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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IAL

따뜻한 심장, 차가운 머리 [객원필진 심우찬]

대학과 방황
 
우리는 현재 자본주의 세상에 살고 있다. 자본주의. 말 그대로 자본, 즉 돈이 최고인 세상이다. 필자를 포함해 우리세대는 1998년 IMF시대를 거쳐 경제대국들이 서로 물고 뜯고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마치 정글 같은 국제화 사회에 살고 있다. 눈뜨고 코 베이는 세상이다. 자유무역과 국제화라는 보기 좋은 기치를 내걸고 강대국들은 개발도상국의 관세를 낮춰 전혀 보호되지 않은 외국시장을 휩쓸며 그 나라들의 경제발전을 저해하고 그 나라 국민들을 굶어 죽이고 있다. 한국내의 상황이나 미국내의 상황만 봐도 암울하기는 마찬가지다. 서민들이 살기는 점점 힘들어지고 있고 돈 있는 사람들의 부는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힘이 없으면 먹히고 땅을 기어야 하는 약육강식의 사회. 여기서 힘이라 함은 곧 이 사회에서 돈이다. 심하게 말한 것같지만 가감없는 현실의 새태이다.

하지만, 이 글에서 필자의 주된 의도는 사회비판에 있지 않다. 다만, 필자가 대학생활을 하며 느끼고 배운 것들을 앞으로 들어올 후배들 그리고 우리 동문들과 나누고자 하는 데에 있다. 그리고 버클리에서 나는 전공에 대한 지식뿐이 아니라 이 험난한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나가야 할지에 대한 부족하지만 소중한 지혜와 교훈을 얻었다. 이제부터 내가 그 교훈을 어떻게 얻게 되었는지 부족한 글로서 내 부끄러운 과거와 치부를 들춰내려 한다. 

UC Berkeley, College of Chemistry

사진 출처: http://www.ocf.berkeley.edu/~jahedi/uc_logo.gif

이 대학교를 선택할 때까지만해도 이 버클리라는 말을 이렇게 많이 쓰게 될줄은 몰랐다. 많은 한인학생들이 그렇듯이 나 또한 고등학교 때, US NEWS 랭킹만을 신봉하던 학생이었다. 학교주변의 환경이나 전공의 중요성을 강조하던 카운슬러들의 말은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려보냈다. 그 당시 나는 공대를 목표로 하고있었고 공대 중에 탑3안에 드는 버클리는 내가 목표하는 학교 중에 하나였다. 내가 공대를 목표로 하고있던 이유는 부끄럽지만 수학이나 과학에 특별한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좋은직업을 얻어 돈을 벌기위한 목적이 컸다. 그 당시 나의 목표는 변리사였다. 전문지식을 가지고 있어 안정적이며 공대적인 지식을 이용한 변호사라는 타이틀과 함께 보장된 수입을 올릴 수있는 직업이라는게 마음에 들었다.

버클리 컬리지 오브 케미스트리, 화학공학과가 나의 전공이었다. 많은사람들이 또 그렇듯이 나는 버클리 1학년때 뼈저리게 나의 부족함을 알았다. 조금만 노력해도 잘 할수있을거라는 나의 자만심에 게으름이 더해져 형편없는 성적을 받고 말았다.  자신만만하던 신입생의 패기는 물거품이 되었는지 사라졌다. 입학할 당시 나는 화학에 대해 꽤나 자신있어했고 잘하는 과목이라 어느정도 흥미도 있었다. 하지만 그 학기 이후, 화학에 대한 열정은 점점 사라져갔다. 랩수업에 가면 마치 감옥에 갇힌 것같이 벗어나고만 싶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나의 동기들 중, 나와 비슷한 성적을 받고있던 친구들은 나와 같이 성적이 고등학교때에 비해 현저히 낮아졌음에도 불구하고 모두 화학을 열정적으로 사랑했다는 것이다. 그들의 티셔츠에는 주기율표가 그려져 있었고 버클리움과 캘리포니움이 발견된 학교에 다닌다는 것을 자랑스러워했다. 그들과는 달리, 나는 화학이라는 학문을 좋아하는 학도가 아니라 내가 잘한다는 칭찬을 좋아했던 어리숙한 어린아이에 불과했던 것이다. 나는 점점 소외되었다. 수업은 나가지 않았고 기숙사에서 게임으로 밤새기 일수였다.

