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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IAL/사회 :: Current Issues

대통령을 만드는 사람들: 정치 컨설턴트와 민주주의 4.0세대

- 박원순 시장의 컨설턴트 김윤재 변호사가 말한다.

2011년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대한민국 정치지형의 변화를 알리는 그 첫 신호였다. 그 주인공인 박원순 현 서울시장은 수혜적 개념의 복지가 아닌 시민의 권리로서의 복지를 주창하였다. 국가와 사회의 기본 단위인 시민은 한국정치 영역에서 곧잘 소외되곤 했기 때문에 한국의 정치담론은 인풋 (input)에 무관심했고 결과지상주의로 일관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소위 한국형 복지라고 일컬어지는 정책은 한시적인, 선거기간에 “잘 팔리는” 상품으로 전락한 측면이 강하다.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국민의 정부가 그 국민을 실상 거수기로 인식한 결과이다. 지난 보궐선거 서울시민은 거수기가 되기를 거부하였다. 한국에서는 좀처럼 등장하지 않았던 새로운 개념의 복지, 기존의 거대 매스미디어를 압도한 SNS의 위력 그리고 기성 정치인이 아닌 시민운동가 박원순. 이것이 지난 보궐선거의 요체이다. 

지난 선거를 승리로 이끈 사실상의 주역이 있다. 정치 컨설턴트 김윤재 변호사는 1993년 버클리 대학을 졸업 후 NYU 행정대학원과 뉴욕시립 로스쿨을 졸업하였다. 졸업 후 미국 민주당 하워드 딘 (Howard Dean) 의 캠프와 바바라 박서 (Barbara Boxer) 캘리포니아 상원의원의 캠프에 참여하는 등 화려한 이력을 가진 컨설턴트이다. 박원순 시장의 컨설턴트, 김윤재 변호사에게 정치 컨설턴트라는 국내에서는 희소한 직업과 10.26 선거로 대변되는 새로운 민주주의에 대해 물었다.

금융 및 기업컨설턴트와 달리 정치컨설턴트는 한국에서는 아직 생소한 직업으로 선거 캠페인 전략을 구성하는 사람이라는 정도의 피상적인 지식으로만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매스미디어의 등장과 이의 끊임없는 발달로 정치 컨설턴트의 존재는 캠페인을 운영하는 데 있어서 핵심적이고 필수적인 존재로 부상하였다. 미국에서는 정치컨설턴트협회에 등록한 사람만 칠천여 명에 이르고, 클린턴 대통령의 컨설턴트 딕 모리스(Dick Morris), 부시 대통령의 컨설턴트 칼 로브(Karl Rove), 오바마 대통령의 데이비드 엑셀로드(David Axelrod)와 같은 정치컨설턴트는 미국 사회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친 사람들로 손꼽힌다. 그들은 선거 이후에도 참모나 정책자문위원 같은 백악관 내부의 요직을 맡아 전반적인 정책도 관장하기 때문이다.

데이비드 엑셀로드 (左)

정치컨설턴트는 대통령을 만드는 사람들이다. 선거에는 온갖 요행들이 난무한다는 생각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이들에게 선거란 과학이다. 정치컨설턴트의 아버지로 불리는 조셉 나폴리탄(Joseph Napolitan) 의 말이다. 즉, 지역구의 사회인구적 특성을 파악하여 그것을 기초로 선거전략을 짜야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치컨설턴트는 후보의 지역구 특성을 파악, 그것을 토대로 각기 다른 전략을 확립한다. 민주주의를 경제논리에 입각하여 설명한 이론에 따르면 유권자들은 소비자(consumer)이고 후보들은 생산자(producer)이다. 이런 맥락에서 살펴보면 정치컨설턴트의 업무 역시 기업/금융 컨설턴트들과 큰 차이가 없는 것처럼 비춰진다. 아담 스미스가 소비자들을 이성적이라고 가정했듯이 유권자들 역시 이성적이라고 간주된다. 이에 맞춰 자신의 기호나 정치적 스탠스에 가장 가까운 후보에게 표를 던진다고 가정할 때, 후보들은 캠페인을 통해 가급적 많은 유권자들 - 소비자들 - 을 유치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후보들은 여타 상품들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팔릴수록 좋으며 캠페인은 판매율 - 득표율 - 을 최대치로 끌어올리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마케팅 전략은 다양한 시장의 종류에 따라 일변하게 되는데, 정치컨설턴트 역시 진입장벽이 높은 시장, (반) 독점시장, 경쟁시장처럼 다양한 종류의 시장을 대면하게 된다. 정치영역에서의 시장은 누가 소비자인지, 또 그들의 기호와 구성은 무엇인지에 따라 정의 내려질 수 있다. 일반적인 시장이 다양한 것처럼, 선거도 예비선거와 일반선거처럼 다양하게 구분된다. 승리하기 위해서 컨설턴트들은 후보들의 브랜드 가치를 높여 좀더 뽑힐만한 (electable) 후보로 탈바꿈 시켜야 한다. 소비자들이 좀더 그럴듯하게 포장된 상품을 구매하는 경향을 보이듯이 유권자들도 좀더 대통령다운 후보에게 표를 던지기 마련이다. 대선후보를 대통령답게 다듬는 것으로 정치컨설턴트의 업무는 시작된다.

