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없는 한 학기를 끝마치고 맞이한, 찬바람이 기분 좋던 12월 겨울 방학에 오랜만에 책 선물을 받았다. 책 중에서도 특히 표지나 일러스트가 “예쁜” 책을 좋아하는 내가 취향 저격당하게 한 이 책은, 현실적인 동시에 로망 가득한 소설을 쓰기로 유명한 프랑스 작가 파울로 코엘료의 짧은 글 모음집, <마법의 순간>이었다. 페이지 한 장 한 장이 평범하지만 잔잔한 깨달음이 남겨지는 짧은 글귀와 귀여운 일러스트로 채워져 있어 가볍게 읽히지만 자주, 많이 들여다보게 되고 볼 때마다 새로운 느낌을 받게 되는 책이다. 워낙 책을 두고두고 반복해서 읽는 걸 즐기는 나에겐 매우 반갑고 고마운 선물이었다.
물론 유명한 작가의 글을 모아놓은 책이라는 점이 제일 특징적이겠지만, 이 책의 특별함을 하나 더 꼽아보자면, 바로 책에 수록된 글이 모두 작가의 SNS ‘트위터’에 올라왔던 글이란 사실이다. SNS는 개인적인 공간이기 때문에 애초에 글을 올릴 때 출판을 목적으로 쓴 경우가 거의 없고, 소통과 자신의 의사 표현이나 감정 표현을 목적으로 쓴 글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 ‘트윗’들이 어떻게 책으로까지 출판될 수 있었을까? 단순히 유명한 작가의 글이었기 때문에? 아니다. 바로 많은 사람의 공감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당신의 꿈이 시들어가고 있다는 첫 번째 징후는
당신이 이런 말을 내뱉기 시작할 때 나타납니다.
"지금은 내가 너무 바빠서......." (p. 105).
*
삶은 두 가지 방식으로 인간의 의지를 시험합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거나,
아니면 모든 일이 한꺼번에 일어나는 거죠 (p. 196).
*
일시적으로 저지르는 엉뚱한 짓들이
삶의 묘미를 더해준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착한 남자'와 '착한 여자'로만 사는 건
너무 지루해요. (p. 90).
많은 페이지 중에 인상 깊었던 글을 몇 개 꼽아보았다. 한 번에 올릴 수 있는 글자 수에 제한이 있는 ‘트위터’의 특징으로 인해, 문장들이 대부분 짤막하고, 군더더기 없으며 이해하기 쉽도록 간단하다. 하지만 막상 읽으면 잠깐은 자신을 뒤돌아보거나 의미에 공감하게 될만한 문장이기도 하다. 쓸 때도 읽을 때도 짤막하지만 그 잔상은 시간이 지나도 남아있는 것, 그것이 바로 글의 매력이 아닐까? 단 몇 줄로 이루어진 문장이더라도 표현 방식과 읽는 사람의 공감에 따라 그 사람에게 엄청난 힘이나 위로가 될 수 있는 점 말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넘겨보던 책장에서 마음에 와 닿는 글귀 하나를 발견하고 나면 그 날이 종일 기분 좋을 정도의 영향을 받는 필자로선, 글이 길이에 상관없이 충분히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보이는 표현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이유에서일까, 유명한 작가가 아니어도 자신의 경험이나 감정을 토대로 SNS에 올린 짧은 글귀들을 통해 작가로 데뷔하는 사람들도 한둘이 아니다. 물론 여기서 가장 중요했던 요소 역시 사람들의 관심과 공감이다. 위 사진은 SNS ‘페이스북’에 꾸준히 올리던 글이 많은 사람의 사랑과 공감을 받아 책까지 출간한 김세영 작가의 <시쓰세영> 페이지에 올라온 한 글귀를 담고 있다. 사람들의 기억 저편의 장면을 꺼내와 주기도 하고, 옆에서 조곤조곤하게 말을 하는 듯한 문체를 통해 감성을 자극해 소중한 사람들과 나누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게 해주는 글이다. 이렇게 글귀만 올라오는 경우가 많지만, 때로는 감성적인 사진이나 귀여운 일러스트와 함께 글을 올리는 경우도 있다.
