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 곶의 찻집>-인간관계 속의 '나'

Posted by 희씨
2016.09.28 12:42 EDITORIAL/문예 :: Literature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서로의 부족한 점을 채워주며 서로를 보듬어 줄 수 있는 관계가 있는가 하면, 서로의 단점만을 부각시키며 서로를 갉아먹다가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을 잃게 만드는 관계도 있다. 서로의 꿈을 응원해주며 서로의 발판이 되어주는 관계가 있는가 하면, 서로의 꿈을 접을 수밖에 없게 하는 관계도 있다. 모든 사람을 웃고 울게 만드는 사람 사이의 '관계'가 과연 좋은 관계인지 나쁜 관계인지 판단하는 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기준점은 과연 무엇일까. 필자는 감히 그것이 '내가 얼마나 나다워지는가'라고 정의 내리고 싶다.


[1]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여름 방학을 지나 새 학기를 맞은 많은 사람들이 새 인연을 만들고, 본래 가지고 있던 관계들의 변화를 겪으며 정신없는 시기를 보내고 있을 것이다. 필자도 마찬가지로 익숙함과 새로움에 치여 혼란스럽던 와중에 한 소설을 접하게 되었다. <무지개 곶의 찻집>이라는 제목의 이 소설은 모리사와 이카오 작가의 작품으로, 일본 소설 특유의 청량감과 따스함, 그리고 신비로움을 담고 있다. 고속 도로 옆에서 급커브를 돌아 절벽 길을 한참 따라가야만 숨겨져 있던 모습을 내보이는 곶의 찻집은, 그 수수한 이름과 대비되게 후지 산과 바다가 훤히 내다보이는 황홀한 풍경을 배경 삼아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이 소설은 그 찻집과 찻집의 주인 에쓰코 씨를 중심으로, 그녀와 찻집을 방문하는 손님들과의 관계, 그리고 손님들 사이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간단히 말해 이 소설은 찻집의 주인 에쓰코 씨가 우연히 혹은 오랜만에 찻집을 찾는 손님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에 맞는 노래를 틀어주며 맛있는 커피를 겸해 따뜻한 위로를 전해주는 일상적인 내용이다. 그런데도 책의 내용이 마음에 크게 와 닿는 이유가 뭐였을까 생각해본다면, 바로 소설의 몽환적인 분위기에 크게 기여하는 "무지개 그림"이 아닐까 싶다. 오렌지색과 분홍색이 섞인 노을이 내린 후지 산과 바다의 풍경, 그리고 그 풍경을 가로지르는 커다란 무지개를 담은 이 그림은, 곶의 찻집 한쪽 벽면을 크게 장식하고 그림을 접한 모든 사람들의 칭찬을 받는다. 섬세함을 발견하기도 하고, 반짝반짝함을 발견하기도 하며 사람들이 그림을 통해 본 무지개는 저마다의 다른 울림을 주고, 다른 의미를 지닌다. 서로의 무지개를 찾아주기도 하고, 자신의 무지개를 지키기 위해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포기하는 일도 생긴다.


[2]


       소설 속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 중에 필자의 마음에 가장 큰 울림을 준 관계는 에쓰코 씨와 다니 씨의 관계였다. 겨울과 "러브 미 텐더"라는 노래를 테마로 한 이 장의 이야기는 에쓰코 씨와 다니 씨의 이별을 담고 있다. 결혼을 했다면 자식들은 물론이거니와 장성한 손주들을 두었을 나이의 둘은 모두 홀로이다. 남편을 일찍 떠나 보낸 에쓰코 씨와 오래전부터 그녀의 친구로 곁을 지켜준 다니 씨는 서로의 곁에 있을 때 가장 편한, 친구 사이이다. 사실 둘이 순수한 친구 사이일 뿐은 아니라는 것을 서로는 알았을 것이다. 다니 씨는 언제나 에쓰코 씨가 홀로 외롭지 않겠냐며 은근히 곁을 내주려 했고, 에쓰코 씨는 언제나 다니 씨가 참 좋은 친구라며 그 제안을 거절해왔다. 이 장에서 다니 씨가 마지막 제안을 했을 때도, 에쓰코 씨는 제안을 거절한다. 그리고 그녀는 말한다. "다니 씨의 마음을 받아들이면 틀림없이, 앞으로 절대, 그 무지개를 보지 못할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고.


