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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FFICIAL PRESS/너저분한 자취 일기 - 完 -

(4) 흔한 자취 예정자의 요리 고민





그렇다. 1학년이 끝나가는 지금 이 시점, 필자는 여름 학기부터 나가 살 집을 성공적으로 구한 자랑스러운 자취 예정자다. 앞선 세 글이 여러 해 자취한 글쓴이들의 본격 자취 경험을 담은 글이라고 친다면, 이 글과 다음 글은 곧 자취를 앞두고 있는 기숙사생들의 경험과 기대와 걱정이 담긴 글이라고 소개할 수 있겠다.

 

아무래도 기숙사 생활과 자취의 가장 큰 차이는 스스로 요리를 해서 먹을 공간이 있느냐 없느냐가 아닐까 싶다. 여느 신입생들처럼 학교 식당 밥은 질릴 대로 먹은 필자인지라 직접 밥을 해먹겠다는 포부로 부엌이 있는 집을 찾아 나섰으나, 그 험난한 과정에 팔자는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일단 본론부터 말하자면, 필자는 요리에 소질도 재능도 자신도 없다. 학교 식당에서 제공해주는 음식의 퀄리티에 만족하는 편이고, 부족하다면 학교 매점을 털어 과자나 인스턴트 음식으로 군것질을 하는 것도 즐기는 편이다. 매우 건강하지 못한 식습관이라 부끄럽기 짝이 없지만 천성이 그렇다. 맛있는 음식은 당연히 좋아하고 맛없는 음식은 당연히 싫어하지만 내 입맛에 맞고 먹기 편하면 먹는 거다. 이렇듯 음식에 딱히 예민하게 굴지 않아서인지 굳이 내 입맛에 맞춰서 요리를 하겠다는 의지가 뛰어나지 않았고, 기숙사 살기 전에는 엄마가 해준 밥을 먹다 보니 요리를 배울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필자는 간과하고 있었다. 자취를 하게 되면 더 이상 학교 식당과 매점을 터는 일이 당연한 일이 아니게 되고, 장을 봐다가 해먹든 사먹든, 이 두 가지 경우가 더 익숙해질 것이라는 것을.

 

사실 기숙사 건물 1층에도 부엌이라면 부엌이랄 수 있는 작은 요리용 공간이 있기는 하다. 가스레인지, 전자레인지, 오븐까지 갖출 건 다 갖추고 있는데, 그저 좁고 환기가 잘 안돼 덥고 숨이 좀 막힌다는 것이 흠이겠다. 이 열악한 환경에서도 꿋꿋이 나름의 고퀄리티 요리를 해먹는 신입생들이 있다는 점에 필자는 충격을 받았다. 개인 후라이팬이나 냄비까지 구매해가며 고기도 굽고 찌개도 끓여서 햇반에 곁들여 식사를 하는 모습을 보며 저 식단이 정녕 기숙사생의 식단인가 감탄하기도 했다. 요리에 나름 자신 있고 재능 있는 친구 한 명이 ‘제대로 된’ 음식에 목마른 친구들을 위해 그 비좁은 공간에서 떡볶이를 해준 적도 있었다. 맛있었다. 뭐든지 의지와 능력만 있으면 해낼 수 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었다.




다만 그 의지와 능력이 필자에겐 없다는 것이 문제다. 필자도 그 자그마한 공간에서 요리를 시도해본 적이 있다. 요리라고 하기에도 웃긴 즉석 팝콘이었는데, 전자레인지에 적당히 돌리기만 하면 완성되는 작업이었다. 하지만 요리 무능력자들에게는 이 ‘적당함’이 가장 큰 적이다. 분명히 팝콘 곽 뒤에는 적당한 고온에 4분에서 5분 정도를 적당히 돌리라고 나와있길래, 나름 머리를 써 ‘일단 조금만 돌려보고 더 돌려야 할 것 같으면 더 돌리자’라는 생각으로 팝콘을 전자레인지에 넣고 3분 30초로 시간을 맞췄다. 연기는 2분부터 나기 시작했다. 필자는 당황했다. 이 연기가 내가 생각하는 그 연기가 맞는 건가. 2분이면 명시된 시간의 반도 안 되는데 어째서 벌써 불안한 연기가 나기 시작하는 걸까. 결국 2분 30초대에 내 실력을 못미더워하던 친구가 부엌으로 들어와 전자레인지를 열어 제쳤고, 매캐한 냄새와 함께 검은색으로 전사한 팝콘을 바라보게 되었다.

 

전자레인지에 팝콘 돌리는 것도 제대로 못하는 내가 과연 자취를 한다고 급 요리 실력이 늘어 밥을 직접 해먹을 수 있을까. 매우 걱정스럽다. 다행히 요리를 즐기고 잘 한다는 친구와 하우스 메이트를 하게 되어 굶진 않을 듯 하지만 모든 자취생의 로망이 요리라는 말은 거짓이라는 점을 밝히고 싶었다. 필자에게는 로망보다 공포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얼마 남지 않은 기숙사 생활 동안 필자는 열심히 학교 식당에서 끼니를 때우고 학교 매점을 털 예정이다. 사실 자취를 한다고 해도 이 패턴이 변하지 않을 것 같기는 하다. 변화가 있다면 기껏해야 기숙사에서 먹던 컵라면 대신 끓이는 라면을 더 많이 해먹는 정도겠지. 먹다가 질리면 본 시리즈 첫 글에서 소개된 라면 레시피를 통해 변화를 줘봐야지 싶다.

 

이상 자취 예정자의 요리 한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