 무한한 인물임에 틀림이 없는데, 지금 그의 인기를 '대중적' 혹은 '전국적'이라 하기에는 무언가 조금 부족하다. 어쩌면 영화를 통해 엿본 그의 천재적인 내면 세계를 쉬이 이해하지 못한 자신들의 평범함에 화가 난 걸까. 대중의 ‘천재’에 대한 거부가 열등에서 비롯된 숙명이라는 뜻은 아니지만, 김연아에 대한 뜨거움과는 판이하게 다른 그 온도가 어떠한 이유에서 사그러들었는지 심히 궁금한 바이다. 새하얀 빙판 위에서 반짝거리고 빛나는 김연아같은 천재가 있는가 하면, 불꺼진 컴컴한 영화관에서 유혈가득한 폭력 장면을 통해서야 번뜩이는 김기덕같은 천재도 있는 법인데.
좌: 수 년 째 '가장 신뢰가는 CF스타' 타이틀을 꼭 쥐고 있는 피겨스케이터 김연아 우: 영화사의 횡포에 작품을 빼앗기고 수 년간 산속 오두막 생활을 해야했던 영화감독 김기덕 (자료출처: 네이버)
도대체 무엇이, 어떤 이유로 이 가엾은 영화인의 날개에 무거운 의심의 짐을 더하는지. 김기덕과 <피에타>의 무언가 부족한 성공 스토리를 보고 있자면 천재와 아웃사이더의 끊을 수 없는 굴레가 머릿속에서 또 한 바퀴 구른다. 아마 그 연결고리를 끊는 일은 현재까지도 예술과 대중 문화 사이에 선명하게 그어진 상호불가침의 철칙을 충분한 고찰을 통해 지워버려야만 가능할 터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구글로 달리의 그림을 찾아 보고 유투브로 쇼팽의 에뛰드를 찾아 듣는 21세기의 문화소비자들은 그 필요성을 절박하게 느끼지 못하는듯 싶다. 공감하고 환영하는 인파 속으로 발을 디디는 순간 예술품의 성스러움이 돈내음에 찌든다 굳게 믿는 이들이 매일 조금씩 더 늘어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 시절 이상이 <오감도>를 통해 그저 13인의 아해를 세고서 학계의 열광과 대중의 외면을 동시에 겪었던 것을 감안하면 김기덕의 <피에타>는 욕정과 증오을 동반하는 종교적 구원에 대해 이야기하고서도 세계 영화계의 인정과 비교적 높은 대중적 인기를 얻었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실체 없는 미련한 대중이라는 집단은 (두 눈 가진 개인은 하나둘 모이면 쉽게 장님이 되게 마련이므로) 수많은 천재들을 외로운 단칸방에서 폐결핵으로, 영양실조로 혹은 우울증으로 하나둘 떠나보낸 다음에야 그들을 포용하는 방식에 있어 조금씩 성장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그래서 김기덕의 황금사자상 수상은 이런 다짐을 되새기게 한다. 동시대의 문화를 적극적으로 소비함에 있어 부끄러워하지 말자. 우리가 현재 예술이라 두고두고 돌려 읽고 보고 듣는 모든 작품들도 한때는 그 시대 어느 한량의 허영기 가득한 객기였음을 잊지 말자. 알프레드 히치콕의 작품만큼이나 지금 어느 영화관에서 상영되고있는 영화에 대해 전율을 느낄 줄 알고 열렬히 분석할 줄 아는 관객이 되자. 덧붙여서, 수많은 예술인들과 동시대에 살고 있음을 자각하고 충분히 즐길 줄 앎은 또 얼마나 짜릿한 자극인가. 결과적으로 예술 또한 소비되지 않으면 그저 젠체하는 표현의 조각으로 남을 뿐이고, 대중 또한 소비하지 않으면 가루내올 꽃없이 떠다니는 벌떼 한무리와 다를 바 없을테니.
다시한번 김기덕 감독의 통쾌한 수상에 박수를 보내는 동시에, 그 뒤에 숨겨진 끈질긴 아이러니에 조금은 부러움을 느끼며, 아쉬움 어린 소회는 접어 두고 오늘은 그의 옛 영화나 한 편 찾아 감상해야 하겠다. 물론 김 감독의 장대한 필모그래피를 통틀어 어느 하나 가슴 찡한 휴머니즘의 감동이나 마음 편한 밤을 선사하는 작품은 없겠지만, 영화미학의 본질에 있어 위락만큼이나 의미있는 것은 가시화된 날것의 탐미라는 것을 기억한다면 오늘만큼은 충분히 '불편해질' 준비가 되어있는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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