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품에 관하여

Posted by 희씨
2019. 4. 3. 03:58 EDITORIAL/문예 :: Literature

 

언품에 관하여

 

지나간 나의 옛사랑이 말했다. 너는 가끔 참 못됐다고. 조금이라도 상처를 받으면 그 아픔을 똑같이 주겠다며, 듣는 자신이 받을 상처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두 배 정도는 더 못되게 굴곤 한다고. 이렇게 옛날의 나는 성격이 고약해 말을 예쁘게 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지금은 그 모습이 꽤나 낯설지만, 그땐 자상함의 표현이라는 게 거북했을까.

 

그는 나와는 다르게 매우 상냥했다. 나의 삐뚤어진 말투와는 달리, 하고 싶은 말들을 다 하면서도 한 치 뾰족함이 없었다. 나는 솔직함이라는 핑계 속에서 참 무례하다 싶을 정도로 상처를 많이 주곤 했었는데. 나는 돌아서며 그에게 평생 잊지 못할 한마디를 건넸다. 내가 ‘언품’에 대해서 고찰하기 시작했던 건 이때부터였지 싶다.

 

말의 품위. 사람이 갖추어야 할 말의 위엄이나 기품. 위엄이란, 존경할 만한 위세가 있어 점잖고 엄숙한 태도나 또는 그런 기세를 말하고, 기품이란 사람 된 바탕과 타고난 성품에서 오는 고상함을 말한다. 마치 언품이라는 것이 거창하다 못해 고리타분하고 쉽게 와 닿지를 않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를 가늠하기가 어려워 보인다. 나는 그런 어려운 것만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마음의 소리를 조금 더 잘 들을 수 있게 된 나를, 그 소리와 향기를 은은하게 퍼트리고 싶었을 뿐.

 

나의 말투가 언제고 선인장 같았던 것은 아니었다. 어린 날의 나는 항상 말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가까울수록, 친하면 친할수록 실수하기 쉽다고 생각했던 나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에게 가끔 편지를 써줄 때에도 말을 예쁘게 하면 좋겠다는 내용은 빠지지 않았던 것 같다. 그냥 언제부턴가 선명한 상처의 그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아 밤잠을 설치고,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애써 노력하는 것을 여러 번 하다 보니 그냥 밀어내는 것이 더 쉬웠으니까. 젊은 날의 방황 아닌 방황을 나름 좀 했던 것이었다.

 

그렇게 서운함이라는 감정을 외면한 채 분노로 승화시키는 것이 그때는 좀 더 편했다. 생각해보면 스스로의 감정을 달래는 방법을 몰라서 그랬을까. 괜한 자존심을 내세우던 나는 그냥 지는 것이 싫었을까. 알량했던 내 마음 하나 지키자고 다른 이의 마음을 한참 무너뜨리고 있었던 것이, 정작 나를 무너지게 하는 지름길이었던 것을 너무 늦게 깨달아 버린 것이었다.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일기를 쓰는 것이 작은 습관이었다. 매일 쓰지 않아도, 길게 쓰지 못해도 일기장은 항상 내 책장에 꽂혀 있곤 했다. 어디에서나 항상 함께하는 것. 오랜만에 펼친 일기장엔 나의 날것의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유독 힘든 날에 더욱 간절히 찾게 되었던 일기장에게 미안하게도 나의 좋은 감정들을 보는 게 드물었다. 서운함을 짜증으로 표현할 때가 많았다. 미안함을 화로 풀어내는 일도 적지 않았다. 잘못된 일은 상대를 탓하기 바빴다. 책임감이라는 단어가 말과는 관련이 있다고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했다. 마음과 다르게 말하지 않는 것, 솔직하게 나의 감정을 인정하는 것.

