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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Alumni/동문

Future Worker - Future Walker :: 강성모 UC Merced 총장 강연회

What would future demand from next generation workforce?

2월 18일. 버클리오피니언의 멤버들은 강성모 총장의 강연회에 참석했다.  이 강연회는 현재 학교 내의 한인 대학원 학생회인 KGSA의 주도로 시작된 "유명인사 초빙" 프로젝트의 일환으로서, 그 처음은 UC 버클리 대학원 동문이자 현재는 UC Merced에 총장으로 재직 중인 강성모 총장과 함께 시작했다.

행사의 주관을 맡아준 KGSA, KUNA, 그리고 KASA에게 감사를 드리며, 이날 강성모 총장이 제시한 “미래는 다음 세대의 일꾼들에게 무엇을 요구하는가?” 라는 질문에 버클리오피니언 멤버들이 제대로 된 답을 얻을 수 있었을까?  질문을 되돌려 생각해보자.  버클리 한인 학생들에게 있어서는 롤 모델이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는 입장에 서있는 그는, 현재의 우리들이 인생의 커리어를 설계하는데에 도움과 영감을 받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강연회의 시작에 표현하였다.

앞으로의 미래 사회가 우리 학생들 - young generation - 에게 요구하는 점들은 무엇인가, 또 그런 우리들에게는 어떤 마음가짐의 자세가 요구되는가?



#1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라
강연회에서 그가 가장 먼저 강조한 것은 자신이 하는 일에 있어서 자신의 능력에 맞는 분야를 선택하여 그 일에 대한 친밀도와 적응력을 높이라는 것이었다.  자신이 원하지 않는 길로 빠져 무리한 인생을 살다 보면 언제나 남들의 밑에서 머물 수 밖에 없으며, 원하지 않은 상황에 빠졌을 때 자신만의 기지로 그 상황을 타파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하였다.  실제로 그는 UC 버클리 대학원에서 수학하던 시절에도, 졸업 후의 직장 생활에서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기 위해서 노력했다고 한다.

다만, 사회 생활을 하다 보면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서도 싫증을 내거나 문제점이 생겼을 때 어느 정도의 자기 희생이 필요하다는 점을 피력했다.  한 예로 그는 졸업 후 AT&T Bell Laboratories (우리가 아는 그 AT&T 맞다) 에서 세계 최초의 32비트 마이크로 프로세서 개발의 연구팀에서 Project Coordinator로 재직한 적이 있었다.  당시 AT&T는 이미 16비트 프로세서 개발 기술을 가지고 있던 타 회사들에 비해 8비트 프로세서 개발 경험만 있는 기술적으로 뒤쳐진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상황의 타파를 위해 16비트를 건너 뛴 32비트 프로세서로의 발전을 위한 직접 개발에 뛰어들고 있었다.

해당 분야의 전문기술자들이 모인 개발연구팀이었지만, 이 정도 수준의 팀은 당시 AT&T와 비슷한 분야에 진출해 있던 다른 회사들과 다른 것이 없었다.  강성모 총장이 내건 차별화 정책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한 자신의 희생이었다.”  프로젝트 책임자로서의 그는 자신의 여가 시간을 희생하면서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나 팀 내의 다른 멤버들에게 효율적으로 일을 분배하기 위해 연구와 그 연구에 대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 결과 프로젝트는 - 약간의 지연이 있었으나 결과적으로는 -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수 있었고, 그 결과는 관련 업계의 이목을 받게 된다.  이는 이후에 강성모 총장이 자신이 좋아하는,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지속적인 일을 할 수 있었다.

강연 도중 그는 The Mythical Man-Month 라는 책을 언급하였다.  이 책은 이공계 분야에서 어떤 뒤쳐진 기술에 대한 개발 과정에서 인력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경우 얻어질 수 있는 이점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는데 (adding manpower to a late software project makes it later), 강성모 총장이 이 책에서 언급한 부분은 다음과 같다.

Progress tracking

Brooks wrote "Question: How does a large software project get to be one year late? Answer: One day at a time!" Incremental slippages on many fronts eventually accumulate to produce a large overall delay. Continued attention to meeting small individual milestones is required at each level of management.

질문: 어떻게 하면 대규모의 소프트웨어 개발 프로젝트에서 지연되는 경우가 생기는가?