칼 로브(右)


필자는 정치란 존귀한 것이며 민주주의의 이상은 인간이 정치적으로 추구할 수 있는 가장 고결한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기에 정치에 입문하여 민주주의의 이상을 실현할 후보들 - 시민의 대표 - 을 상품화하는 위와 같은 논리가 달갑지만은 않다. 정치 캠페인도 다른 캠페인들처럼 경제용어로 해석될 수 있는 여지가 있지만 정치컨설턴트와 기업컨설턴트는 분명히 다르다. 김윤재 변호사는 cause (대의)를 차용하여 정치컨설턴트와 일반컨설턴트를 차별화시켰다. 그에 따르면 정치컨설턴트에게는 business interest를 넘어서는 cause가 있다. 정치적 손익계산법은 정의를 그 기본으로 해야 하기 때문에 경제적인 계산법 하고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일을 하기 위해서 정치컨설턴트와 클라이언트(후보자)의 손익계산법은 일치해야 하기 때문에 클라이언트와의 정치적 스탠스에 대한 공감이 우선적으로 선점되어야 한다. 아군에 대한 믿음은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그리고 선거는 무혈의 전쟁과도 같다. 그래서 자신의 후보가 국가발전에 이바지를 해야 한다는 믿음이 있어야만 정치컨설턴트는 업무를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역사를 돌아보아도 참모와 그 주군의 이상은 언제나 교차점을 그리고 있다. 제갈량과 유비가 그랬고, 서서는 끝내 뜻이 맞지 않아 조조와 함께 하지 못하였다. 결론적으로 정치컨설턴트는 클라이언트를 보다 더 유연하게, 그러나 제한적으로, 선별할 수 있는 직업이며, 이것이 대통령을 만드는 사람들로써의 특권이요 자부심일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10.26 보궐선거는 새로운 민주주의 시대의 서막을 열었다. 현대사회는 선거라는 제도의 도움을 받아 간접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그러나 모든 선거가 여론 (public opinion)을 다각도로 수용하지 못한 채 어느 한 쪽의 기호나 취향만을 반영하게 되면서 민주주의는 점점 그 기원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현대사회가 보여주고 있는 이와 같은 민주주의의 편파성은 사회가 대규모화 되면서 필연적으로 유발된 소통의 부족에서 기인한다. 그리고 SNS는 이런 소통의 부족 내지는 부재를 상쇄할 수 있는 마법의 도구로 여겨지고 있다. 반면, 과도한 정보로 인해서 오히려 유권자들로 하여금 이성적인 선택을 하지 못하게 하는 역효과를 낳고 있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과도한 정보와 후보자들의 지나칠 정도로의 잦은 언론노출은 어느 정도 정치의 신실성을 저해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또한 SNS는 그 사용법을 모르는 노년층으로부터의 지지와 공감을 이끌어낼 수 없으며, 특정계층의 지지와 공감대가 두텁게 형성될수록 노년층의 소외감은 점점 만성적인 사회문제로까지 악화될 우려가 있다. 이러한 우려에 대한 김윤재 변호사의 답변은 명쾌하다. SNS는 하나의 가능성이다. 선거의 맹점은 선택이 아닌 불가피성에 있기 때문에 전통적 미디어의 편파성이 사실로 드러난 작금의 현실에서는 SNS 중심의 선거전략이 불가피하다.

김윤재 변호사는 SNS를 통해 유권자들과의 직접적인 소통을 도모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전통적 미디어가 세팅한 아젠다에서 탈피하기 위해서도 SNS의 파급력이 불가피하게 이용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지난 20세기의 마지막 십년이 상실의 시대였다면 지금 이 순간 대한민국은 불신의 시대를 맞고 있다. 이 불신의 시대를 살아가는 유권자들에게 SNS는 직접적인 소통을 도모할 수 있게 해줄 뿐만 아니라, 전통적 미디어의 세팅된 아젠다의 편향성을 타파한다는 데 있어서 그 파급력은 어마어마하다. 김윤재 변호사의 지적대로 재작년 트위터 인구는 백만 명이었고 작년에 치러진 분당 재보궐 선거 당시에는 오백만으로 급증하였다. 이는 유권자들이 언론의 편파성에 반대해, 점점 더 SNS에 의존하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불신의 시대, 기성의 거의 모든 것에 냉소적인 태도를 보이는 유권자들에게 SNS는 민주주의로 가는 항로이자 “하나의 가능성”이 될 수 있다. 또한 SNS는 “변화의 흐름”을 가장 적확히 포착해내는 도구이다. 그가 들려준 에피소드에 따르면 10.26 선거 전에 실시된 야권 예비선거에서 민주당이 밴(Van)을 이용하여 특정 연령층을 선거에 동원한다는 소식이 SNS를 통해 빠르게 전파되자, 11시부터 젊은이들이 투표를 하러 왔다고 한다. 이처럼 SNS는 자발적 참여와 실시간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전통적 미디어를 보완하는 기능”을 매우 훌륭하게 수행하고 있다고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SNS를 통하여 우리 사회의 진보성을 확장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정치적으로 예민한 시기에 형성된 정치관을 극단적으로 바꾸는 경향은 대체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지금의 진보적인 청년층과 장년층이 노년기에 접어들어서도 진보적인 정치관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진보적인 노년층으로 전환될 수 있다. 진보를 이식시키는 도구로써의 SNS가 한국의 지역정치 대신 이른바 세대정치를 가능하게 하지 않겠냐는 필자의 질문에 김윤재 변호사는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지금의 2,3,40대는 진보성이 아닌 여당에 대한 반대성에 의해 집합되어 있다. 그들은 反기득권적이다. 이러한 반대성만으로는 지역만큼 원초적이고 확실한 블록을 만들기가 쉽지 않다고. 필자의 견해로는 여당에 반대하는 모든 2,3,40대가 보수성 그 자체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단지 그들은 여당이 앞세우는 여당의 보수성에 반대할 뿐이며, 따라서 합리적인 보수에는 동참할 수 있다고 본다. 여당의 정강에서 보수라는 단어가 삭제되어도 젊은 세대의 反여당성이 쉽사리 상쇄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그렇기에 반대성이 와해된다면, SNS를 모든 계층이 이용한다 해도, 김윤재 변호사의 말대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세대 별로 분화되지 않을 것이다.

