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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FFICIAL PRESS/미필자, 한국군을 논하다 - 完 -

#1-4. 대한민국 군대, 모병제로 바꾸자

대한민국 육군은 2020년까지 모병 비율을 80%까지 늘린다고 발표한 바 있다. 사진은 전쟁기념관, 출처는 달팽가족님의 블로그 http://sweethk.tistory.com/

대한민국 헌법 제 39조 1항에 따르면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방의 의무를 진다”. 국방을 위해서는 실질적으로 무력을 행사할 수 있는 주체가 있어야 하며, 대부분의 경우 조직화된 군대가 이를 담당한다. 지난 세기 한반도가 겪었던 한국 전쟁, 그리고 지금 한반도를 둘러싼 지정학적 리스크를 생각해 볼 때 대한민국에서 국방력이 중요시 되어야 함은 당연하다.

그러나 현재 대한민국 대다수 국민들은 국방의 의무를 군 복무의 의무와 같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즉, 전국의 “모든 신체 건장한 20대 남성”을 대상으로 한 징병제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강한 국방력을 위해서 전국민을 대상으로 한 징병제가 필수불가결한 제도일까? 이 글에서는 징병제의 역사적, 현실적 문제들을 짚어보고, 이에 대한 대안으로 모병제를 제시해 보고자 한다.

# 대한민국이 병영국가가 되기까지
대한민국에서 현대적 의미의 징병제는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병력의 45%를 잃은 국군이 긴급하게 병력을 보충하기 위해 실시한 국민방위군 설치법에 그 뿌리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절대적인 병력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부랴부랴 도입된 국민동원령은 이후 1951년 병역법 개정을 통해 징병제로 자리를 잡았고, 전후 베이비 붐 세대로 인해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함에 따라 대한민국은 70만의 대군을 보유한 나라가 되었다.

비록 긴급한 필요에 의해 시작된 징병제였지만, 한국전쟁 이후에도 수십만이나 되는 병력을 유지한다는 것은 국가 경제에 큰 부담이 되었다. 실제적으로 한반도에서 전쟁억지력을 행사하고 있던 미국은 경제 및 인권 문제를 이유로 군대의 인원을 줄일 것을 요구했으나, 박정희 정권은 베트남 파병을 통해 이런 요구를 무마시켰다. 혹자는 징병제 유지를 “자주 국방을 위한 민족주의자 박정희의 소신”이라고 이야기하나, 사실 군사독재정권은 정권 유지를 위해 대한민국을 거대한 병영국가로 만들 필요가 있었고, 이를 위해 징병제를 고집했다고 봐야 함이 옳을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징병제 자체는 국방력과 직결되지 않는다. 군 복무기간 10년인 북한의 국방력을 남한이 앞지르게 된 것은 눈부신 경제 성장 때문이 아니었는가?)

물론 박정희와 전두환에 의해 두 번의 군사 쿠데타가 성공하고, 군부가 군사 독재 체제를 20년 이상 유지할 수 있었던 까닭이 오로지 징병제에 있었다고 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하지만, 전국민을 반공이라는 허울좋은 깃발 아래 단결시키고, 상명하복하는 군대식 권위주의를 대한민국 곳곳에 스며들게 하기 위해 징병제보다 나은 방법은 찾기 힘들었을 것이다. 실제로 70~80년대 반독재 운동을 했던 많은 대학생들이 체포된 뒤 강제적으로, 그리고 “합법적으로” 입대를 당했다. 이때 군 복무의 목적은 신성한 국방의 의무 수행이 아니라, 말 안 듣는 시끄러운 불순분자들을 “대한의 자랑스런 건아”로 재교육시키는데 있었음은 자명하다. 우리 아버지 세대의 학창 시절에 있었던 교련 수업 또한 실질적 군사훈련보다는 병영문화의 정신교육에 가까웠지 않은가?