대답: “한 번에 하루씩” 개발 초기의 실패 과정이나 난관에 대한 경험들은 결과적으로 프로젝트 전체에 대한 완성에 있어서 필연적으로 지연을 가져올 수 밖에 없다.  따라서 프로젝트 내의 개발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점들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그는 자기 희생이 필요한 순간에서 적절하게 자신의 능력을 극한까지 끌어 올림으로써 그 희생의 경험들까지도 자신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발판으로 만든 셈이다.

결국, AT&T에서의 경험들이 이후에 관련 산업에서 계속 종사하면서 자신에게 커다란 도움이 되었다고 한 강성모 총장은 이렇게 말했다.  "결국 이런 개발 과정, 그리고 직장 생활에 있어서 사람들에게 motivation을 주는 것은 돈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연봉의 액수 같은 것들은 sort of indication일 뿐입니다."  아마, 그는 돈의 액수로서의 경제적인 가치보다는 그 숫자 자체가 자신이 맡고 있는 직책에 대한 책임감의 크기를 수치화한 것이라 생각한 것 같다.

주제의 끝에 강성모 총장은 농담조로, "이런 일들을 하느라 집에서는 좋은 남편이나 아빠가 되기는 힘들었지만, 다행히도 집사람이 돈 욕심은 없어서 가정 내에서 경제적인 이유로 인한 불화는 없었던 편입니다" 라며 아내와 가족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했다.  

#2 Global View를 가지는 세계 시민의 자세
두 번째로 그가 강조한 것은 세계 시민의 자세를 가지는 것이었다.  버클리의 많은 후배들과 마찬가지로 - 필자는 아니지만 - 강성모 총장도 유학생 출신이다.  오히려 그는 최근 한국에서 불고 있는 대다수의 조기 유학생들과는 달리 한국에서 대학 생활과 군복무를 모두 거친 뒤 미국 대학원으로 유학 온, 지금 기준으로서는 늦깎이 유학생이었다.  아직 정식적으로 미국 생활을 하기 전, 그에게 있어서 준비된 것은 관련 전자공학의 전문 지식들과 한국 내에서 공부한 영어 실력이 전부였다.

그 후 UC 버클리에서 대학원과정을 수료하기 시작하며 그가 느낀 것은 “세계 정세를 항상 파악하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는 것이었다.  과거 국가들 사이에서 있었던 교류는 대부분 원자재나 그 원자재들을 기반으로 한 가공품들, 즉 1차나 2차 산업들을 기준으로 이루어졌다.  이런 추세가 점차 발전된 무역이나 세계화를 통해서 3차 산업들, 그리고 금전적인 관계로 이루어졌다.  기술이나 자본은 더 이상 한 나라안에 종속될 수 없다.  따라서 요즘 같은 세계화 시대에서는 자신이 종사하고 있는 분야가 어떤 부분이던지 전세계의 동향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는 것.  이 것이 강성모 총장의 메시지들 속에서 필자가 얻은 교훈이었다.

#3 창의력을 갖춘 태도
UC 버클리의 대학원을 나온 선배로서의 강성모 총장은, 이 주제에서만큼은 그의 후배들에게 따끔한 충고와 조언을 하였다.  UC 버클리는 분명히 세계적으로 유명한 명문 학교이며, 그 곳에 다니고 있는 학생들은 개개인이 뛰어난 사람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대학을 나오고, 또 그로 인해 좋은 직장을 나온다고 해도 인간에게는 누구나 한계가 있다.  여러분들이 지금 명문 대학교를 다니고 있고, 또 졸업 후 안정된 직장이 보장되어있다면, 그 것은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열심히 해왔기 때문이에 지금까지의 생활을 보장할 뿐이지, 그 이후의 미래는 보장하지 못하는 것이다. 따라서 "졸업 후에도 본인이 새로 거듭나지 않으면 아무리 경력이 좋아도 (발전의) 가능성이 줄어드는 것이 당연합니다. 항상 공부를 해서 up to date 해야합니다." 

즉, 더 높은 가능성을 위해 최신의 흐름에 발 맞추어 지속적으로 자기 발전을 노력 해야함을 강조하였다.