 

작년과 재작년 베스트셀러엔 말에 관한 책이 유난히도 많았다. 사람을 위로하는 책이 예쁜 표지와 더불어 예쁜 말들을 담아 쏟아져 나왔다. 한참 책과 사람과 나에 대한 생각과 그 시간을 즐기고 있을 때라 꽤나 많은 양을 읽을 수 있었다. 마음에 와닿는 말들이 많았다. 아련하기도 했고 어떤 것이 슬프거나 행복하기도 했다. 말과 글이 주는 따뜻함을 경험하면 할수록 내 아웃풋은 서서히 변해가기 시작했다.

 

가족이란 이름 아래 지내왔던 나의 당연함 속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지 생각했다. 절제에 익숙하고 상냥하지가 못해 말보다는 행동이 앞선 아빠의 그늘에선 말의 무게와 태도를 배웠다. 표현이 서투른 아빠 곁에서 여리고 여려져 눈물이 많아진 엄마와 함께하며, 나는 자연스레 섬세하게 말하는 법을 알아갔다. 바쁜데 왜 또 전화했냐 같은 아빠의 진심 아닌 말을 가려내는 혜안이 늘어갔고, 엄마의 가녀린 침묵쯤은 편의점 캔맥주와 함께 '응. 엄마 마음 다 알지' 이 한 마디로 시작하는 것에 능숙해졌다.

 

나는 상상하지도 못할 만큼 몽글몽글 해졌다. 상처 받아도 기꺼이 괜찮다는 관대함을 베풀고 또 넉넉함을 갖게 되었다. 상처라는 표현을 쓸 수 있다는 것은 정이든 사랑이든 나와 가까운 사람들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상처받고 상처주지 않기 위해서 이 과정은 꼭 필요했던 것이었다.  무심코 던지는, 마음과 다른 말들이 주는 비수가 여전히 쉽지만은 않지만 바뀐 나의 삶은 모서리가 깎이고 다듬어져 내 나름의 동그라미가 되었다고 하겠다. 누구 못지않게 비관적이었던 사고가 긍정을 향해 갔고 사고가 바뀌니까 표현도 예뻐졌다. 그래서 지금의 내가 조금 더 만족스럽다고 하겠다. 당연하겠지만 언제나 말은 나를 닮아 있었고 또 여전히 그렇게 닮아가고 있었다.

 

 

- 살아가며 상처 꽤나 주고받아본 이들을 대신하는 ‘내’가 이 글을 읽는 불특정 다수인 ‘당신’에게 어쭙잖은 한마디 해보고자 해. 

 

나는 당신이 사람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어. 당신이 말하는 그 말이 내 진심은 아니었다는 그것으로 인해 외로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아차 싶은 순간들을 조금 덜 살고, 그래서 당신이 후회라는 것을 좀 덜 했으면, 나는 그랬으면 좋겠어. 따뜻한 말 한마디가 얼마나 커다란지를 나는 그대가 지금보다 더 많이 알았으면 좋겠어. 그래서 가려진 진심을 굳이 헤아려 보고자 부단히 노력해보는 나를 잃지 않았으면 좋겠어. 되도록이면 좋은 것들을 보고 듣고 싶은 내 눈과 귀에 혹여 실수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사소한 것에 서운한 마음을 애써 달래는 나를, 그 예쁜 마음을 깎아내리지만은 않았으면 좋겠어.

 

혹여 당신이 나와 비슷하다면, 당신의 잘못은 아무것도 없다고 나에게 섣불리 위로받을 생각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대화는 혼자가 아니라서 둘이 하는 것이야. 그러니까 당연히 당신의 책임도 반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 좋겠어. 그리고 지난날의 나처럼 준비되지 않은 많은 사람들을 위해 단단한 마음쯤은 갖춰 두는 것이 좋겠다고 감히 충고하고 싶어. 상대를 마음으로 대하려면 나부터 준비되어야 하니까. 그래서 나는 나와 당신이 사는 세상이 향기 가득한 말로 꾸며졌으면 좋겠어.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지만,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는 한 마디의 주인공이 그대가 된다면 나는 너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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