혹자는 말한다. 그리고 이 잔혹한 세계는 사실 바라고있다. 열정을 가진 선택보다는 합리적인 선택을 강요한다. 나는 조금 어리광을 부리고 싶었다. 그동안 합리적인 선택만을 해왔다면 낭만에 취하고 싶었다.  뒤늦은 사춘기. 부모님의 품안을 떠나 내가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인지 조금 생각하고 싶었다. 철없던 과거였지만 부모님껜 죄송해 연락도 잘 안하던 그 방황을 통해 다시 일어날 힘을 찾아내기도 하였다.

CYKO - KUNA

KUNA의 전신 CYKO

열정을 찾아 해매었다. 내 동기들과 같이 정말 열정적으로 좋아하는 학문도 하나님을 향한 신앙도 사랑하는 여자도 없었던 나는 우정에 기댔고 클럽활동을 왕성히 하기 시작했다. 그들과 있을땐 모든걸 잊을수 있었고 잠시나마 내가 뭔가에 열정을 쏟을 수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그 당시에는 이 클럽활동이 나의 삶을 크게 바꾸어 놀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클럽활동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의 삶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 같은 한인들이지만 천차만별이었다. 다들 나름의 애환과 고민을 안고 살고있었다. 오고가는 대화 속에 따뜻한 정을 느끼기도 했지만 사실은 내가 성공하지 못하면 다들 나를 떠나갈사람들이라는 생각에 차가운 외로움을 느끼기도 했다.

나는 아직도 가끔씩 마음 맞는 사람을 만나면 그래도 사람이 남는다는 말을 하고는 한다. 2학년때 존경하는 선배한테 들은말이다.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면 그리고 언젠가 천국의 문을 두드릴 날이 오면 머릿속 지식이나 어깨위 명예나 권력은 사실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사람이 남는다는 말은 남는 건 그사람의 신뢰나 사랑일수도 있겠지만 그 사람과 함께한 추억일 수도 있지 않을까. 먼훗날 주름살 투성이인 친구를 만났을때 다른사람들 눈엔 허리 구부러진 평범한 노인으로 보일수도 있겠지만 나에겐 아직도 젊은날 그 순박한 젊은이로 보일테다. 그의 보석같이 빛나는 눈동자에서 우리 젊었던 나날들을 보게 될 것이다.

나는 방황속에서 내 열정을 찾았을까? 아직 답을 얻지 못했다. 가까운 곳에 이미 내 열정이 있을수도 아니면 멀지않은 미래에 있을 수도 있다. 뒤늦은 전공전환과 저학년시절 방황으로 나는 동기들보다 몇년이나 졸업이 늦어지고있으나 그 방황중에 내가 앞으로 살아가는데 있어 많은 힘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세상을 움직이는 힘은 돈일지 모르나 사람을 움직이는 힘은 나를 움직이는 힘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속에 그리고 그들이 사랑하는 내 안에 있다. 추억속에 내가 그리고 추억속의 당신들이..

영화는 영화다

현실은 현실이다. 낭만은 깃털처럼 가볍고 현실은 무쇠처럼 무겁다. 좋은성적으로 졸업하고 인간관계도 훌륭해 승승장구하던 선배가 한순간에 부도를 맞고 몇몇친구는 환율때문에 휴학을 선택하기도 집안경제사정때문에 원하던 대학원에 진학하지 못하는 경우에 4학년졸업반의 반이상이 취업을 못해 교수는 20년 교수생활 중 최악의 경제상황이라 현재를 한탄한다. 이 모두가 전세계 최고의 공립대학에서 일어난 일들이다.

지금도 낭만을 사랑하고 가벼움에 취했던 날들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앞에서 말한 것과같이 어디서도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을 얻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 내가 지나쳐버린 것들은 너무나 무겁게 나를 짓눌렀다. 졸업하지 못했다며 술자리에서 친한 후배들에게 놀림감이 되는 처량한 선배의 신세한탄은 제하더라도 그저 신선놀음에 빠져있기에는 현실새태가 너무나 잔혹하다. 세상은 문자그대로 시시각각 변하고있다. 한 때는 미국을 위협하던 유로존의 경제가 하루아침에 곤두박질치고 잘 나가던 회사들도 한순간에 무너져 직원들은 일자리를 잃고 길거리를 해매는 세상이다.

사진 출처: http://estin.net/image/1324371599w87oLQ/vdzkfrhw.jpg

물론, 어른들의 대화를 잘 들어보면 우리나라가 이렇게 세계로 뻗어나가 이세계에서 이만큼의 위치를 가지게 된 것이 한반도의 역사를 통틀어 아마 처음이라 할 수도 있겠다. 하긴, 길에서 교통사고가 나서 정신차리고보니 뒷목을 잡고 나오는 멕시칸아저씨가 갤투를 내밀며 전화번호를 교환하고 범퍼가 망가진 현대소나타에 타며 옆에 처자에게 나를 욕하는 경험을 하게되면 기분이 이상하기는 하다.