UC 버클리 대학원을 졸업한 후 그는 AT&T Bell Laboratories 이외에도 독일의 Karlsruhe Institute of Technology와 뮌헨기술대학 (Technical University of Munich), 그리고 한국의 KAIST에서 교환교수로 재직한 경험이 있다.  AT&T 연구소에서 성공적으로 고밀도 집적회로 (32비트 마이크로프로세서 플랫폼) 개발 프로젝트를 마무리한 이후 1985년, 연구팀과 개발팀을 총괄해서 관리하여 프로젝트의 성공적인 개발을 이끌었던 강성모 총장의 업적이 널리 알려져 펜실베니아의 Allentown에 위치한 Western Electronics에서 자사의 새로운 프로젝트 개발을 위해 연구팀과 개발팀을 모두 지휘해달라는 초빙 제안이 들어왔다.

이 과정에서 강성모 총장은 가족을 이끌고 펜실베니아로 이주할 생각까지 했었지만, 마침 버클리 대학원 시절 알고 지냈던 방문 교수가 이 소식을 듣고 연락이 왔다고 한다, 펜실베니아가 아닌 일리노이 주립대의 조교수직 제안과 함께.  교육직의 특성상 사기업에서 후원을 받는 연구자와는 달리 환경적인 요건은 비교적 좋지 않았지만, 강성모 총장은 이 시절의 생활이 자신의 인생에 있어 커다란 전환점이자 도움이 된 시기였다고 회고했다.  이 시절 그는 박사 논문을 55편 정도 출판하였고, 학생을 지도하는 경험을 통해 교육자로서 거듭나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지도 교수를 잘 만나야 합니다.  지도 교수의 입장에서 보면 학생 하나하나가 다 다른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특별함과 캐릭터를 알아내는 것이 교수의 역할이며, 그래서 그 학생들에게 여러 가지 연구 과제를 제시하고 그 중에 적합한 것을 통해서 학생의 적성을 알아내고 지도하는 것이 지도 교수로서의 바른 방향입니다.  제가 재직하던 시절, 한 특별한 중국인 학생이 있었습니다.  처음 보았을 때는 특별한 장점들이 보여 지도하기 힘들 수도 있다는 생각에 우선 다른 교수들을 찾아보고 없으면 다시 오라고 했었는데 결국 다시 저를 찾아왔습니다.  결과적으로 제가 그 학생의 능력을 꿰뚫어보았기에, 처음에 어렵다고 생각했던 저도 정열적으로 그 학생을 가르쳤고, 결국 그 학생은 제 밑에서 제대로 수학했습니다.  지금은 텍사스에서 자리를 잡아서 관련 업계에서 저명한 인사가 되었습니다.” 5년 후 그는 정식 교수로 승진하였다고 한다.


#4 공익 公益 - 공중의 이익, public weal; importance of teamwork
연구자, 프로젝트 코디네이터, 교환교수, 조교수, 학장 등 그가 맡아온 직책에서 그는 언제나 중간 조정과 공익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한다.  연구자와 프로젝트 코디네이터로 지내던 시절 당시 강성모 총장의 별명은 Captain Smooth였다. 한 그룹의 최고의 위치에 있음에도 그는 팀원들의 결속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하는데, 그는 “자신이 이끌고 있는 연구원들과 함께 일한다는 것은 결국 그 사람들 사이에서의 대립이나 반목, 협동 같은 것들을 모두 조절할 수 있으면서도, 동시에 프로젝트 전체의 기술적인 진행 과정을 모두 파악하고 있어야 합니다” 라고 말하였다.  이 당시의 경험이 강성모 총장 자신의 대학 생활, 그리고 사회 생활에 큰 경험이 되었다고 한다.

또한 그는 “자신의 사리를 챙기기보다도 집단을 위해 생각 하는 것이 중요하다” 고 하였다.