       앞서 말했듯이 에쓰코 씨가 곶의 찻집을 차린 건 남편이 죽기 전 남기고 간 무지개 그림 때문이다. 너무나도 아름다워 언젠간 부인과 함께 보고 싶은 풍경이었다고, 꼭 같이 보러 가자던 그 풍경을 결국엔 함께 보지 못한 채 눈을 감은 남편의 기억을 안고, 그가 언젠가 그 풍경을 바라본 그곳에 찻집을 차리고 매일같이 무지개가 뜨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에쓰코 씨. 무지개는 남편이 세상을 뜬 이후 그녀를 살게 한 원동력이었다. 언제 서야 그 무지개를 실물로 볼 수 있을지, 이윤을 바라는 장사가 아닌 오고 가는 손님들을 벗 삼아 하염없는 기다림의 쉼터가 되어주는 곳이 그녀의 찻집이다. 그렇게 오랜 세월을 버텨온 그녀 옆을 꾸준히 지켜온 다니 씨 역시 그녀에게 많은 힘이 되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와 함께 가자는 제안을 거절했다. 얼마가 남았을지 모르는 미래를 위해 한순간에 포기하기엔 그 무지개는 너무나도 큰 그녀의 과거였고, 현재이고, 일부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겐 저마다의 무지개가 있다. 저마다의 꿈이나 희망, 기억 같은 것들. 그리고 그 무지개와 함께 하는 시간만큼 그것은 자신의 일부가 된다. 그렇기에 품고 있을 때의 기대와 설렘으로 인한 풍족함과 마찬가지로, 놓게 됐을 때의 허전함과 상실감 역시 큰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내가 지니고 있는 꿈이나 가치, 모습들을 지킬 수 있는 관계여야 비로소 좋은 관계라고 하고 싶다. 아무리 상대방에 대한 믿음과 애정이 깊다고 해도, '무지개를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주는 관계라면, 내 무지개가 무엇이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게 만드는 관계라면, 굳이 자신을 잃는 위험을 무릅쓰고 본인을 던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그 관계가 우정이든 사랑이든, 내가 나일 수 있을 때 우리는 당당해지고, 건강해지고,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다.


[3]


       갓 대학에 온 신입생들에게 대학 와서 가장 힘든 점이 무엇이냐 물어보면 '인간관계'라고 답한다. 대학 와서 지식을 쌓으며 받는 스트레스보다 '인간관계'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더 심하다고 대답하는 경우도 있다. 초, 중, 고등학교를 아무리 사람 많은 곳에서 나왔다 쳐도, 대학에 와서 만나게 되는 사람의 수와는 비교할 수가 없다. 처음부터 지레 겁을 먹거나, 하도 여기저기 조언을 많이 들어서 몸을 사리는 경우도 많지만, 대부분의 대학생은 이렇게 많은 사람도, 많은 관계도 즐겨보기로 한다. 처음엔 좋다. 다양한 배경에서 온 다양한 성격의 사람들. 모두 잘 어울릴 수 있을 것 같고, 잘 어울리고 싶다. 정이 많은 사람일수록 자신의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나 자신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모두 터놓고 보인다.


        거기서부터 관계는 삐걱대기 시작한다. 본인에게 그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 의미였고 큰 존재감이었든, 그 사람에게는 본인이 그만큼 중요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대학에서의 관계란 예전처럼 주는 만큼 받을 수 있는 정 많은 관계이기 쉽지 않다. 그저 그만큼의 존재였을 뿐인 것을 인정하면 끝날 테지만, 애써 붙잡아 본다. 내가 내보인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걸까 고민하며 나를 바꿔본다. 맞춰본다. 그렇게 노력해도 돌이켜보면 그 사람에게 본인의 존재는 딱 거기까지일 뿐이고, 남은 것은 형체를 잃은 자신의 정체성이며 그로 인해 낮아진 자존감이다. 좋지 않다. 어떤 순간에도 본인의 성격은, 본 모습은 숨길 수 없고 바꿀 수 없다. 언제까지고 내가 아닌 사람일 수는 없다.


       물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고 받은 만큼 애정을 돌려주는 사람만을 만나고 다니지도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린 싫더라도 거리가 있는 관계를 만들기 시작하는 것이다. 나의 내면이나 이상까지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유지가 가능한 정도의 관계만을 형성하는 것이다. 에쓰코 씨가 다니 씨를 친구라는 울타리 안에 넣어놓기로 결정한 것처럼, 관계에 선을 긋는 것이다. 필자가 결국 하고자 하는 말은, 무지개가 추상적으로 얼마나 거창한 의미를 지니든, 그건 모두 본인의 일부라는 것이다. 본인의 모습이다. 무지개를 잃는다는 건 나를 잃는다는 의미가 된다는 말이다.


       사회생활은 중요하다. 하지만 관계를 얻자고 나를 잃어서는 안 된다. 사람은 어떠한 계기가 주어지기 전엔 절대 스스로 자기 성찰을 하지 않는다. 필자는 오늘 독자들을 위해 그 계기를 마련해주고자 한다. 머리 아프고 복잡한 인간관계를 떠나 모두 하루 정도는 자신에 대해 생각해보고, 자신의 무지개를 상기시켜 보는 밤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한다. 에쓰코 씨의 제안처럼, 맛있어져라- 하고 주문을 건 따뜻한 커피 한 잔이나 시원한 아이스크림 한 접시와 함께라면 금상첨화겠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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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https://t1.daumcdn.net/cfile/blog/0176A93C51032F1B2A

[3] http://lview.m.ezday.co.kr/app/view_board.html?q_id_info=1159&q_sq_board=7149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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