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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IAL/문화 & 예술 :: Culture & Art

나는 신세대다



요즘 필자는 다음 학기에 나가 살 집을 찾는다. 집의 위치부터 보증금, 월세, 집을 채울 가구며 나가 살며 쓸 식비까지, 신경써야 할 부분이 한 두개가 아니다. 집주인과의 계약 문제는 더이상 부모님이 해결하셔야 할 문제가 아니게 됐고, 학비 보조금 신청하기 등 책임감을 가지고 스스로 헤쳐나가야 할 일거리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20 살이 넘어버린 나이에 걸맞는 책임감을 내가 받아들일 준비가 된걸까. 늘어가는 나이만큼 어른스러워지지는 못할 망정, 요즘 무늬만 20대인 애어른이 된 필자의 관심을 유독 끄는 것이 있는데, 바로 추억팔이다. 동시대를 살았거나 비슷한 경험을 하며 자란 사람들이 서로의 경험에 공감하며 본인의 과거를 추억하게 되는 현상 말이다.


케이블 방송사 tvN을 일으킨 프로그램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응답하라> 드라마 시리즈일 것이다. HOT 나 잭스키스 같은 1세대 아이돌들에게 열광했던 소녀를 주인공으로 동시대를 살았던 시청자들의 뜨거운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응답하라 1997>의 흥행과, 아날로그와 디지털 시대를 동시에 경험한 X-세대를 내세워 동시대 출신 시청자들의 향수를 불러일으켰던 <응답하라 1994>의 연달은 흥행까지. 시청자들의 열광에 힘입어 최근 <응답하라 1988>의 제작이 가시화되고 있다는 기사가 하나 둘씩 뜨고 있기도 하다.


이렇게 서로 다른 세대들이 드라마나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추억팔이를 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필자도 역시 필자가 살아온 세대에 대한 추억팔이를 잠시 해볼까 한다. 95년생인 필자는 <응답하라 1994>의 세대를 겪었다고 할 수 있는 부모님을 두고 있고, <응답하라 1997>의 배경인 1세대 아이돌의 핫타임을 겪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으나 그닥 열광적인 기억을 가지고 있지도 않은 어중간한 세대 출신이다. 대충 이름 붙여보자면 아무래도 신세대에 가장 가까운 세대가 우리가 아닐까? 2000년대에 태어난 밀레니엄 베이비들을 제외하고 본다면 말이다.



필자의 초등학교 시절을 되돌아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억이 바로 리코더가 튀어나온 캐릭터 책가방을 메고, 실내화 주머니나 스케치북을 든 채 문방구와 동네 슈퍼를 지나서 뛰어가던 학교 등교길이다. 등교길에 괜히 흔히 보이던 전봇대까지 함께 등교하던 친구들과 달리기를 하기도 하고, 걸어가며 툭툭 차던 실내화 주머니가 비온 뒤 생긴 물웅덩이에 빠져버려 시무룩한 채로 교실로 들어가 창문가에 말려본 적도 있었다. 월요일 아침마다 의무적으로 참여해야 했던 단체 국민 체조 이후에 교가를 따라부르던 아침 조회도 새록새록 떠오르고, 점심 메뉴가 가장 만족스러웠던 수요일을 손꼽아 기다리던 기억도 있다.


매일 한 곽씩 마셔야했던 밍숭맹숭한 우유에 어떻게든 맛을 더하기 위해 몰래 챙겨다니던 제티와 생멸치. 정말 피하고 싶던 우유 당번과 급식 당번 꼭 더럽게 남은 우유나 음식 찌꺼기를 흘려 뒷처리를 하게 만드는 아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매일 한분단씩 돌아가며 맡았던 반청소 때는 빗자루와 쓰레받기로 먼지나 쓰레기를 먼저 정리한 후 화장실에서 직접 빨아온 대걸레로 치덕치덕 물칠을 했었다. 미술 수업이라도 있었던 날에는 물감으로 얼룩지고 미끄러운 복도의 개수대와 위에 깨끗이 씻긴 채 늘어져 있는 아코디언 수통들덕에 복도에서 대걸레를 빨기 번거로울 때도 있었다.



우리 신세대어린이들이 즐기던 유흥문화 역시 빠뜨릴 수 없겠다. 가장 많이들 추억하는 것은 아무래도 동네 문방구나 슈퍼 앞에 줄지어 서있던 오락기가 아닐까 싶다. 유치원도 다니지 않는 서너살의 아가 동생이 십원이든 오십원이든 엄마가 동전을 모아놓던 부엌 서랍을 털어 발걸음을 향하던 곳. 아직도 오락기 동전 투입구 아래 가득 쌓여있던 구릿빛 십원짜리, 빛나던 오십원짜리 동전들과 반복되는 인트로 화면을 보며 해맑게 버튼을 눌러대던 동생의 웃음이 눈가와 귓가에 선하다. 동네 문방구나 슈퍼는 케로로빵이나 쬰쬬니, 아폴로 같은 불량식품의 천국으로 우리에게 사랑을 받기도 했다. 컵볶이나 콜팝같은 프리미엄 간식도 간혹 먹을 수 있었다. 오백원이면 잔뜩 군것질거리 쇼핑이 가능했던 때.


<텔레토비>를 보며 유아 시절을 보내고 <딩동댕 TV 유치원> 속 뚝딱이나 <방귀대장 뿡뿡이> 속 뿡뿡이와 짜장형의 배웅을 받으며 등교길로 나서던 초등학생 시절을 보냈다. <야인시대> 속 김두한의 비뚤게 쓴 중절모와 카리스마 넘치는 썩소는 바람처럼 스쳐가는 정열과 낭만아로 시작하는 수록곡과 함께 머리에 깊게 박혀있고, 늦은 방영 시간 탓에 많이는 챙겨보지 못했지만 가끔 운 좋게 늦게까지 깨있을 수 있던 날마다 볼 수 있었던 <대장금> 속 이영애의 맑은 얼굴과 낭랑한 목소리 또한 생생하다. 비슷한 때에 방송됐던 <천국의 계단>은 어쩐지 더욱 자주 챙겨본 기억이 나는데, 역시 아베마리아가 끊임없이 반복되던 수록곡이 머릿속에 제일 먼저 재생되고, 마지막회를 본 후 드라마 제목이 천국의 계단인데 어째서 계단이 나오지 않는거냐던 동생의 질문도 함께 떠오른다.



<응답하라 1988>의 제작 소식과 더불어 비슷한 포맷과 주제를 너무 우려먹는 것이 아니냐는 반발의 목소리 또한 고조되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묻고싶다. 과연 추억을 재조명하는 일이 과하거나 넘칠 수 있을까. 현실의 무게감과 복잡함에서 잠시나마 탈출하게 해주는, 동심이나 순수함이 가득하던 과거로 잠시나마 돌아가게 해주는 창조물은 많을수록 좋다고 믿는다. 과거를 돌아보는 일이 잦아지다 보면 추억에서 졸업하는 일도 쉬워지고, 책임감을 지녀야 하는 어른과 자유롭고 싶은 아이 사이에서 방황하는 자신을 좀 더 수월히 추스릴 수 있지 않을까. 어린 과거에 대한 애착을 조금 덜 수 있을 때 비로소 어른다운 어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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