Jesus CEO라는 책을 언급 하며 협동의 의식을 강조하였다. ‘집단에서 자신이 모범을 보여야 하고, 헌신을 해야하고, 정상을 향해 올라갈 때 모두와 같이 올라가려고 해야 합니다.  혼자만 올라가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일리노이에 있던 시절, 그는 미 정부가 후원하는 대규모 엔지니어링 리서치 센터를 담당하게 되었는데, 이 단체의 첫 실적이 너무나 부진했기에, 정부에서는 프로젝트를 철회하겠다고 하여 리서치 센터 전체에서 커다란 난리가 났었다.  강성모 총장은 당시 센터 내에서 멤버들간의 협동이 부족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테스트 베드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좀더 미래지향적으로 연구를 할 것을 제안했다.  이 제안 덕분에 결과적으로 리서치 센터는 이후 보다 나은 실적을 내기 시작하며 10년 동안 계속 후원을 받을 수 있었다.  이런 괄목할 만한 성과로 강성모 총장은 다른 교수진들에게 추천을 받았고 1995년 전기컴퓨터 공학과의 학과장 직을 맡게 되었다. 일리노이 주립대학에서 외국인으로서는 학교 내 110년의 역사상 처음이었다.

#5 불평을 늘어 놓지 말자
공익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그는 불평을 하는 자세를 버리고 사람들과 융화 해야 함을 덧붙였다.  "만약 집단 내에서 대립이 생긴다면 이를 해소하기 위한 노력들이 필요합니다.  제가 재직하던 시절, 한국 사람들은 이탈리아 사람들과 같아서 싸움을 잘한다고 알려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싸움은 안 하는게 좋아요.  싸움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고, 아무 것도 낳지 않습니다." 대부분  컴플레인을 하는 사람들은 일을 열심히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며, 겸손한 자세를 갖출 것을 당부하였다.

강연회가 끝난 후 약 30분 정도의 질문시간이 있었다.  그 중 일부를 간추려서 올린다.

Q1. 총장, 프로젝트, 코디네이터, 과장 등 위에서 사람들을 부리신 경험이 있으신데, 그 입장에서 공익을 위해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지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스프링데일)
단체를 운영하고 이끌어나가고 그러는게 쉽지 않습니다.  멤버들 각자의 생각이 있고, 또 그것들이 서로 다르니깐요.  하지만 Collective Wisdom (집단지성)은 언제나 Individual Wisdom (개인지성) 보다 더 중요합니다.  누군가를 이끌어나가는 입장에서 멤버들 각 개인에게 일들을 세세한 것까지 배분하는 것은 사실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그들에게 일을 배분함에 있어서, 그들이 스스로 창의성과 추진력을 가지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제 개인적인 입장에서 봤을 때, 특정 그룹의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리더십은 servant leadership (봉사하는 리더십) 입니다.”

Q2. 한국에서도 대학교를 나왔고 미국에서도 커리어를 쌓았는데, 왜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미국에서 커리어를 진행하려고 했나? 특별한 이유가 있으셨는지? (서현진 전 MBC 아나운서)
No, it was family reason. 귀국을 종용하는 제안을 많이 받았지만, 와이프 포함 가족들이 한국 나가는걸 싫어했기때문. 

Q3. 최근에는 미국으로 오는 조기 유학생들이 많은데, 이는 적응이 문제이다. 미국에 늦게 와서 이곳에서 자리 잡기가 쉽지 않았을텐데, 미국 사회 내에서의 적응을 위한 경쟁력을 키우는 남다른 방법이 있었는가
현재 미국 사회에선 인종 차별이 있다고 하는데, 그럴 수도 있음. 하지만 그걸 인정하고 당당하게 나가는 깡이 필요함. 차별대우라는 것은 결국 한국인들의 미국인에 대한 역차별도 일어나기 마련이듯, 어떠한 케이스냐에 따라 받아들일 수도 있어야 함.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특별한 것을 갖추어야한다.extra edge를 갖아야한다. 

Q4. 학업 과정 중 depression을 극복하는 방법이 있다면?
You have to stay away, and come back. 수학문제를 풀다가 안풀리는 것이 있으면, 잠깐 다른 문제를 풀다가, 다시 그 문제를 풀면 잘 풀릴 때가 많다.잠시 물러섰다가 재도전하는 태도를 갖도록 하라.  교수와 의논하고 조언을 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Q5. Industrial 과 acamemic field 선택에서 고민 할때는 어떠한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나?
Open mind를 갖고 생각하라. 그 경험이 무엇이 되던지, 그것들이 언젠가는 자신의 인생에 어떻게든 써먹히게 되어있다. nothing is useless/wasted.everything you do is valuable. 

Q6. How to resolve such conflict in a group?
희생할 수 있는 자신의 태도가 중요할 것이다. 갈등이 일어 났을때, 각자 반대되는 의견을 갖고 있을지라도 다 옳을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옳고 그름을 너무 따지기보단 higher goal로 level up해라.Have a bigger bowl.