워낙 오글거리는 감성을 즐기는 필자로선 사실 이런 감성적 표현의 장이 다양해지는 게 보기 불편하다기보단 오히려 반갑다. 하지만 SNS가 서슴없이 자기 주장을 공개적으로 주고받는 공간인 만큼, 이런 현상에 대해 “감성팔이다”, “손발이 소멸될 지경이다”, 혹은 “공개적인 공간에서 이런 글 좀 안 보고 싶다”라는 등의 부정적인 의견을 표시하는 사람도 많다. 파울로 코엘료 작가의 책에 대해 “아니, 이제는 작가가 SNS에 끄적거려 놓은 글도 모아서 책으로 내?” 라는 반응을 보이는 독자들도 역시 있다. 물론 다양한 사람들이 공존하고 소통하는 공간인 만큼, 올라오는 글에 대한 반응 역시 충분히 엇갈릴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불편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에게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질문이 있다. 과연 이런 글조차 없었다면 우리가 요즘 하루하루를 살면서 ‘감성’을 접할 기회가 얼마나 될까?
사실 “오글거린다”라는 말이 보편화될수록 사람들은 표현에 인색해져 간다. 점점 철학적인 고찰은 몰래 일기장에 적어야 할 부끄러운 ‘흑역사’로 치부되고, 감성적인 글은 손과 발이 오그라들 정도로 유치하고 촌스러운 감정 표현이 된다. 사람이 감성적인 경우엔 딱딱한 현실에 적응하지 못한 어린 이상주의자로 여겨지기도 한다. 점차 표현할 수 있는 감정이나 느낌의 폭은 좁아지고, 사람들의 반응에 따라 다양한 표현의 장 역시 점점 적어진다. 이미 사람 사이의 관계가 지극히 공적인 관계가 되기 일쑤인 요즘 세상에, 이것 말고도 서로 눈치 보고 자신을 숨겨야 할 이유가 많은 요즘 세상에, 내 감정 표현까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며 해야 한다는 현실이 얼마나 안타까운가?
필자는 사진과 마찬가지로 순간순간의 내 모습과 생각을 잘 담아내는 방법이 글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그리 글로써 자신을 표현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아닐까? SNS는 분명 공개적인 공간이기도 하지만, 그와 동시에 사람들이 자신의 개인적인 생각과 나날을 공유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러니 어떤 방식으로 자신을 표현하든, 그것을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인정해줄 수는 있어야 한다.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감성 글귀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는 역시 그 방식이 자신의 감정 해소에도, 또 다른 사람들과의 감정적인 소통에도 가장 효과적인 방법임을 깨달아서가 아닐까 싶다. 물론 그런 글귀를 보고 공감하지 못하고 불편해하는 사람들 또한 특정한 방식으로 자기 생각을 표현하고 있다는 점은 인정한다. 하지만 감성적인 표현 방법을 인정하고 자주 접하다 보면 그 감성에 익숙해져 그들 역시도 오그라드는 감정 표현에 능숙한 사람이 될 수 있지는 않을까 싶은 마음에 이런 표현의 장이라도 많아졌으면 하는 것이다.
물론 글을 쓰는 것이 자신을 나타내고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인 것은 아니다. 사람에 따라 그림을 그릴 수도 있고, 사진을 찍을 수도 있고, 행위를 통해 표현할 수도 있다. 다만 어떤 방식이든 사람들이 자신의 감정을 나누고 표현하는 데에 인색하지 않고, 또 다른 사람의 표현 방식에 불편한 감정을 느끼기보단 서로 인정해 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방법이야 어찌 되든, 사람들이 조금만 더 자기 감정에 솔직하고 충실하며, 표현하는 것을 익숙해하는 삶을 살게 되면 참 좋겠다 하는 희망을 품은 채, 모든 사람이 자기 자신을 확실히 나타내주는 감성 표현 방식을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이 글을 마친다.
출처:
책:
파울로 코엘료, 『마법의 순간』, 김미나 옮김, 자음과모음 출판사(2013).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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