이러한 역사적 과정을 통해 징병제와 병영문화는 한국 문화의 일부가 되어버렸고, 국가 권력에 의해 행해지는 강제 징집을 거부할 권리는 이야기하는 것 조차 힘들게 되었다. 무차별적 징병은 소수자들에게 더 가혹하게 적용되었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는 국가에 대한 죄로 판단되었고,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군복무에 상응하는 사회 봉사가 아닌 옥살이로 죄값을 갚아야 했다. 지금은 많이 의미가 퇴색되었지만, 한국 사회에서 ‘군필자’는 정당한 사회 구성원으로 대접받는 반면, ‘전과자’는 아웃사이더로 낙인 찍힌다는 것을 생각해 보자. ([H]의 양심적 병역거부 글 참조) 그뿐만 아니라,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는 자랑스러운 사병의 처우와 인권 또한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것은 우선 징병제가 고급 군사 인력의 생산을 위한 제도가 아니기 때문이며, 그보다 본질적으로 “정부가 무제한으로 군대에 사람을 공급할 수 있는 체제하에서 사람의 가치를 찾을 길이 없기” 때문이다. (참조: 찬란한 '병영국가' 의 탄생, 한홍구, 한겨레21, 2002)

# 현대전에서 징병제는 강한 군대를 만드는데 걸림돌
앞서 말한 민주주의와 인권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징병제는 그 자체로 대한민국 국군의 경쟁력 저하를 불러오고 있다. 걸프전을 기점으로 한 현대전의 양상을 보면, 강한 군사력은 첨단 무기의 확보와 정보력에 기반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70만의 대군을 유지하는 것은 실제 국방력을 강화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으므로, 소수 정예화를 통해 국군의 경쟁력을 강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소수정예화에 관한 논의는 보수주의 군사평론가들과 군 내부에서도 자주 나왔다. 군사평론가 지만원 씨는 "70만 대군 중 비전투부대 인력 35만은 육-해-공군으로 갈라져 인력과 비용을 중복투자하고 있다"며 "중복을 없애고 '보병이 중심'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날 경우 30만명 정도의 소수정예화된 군대로 탈바꿈 하는 게 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참조: 징병제는 안맞다. 모병제를 시작해야 한국군이 강해진다, 2003-06-21)

소수정예화를 위해 모병제는 필수불가결한 선택이다. 모병제 하에서는 “기업처럼 꼭 필요한 인원만 선발되므로, 인재활용이 효율적으로 운영되고 탈영율과 군 내부사고율(특히 자살)도 현저히 줄어든다.” 또한 “군인 전체가 직업 공무원이므로 구타나 가혹행위가 현저히 적어지며 조직력이 강화된다.” 징병제 하에서는 대다수의 사병이 복무 기간 후 사회로 복귀하므로 사병의 전문성을 기대하기 어렵지만, 모병제 시 개인의 자발적인 판단에 따라 “최소 2년 이상 군복무를 하므로 부사관과 병의 전문성을 강화시킬 수 있다. 특히 5각 편제로 운용하는 기계화 부대에서는 실력있는 부사관과 (사)병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참조: 한국 위키피디아 – 모병제)

앞서 말한 ‘첨단 무기의 확보’와 ‘정보력’은 과학 기술력에서 나오며, 과학 기술에 대한 투자는 국가의 전반적인 경제력에서 나온다. 국가의 경제력은 인적 자원의 효용적 이용에 있다. 따라서 한창 직업교육을 받고 사회 진입 준비를 하는 20대 청년들을 군대에 전부 몰아넣는 것은 결과적으로 국방력을 낮추는데 일조하는 셈이다. 또한 현재 비전투부대 병력으로 쓰이는 인력의 대다수가 실질적으로 국방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일에 종사한다는 것을 보면, 인적 자원의 효용적 재배치는 필수불가결해 보인다. (참조: 대체 복무제, 과연 모두를 위한 것인가? by Simply Complex Life)

세계 각국의 군대 현황 (초록: 군대 보유 無, 파랑: 모병제, 주황: 모병제 폐지 예정, 빨강: 징병제, 회색: 정보 불충분)

# 모병제로 가는 길
대한민국 국군이 모병제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징병제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인식으로부터 벗어날 필요가 있다. 징병제를 넘어 모병제를 지향해야 한다는 국민적 담론이 무엇보다 먼저 형성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평등의 원칙을 따라 군 복무자에 대한 복지 시스템을 어떻게 만들 것이며, 비(非) 복무자의 경우 어떤 식으로 국방의 의무를 다하게 할 것인지 의논하고 법제화 시켜야 한다..