Q7. 미국 사회에서 높은 직책을 가지셨을때, 영어가 얼마나 중요성을 가지는지? (질문자: 숲틱)
영어는 정말 어려운 언어이다.특히 발음이라던가 엑센트 경우에서 힘이들다. 그래서 아직도 나는 꾸준히 공부를한다. 스피치 하기 전에  항상 인터넷으로 발음같은것은 체크하고 연습한다. 계속 열심히 연습하라. 심지어 오바마도 열심히 영어공부를 한다.

Q8. 인생의 목표가 있으시다면?
선하게 살자. 남에게 친절하자.

이는 장례식에 얼마나 오는지 보고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옛날에 아인슈타인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의  유명한 독일 수학자가 있었다. 그 사람의 장례식의 딱 한명만 왔다고 한다. 인생에 가장 중요한 것은  Nobody has any right to look down people. No matter what you are, don’t never look down anybody, respect them.




현재를 살고 있는 대학생들에게 있어서 무엇보다 큰 이슈는 아마도 졸업 후의 사회 생활일 것이다.  강성모 총장이 강연한 것처럼 만약 이후의 미래에서 새로운 자신으로 거듭나지 못한다면 결국 그 사람은 사회에서 도태되고 말 것이다.  그렇다면 격동하는 세계화 시대속에서, 그리고 지속적으로 진행되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결국리가 맞이하는 것은 미래의 우리 자신일 것이다.  또한, 단순히 강성모 총장이 말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그가 강연한 이 날의 내용들은 우리가 인간으로서, 또 학생으로서 살아가면서 필요한 삶의 지혜같은 것들이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그의 강연은 우리 학생들 뿐만이 아니라, 현재 세계를 살고 미래를 준비하는 우리 모두들에게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다가오는 미래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  아무리 과거지향적인 사람이더라도 다가올 내일을 걱정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강성모 총장이 이 곳 UC 버클리에 다니던 시절에도 현재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점은 그에게 있어서 미래의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 미래의 시간이 도래했을 때, 그는 어느덧 자신이 수학했던 학교의 후배들, 이를테면 미래를 걸어갈 일꾼이 될 수있는 우리들에게 그 미래를 걷는 법을 알려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http://www.ucmerced.edu/images/photo-history-state.jpg

그는 이번 6월  UC Merced의 총장직을 퇴임키로 결정하였다. 퇴임 후 그는 반도체 칩 개발 연구와 더불어 후배 양성에 초점을 맞추겠다고 밝혔다. 2005년에 875명으로 시작한 가장 늦게 설립된 캘리포니아 주립대였던 UC Merced는 2006년 강성모 총장의 특유의 리더십을 축으로 재학생이 무려  약 4000명 늘어 났다. 그만큼 그의 UC Merced 에 대한 애착과 업적이 돋보이는 것은 사람간의 유대감을 가장 중요시하는 그만의 선한 인격이 이유가 아닐가 싶었다.UC Merced 학생들은 캠퍼스를 지나가다 총장님을 만나면 손을 흔들며 친근하게 인사를 한다고 한다. UC 버클리의 총장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잘 모르는 필자로써는 UC Merced 학생들과 강성모 총장의 유대감이 부럽게 느껴졌다.

이렇듯, 강연회에서 보여준 그의 인상은 필자들을 포함한 대다수의 학생들이 생각했을 '한인 1세 최초의 미국 주립대 총장'이라는 외부적 요소에서 기인한 것이 아닌, 전형적인 한국인 스타일의 친근한 아저씨에 좀 더 가까운 것 같았다.  그의 끊임없는 반도체 연구를 비롯한 총장으로서의 다양한 업적들은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사회에서 얼마나 이상적이며 강하게 작용 할 수 있는 지를 증명해주는 것 같았다. Captain Smooth라는 그의 별명이 반영하듯, 그가 강연회에서 강조한 ‘선함, 친절함,공익,희생의 중요성.  ’이 한인 사회에서 뿐만 아닌 세계적인 리더로서 거듭날 젊은 차세대들을 위한 가장 중요한 take home message 가 아닐까 싶다.

글 by 스프링데일, 모모의 취향
사진들 by 이상옥, 모모의 취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