다만, 이 또한 한 순간의 전성기가 되서는 안된다. 핀란드의 노키아라는 회사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불과 몇년전까지만해도 이 기업은 전세계 휴대폰시장의 1위회사였지만, 스마트폰시대를 잘못읽은 수뇌부 판단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아이폰과 갤럭시시리즈는 스마트폰시장을 양분. 핀란드 경제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노키아가 주춤하자 핀란드 경제는 큰 타격을 입었다. 한국 기업들과 경제도 앞으로 어떻게 될지 흥할지 망할지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다. 1998년 초등학교 시절, 또래의 아이들이 가족들과 함께 지하철에서 노숙하고 있는 광경은 결코 편하지 않다.

우리세대의 어깨가 무겁다.

사실은 진보나 보수 신입생이나 편입생 동아리소속 집안경제상황이나 실력유무 출신배경에 상관없이 우리는 분열할 시간도 여유도 없다. 앞으로 다시 오지 않을 청춘의 추억을 쌓기에도 잔혹한시대를 살아갈 능력과 경험을 배우기에도 벅찬 시간들이다.

무조건적으로 공부만 하라는 뜻은 아니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는 동물이기 때문에 인생길 희노애락을 함께할 수 있는 친구를 여럿 만들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나의 견문을 넓히는 연습이 필요하다. 필자를 오랫동안 아는 지인들이 내가 이 말을 했다는 사실에 또한 실소할지 모르나 연애 또한 무시해서는 안되는 인생의 중요한 부분이다. 그리고 한단계 도약을 위한 여행이나 휴식 또한 굉장히 중요하다. 요는 마음의 중심, 생각의 중심이 어디에 있느냐는 것이다. 중심이 무너지지 않는다면 유혹에 빠질리도 없고 무엇을 해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며 설령 실수를 저지른다 해도 빨리 툭툭 털고 일어설 수 있다는 것을 필자는 버클리에서 배웠다.

흔히들 “종특”이라는 말을쓴다. 혹자들은 우리나라사람들의 종족 특성은 냄비처럼 활활 타오르다 차갑게 식어버리고 분열과 편가르기 뒷말이 특기에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들이라고들 한다. 다른 나라사람들에게 들은 말이 아니라 한국사람 자신들이 이렇게 얘기한다. 역사적인 사례들을 봤을 때 전혀 틀린말은 아니다. 하지만, 한강의기적을 봐도 IMF시련을 이겨내 다시한번 경제선진국에 합류한 우리나라의 저력을 보면 또 이런나라가 없다. 장점은 취하고 단점은 쳐내자.

한 때 버클리한인사회를 위해 열심히 일했던 사람으로서, 가끔 버클리를 보면 우리나라의 뒷면을 보는것 같아 아쉽기도하다. 한인사회가 숫적으로 증가하고 날이 갈수록 걸출한 후배들이 나와 이 사회를 위해 봉사해 좀 더 학교생활이 편해지고 재미있어진 것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가끔 분열을 조장하는 친구들을 볼 때면 참으로 참으로 참으로 안타깝기 짝이없다. 버클리안의 한인사회를 하나로 뭉치게 하기위해 그들의 선배들이 나의 선배들이 얼마나 힘쓰고 고민했던가. 우리가 속해있는 이 버클리 커뮤니티의 한인들이 버클리의 리더를 떠나 한국의 리더를 떠나 이 세상을 더욱 좋은 세상으로 이끌 수 있는 리더들이 UC버클리 한인사회에서 나오기를 진심으로 기도한다. 

다시는 오지않을 20대초반의 대학생활. 서로 아끼고 분열은 경계하며 함께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고 게을러지지않게 서로 동기부여를 하는 커뮤니티가 되었으면 하는 작은 바램이다.  하루하루 살기 힘든 이 사회에서 나 또한 신세한탄이나 게으름을 경계하고 하루 더 정진해야겠다. 

사진 출처: http://www.calplayground.com/wp-content/gallery/berkeley/berkeleycampanile01.jpg

현실은 소설보다 재미있다 하지 않았는가. 피할 수 없다면 즐기자.

객원필진 소개: 심우찬 (Michael Woochan Shim)

이 글을 쓰신 심우찬 씨는 현재 UC 버클리에서 통계학 전공으로 졸업을 앞두고 계시며, 농구동아리 Berskan과 한인 학부생 동아리 KUNA에서 각각 2대, 4대 회장을 맡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