일부는 모병제를 실시할 경우, 가난한 사람들만 모인 군대가 될 것이고, 이에 따라 평등의 원칙이깨질 것이라 걱정한다. 모병제에 의해서 양극화 문제가 심각해 질 수 있는가? 실례로 2001년 전면적으로 모병제를 실시한 프랑스에서는 국민 통합에 반한다는 이유로 국민의 59%가 모병제에 반대하였다. (모병제 담론 물꼬 트이나, 위클리경향) 그러나 프랑스의 징병제는 18세기 프랑스 혁명 이후 공화국의 수호를 위해 처음 등장하였고, 따라서 “모든 시민이 숭고하고 아름다운 국방의 의무를 이행해 전제군주의 억압과 봉건제의 굴레를 타파하고 자유와 평등을 지켜낸 상징물”(징병제, 프랑스혁명의 사생아이자 괴물, 최재희)의 역할을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에서 징병제는 군사독재정권의 정권 장악 및 유지를 위해 쓰였고, 현재 많은 고위 공직자와 사회 지배층이 군 복무를 하지 않고도 멀쩡히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것을 보면 이미 평등의 원칙을 어겼다고 봐야 함이 옳다.

따라서 모병제를 전환하되 군 복무자와 비 복무자 사이에 형평성을 어떻게 지킬지 고려해야 한다. 먼저 군 복무자에 대한 사회적 혜택이 종합적으로 논의되고 시스템화 되어야 한다. 현재 국가 차원의 복지 혜택은 국가유공자 제도와 공무원 임용시험 시 가산점 정도라고 볼 수 있는데, 이보다 더 포괄적인 차원의 혜택이 필요할 것이다. (덧붙여 현재 군가산점 문제가 남녀 성차별 문제로 비화된 것은 근본적으로 징병제의 모순 때문이며, 이는 모병제 전환 시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비 복무자를 상대로 국방세 부과 또는 대체복무 등이 논의되어야 한다. 개인적으로 국방세의 경우 소득 수준에 따른 누진세 부과가 옳다고 생각하나, 심도 있는 토론과 합의가 있어야 할 것이다. 대체복무의 경우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현 상황을 개선해야 한다. 즉, 일단 뽑아놓고 배치하는 방식이 아니라, 필요한 만큼 선발하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특히 경찰력의 경우 국가가 관리하는 폭력(또는 무력武力)이라는 점에서 군대의 연장선상에 놓고 보아야 할 것이다. 산업기능요원의 경우 정말 국방과 관련된 기업에서 복무할 수 있도록 기업 지정에 있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야 할 것이다.

# 맺음말
지금까지 우리는 징병제의 모순과 문제점을 이야기했다. 모병제를 통해 우리는 뿌리깊은 병영문화로부터 탈피하여 개인의 인권이 보다 존중 받는 민주국가로 나아갈 수 있다. 군(軍)의 질적 향상을 위해서도 모병제는 필수불가결한 선택이다. 대한민국 시민들이여, 징병제의 굴레를 벗고 보다 나은 사회로 나아가자!

by ZeusCrisis

# 참고 자료

미디어다음, 국회의원 69% "현 병역제도 개선 필요"
http://www.scieng.net/zero/view.php?id=freeboard&no=7638

한겨레21 - 제397호 찬란한 '병영국가'의 탄생, 한홍구
http://h21.hani.co.kr/arti/COLUMN/44/4532.html

한국 위키피디아 – 모병제
http://ko.wikipedia.org/wiki/%EB%AA%A8%EB%B3%91%EC%A0%9C

징병제, 프랑스혁명의 사생아이자 괴물, 한겨레 필통, 최재희
http://hantoma.hani.co.kr/board/view.html?board_id=ht_defence:001005&uid=2548

[커버스토리]모병제 담론 물꼬 트이나, 위클리경향
http://newsmaker.khan.co.kr/khnm.html?mode=view&artid=13508&code=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