김윤재 변호사의 말에 의하면 선거에서 이기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유권자들이 관심을 가지는 얘기를 찾아내는 것이며, 이것이 소통의 본질이다. 10.26 선거 당시 전략의 초점은 유권자들은 누구인가에 맞춰져 있었다고 한다. 유권자들은 세대를 막론하고 전시성 행정에 지쳐있었고 무엇보다 (일부를 제외하면) 反여당적이었다. 유권자들은 노련한 정치인들의 중상모략에 기만 당하는 것에 지쳐있었고, 이러한 중상모략의 일부라고 할 수 있는 네거티브 캠페인에 환멸을 느끼는 상태였다. 이렇게 反여당적인 여론이 형성되어 있을 때, 박원순 시장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여당과의 반대성을 전략적으로 부각시킴으로써 당선될 수 있었다. 바로 이러한 정치적인 환경을 분석하여 캠페인 전략을 짜는 것, 나아가 그 환경을 자신의 후보에게 유리한 쪽으로 전환시키는 것이 유능한 정치컨설턴트가 하는 일이다. 지난 선거, 선거 경험이 일천한 무소속 후보 박원순 시장이 고지를 차지할 수 있었던 까닭은 정치적 환경을 바꾸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환경의 변화는 시민들이 가장 바라는 것, 즉 정치와의 소통에 있었다. 지난 선거 최고의 전략은 소통이었다.

소통의 부재는 정치영역에서 시민들이 도태됨을 의미하며 시민들이 도태된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정의는 시민들의 정의가 아니다. 정의를 발현시키기 위하여 시민들은 시정에 참여하고 싶어했고 “시민이 시장입니다” 라는 박원순 캠프의 모토는, 컨설턴트의 용어로 설명하자면, 잘 팔린 상품이었던 것이다. SNS는 후보들의 정보를 가장 빠르고 방대하게 얻을 수 있는 장(場)이면서 그들과 대면하고 소통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공간이다. 다가오는 선거에서는 SNS를 어떻게 선점해야 하는지에 대한 연구가 모든 정치컨설턴트들의 과제가 될 것이다. 선거에서는 일관성을 유지하기가 힘들다. 변화의 흐름과 이 흐름의 중심인 SNS를 파악하지 못하고서는 어떤 컨설턴트도 선거에서 후보를 당선시킬 수 없다. 불신이 팽배한 민주주의 시대를 겪으면서 사람들은 정치인들과 소통하길 원했고, 그들을 불신하는 만큼 신뢰를 주는 또 다른 정치인을 고대해왔다. 사람들은 SNS를 통해 기성정치를 타파하고자 했지만, 역으로 SNS가 제도권 정치에 대한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발판도 될 수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지난 선거에서 입증해냈다. SNS는 현대사회에서 민주주의가 실행될 수 있게 해줄 수 있으며, 시민들과 通하여 그들의 정의가 발아될 수 있게 해줄 수 있다. 그리고 정치컨설턴트들은 시민들과 通하여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유능한 협상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의사참여 과정에서 시민들과의 소통을 거부하는 것은 권력의 독점욕을 표출하는 것이요, 정의롭지 못한 정치이다. 지난 4년, 다수는 그들을 지배하는 소수의 능력을 의심했고 규탄했다. 권력은 와해되었고 소수는 균열하기 시작했다. 소통은  - 권력이 正義를 定義한다는 가정 하에 - 권력에 대한 의지를 표명하는 일이자 正義를 실현시키는 선결요건이다. 민주주의 4.0세대는 권력을 시민들의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하여 소통은 캠페인을 성공시키기 위한 필수조건이 되었다. 시민들과 소통하여 정치인과 시민들을 중개하는 정치컨설턴트의 활약이 기대되는 때이다.   

사진 출처: googl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